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갑인님 글;;
예수의 부활이 "육체부활"이라는 것과 "삼위일체"부분이 조금 의문이 갑니다.
======>답변;;
* 예수님의 부활이 육체의 부활임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가장 큰 포괄적 이유는
신구약 성경기록시대는 무엇이든지 육체의 예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부활도 문자적인 무덤에서 살아나오신 육체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에 대해 또 세부적인 예를 든다면...
* 예수님은 부활후에 베드로 등이 고기잡는 바닷가에 나타나셔서
시장하실 때 구운 생선도 잡수셨음만 보아도 육체의 부활이 됩니다.
* 의심많은 도마에게 손에 못자국을 보여주실 수 있었음은 육체의
부활이므로 가능했습니다.
* 부할하신 후 40일만에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그 때 구름이 가리워 보이지
않게 되더라고 했음만 보아도 예수님은 육체의 부활체였던 것입니다.
레갑인님 글;;
부활 하신 후 베드로나 엠마오 제자나 마리아등이 예수의 모습을 보고 알아보지
못한 장면들에 대하여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답변;;
예수님은 육체의 부활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육체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삼차원세계의 육체가 아니고 사차원의 몸입니다.
즉 예수님은 물리적 세계의 법칙의 지배를 받지않을 수 있는
자유자재로운 몸입니다. 물리적세계의 법칙의 지배를 받지않는
자유자재로운 몸이므로 잠긴문을 통과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나실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유자재로운 사차원의 몸이므로 예수님은 베드로나 엠마오 제자나
마리아 등에게 자신의 몸을 감추고자 하면 얼마든지 감추실 수 있었던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같이 길을 걸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죠.
하지만 자유자재로운 몸이므로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실 수도 있습니다.
도마에게 못자국을 보여주신 것처럼...
여기서 중요한 키포인트는 무엇인가 하면...
앞으로 우리가 육체의 구원을 받는 지상천국에서 이와같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차원의 몸으로 살게 됨을 보여주신 뜻이 있습니다.
자유자재로운 사차원의 몸이므로 어떠한 재난에도 도피할 수 있고
그 육체가 영생하게 됩니다.
즉 자유한 몸으로써 중력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않는 몸이므로
추락사할 이유가 없으며
화재에서나 수재에서나 생노병사에서나 항상 자유하기 때문에
육체가 영생하게 됨을 보여주신 뜻이 있습니다.
레갑인님 글;;
저는 예수부활이 "육체부활"과 "육체승천"과 "육체재림"이라는 기독교 내에 만연하는 신앙과는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신이신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몸을 입고 언제든 강림하실 수 있기에 성육신하셔서 십자가를 통해 다 이루셨다하시며
새로고 산길 곧 지성소 언약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지요.
======>답변;;
기성교단에서 주장하는 예수님의 "육체부할" "육체승천" "육체재림" 은
저역시 다르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다른지 그 점에 대해서는 차차로
대화나누기로 하고 여기서는
"십자가를 통해 다 이루셨다" 라든가 "지성소 언약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에 대해서 두가지 말씀드려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레갑인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 에 대한
외침은 구원을 다 이루었다가 아니고 율법을 다 이루었다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초림때 무엇이든지 육체의 예법으로 다 이루셨기
때문에 율법이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요, 말씀은 논리며 이성이며
로고스며 형이상학인데(계19:13)
예수님은 초림때 하나님에 대해서 논리적/형이상학으로 알려주신 일이 없으며
무엇이든지 육체의 예법과 형이하학으로 알려주셨으므로 율법입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복음의 핵심이 되는데
그 십자가가 곧 육체의 예법으로 죽어주신 육적 혈액을 흘려주셨기
때문에 그 십자가는 의문의 십자가며 의문의 십자가이기 때문에
그 분이 운명하실 때 외치신 "다 이루었다" 는 율법의 이루심이 됩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란 반드시 구원을 주시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주신 것이므로
율법도 광범위한 시각에서는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즉 초림때 당장의 구원은 아니지만 미래 재림때 있을 구원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천국비유를 베풀고 가신것만 보아도 구원(천국)은
재림 때 이루어질 것임이 분명합니다.
둘째,
구약제단은 실상이신 초림주 때와 재림주 때에 대한 모형이며 그림자로
주어진 리허설 제단입니다. 그런데 구약제단에서 성소는 처음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 성소는 초림주가 육체의 혈액을 뿌려주는 곳이며
지성소는 재림주가 영적 피, 즉 로고스(계19:13)의 피를 흘려주시는
곳입니다.
지성소의 로고스의 피에서만 구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성소에
계신다고 했던 것이죠. 물론 초림주(처음성소) 때도 하나님이 계시고
재림주(지성소) 때도 하나님이 계시지만 상대적으로 볼 때
처음성소이신 초림주 때는 구원의 시작이며 재림주 때는 구원의 완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즉 초림주가 알파(율법)라면 재림주는 오메가(구원)가 되는 것이지요.
알파가 없다면 오메가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초림때 육체의 혈액을 쏟으실 때 "다 이루셨다" 하심과
성전의 휘장이 위아래로 찢어져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 함은
구원의 전제조건인 율법을 다 이루심이 되는 뜻이 되는 것이죠.
