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깨어진 하늘 사이로 지옥의 붉은 불길이 쏟아져 들어오고, 대지는 부스러지
며 울부짖는 듯한 굉음을 내고있다. 하늘을 양단한 초현실적인 크기의 세상
의 그 어떤 산맥보다 거대한 칼날이 대지를 깨부수고 있다. 불길이 오르고
화산이 폭발하며 깨어진 하늘의 조각이 무너져 떨어져 대지에 격돌해서 자
욱히 깔린 구름을 흩어버린다.
세계 최후의 날이 이런 것일까?
"…아아…."
세계의 근간인 거대한 얼음 기둥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채 그 기단
부부터 내려앉으며 멀리서 지각이 무너지는 끔찍한 소리가 낮게 들렸다. 이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 붕괴되며 바깥으로부터 불길한 기운들이 스며들
어온다.
"독한 녀석. 우리들을 죽이려고 자기의 심상까지 파괴하고 있어. 만만치 않
은 상처를 입을텐데 감수하겠다는 건가?"
"부숴?"
"그래. 부수고 있어."
"저, 저기…."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가까이서 들리는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귀 끝까지
새빨개져서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느가 입을 어물거리고 있다.
나랑 눈을 마주치니 히끅 놀라서는 갑자기 딸꾹질을 한다. 아니 왜 갑자기
…놀라서?
반응이 너무 생소해서 어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 제느가 그 모습을 보더
니 눈썹을 휘며 끄끅 하고 웃음을 참았다.
"구했어?!"
"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먼저 올라갔던 일행이 놔두고 왔던 두 사람을 늦지 않게 구했는지 아리나와
크리스가 둘을 업고 네프리스는 황당한 얼굴이다. 제느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 안은 아이를 뒤로 돌려 업곤 창을 꺼냈다.
"페렌타인이라고 했지? 오늘 끝내주겠어. 일단 내려가야 해. 여기는 정확히
말하면 지옥 위에 떠있는 비눗방울 같은 세계라서, 비눗방울이 터지면 원
래세계로 돌아갈 수가 없어. 그리고 그 녀석은 반쯤 깨버린 상태지."
"자신의 심상으로 구축한 세계를 깨버린 다는 겁니까?! 어떻게 그런!"
"저 두 녀석이 그렇게 무서웠나보지. 자기야. 가자."
제느가 두 신들을 가리키자 아리나가 한숨을 쉬며 활을 등에 메곤 크리스와
네프리스에게 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저, 저기…."
제느가 뭔가 말하고 싶은데 말이 안나오는 듯한 표정이다. 얘가 왜 이래?
나랑 만난지 몇 일 되지도 않았는데 얼굴도 새빨갛게 붉히고 말야. 아니,
외간남자 품에 안겨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성격으로 봐선 이렇게 말 더듬
을 애가 아닌데.
갑자기 비명이라도 지를 듯한 표정이 된 제느가 몸을 마구 비틀더니 팔을
빼내서 뒤쪽을 가리킨다.
"저, 저기! 뭔가가 들어왔어요! 우왓! 봐, 봤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허공에 뭔가 불덩어리가 보였다. 무슨, 불사조 같은
데? 얼핏보기에는 새의 형상을 한 불덩어리인데 뒤로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난다. 근데 그 모양새가 불이 탈 때 자연스럽게 나는 그런 연기가 아
니라 마치 비행기 구름처럼 피어나고 몸을 감싼 불길이 뒤로 주욱 늘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불덩어리 안쪽에 어떤 모양새가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머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쫙 벌어져 있다.
"보, 본 드래곤이다! 도망쳐!"
"으악!"
"호들갑 떨지 말고 먼저 원래 왔던 곳으로 가. 거긴 아직 붕괴되지 않았으
니까. 자기는 아리나 따라가!"
놀라서 패닉에 빠지는 일행들에게 소리친 제느가 등에 아이를 업은 채로 뒤
로 가더니 창을 들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동작이었다. 그리고 본드래
곤? 하여튼 불덩어리에서 불길을 뿜어내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이 음속을 넘어서 오는 것 같다. 무식한 두께의 불기둥이 총알처럼 쏘아져
온다.
"빨리 가라니까 이 바보들아?! 자기도 빨리 따라가!"
"예, 예!"
"어, 어어!"
진짜 너무 스펙타클하잖아. 하늘을 음속을 넘는 속도로 날며 불덩어리를 내
뿜는 용이라고? 제느의 일갈에 정신을 차리니 아리나가 막 방향을 잡고 날
아간다. 그리고 제느가 머리 위로 들었던 창을 아래로 휙 내리그으니 날아
오던 불덩어리가 반으로 쩍 갈라져 제각각 반대로 터져 나가고 그 뒤로 보
이는 불을 두른 드래곤이 거울을 깬 것처럼 깨끗하게 몸통이 잘라져서 추락
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것에 감탄하기도 전에 그 뒤로 하늘의 깨어진 금에서 쏟아져 들
어오는 새까만 것들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느낌은 그러니까, 저게 다 악
마란 이야기야?!
'빨리 와! 빨리!'
'걱정 마. 허접한 것들이야.'
'이번엔 내가 찾아다녀야 하겠니?! 난 암것도 몰라서 어디가서 찾지도 못해
!'
'아이 참! 정말!'
