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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리 정착(10개월)하고 처음입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외면하고 싶은 깊은 외로움에 치를 떨다가 아침을 맞았고, 솥밥 주는 식당에 찾아가 만두를 주문했어요. 아이들이 늦은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 인스타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았는데 예주가 얼마나 더 눈 부시게 예뻐질지 너의 존재감이 아비를 미소짓게 만듭니다. 좋아요 하트가 벌써 에스더를 넘어섰습니다. 아비는 싸이월드에 대기 중인 에스더 팬덤을 보고 기절할 뻔 했는데 말입니다. 성현인지 영선인지 허깔리는 사진 한 장이 볼 때마다 착각하게 만드는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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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누나에게 연락한 일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모자 상봉도 별다른 이변은 없었지만 감동도 없었어요. 육남매 넘버 3인 나는 누구일까? <땅을 사랑하고 땅과 살아가는 이 땅의 농부들...> 해방의 날, 되찾은 땅을 거닐던 최서희는 감회에 젖어 옛 기억을 떠올립니다. 1894년이면 대한제국 수립 직후입니다. 조선 말기, 일제의 침탈이 시작되던 격동기를 배경으로, 작가는 주인공 서희의 어린 시절과 그녀가 속한 최 참판 댁의 몰락 조짐, 그리고 민중의 불안한 삶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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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 마을에는 땅을 빼앗기거나 물가가 요동치는 등 식민 침탈의 전조가 서서히 나타납니다. 마을의 백성들은 점점 생계가 위협받고, 일제에 협력하는 자와 저항하는 자 사이에 갈등이 조성됩니다. "농사지 천하 대본야" 선봉대에 한자로 써진 벤허를 못 본지도 한 참 됐습니다. 그때 농악놀이는 지금의 아이유 콘서트를 능가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쾡과리 소리 요란한 농악놀이를 자주 보았어요. "나도 갈래 갈 테야(서희)" 만추의 들녘이 풍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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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외양창의'의 캐치를 들고 분연히 일어선 동학도들과 왜놈들의 싸움 시퀀스가 내 화를 슬금슬금 돋우네요. 오늘날 트렉터 시위가 왜 센가 했는데 동학 농민 혁명이 있었네요. 연 날리는 애기 씨-길상과 골목대장 김거복이의 말 싸움에 애기 씨가 나섭니다. "너는 누구냐?(서희)" "바보, 왜 가만있어?"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일입니다(길상)" 나는 선친이 단 한 번도 내 편을 들어 준 적이 없어서 유년 시절 한이 맺혔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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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나타난 낯선 이에게 "너는 누구냐?(서희)" 당돌하게 묻는 서희에게 사내가 대답 대신 지붕 위에 떨어진 방패 연을 내려다 줍니다. 나는 방패 연 만드는 걸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한지(달력)-댓 겉살-밥풀을 가지고 형태를 잡은 후, 맨 위쪽을 실로 묶고 멱 줄을 잡으면 근사한 방패 연이 완성됩니다. 우리 시대는 가오리연과 방패 연을 주로 만들었는데 방패연은 꼬리를 달지 않았어요. 직접 만든 연으로 연이 안 보일 만큼 높이 띄워 본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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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연줄이 끊어지면 나무에 걸리거나 지붕 위에 떨어지곤 했어요.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마음마저 날아라/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한 점이 되어라 한 점이 되어라 /내 마음속에 한 점이 되어라 (라이너스/연)" "마님, 소문 들으셨습니까? 동학 계주가 참수 당했다고 합니다(신구)" 최 참판 댁 주치의인 영감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순간, 최 씨 마님의 손이 파르르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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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최 참판 댁의 외동딸. 주인공.
최치수 – 서희의 아버지. 방탕한 양반.
윤 씨 부인 – 서희의 어머니. 단아하고 강인한 여성.
월선이-무당 딸. 용이 첫사랑.
김 환-최 씨 마님과 김계주 사이에 낳은 혼외 자.
임이네-칠성의 부인
강청댁-용이의 처
별당 아씨-서희 어머니. 최치수의 각시.
