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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원문보기 글쓴이: 보디삿트와
사람 양심이 '부처' | ||||||||||||||||||||||||||||||||||||||||||||||||||||
[큰스님]송암 스님(경주 죽림정사)
10년 전 어느 날 송암 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는 죽림정사 앞마당에 세 그루의 오동나무가 새 순을 틔웠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닌데 건너 산에 있는 오동나무의 씨가 날아와 마당가에 나 란히 세 그루가 자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뽑아 버려야 한다고도 했지만 스님은 “저도 인 연 따라 왔으니 그냥 두라”고 했다. 지금 죽림정사에 가면 한그루의 오동나무가 본래부터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마당 한쪽에 우뚝 서 있다. | ||||||||||||||||||||||||||||||||||||||||||||||||||||
“자신감이 생긴 거지. 상상조차 해 본적이 없는 산 정상에 올랐으니 스스로 마음이 달라지 기 시작한 거야. 그 이후로 조금씩 달라져서 이제는 공부가 안된다고 하소연을 하는 보살님 이 있으면 ‘기도하세요’라고 말을 할 정도가 됐으니…. 허허허. 생각이 분명하고 나름대 로 제 역할을 하면서 살고 있잖아.”
인연을 소중히 여겨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 스님의 일상은 우주의 흐름을 바꾼 일처럼 위 대해 보인다. 그러나 스님에겐 그저 인연을 따라 응했을 뿐인 평범한 일상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크든 작든 찌그러졌던 모두 조화를 이루게 돼 있다”며 스님의 왼편으 로 놓인 병풍을 가리킨다. 스님의 은사이신 경봉 스님의 반야심경 글을 제자가 나무에 새긴 병풍이다. 글자 하나하나는 아무렇게나 쓴 것처럼 자유분방하지만 전체는 조화를 이루며 글 이 살아 움직이는 듯 보이는 병풍이다.
병풍에 닿았던 눈길을 돌려 가만히 스님의 방을 둘러보니 경봉 스님이 1977년 어느 이른 아 침, 송암 스님을 위해 써 주었던 게송이 걸려 있고 스님이 눈길이 가장 닿기 쉬운 오른편 벽에는 경봉 스님의 사진이 높이 걸려 있다. 낮은 서탁 사이에는 경봉 스님 글씨를 모아 편 찬한 책이 꽂혀 있다. 송암 스님이 마음 깊은 곳에 은사 스님을 모시고 살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풍경이다.
“우리 스님 모시고 있던 시절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우리 스님 뵙기가 죄송 스럽기도 해. 허송세월 하는 것 같고. 지금도 니는 공부는 안하고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그 리 하고 있노? 하시겠는데. 하하하!”
스님이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는 방에 앉아 앞산을 향해 난 창을 열어놓고 산을 바라보는 일. 앞산을 향해 난 작은 창문 위에는 ‘향성(香聲)’이라는 힘이 넘치는 글씨가 나무에 새 겨져 걸려 있다. 스님이 직접 쓴 글씨다.
스님이 앞산 풍경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속에 진리의 소리(香聲)가 여실히 담겨있기 때문이 다. “보고 있으면 아름답지 않는 게 없고, 부처님 아닌 게 없어. 그리고 고맙지 않은 게 없고. 그 심정 누가 아노?” 세상 만물의 본바탕을 보는 스님의 심안(心眼)을 누가 짐작하 랴?
“세상 만물은 아는 만큼 보이게 마련이야.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얼마나 아름다운 지. 밤에 창을 열어놓고 있으면 저 산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것 같아. 세상 만물이 모두 고맙고 정말 아름다워.” 어떻게 하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까?
“집착을 떨구면 그렇게 돼. 딴 짓 하지 말고 부처님 하라는 대로 하고 살면 돼.” 결국 내가 세상이다. 내가 마음을 바꾸면 세상도 바뀐다.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싶으면 세 상의 아름다운 진면목에 눈을 뜨라. 송암 스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 세상은 사라지고 나 홀 로 우뚝했다, 죽림정사의 오동나무처럼. 글=천미희 기자ㆍ사진=박재완 기자
우리가 전부 마음눈이 어두워서 그렇지 우리 모두가 우주에서 제일가는 ‘스타’입니다. 요 즘 스타 보러간다고 소리 질러가며 야단들인데 그건 자기 속에 있는 사리 찾을 생각은 안하 고 사방으로 남의 사리 보러 다니는 것과 꼭 같습니다.