거리가 멀어서 점으로 밖에 안 보이는 터라 속으로 말을 했더니, 오히려 걱
정 말라며 짜증을 낸다. 말로들은 것 밖에 없지만 전에 그런 고초를 겪고서
저럴 마음이 생기냐? 더구나 홀몸도 아니고 애까지 데리고 있으면서 어떻
게 하려구. 그러면서도 뭐 스트레스라도 푸는지 너무 많아 검게 보이는 악
마들의 무리가 이리저리 갈라지며 푸른 청염이 넘실거린다. 분명히 막 웃으
면서 창을 이리저리 휘둘러대고 있겠지? 엄마가 저래서야 애가 뭘 배우려나
모르겠네 정말.
"으헉!"
구름을 뚫고 내려오니 날아서 처음 들어왔던 입구 앞이 피바다였다. 아리나
가 피를 쏟아내며 눈 위에 엎어져 있고 크리스와 네프리스는 몸이 상하로
양단되거나 사지가 뜯긴 채 장난감처럼 널부러져 있다. 그리고 저 미친 자
식! 온 몸이 피로 젖은 채로 미친 듯 웃으며 여신의 가슴을 칼로 헤쳐서 심
장을 막 뜯어내고 있고 입에는 잘라낸 고깃덩이가 물려있는데 없어진 걸로
봐서는…젖가슴 같다.
"어, 어?"
"보지마! 저 미친 자식!"
훅 끼치는 피 냄새에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제느의 눈을 가
렸다. 아까 힘을 거진 봉인했는데 뭐가 남아서 저렇게 간단히 다 죽인 거야
?
"으, 으윽! 조, 조심!"
"아리나!"
"쳇. 버러지 엘프가 아직 살아있었군."
제느를 데리고 아리나에게 가니 이미 살아 있을만한 상처가 아니다.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몸이 거의 잘려 있는데 그런데도 아리나는 억
지로 몸을 일으켜 피를 게워내면서도 뭔가 말을 하려고 한다. 이런 걸보고
도 구역질만 조금 나다니 나도 비위가 좋은 놈이구나. 제느가 오면 다 살릴
수 있겠지? 품안에서 제느가 자꾸 버둥거리는 걸 꼭 껴안았다.
"흐흐흐."
뜯어낸 심장을 한쪽에 버려버리고는 그 녀석이 손에 든 젖가슴을 주물럭거
리며 실실거린다. 행동을 보면 완전 미친 녀석이지만 눈빛을 보니 미친건
아니다. 제대로 미쳤다는 거다. 어설프게 미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닌
것이다.
"너, 뭐 하는 거냐?"
"푸핫! 바보 같은 질문인데? 옛날부터 레젤의 가슴은 베어 물고 싶을 정도
로 탐스러웠지. 흐흐. 아직도 탄력이 제대로야."
주물럭거리는 고깃덩이에서 노란 지방과 피가 눈 위로 뚝뚝 떨어져 바닥을
물들인다. 신의 몸에서 떼어낸 것이 어찌 사람과 저리 똑같을까? 저건 신의
탈을 슨 짐승이다.
"나를 따라온 그 여자도 몸이 참 낭창낭창 했는데 말야. 하도 말을 안 들어
서 머리랑 사지를 다 뽑아 고철더미에 심어줬는데 아쉽게 됐군. 아, 다른
세계의 여신이라 그런지 가슴도 레젤보다 더 좋더군. 후후."
"말 다 했냐?"
"오오."
저, 아 나 진짜. 내가 주먹을 쥐니 그 녀석은 옆에 쓰러져 있는 여신을 재
빨리 잡아 목에 칼을 들이댔다. 그러더니 다시 목을 손으로 쥐고 칼로 파헤
쳐진 가슴속을 쑤시다가 하나 남은 오른쪽 젖가슴도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도려내기 시작했다.
"너…. 오늘 여기서 죽었다고 복창해라."
"흐으음? 아하 이거. 역시 육질이 죽이는군. 역시 아름다운 것을 파괴하는
건 즐거워. 후후후."
하아아….
자르다 말고 이제는 난도질을 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던 살덩
이가 뭉텅뭉텅 잘려 눈 위에 떨어지는데 정말로 죽일 까봐 아무 것도 못하
는 신세란. 진심으로 짓이겨주고 싶은데 제느를 그냥 놔둘 수도 없고 어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할지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제느
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가만히, 눈도 하나 깜박이지마. 대답도 하지마. 그대로 있어.'
웃으려는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진땀을 빼야했는지 모르겠다
. 머릿속에 그렇게 울리는 음성과 함께 제느가 유령처럼 스르륵 그 녀석의
뒤에 나타났다. 뒤에 여전히 제느를 업고 있는 채였지만 그렇게 믿음직스러
울 수가 없다. 역시 내 아내라니까.
"아아. 역시 아무 것도 못하고 분노에 몸을 떠는군. 옛날에도 이렇게 즐거
운 상황이 있었는데? 그래. 지금은 모르겠지만 어떤 천사를 범하고 해체하
는데 그걸 바라보며 치를 떨던 녀석이 있더군. 뭐 결국에는 같이 곤죽이 되
서 합방했지만 말야. 으깨서 같이 섞어놓으니 짓는 그 표정은 세상에 다시
없을 거였어."
"…내가 니 놈도 그렇게 만들어주지."
"할 수 있으면 해…커억?!"
뒤에서 제느가 어떻게 했는지 녀석이 갑자기 난도질한 여신과 칼을 놓치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흐아. 표정 유지하느라 얼굴 굳을 뻔했네. 이제는
갚아줄 시간이지? 주먹이 좀 많이 간지럽다.