길상-우관 스님에게 길러져 종이 된 사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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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동학 혁명이 진압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머슴살이를 자처하는 낯선 사내가 서희네 대문 앞에 나타나면서 하동 평사리에 정반합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칩니다. "혹시 머슴을 안 쓰십니까?(김환)" "마님, 어떤 총각이 머슴을 살고 싶다고 합니다(김서방)" 하동 평사리 최 참판 댁 대저택은 안동마을을 이미지 모션 시킵니다. 내 다음 여행지는 무조건 통영이 될 것입니다. 서희는 최 참판 댁의 외동딸로, 귀하고 똑똑하며 도도한 성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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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을 살겠다고 했느냐? 있고 싶으면 있어 보아라(최 씨 마님)" 구천(김 환)의 등장은 최치수에게도 어지간히 신경 씌는 일입니다. "너는 누구냐?(최치수)" 웬지 집안을 위태롭게 만들 것 같은 예감입니다. 만약 최치수의 무정자증이 사실이라면 최치수는 실은 서희의 생부가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최치수는 "무정자증"이라는 말을 주변에서 듣거나 의심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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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가 생물학적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서희는 '최치수의 딸'로 자라지요. 이건 가문을 지키기 위한 겉모습일 수 있습니다. 서희는 사실상 ‘외부 남자’와 별당아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일 가능성이 큽니다.<토지1987>속에서는 이러한 출생의 비밀이 서희의 정체성 혼란과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이 구조는 고전적인 ‘운명 비극’ 구조로, 서희의 자아 형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무정자증"은 상징적인 의미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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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구시대 양반의 상징입니다. 작가는 이런 그를 통해 몰락해가는 양반 지주 계층의 무력감을 드러냅니다. 즉, 무정자증 = 생산력 없는 계층 = 미래 없는 권력자라는 뜻이지요. 최치수의 무정자증은 양반 사회의 단절된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이 출생의 비밀은 서희라는 인물이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내적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싫대도 싫어. 나는 아버지가 싫다니까. 매일 기침만 하고. 어머니! 나는 문안 안 갈랍니다(서희)" "아버님, 병안에 차도가 있는지 문안드리옵니다(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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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아! 왜 이리 방이 차느냐(최치수)" '잘못했습니다.(길상)" "노는 손 있으며 부채질 좀 하라(귀녀)" "나리 마님 탕 재입니다(귀녀)" "어서 데리고 나가시오(최치수)' "탕제를 물리거라(별당 마님)" "그런데 군불을 때야 하지 않습니까?(귀녀)" 자리나 깔라는 최 치수의 호령에 귀녀의 찬스 포착, 벽장에서 이불을 꺼내면서 가슴을 살짝 풀어 재치는 센스가 요염합니다. 벽장은 어릴 적 내 비밀 아지트였어요. 그곳에 올라가면 쾌쾌한 냄새와 공기가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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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당한 선친의 환영이 김환을 울부짖게 합니다. 우연, 첫 만남(김환/별당아씨)은 지성을 들이고 나오는 성황당 앞입니다. 분홍 저고리에 남색 치마가 강렬합니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김말봉 작사, 금수현 작곡>" 짚신 꼬는 사랑방 풍경이 정겹습니다. 흙집에 들어서면 벽장에서 맡았던 그 냄새가 납니다. "네 어미한테 진 빚이 있느니라(최 씨 마님)" 강청댁과 임이네의 텃밭 대화가 끈적끈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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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선이는 원래 니 서방이랑 혼사가 오갔는데 다른 곳으로 시집갔다가 못 살고 돌아왔다고 안 하더냐(임이네)" 강청댁도 임이네도 내 눈에는 최고의 여인입니다. "어찌 사문초를 찾았느냐(최치수)" 애기 씨를 몸으로 구해준 구천, 아들을 쳐다보는 어미와 찡그리는 아들, 이 둘의 조합을 어떻게든 연결하려는 김치수의 눈빛이 형사처럼 번뜩입니다. "구천이 죽었어?(서희)" 빨간 사탕 두 개를 건네는 얘기씨의 고사리 손이 앙증맞습니다. "그놈을 내치시지 그러십니까? 내가 맞아야 할 매라면 피하고 싶지 않습니다(최 씨 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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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에서 씨 암탉 두 마리를 꺼내 들고 나서는 서방에게 강청댁이 지껄이는 한바탕 악다구니가 찰집니다. 나는 도회지에 살았는데도 열두 살 무렵 닭장을 짓고 닭을 키운 적이 있습니다. 강청댁 같은 여자의 '강짜'가 그립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 것입니다. 월선이 배가 들어오는 길목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월선은 왠지 관상이 슬프고 천해 보입니다. 평상 위에서 장터 국밥을 먹는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주막 주인이 월선이입니다. 