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지왕] 주성치는 오랫동안 한국시장에서 홀대 받아왔다. 그러나 [소림축구]는 단숨에, 주성치와 우리 관객과의 거리를 단축시켜 줄 것이다.
[소림축구]는 의심할 바 없는 주성치 영화의 결정판이다. 주성치 영화의 특징인 극단적 과장과,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상상력을 풀어가는 분방함, 체면 차리지 않고 관객들을 무장해제시키며 웃을 수 있게 하는 본능적 힘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주성치 영화의 종합선물 셋트를 구성하고 있다.
소림무술 쿵푸를 축구와 결합시킨 이 전대미문의 주성치 프로젝트는, 축구라는 만국 공통어에 쿵푸의 신비함을 결합시키면서, 대포알 슛이 되어 관객들의 심장을 향해 돌진한다. 주성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눈물 콧물 소변 대변 등등의 온갖 배설물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순화되어 있다. 다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천역덕스러운 지저분함이 사라졌다고, 골수 주성치 팬들은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더 많은 대중화에는 기여할 것이다.
[희극지왕]에서 껴안듯 포개져 있는 두 남녀씬을 생각해보라. 남자의 코에서 길게, 그 끈적임을 자랑하며 뚜욱 뚝, 떨어지는 콧물이 눈을 감은 여자의 입속으로 맛있게 들어가던, 그런 엽기적 씬은 아쉽게도 [소림축구]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주성치가 [엽기적인 그녀]를 재미있게 보았고 언제 전지현과 함께 영화찍고 싶다고 말한 것은 그러므로 우연이 아니다) 거의, 라고 말한 것은 비슷한 씬은 그래도 조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성치를 사랑하는 만두집 여자는 사랑이 거절 당한 뒤, 만두를 빚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이 뚝뚝 떨어진 밀가루 반죽, 사람들은 이상하게 만두맛이 갑자기 쓰고 텁텁해졌다고 말한다. 마치 알폰소 아라우 감독의 [달콤 쌉싸름한 쵸콜렛]에서 사랑하는 남자가 집안의 반대로 자신의 언니와 결혼하게 되자, 결혼식 전날 밤 쵸콜렛 케익을 만들기 위해 반죽을 하며 눈물을 흘리던 동생처럼, 그리고 다음날 결혼식에서 그 케익을 먹은 모든 하객들이 이상하게 눈물을 펑펑 흘리던 것처럼, 마술적 리얼리즘의 경계로까지 가지는 않지만 역시 주성치답게 코믹한 터치로 소재를 마무리한다.
주성치의 뻔뻔함이야말로 주성치를 주성치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소림축구]에서 주성치는 많이 의연해졌다. 160억원 정도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역대 홍콩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소림축구]. 홍콩 반환 이후에도 거의 유일하게 홍콩에 남아 홍콩 영화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이 재능많은 영화작가는 [소림축구]에서도 감독, 주연, 제작 등을 모두 겸하고 있다.
[소림축구]는 일종의 [공포의 외인구단]의 희극 버전 같은 것이다.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왕년의 쿵푸 형제들이, 퇴락한 전직 축구 선수를 중심으로 모여서 최고의 축구단을 구성하고 전국 규모의 축구대회에서 승리한다는 내러티브 뼈대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쿵푸와 축구라는 절묘한 조합, 주성치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뻔뻔함으로 이루어진 코믹한 요소가, 비무장 지대의 지뢰처럼 깔려 있어서 우리는 수시로 툭툭, 나사 풀어진 듯 웃을 수밖에 없다.
쿵푸를 연마하고 있는 씽씽(주성치 분)은, 황금발이라는 닉네임을 가질 정도로 최고의 축구스타였던 명봉(오맹달 분)을 길거리에서 만난다. 명봉은 친구의 음모로 패널티킥을 실축한 후 관중들에게 몰매를 맞아 다리까지 부러진 불구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들은 축구팀을 구성하기로 하고, 씽씽은 예전에 함께 소림무술을 배우던 사형제들을 찾아다닌다.
쉴새없이 먹어대서 비대해진 체구를 가진 임자총, 무쇠로 단련된 머리를 갖고 있지만 이제는 밤업소 허드렛일이나 하는 황일비, 실업자 신세로 가건물에서 사는 진국곤 등의 쿵푸 형제들은 의기투합해서 명봉의 지도 아래 축구 기본기를 배우기 시작한다. 여기에 씽씽과 만두집 여자와의 사랑이 양념처럼 박혀 있고, 지금은 축구협회장이 된 명봉을 배신한 예전의 친구 사이의 복수도 긴장감을 안겨 준다.
[소림축구]는 무작정 허탈하게 웃어대는 코미디는 아니다. 삶의 바닥까지 내려간 사람들이 다시 정상으로 치솟는 과정에서 겪는 페이소스와 눈물, 감동이 웃음으로 버무려져 있다. 그만큼 웃음의 강도는 강하다. 특히 축구 경기에서 집중 활용된 컴퓨터 그래픽은 이 영화에 또 다른 쾌감을 안겨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