"나한테 한거 너한테 그대로 해줄게. 근데 우리 자기는 널 완전히 짓이겨주
고 싶은 표정인데?"
"이, 이 비천한 것이!"
"헹. 내가 누군지 알아?"
제느가 왼손을 들어서 엄지와 검지를 딱 하고 튕기자 주위의 피바다가 정리
되기 시작했다. 눈 위로 쏟아진 피들이 꾸물꾸물거리며 주인에게 돌아가고
난도질되고 찢겨진 몸뚱아리가 제대로 맞춰지더니 언제 생겼냐는 듯 상처가
사라졌다. 으음. 옷이 그대로라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제느야?"
발치에 쓰러진 여신을 힐끗 보았더니 제느의 눈에 불똥이 튄다. 계속 봤다
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눈빛에 얼른 질문으로 무마하려고 하니 다시 보면
죽인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정말 괜찮나 하고 본 것 뿐인데.
"크흑!"
어, 아리나 괜찮아요?"
그래도 상처가 경미한 아리나가 제일 먼저 털고 일어나더니 이글이글 타는
듯한 시선으로 그 녀석을 바라본다. 어, 어흠. 아리나는 좀 작은 듯 하네.
진짜로 왜 이런 생각만 드는 거야? 정말 미치겠네.
'죽이고 딴 남자 만날까?'
'어, 저기 그러니까 말이야. 이건 일부러….'
'일부러 그러는건 아닌거 아는데 말야. 돌아가면 뼛속까지 물든 그 생각 완
전히 고쳐주겠어. 각오해.'
더 이상 뭐라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다. 서릿발같은 시선이 머리를 쪼개는
듯 했다.
제느는 그렇게 경고해서 날 얼어붙게 만들곤 한여름 30도가 넘는 폭염도 얼
려버릴 듯한 시선을 다시 녀석에게 돌렸다.
"네 마음이 무너지네? 어때 시원해? 시원하게 찢어지는 것 같은데?"
"으으윽! 너, 너!"
"이봐 남편! 아리나! 걔들 데리고 어서 바깥으로 나가. 금방 여기까지 붕괴
될 거야."
"예."
아리나는 억울한 듯 증오 어린 시선을 겨우 거두더니 바닥에 엎어진 둘을
깨워 두 신과 함께 구멍 바깥, 처음에 들어왔던 좁은 통로로 들어갔다.
처음 왔을 때는 딴 세상처럼 고요했지만 이제 여기도 무너지려고 하는지 땅
이 미약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뒤를 보니 세계의 근간은 얼마나 컸던지
아직도 무너지는 중이었다.
"저…제느야?"
"어, 어? 저기요."
품에서 제느를 떼어내니 상황파악을 못하고 입을 어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
다가 황당한 듯 제느를 바라본다. 제느는 창을 꺼내 들더니 나에게 다른 아
이를 내밀었다.
"얘도 데리고 가. 난 이 놈의 막장인생을 좀 끝내줘야겠어."
"아니 그러다가…."
"괜찮아. 자기가 미처 알지 못해서 봉인하지 못한 힘이 몇 가지 남아있던
것뿐이니까 안심해."
"어. 그래?"
입을 어버버 거리는 제느와 아무런 감정 없이 무표정한 제느를 데리고 나가
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까 일단 같이 있는 것이 낫다.
제느는 내가 다시 들어오자 한번 힐끗 돌아보더니 손을 올렸다. 그러자 구
름 위쪽에서 창이 날아와 그 손에 잡힌다. 그 여파에 주위의 눈이 날리며
바람이 불고 나니 어느새 제느가 풀어줬는지 그 놈이 독기어린 눈을 하고
뒤로 한참을 물러선다.
"흥. 네 놈을 베면 내 창이 더러워질 것 같아."
"제느야."
"나 걱정해서 다시 온 거야?"
서릿발처럼 차가웠던 말투가 나한테 이야기 할 때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변
해 있다. 뭐 누구나 다 그럴테지만 제느한테서 그렇게 들으니 그게 또 참.
다가가 손을 잡으니 창을 넣고 다른 창을 꺼낸다. 은색에 창날이 약간 휘어
있는 짧은 창. 전에 보았던 것이다.
"내가 너 걱정하지 누굴 걱정해."
"우훗. 우리 자기 밖에 없어."
"날 이렇게 놓아주고 그런 짓이라니, 여유가 아주 많군?"
"흥."
카앙!
바닥에 창이 내려쳐지자 카랑한 소리가 울리며 뭔가가 주위로 확 퍼져나가
더니 잘 서있던 녀석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낭패한 얼굴로 무릎꿇었다.
그리고 제느가 다시 창을 휙휙 돌리며 걸어간다.
"너 말야. 내가 그냥 놓아줬다고 생각하니? 내가 힘이 없다 뿐이지, 내가
널 잡을 수 있는 방법은 10만 가지도 넘어."
"큭. 혼자선 나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근데 말야. 나한테는 나 아니면 죽고 못 사는 든든한 백이 있거든? 솔로는
안 좋은 거야. 억울하면 누구 끌어들이지 그랬어?"
그래서 안 좋은 거였어? 제느가 휙휙 돌리던 창을 어느 순간 휙 휘두르니
가슴을 누르고 있던 녀석의 팔이 세로로 주욱 갈라지며 검은 액체가 쏟아진
다. 안쪽이 그냥 까만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끄흑."