최 씨 부인이 과부를 돌아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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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와 칠성이 말고 김평산이 있었네요." 명색이 양반인데 술값 떼먹겠나(김평산)" 유혜진(김평산) 상판대기로 양반 역을 맡긴 감독이 누군지 살짝 궁금해집니다. "와 우노? 술맛 떨어지게. 가자!(용이)" 진달래꽃 복숭아꽃이 무공해 무방비로 정서를 파고드는 것이 애잔한 기운을 몰고 올 것 같습니다. 바느질하는 아낙이 강청댁이고 코딱지만 한 단칸 방에 시무룩한 용이 누워 있는 것 자체로 각시 보구리를 채웁니다. "한 이불 덮고 산지가 얼만데 그 무당 딸년만 생각하니까 알라가 안 생기는 기라(강청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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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녀가 아들 하나 낳겠다며 최치수 가죽 신발 뒤축을 잘라 태워서 잿물를 마시네요, "신발 선물하면 도망간다"는 속설이 여기서 유래된 걸까요? "네놈이 우관 스님을 어찌 아느냐? 네 아비가 누구냐?(최치수)" <미스터 선샤인>의 가마 시퀀스가 복사꽃과 그러데이션을 만들고 무공해 개울이 청정 산소를 마구마구 내보는 것 같습니다. 소나기(황순원)가 원조일까? 토지(박경리)가 먼저일까? 별당아씨와 구천의 러브라인이 클라이 맥스를 만들 모양입니다. 화적 떼가 나타났고 김환이 상남자가 됩니다. "너는 누구냐?"
2.
박경리의 『토지』는 단순한 대하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라는 낯선 강물에 내던져진 ‘이 땅의 사람들’의 초상이며,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끈질긴 자기 물음의 서사이다. 1편, 첫 장면부터 우리는 해방의 날, 서희가 되찾은 땅을 밟으며 과거를 떠올리는 회상 구조 속으로 들어간다. 땅은 사라졌지만 서희는 살아남았다. 그 살아남음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더 큰 짐을 짊어진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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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진압되고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시대.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바뀌지만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암울하다. ‘척외양창의(斥倭攘倡義)’의 깃발은 이 땅의 민중이 마지막 자존심으로 들었던 외침이지만, 힘 없는 그들의 삶은 왜놈의 돈과 무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 시대의 격랑을 오롯이 겪는 곳, 평사리. 최참판댁의 몰락은 단순한 한 가문의 비극이 아니라, 봉건 양반 체제가 붕괴되어 가는 하나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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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수, 무능하고 향락적인 양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정자증이다. 생산력 없는 권력,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기득권. 작가는 김치수의 무정자증을 통해, 이미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조선의 구질서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그리고 서희. 그 중심에 서 있는 존재. 어머니는 별당아씨, 아버지는 김치수...이지만 생물학적 관계는 의심스럽다. 아버지의 병실을 피해 도망치는 서희의 말 속에는 원망보다 더 깊은 불편함이 있다. 그녀는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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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출생의 비밀을 넘어서 그녀의 존재 전체를 흔드는 물음이다. 어린 서희가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 장면은 작품 전반의 주제의식을 예고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길상에게, 구천에게, 나아가 우리 독자들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그저 이름이나 직업, 가문을 묻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실존적 질문. 그 물음은 시대의 풍파 속에 떠밀려 살아가는 인물들 모두의 가슴 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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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방패연은 이 질문에 대한 작가의 상징적 대답처럼 느껴진다. 낡은 달력 종이, 댓살, 밥풀로 만든 연은 하늘 높이 날아가지만 언젠가는 줄이 끊기고 떨어진다. 서희의 삶도 그러했다. 줄이 끊어진 채 하늘을 나는 연처럼,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헤매며 날아간다. 그리고 그 기억의 방패연은 독자인 우리에게도 묻는다. “너는 누구냐?” 이 소설은 결국 "토지(땅)"를 매개로 한 정체성의 탐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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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소유의 대상이기 전에 삶의 자리이며, 뿌리이며, 기억이다. 그 땅을 잃고도 살아남은 사람, 그 땅을 다시 찾은 사람, 그 땅 위에서 끝내 피 흘리고 죽은 사람들 모두가 이 이야기를 완성해간다.『토지』에서 서희가 반복적으로 묻는 “너는 누구냐?”는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과연 지금,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2025.9.17.wed.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