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손기(五孫記)
서기 2011년 1월. 22일. 오전 7시 6분.
음력 경인(庚寅) 12월 19일 인시(寅時).
시조탄생 1111주년이 되는 첫달 셋째주 토요일 경기도 군포시 제일병원 분만실에서 안동김씨 29대손 휴암공(休庵公) 14대손 영현(永顯)과 진주강씨 32대손녀 예원(藝媛)의 사이에서 둘째아들이 태어났다.
태명(胎名) 명년이는 형이 되는 휘년(煇年)이가 평소에 마음에 두었던 이름으로 이를 태명으로 하였다.
명년이의 출산 예정일은 2월 2일로 설(구정)날이어서 식구들 모두가 조바심이 여간 아니었다.
1월 21일 오후 6시에 온양 청주여관에서 예산농고 54회 축산과 B반 반창회[(일명 축비회(畜肥會)]가 있어 장복성 회장이 2년에 한번씩 임기 중 부부 동반으로 차리는 파티에 가려 했으나 할머니인 집사람이 가기가 싫다며 참석을 회피하였다.
셋째 며느리 수년이 에미에게 부탁하여 전화 예약으로 발매한 21일 15시 43분발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장항행 새마을열차 1호차 16호석(9.300원)을 타고 혼자 참석하였다.
일식집에서 석식을하고 씨티 노래방에서 여흥을 마친 뒤 청주여관 356호실에서 취침을 하였다.
밤새 친구인 이규원군과 이철호군이 취해서 이우창군과 나가서 3차를 하고 들어와 떠드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다가 새벽 4시에 PC방으로 가서 6대신문 칼럼을 각색하여 문중 홈페이지에 게제하고 나니 새벽 6시였다.
여관에 들러 목욕표를 받아 1층 대중탕에서 목욕을 하고 7시에 문을 여는 아리랑 식당에서 우렁된장을 시켜놓고 담소를 하는데 핸드폰으로 집사람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새벽 4시경에 군포에 사는 둘째며느리가 산기가 있어 병원차로 병원 분만실에 갔다면서 연락을 받아 택시(택시비 17.000원)로 급히 달려가 산본 제일산부인과에서 7시 6분에 자연분만으로 3.32kg인 손자를 받았다는 연락이었다.
친구들과 부인들에게 다섯 번째 손주를 보았다고 하며 빙아 이규원이 자랑을 대신하니 한 턱 내라고 환호들이 대단하였다.
집사람이 온양에 안 온 것이 이러려고 그랬는지? 핏줄이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인지하였다.
우렁 된장에 광천 어리굴젖을 곁드린 조식을 공기밥을 추가하여 겉든히 마치고 바뿐 걸음으로 온양역에 나아가 전일 예약한 무궁화호 7시 51분발 서울행 6호차 41호석(6.400원)에 앉아 온양역을 출발하였다.
핸드폰으로 어머니에게 새 손주 본 것을 말씀드리니 산모 안부와 함께 축하의 말씀을 들었다.
어머니 한테로는 열 번째 증손주로 아홉 번째 증손자이다.
새로 태어난 손주를 상상하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영등포역에 내려 오비공원을 거쳐 집에 도착하였다.
정오에 있는 족형 윤동(允東)의 딸 미현(美顯)이의 결혼이 서초구 우면동 교육문화원에서 있어 대방동 질항 창현(昌顯)씨를 모시고 참석하였다.
마침 동생 철동(哲東)이 참석하여 영현이의 둘째아들 소식을 전하니 얼마나 좋으냐며 같이 기뻐하였다.
형년(炯年) 휘년(煇年) 동년(炵年) 수년(燧年)에 이어 우리집안의 다섯 번째 손자를 얻었다. 먼저 기쁨에 앞서 이를 점지해 주신 천지신명님과 윗대 선조님들께 심신으로 감사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튼튼하고 건강하며 예쁜 손주를 안겨 준 에미에게 따뜻한 고마움을 전한다.
새해에는 평소 준비했던 “자랑스런 영가후예(永嘉後裔” 부제 안동김씨 휴암공파 문헌록이 출간 되는 해이다. 그 첫 손자이기도한 귀한 손자가 태어 났다.
부디 건강하고 성실하여 가문의 영광을 살리고 국가의 큰 기둥이 되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두손 모은다.
2011년 1월 23일
영등포 여강헌에서 할아버지 월보(月甫) 관동(官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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