"이건 나를 건드린 대가야. 육체적인 타격이 아니니 좀 많이 아플걸. 그리
고 이번은 내 딸을 데리고 장난 친 분풀이."
다시 창이 휘둘러지자 어깨죽지부터 왼쪽다리까지 금이 이어져 갈라지며 검
은 연기가 매섭게 뿜어져 나왔다. 몸의 상처에 괴로워하던 녀석이 갑자기
눈에 독기를 넣으며 바락바락 소리쳤다.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내 세계를 부수고! 내 복수를 부수고!
나를 망가트린 걸 용서하지 않겠어!"
"도망…!"
"놔둬. 여기서 빨리…."
잡으려고 했지만 제느가 제지했다. 그 순간 땅 바닥에 녹아든 그 녀석의 흔
적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에잇! 정말 한대 때려주고 싶었는데! 저런 녀석
은 세상에 살아있을 이유가 없어!
"아르벤. 가자. 응?"
"아, 그래."
여기도 하늘이 무너지며 구름과 눈보라가 흩어지기 시작하고 땅바닥이 흔들
렸다. 멀리서 거대한 것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진동이 땅을 울리
고 지나갔다. 한 세계가 지금 멸망하고 있었다. 아무리 허구이고 가짜라고
해도 세계 하나가 무너지는 모습은 거짓이 없었다. 그 거인들은 하늘이 무
너지는 그 곳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세계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까
?
"자기야!"
"응!"
출구는 제느가 창을 박아놓아 유지시켜 놓았는지 창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변해 있었다. 비좁은 계단으로 나가 창을 없어지게 하자 구멍이 작아지며
무너지는 세계의 모습과 소리가 점차 작아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흩어진 돌들과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은 것을 대신 메우고 있는
흙벽 뿐.
"후우…."
제느가 긴장이 풀렸는지 무척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리나나 크리스등 다른 일행들도 맥이 탁 풀렸는지 어두운 가운데에도 주
저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거나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이제…정말로 끝난건가
?
"자기야."
한순간 맥이 탁 풀리며 온몸이 쑤시고 발이랑 다리가 무척이나 아팠다. 별
다른 일도 하지 않았는데 진짜 엄청 피곤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주저앉은 제느에게 손을 내밀어 허리를 끌어안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
굴임에도 웃으며 내 목을 팔로 감고 안겨온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
작은 몸집을 무릎 위에 앉혀놓으니 뭐라 말할 수 없이 편했다. 힘들 때 이
렇게 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거 굉장히 좋구나. 얇은 옷 아래로 느껴지
는 가느다란 등허리와 부드러운 살결, 코에 느껴지는 상냥한 향기. 차가워
진 몸을 따뜻하게 덥히는 체온. 그 보다 더 좋은 건 마음을 채워주는 사랑
하는 사람의 존재감….
"제느야."
"응…."
"사랑해…."
대답은 없었지만 몸집으로 알았다. 가느다란 제느의 몸이 울음으로 떨리고,
흐느낌이 잔잔하게 새어나왔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루만지는 등은 좁고, 허리는 그 모습 그대로 너무 가늘었다. 새삼 그 몸
이 너무나 작다고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세파와 고생을 겪으면서 수많은
상처를 입었을 텐데 그걸 감당해내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게 느껴진다.
불쌍한 우리 제느.
"우리 이제…."
"응. 돌아가자."
세상에 제일 예쁜 여자가 있다면, 제느일거다. 눈물에 젖어 물기 어린 시선
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입술에 살짝 키스하면서 혀로 입술을 핥고 금방 떨어
졌다. 긴장이 풀리면서 제느를 안고 있으려니 당장에라도 사랑하는 사람하
고 하나가 되고 싶었지만 여기는 아니다. 전부 다 끝났지만 이제 여기에서
나가야지. 눈이 붉어진 제느도 떨어지는 내 입술을 따라 아쉬운 듯 혀를 내
밀었다가 입술을 핥고서는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이 지긋지긋한데를 나가자. 자기야."
"맞아. 이런 우중충한 곳에 있고 싶지 않아."
그렇지? 이런 꾀죄죄한 곳에서 벗어나서 집에 돌아가서 목욕을 하고 한 침
대에 이불을 덮고 꼭 껴안고 자서 새벽에 일어나 자기랑 이렇고 저렇고 한
일을 하고 싶다. 아니 뭐 둘이 꼭 껴안고 있어도 좋긴 하지만….
일어나서 빛 구슬 하나를 띄우자 좀 쉬면서 기력을 회복했는지 기운 없는
얼굴이긴 해도 다들 일어섰다. 제느는 내 손을 놓더니 멍하니 앉아있는 제
느한테 다가가서 소중하게 감싸며 안아든다. 그리고 옆에 뭐가 뭔지 몰라
동그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제느의 손을 잡았다. 그 애가 흠칫
놀란다.
"아, 저기요…."
"제이로느라고 했지? 기억에 있는 건 그 이름뿐이니?"
"예? 그게 무슨…."
"크리스. 괜찮아요?"
"그래. 이 망할 곳을 빨리 나가자."
다 괜찮아 보이네. 하긴 거기가 너무 환경이 가혹하긴 했지. 콧김이 나오자
마자 얼어버리는 곳이랑 조금 썰렁하긴 해도 평상시 온도인 곳은 천지 차이
다.
