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은 육군 제50보병사단의 60번째 생일이다. 1955년 창설된 사단은 그해 8월 경북 달성군 성서(현재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용산동 일대)로 이동했으며, 1994년 11월 대구광역시 북구 학정동 현재의 위치로 주둔지를 옮겼다. 50사단의 창설식은 경기도 가평 1군단 창설 5주년 기념식장에서 열렸고, 사단 사령부 주둔지는 강원도 화천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창설식을 직접 주관하고 장병들을 축하 격려해 주었다. 정부 수립 2년 만에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받았던 이 대통령은 6`25전쟁 직후 자주국방의 초석인 지상군 사단 창설식을 보면서 감격에 겨웠을 것이다. 창설식에서 이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장병들에게 “우리는 민주 진영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는 결심을 잊지 말고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싸워나가야만 된다”고 강조했다. 60년이 흐른 지금 50사단이 통수권자의 그 명령을 대구경북에서 이어가고 있다.
초대 사단장으로 임명된 육군 준장 권준 장군은 상주시 함창면 척동리가 고향이다. 권 장군은 1895년생으로 1917년 경성공업견습소를 졸업한 후 광복회 활동에 참여하였고,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와 상하이 동제대학공과에서 수학했다. 20대 중반이었던 1919년 중국 지린성에서 김원봉, 윤세주 등과 함께 의열단을 결성하고 의열단의 자금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아 의열투쟁을 지원하였다. 이후 중국 국민당이 세운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북벌전에 참여하기도 한 권 장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광복 후 1949년 육군 대령으로 군적을 받아 6`25전쟁 중에는 육군훈련소장과 야전부대 지휘관을 역임했으며, 50사단 초대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독립애국지사이기도 한 권 장군의 애국애민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사단이 강철 50사단인 것이다. 또 한 분을 소개하면 50사단가를 작곡하신 분이 대구 금호가 고향인 박태준 음악가이다. 대구시 중구 청라언덕에 그의 시비 ‘동무생각’이 서 있다. 지금 생각하면 50사단이 경북으로 이전할 당시 시`도민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증표라 생각된다.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은 잘 알고 있겠지만 대구와 경북은 호국보훈의 고장이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현황을 보면 전국 1만3천900여 명 중에서 경북과 대구가 2천80명이며, 독립운동 사적지도 전국 836곳 중에서 144곳이 경북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6`25전쟁 중에는 낙동강방어선에서 국군이 대구경북 시`도민, 피란민과 함께 공산군을 막아낸 구국의 현장이며 보국의 고장이다. 이와 같이 선조들의 애국애민정신이 깃든 고장에서 60년간 사랑을 받아오며 대한강군으로 성장한 50사단은 그동안 고품질의 안보재화를 생산하여 시`도민에게 보답해 왔다. 6`25전쟁 휴전 후 1980년까지 대구경북으로 117회에 걸쳐 적이 침투하여 대침투작전을 펼쳤다.
앞으로 50사단이 시`도민에게 더욱 가까운 파수꾼으로 믿음을 주도록 해야 할 일이 많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동해안 해안선 152㎞를 24시간 불 밝히며, 연간 24만여 명의 예비군 정예화와 연 8천여 명의 신병 양성, 그리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대민 지원, 청소년 나라사랑 교육에도 앞장서 나갈 것이다.
올해는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다.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위국헌신한 애국지사 독립운동가를 초대 사단장으로 둔 50사단은 창설 60주년을 맞아 광복과 분단의 역사를 되새겨 보며 오늘을 사는 우리가 평화통일을 향한 결의를 새롭게 다짐할 때인 것 같다. 경북도민과 대구시민의 호국보훈정신이 깃든 대구경북에서 번영된 조국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데 강철 50사단이 대구시민`경북도민과 함께할 것이다.
박주영/육군 50사단 정훈공보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