레갑인님 글;;
그리고 생전에 다하지 못하신 말씀을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장래일을 알려 주신다는 약속을 남겨두시고 육은 무익하다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것입니다.
======>답변;;
그렇습니다. 님의 말씀이 정확히 맞습니다.
여기서 "육은 무익하다" 고 할때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생물학적인 육체를
말함이 아니고, 진리의 성령, 즉 오늘날에 오실 재림주의 진리의 새말씀을
아직 얻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뜻합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언급되어집니다.
무교자 앞에 비록 비유일지라도 그 복음을 받은 신자는 진리의 성령이
된다면 무교자는 무익한 육이 됩니다.
다시 복음백성 앞에 오늘날 재림주의 진리의 새말씀을 받은 사람은
진리의 성령이 된다면 복음백성은 무익한 육이 됩니다.
그러므로 님의 말씀은 정답입니다!!
사람들은 무익한 육이라고 하면 그 육이 우리들의 생물학적 몸뚱이로
이해하기 때문에 참으로 답답했습니다만...님께서는 정확하게 알고 계시니
너무나 기쁩니다.
우리들의 몸뚱이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빈곤한 영혼에 있는 것이죠.
레갑인님 글;;
삼위에 대한 님의 생각 중에 "재림주"라는 삼위와 이 시대 대부분이 믿고 있는
"성령하나님"이라는 삼위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답변;;
예수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기성교단들과 몇몇 신흥 중소교단들도 이천년동안 그렇게 문자 그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라고 하면서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물세례를 받았구요.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행적들은 모두 비유입니다.
만일 비유가 아니고 실제로 문자 그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라는 구호아래 물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의 죄가 사해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연계의 물로 아무리 씻고 담그고 잠겨도 우리죄는 여전히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죄아래 율법아래 살아온 죄인임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엄중히 물으시는 죄란....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가 곧 죄의 본질입니다.
다시 말해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존재의 정체성을 모르는 그 무지가
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에 대한 우리죄가 깨끗하게 씻음받고 사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온전히 알게 된 재림때가 되었습니다
세례란 깨끗히 씻음받는 무흠을 뜻하는데
우선 성부로 깨끗히 씻음받기 위해서는 성부께서 하신 창조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자로 깨끗이 씻음받기 위해서는 성자께서 하신 창조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 세번째는 "성령의 이름으로" 라고 했는데
이 성령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을 하나님의 활동력이니 뭐니 하는
추상적인 생각에 갇혀 있으니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성령이고 성자도 성령입니다. 우리 인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성령이 됩니다. 즉 성령이란 말씀인데 말씀이 눈에 보이지 않게
공중 구만장천 하늘에 휘휘 돌아다니는 게 아니란 말이죠.
성령, 즉 말씀은 반드시 그 말씀을 받게 되는 사람이라고 하는 매개체가
있게 마련입니다.
초림때는 예수님이 비유이지만 최초로 받으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기 시작했고, 재림때는 새이름의 예수님이 낱낱이 해독해서
일차적으로 144000에게 알려주시게 됩니다.
따라서 세번째 성령은 재림예수님이 됩니다.
그러므로 세번째 "성령의 이름으로" 라고 함은 재림예수님이 창조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세번째는 그냥 "성령" 이라고만 했을까요?
성부여호와도 성령이고 성자예수님도 성령이지만 세번째는 그 이름이
여호와라든가 예수라든가로 알려지지 아니하고 감추어 있는 천기이므로
그냥 "성령" 이라고만 한것입니다.
레갑인님 글;;
혹 "영은 말씀할 수 없고 보이지 아니하므로 종말에는 육체입은 한 사람"을
통한 것이 진리이다라고 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그렇담 천지창조든
구약의 선지자들과 대화하신 하나님도 그때마다 육체를 입고 나타나신 것인가요??
=====>답변;;
그렇습니다. 영(=성령=말씀)은 구원받을 모든 사람들에게 세미하게 이러쿵 저러쿵
알려주심이 아니고(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므로), 어느 시대이든지 한사람을
통해서 말씀을 주십니다. 초림때는 예수님 한사람을 통해서 주시고 재림때는
새이름의 한사람을 통해서 주십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므로 한 사람을 통해서 주시지 여러사람에게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고 하잖아요 ^^*
그런데 예수님의 초림때와 재림때는 실상이지만 구약제단은 그에 대한
모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을 주실 때마다 육체를 입고 나타나신 게
절대로 아닙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한 사람과 야곱이 밤을 세워 싸워서 이겼을 때
그 한사람을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듯이 구약때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고 보편적인 인간을 사용해서 역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성경기록시대는 특히 구약때는 하나님의 표적과 이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모세라든가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과 대화할 때
사실적으로 그들의 귀에 들려왔던 것입니다.
레갑인님...
저의 답변이 부족하지만 님의 총명으로 이해하시길 바라며
그리고 지혜의 하나님이 님을 특별히 인도하실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저의 답변에 이견이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글을 주시기 바랍니다. ^^
샬롬~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레갑인님께 답변드립니다(꼬리글에서 발췌해서)
티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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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2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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