애들과 깨어나지 못하는 두 신을 추스려서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아리나가
여신을 업고 내가 남신을 업고 제느는 멍하니 있는 애를 안고 간다. 제느
는 여전히 얼떨떨하긴 했지만 그래도 현재 상황을 재빨리 깨닫더니 네프리
스와 이야기하면서 상황 파악을 하고 있었다.
"별로 위험할건 없겠죠?"
"예. 그런데…페렌타인은 죽었습니까?"
"아뇨. 도망쳤어요. 하지만 더 이상 뭔가 하지는 못하겠죠."
"…그렇겠군요."
아리나의 음성이 어딘지 모르지만 확연히 착잡하게 들렸다. 그 녀석도 완전
히 나쁜 녀석만은 아니었던 걸까?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참혹한
모습의 제느를 발견했던 방에서 봤던 천사들, 나와 아리나의 등에 업혀 있
는 두 신들. 아리나의 원한. 죽어버린 대지.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그걸 씻
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리나! 얼마나 지났다고 생각해?"
"최대 이틀. 왕성이 무너진 것은 알고 있을 테니 지금쯤 공격을 시작했겠지
."
"30만에서 버티려면…."
"희생이 좀 있겠지만 버틸 수는 있을 거야. 지젤도 있고 다른 녀석들도 달
려왔겠지."
"이틀이나 지났다고요?!"
제느의 목소리가 안에 메아리쳐 다들 시선이 집중되니 그 애가 얼굴이 새빨
개져서 네프리스에게 매달렸다. 아이를 안고 있는 제느를 보니 마찬가지로
시선이 그 애한테 가있는데 어딘지 아쉬운 표정이었다.
일단 구해내 오기 했지만 하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고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기억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애들 설마 쌍둥이일까? 하지만 쌍
둥이라거나 아이가 둘이라는 말은 여태 제느가 한 적이 없다.
"어떻게 된 거야?"
"응? 뭘?"
"애들. 쌍둥이였어?"
그 말을 듣더니 제느가 애를 추스리며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지만 눈썹이 휘는 걸 보니 웃는 것 같다. 아니 왜? 그게 그렇게
웃긴 거야? 나는 자못 심각했는데?
"음. 하긴 좀 심각하다. 이 애들, 둘로 나뉘어졌어."
"나뉜거란 말야?"
"응. 그래서 얘는 거의 의식이 없는 거고 저 애는 아무 것도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아. 엄마가 옆에 있어줘야 했을텐데 혼자서 얼마나 괴로웠으면…하아
."
왜 웃는 지 몰랐는데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웃은 것 같다. 목이
메이는지 한숨을 푹푹 내쉬는 제느를 토닥이고 네프리스와 이야기하고 있는
제느를 봤다. 제느의 등에 업혀있는 아이랑 다른 바가 전혀 없다. 다른 건
저쪽은 옷을 입고 이쪽은 알몸에 모포 한 장 덮고 있다는 것뿐.
하여튼 쌍둥이가 아니고 둘로 나뉜거구나? 그것도 참 쌍둥이였으면 그것 나
름대로 골치 아팠겠네. 요새 애 하나 낳아 키우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
데 둘이면 정말 끔찍….
이건 아니고 하여튼 졸지간에 딸이 둘 생기면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3배는
더 막막할 거다. 당장 얘가 내 딸이라는데 모습이 나랑 같은 또래라서야 실
감이 안 나잖아. 세렌하고 카엘은 어떻게 애들 키웠을까? 아니 그 쪽은 관
점이 틀리려나?
보통 이럴 때는 최종 보스를 죽이거나 하면 통로나 기지가 무너지면서 주인
공의 앞길을 막으며 도주를 강요하는데 빨리 나가고 싶어 발걸음이 급한 걸
빼면 아무런 방해가 없어서 오히려 불안할 정도였다.
시계로 거의 한시간 반은 걸려서야 다시 위로 올라올 수 있었는데 무너질까
해서 조마조마 하던 것과는 달리 지하 호수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
하기 그지없어서 그대로 세계가 멸망하던 것과는 완전히 딴 세계였다.
"아, 배고파."
"나도."
"마지막으로 밥 먹은지 얼마나 된 거야?"
"이틀 동안 한끼 먹었어."
올라오자마자 섬 위에서 쓰러진 일행들이 내지르는 소리에 찔끔 찔린 나는
남신을 내려놓고 제느에게 달라붙었다. 여기서 그걸 상기시키면 위험해.
제느는 올라와서 다들 퍼져있는 가운데에도 품에 안은 아이를 떼어놓으려고
생각을 안 한다. 주저앉아서 꼭 껴안고 가만히 있는데 얼마나 소중하면 저
렇게 으스러져라 안고 있는지 모르겠다. 근데 쟤는 답답하지도 않나?
"나보다 더 소중해?"
옆에 앉아 좀 웃어보라고 그렇게 말했더니 넋을 놓고 있던 제느가 날 바라
보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는다.
"바보 같은 소리 마. 얘한테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할거야?"
"어, 아니."
"아니 가 아니라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해봐."
그렇게 노려보며 말하니 되려 할 말이 없어진다. 이거 흔히들 하는 거 아니
었어? 보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하고 애인 사이에도 내가 좋아 컴퓨터
가 좋아하고 군대에서조차 X가 좋아 내가 좋아한다던데? 제느가 자란 그쪽
에서는 그런거 안 좋아하나?
"저기…."