세상사람 전부가 스타입니다. 자기한테 맡겨진 배역을 잘 소화하면 스타가 됩니다. 거미, 지네, 두 발 짐승, 네 발 짐승, 땅 속, 물 속, 하늘에 사는 짐승도 많은데 사람 몸 받아서 온 것만 해도 뜨거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이 됐으니 얼마나 고맙습니 까? 사람 몸 받았을 때 잘 살아야 합니다. 요즘 웰빙 바람이 불고 있는데 진정한 웰빙은 지금 이 세상 잘 살아서 팔자 운명을 뛰어넘어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팔자다 하고 가만있으 면 그건 바보예요.
불교는 제 성품을 봐서 부처 이루고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제 정신 가지고 살라는 말입니 다. 종교는 이 세상 사는데 바르게 잘 살라고 나온 겁니다. 종교에도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맹신과 광신이 아닌 제 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바로 보고 바르게 행하라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이라는 간단한 말속에 불법의 가르침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온화한 말과 밝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사십시오. 나는 당신만 보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남을 이롭게 하려는 원을 세우고 살아가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남을 위하는 일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그게 바로 극락입니다. 정리=천미희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이력? 세수 84세가 전부 송암 스님은 세수 84세. 그러나 형상을 갖춘 몸의 나이는 스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언 제나 내 나이, 내 직업, 내 가족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에게 스님은 ‘나’라는 울타리를 벗 어난 근원을 따져 보길 권한다.
세 번째 스님을 뵈었지만 스님의 이력은 알 수 없었다. 몇 년도에 출가를 했고 언제 계를 받았는지, 스님께 여쭈어도 대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만 분명히 알 뿐. 이번 한 생에 국 한된 이력은 뜬구름 같아서 도무지 알릴만한 게 없다는 것이 스님의 대답이다.
과거의 이력보다 여실한 것은 지금 스님은 죽림정사에 머물며 찾아오는 이에게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처럼 청량한 법문으로 마음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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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雪의 회고
천 미희 기자님의 글을 대 하면서 불현듯 죽림정사 큰 스님을 뵙고 싶어 진다.지난 3월 6일
통도사에서 방장을 추대하기 위한 산중회의 때, 죽림정사에서 오셨다는 말을 바람결에 듣
고, 찬바람이 매서웠던 통도사 설법 전 앞에서 오후 늦게 까지 기다렸어나 결국 뵙지못 하
였다. 죽림정사 큰스님과 나는 먼 과거로 돌아가야만 이야기가 시작된다.
상세한 것은 다시 나의 친견기를 쓰기로 하고, 큰스님과 만난 시절은 1972년부터 시작한다
그 당시 위에서 언급된 몸이 불편한 처사는 20세 이하의 소년 이었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작년에 죽림정사에 큰스님 친견 했을 때 생각이 다시 뜨 올라, 이 글을 우리 카페
에 옮겨본다.
죽림정사 큰 스님께서 울주군 남창 대운산 내원 암, 불사 다 이루시고 떠나실 때 까지
늘 그림자처럼 뒤따르고 했었는데, 내원 암 큰 스님 안 거처 뒤뜰에, 단 감나무가 생각난
다. “아직도 처사님 이곳에는 공양주가 없으니 바닷가에 나가 공양이나 합시다” 하시며
앞 장을 서 신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숲속, 된장찌개가 전문인 음식점에 큰스님 마주 대하
며, 지난 내원 암 불사 이야기를 밤늦게 하다보니 마치 고향에 온 느낌 이었다.다시한번 큰
스님 기억해 주시게 한, 천 미희 기자님에게 감사드리며 큰 스님 오래오래 건강 하세요.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화로운 법문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