제느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제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느는 또 눈가에 눈
물이 차오른다. 막상 애를 찾았긴 찾았는데 뭐 아는 것도 없고 저렇게 뭘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막막하다. 제느가 나를 찾았
을 때도 이렇게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전혀 몰라서 막막하지 않았을까? 그
래도 그 때는 내가 완전히 헤롱헤롱 맛 가서 그나마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전혀 기억도 없는 생판 남인 상태에서 시작해서 몇개월 만에 잃고서
그 기다리는 일주일을 마치 10년처럼 느끼게 했으니 그것도 참 대단한 성
공이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정말 하늘이 무
너진다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여실히 깨달았지.
일단 이름부터 최대한 빨리 지어야겠다. 이름을 같게 부르니까 가뜩이나 얼
굴도 비슷한데 헷갈린다. 근데 날 닮은 구석은 없나?
"아르벤. 얘 좀…."
"응."
어떤 이야기라도 하려는지 일어난 제느가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건넸다.
제느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전혀 이해 못한 얼굴이다. 나야 그렇다 치고
어쩌다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가 된 걸까?
제느가 가서 손을 덥석 잡으니 애가 우물쭈물 말을 더듬었다.
"음, 저기 그러니까…."
"혼란스럽지? 기억나는거 없니?"
"…."
질문을 받은 제느가 약간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인데, 이걸 말해야할까 말아야할까 고민하는 표정이
다. 자기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둘이나 더 생기지 않았다면 저렇게 고민하
는 표정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전에 듣기에는 17살 때 저
모습 그대로 탑 앞에 버려져 있었다고 들은 것 같았는데?
"하아. 우리 아가…."
제느는 또 눈물을 글썽거리며 꼭 껴안고 부비적부비적 온몸을 만져댄다. 윽
윽하고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했다.
"야, 괴롭겠다. 그만 놔줘. 얘도 데리고 있고."
가만 놔두면 정말 죽일까봐 훼방을 놓으며 애를 맡겨놓고 섬을 한바퀴 휙
돌아보았다. 뭐 손바닥만한 작은 섬이긴 하지만 백사장도 있고 암초도 있고
몇 개 빼곤 다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까마득한 천장 저편에 우리가 들
어왔던 구멍이 보였다. 훠이, 저길 어떻게 또 올라가? 불 켜놓고 보니 현기
증 날 정도로 높네.
"배가 고픈데 죽었다 살아나니 입맛도 안 나네."
"밥 안 먹어요?"
"방금 그 수라장을 겪고 뭔가 넘어 갈 것 같지 않네요."
그렇긴 하겠네. 사지 육신 다 끊어졌다가 살아나서 금방 뭐 입에 들어가겠
냐. 사실 나도 지금 뭐 먹기는 싫다. 그런 장면보고 먹을게 목구멍으로 넘
어갈 인간이 얼마나 있겠어. 제느라면 피 튀기는 현장에서도 태연할 것 같
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이 그럴 수가 없지.
사실은 전에 봤던 것들까지 다 생각나서 이렇게 말이라도 걸고 다니지 않음
머리가 지끈거려 견딜 수가 없다. 아 징그러.
"제느야. 제느야? 제느야. 제느야…."
두 애를 안고 물고 빨고 핥고 난리난 제느는 내가 뒤에서 몇 번이나 부르는
데도 대답도 안하고 애들과 부비적대기에 바쁘다. 저렇게나 좋을까? 나랑
처음 만났을 때도 저렇게까지 좋아서 죽으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말야.
어깨를 주물럭거리자 그제야 알아차려서 하던 걸 그만 두곤 뒤를 올려다본
다.
날 거의 죽이려고 할 때 보았던 흉흉한 눈빛 그대로가 그녀의 은빛 눈동자
에서 빛나고 있었다. 놀라서 얼른 어깨를 놓으니 어느샌가 그 눈빛이 원래
다정했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곤 자기 스스로도 살짝 놀랐는지 황
당해하며 일어났다.
"미, 미안해."
"아니 저기…하던거 마저 해."
"미안하다니까. 히잉."
자꾸 사과하며 제느가 손을 잡았는데 또 흠칫 놀랐다. 정말 그 기억은 잊고
싶은데 안 잊혀진다. 생각날 때마다 등골에 소름끼치는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나는데 이렇게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오싹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하여튼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 건데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이런 거
나 얻고 말야.
내가 그러니 제느는 영 안절부절못하고 금방이라도 울려는 기세다.
"나 괜찮아."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안 그랬어야 되었는데…."
"괜찮다니까. 하여튼 빨리 집에 가야지?"
운을 띄우니 그제서야 그녀가 차분해진다. 아니야, 차분해진 것과는 분위기
가 조금 다르다. 제느가 불안해하는 것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
같다. 하기사 지은 죄가 있으니 그렇지만 서도 지난 일 가지고 뭐라 할 생
각 같은 건 없는 데 말야.
"그러니까…."
어느새 커진 키가 참 불편했다. 이럴 때 눈 높이가 맞으면 좋으련만 제느를
내려다보려니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전에는 5센티만 더 컸으면 하고
했는데 이제보니 키가 큰 것도 좋은게 아니구나. 전처럼 제느랑 똑같은 딱
그 키였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괜찮아. 좀 무섭긴 하지만 뭐 어쩌겠어. 불가항력이었는데."
"하지만…."
"자. 어서 애들 챙겨서 여기서 나가자. 설마 여기서 또 날을 샐건 아니지?"
좋게좋게 끝내려고 하니 제느가 입을 삐죽거리며 한숨을 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언젠가는 해결해야겠지. 겁나서 아내한테 손대는 것도 못하는
건 문제가 좀 있잖아. 하지만 지금은 일단 이 썰렁한 곳에서 벗어나는 것
이 급선무다. 막말로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적의 아지트잖아?
배고파서 움직이기 싫다는 일행들을 어르고 달래 천장의 구멍을 통해 발 디
딜만한 곳으로 올라오고 보니 안의 분위기가 상당히 변해 있었다.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데도 어느 구석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함과 음습
함이 모두 사라지고 그저 그런 석실처럼 변했다. 온 곳을 꽉 채우고 있던
불길한 기운이 힘을 잃고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옥과 연결이 끊기고 있어."
"그렇습니까? 역시 페렌타인이 한 짓이었군요. 그렇다면 돌아갈 일은 최소
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리나가 한숨을 섞으며 희망적인 예측을 하자 손에 든 것들을 꼭 쥐고 긴
장하던 일행들이 파하 하고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아니 저기, 그렇
게 무서웠어요? 제느도 있고 나도 있고 하니 뭐가 있어도 그렇게 걱정 안돼
는 상황인데 말야.
"근데 길 알아 아리나?"
"모릅니다. 한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없는 곳이니까요."
"응? 몰라요?"
"처음에도 말했습니다만, 원래라면 저희는 들어올 엄두도 못내는 곳입니다.
여기는."
아리나의 말에 다시 막막해진다. 여기는 최소한 지하로 몇 백 미터는 파고
들어온 막장이나 다름없는데 어느 세월에 길을 찾아서 올라가지?
돌로 지은 벽을 만지며 아리나가 또 덧붙인다.
"더구나 들어오면서 통로나 방들을 이리저리 부수며 들어왔기 때문에 제대
로 된 길이나 구조도 알 수 없고 지금 어디에 왔는지 위치를 가늠해볼 수도
없습니다. 나가려면 지상까지 일직선으로 구멍을 뚫어야 가능할 듯 싶군요
."
저건 분명히 힐난하는 어조다. 인정할건 인정하겠지만 막강한 여신이라고
해도 잘못 한건 잘못한 거라는 거군. 캬. 공과 사가 이렇게 명확한 사람 또
처음 본다. 하긴 한 나라의 대장군씩이나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겠
지.
하여튼 그걸 들은 제느의 눈썹이 꿈틀 했지만 달리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아이에 집중하고 싶어서 그런거 신경 쓸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뭐? 아리나, 길 모르겠어?"
"응."
"잠깐만, 응으로 끝날 것이 아니잖아? 에플라스가 동원한 병력이 자그마치
30만이라고. 어디 마법진 펼칠 곳이 있는지 찾아보자. 여기 크로넬에 펼쳐
진 방해원도 깨져가니까 충분히 도약할 수 있을 거야."
"괜찮아. 아직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고 30만이란 병력이 그렇게 간단히 움
직일 수 있는 병력도 아니야. 그런 대군을 정상적인 행군이 아닌 것으로 데
려왔으니 그렇게 금방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보급부터가 문제일걸.
그리고 증표는 소용없게 되었지만 우리 짐도 되찾아야지. 아직 그곳에 있
을 거야."
네프리스가 날 빤히 쳐다본다. 아, 이런 사람 무안하게 시리. 좋은 일도 자
꾸 생색내면 기분 나쁘거늘. 하기사 좀 고생을 했어야지. 두번이나 죽었다
살아난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자기야, 어떻게 길 모르겠어?"
"몰라."
힐끗 어깨에 얹은 내 손을 쳐다본 제느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저 말은 알
고 있다는 뜻이로군. 그런데 여기선 대답하기 싫다는 얼굴이다. 나한텐 모
르겠지만 제느에게는 이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 보이질 않는 모양이다. 그런
데 왜 그렇게 미워하는지 몰라?
"길을 모르면 어떻게 해요. 에플라스에서 쳐들어 왔다면서요?"
"괜찮아. 제느야. 페렌타인이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리나
말대로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을 거야."
"물론 군사적으로 그 많은 병력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왕성
이 무너졌는데 적은 턱 밑에 와 있잖아요. 현재 상황이 공성은 가능한가요?
브로크로울리에서 병력을 뺄 수도 없는데…."
"아직 2일 밖에 안 지났어. 별 일 없을 거야."
대조적으로 우리 딸…이렇게 부르니 참 어색하고 뭐하긴 하다만 일단 딸이
라니까 구분을 위해서라도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하여튼 얘도 그 말을 듣
고 걱정이 되어서는 네프리스를 붙잡고 금방이라도 나라 망할 것처럼 이야
기를 한다.
'제느야. 길 알지?'
"몰라."
'그러니까 자기도 빨리 아이 데리고 가서 안정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둘로 나뉜데다가 기억까지 없는거 보면 이상하잖아. 혹시나 멀쩡해보
여도 뭔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렇지?'
"잠깐!"
"엑?"
제느가 갑자기 소리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통로 안에 울리던 걸음소
리가 순식간에 멎고 정적이 감돈다. 그리고 제느가 갑자기 내 팔을 붙잡더
니 막무가내로 끌고 가서 일행의 눈이 보이지 않는 코너까지 돌더니 날 벽
에 밀어붙이곤 빤히 바라보았다.
"윽. 이럴수가?"
"아니 뭐, 뭐하는 거야?"
갑자기 마음이라도 동했는지 제느가 내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서는 가
슴을 더듬거린다. 이건 또 무슨 일인지, 황당해서 바라보고 있으니 손가락
으로 더듬거리던 제느가 다시 옆에 멍하니 서있는 애를 잡고 이마를 한번
대본 다음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린다.
"없어. 어떻게 된 거지?"
"저기 제느야."
"없다고! 어떻게 된 거야? 자기 뭐 못 느꼈어? 분명히 그때 잃어버릴 때만
해도 칼에 박혀 있었는데, 어디 간 거야? 응? 자기 뭐 느낀거 없어? 말해봐
빨리!"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얘는 갑자기 경악할 만한 일이 생기면 정신을 깜
박 놓고 사람을 이렇게 몰아붙인다. 머리 잘 돌아가는 똑똑한 사람이 이성
을 잃고 이러면 딱히 대책이 없다. 당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데 뭘 말하
라는 거야?
"잠깐만! 뭐 때문에 그러는데?"
"자기 칼! 몰라? 자기가 우리 애를 거기에 넣어 놨었잖아. 잃어버릴 때만해
도 그대로 였다고. 그런데 지금은 없어. 우리 아이한테도 없고 당신한테도
아무런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 단 말이야. 어떻게 된거야? 뭐, 이상한 느낌
받은 적 없어?"
"그런 적 없는데…."
내 말을 들은 제느의 표정이 한순간에 어두워지며 굳어버린다. 눈빛이 꼭
세상 다 무너진 사람 같아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 멍청했다. 이렇
게나 실망할 줄은 정말 몰랐는데.
"하아. 세상에 되는 일 하나 없다더니…."
"나중에 찾아도 되잖아? 그냥 애 찾은 걸로 우리 만족하자.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대단한 거야!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기나 해?!"
휙 쏘아붙이더니 제느가 애를 데리고 혼자 일행에게로 가버렸다. 바, 방금
뭐였지? 대체 내가 무슨 말을 잘못 한 거야?
"아, 아니 저기, 같이 가!"
허겁지겁 달려가 어깨를 붙잡으니 제느가 뒤를 돌아보며 어깨너머로 눈을
흘긴다. 눈물 방울이 선명한 그 눈동자에 어린 시린 느낌이 등골을 싸늘하
게 했다.
"바보. 둔탱이. 해삼 말미잘 멍게."
"어…."
"얘나 잃어버리지 말고 잘 데리고 있어."
어, 아니 그게 말이지…. 하여튼 이렇게 말문이 막히니 무안해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제느는 그대로 내게 아이를 내밀어 떠넘기고는 휙 돌아서
다시 가버렸다. 아니 그게 정말 변명도 안 듣네? 들어봤자 귀만 아프다는
거야 뭐야?
삐져버린 제느는 묵묵히 길을 찾아나가며 거의 아무런 이야기도 건네지 않
았다. 몰라만 반복하다가 길을 안내하는 게 어쩌면 나한테 삐져 가지고 귀
찮아져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죽고 못살던 사람이 기껏 찾아갔더
니 알아보지 못할 때의 기분이야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그 기억 못하는 사
람도 참 난감하지 않겠어? 생판 모르는 사람이 와서 우리 죽고 못사는 사이
였잖아요, 기억 못해요? 힝 나빠! 해버리면 황당해서 돌아가시겠다. 만약
그때 사귀는 여자친구도 있었으면 그것도 참 암울하잖아?
"어떻게 한 겁니까? 절대 가르쳐 주지 않을 것처럼 하더니…."
"뭐 그래도 남편이니까요. 자기도 빨리 가서 쉬고 싶겠고…사실 누가 이런
데 오래 있고 싶겠어요?"
아리나는 내가 제느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진짜 궁금했는지 옆으로 와서 물
어보기까지 했지만 별 쓸만한 소리는 할 수 없었다. 내가 연애 도사도 아니
고 삐진 여자애 마음을 무슨 수로 돌려?
"이거…."
"…혹시 어떻게 된 건지 아십니까?"
수많은 계단과 방들을 지나쳐서 짐을 놓아두었던 10층으로 올라오는데는 성
공했지만, 이 곳의 모습은 원래 봤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어떻게 순식
간에 이렇게 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리나의 질문을 받은 제느가
복도의 벽으로 가서 걸려있던 낡아빠진 휘장을 만진 순간 가루로 변해 부스
스 흩어지는 것이 눈앞에 있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덧붙였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온 거야.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뿐이
니까 걱정할 것 없어. 빨리 가서 짐 찾아와."
여자가 더 많은 이 일행에 정신 잃은 사람이 셋인데 거기다 짐까지 추가되
면 참 난감하겠다. 그걸 다 어떻게 들고 가?
그나저나 여기는 처음 봤을 때는 휘황찬란하게 금으로 장식되고 붉은 카펫
이 깔린 최고급 호텔의 복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다 쇠락해서 전쟁이
라도 난 듯 어지러져 있다. 원래 모습이 그러한 듯 수십년, 아니 수백년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발길이 완전히 끊긴 모습이었다. 정말 영원히 가는
건 하나도 없구나. 아니, 영원한 생명이라고 했던가?
"제느야. 정말 너 65000년이나 살아 온 거야?"
"으흥? 그렇지. 방년 65218세. 생일은 12월 22일."
일행의 뒤를 따라가며 제느의 팔을 잡으니 그녀가 입꼬리를 부드럽게 말아
올린다. 알 수 없는 호기심 같은 걸로 가득 찬 요런 표정을 보고 있으면 18
살 된 그냥 소녀지 65000년이 넘게 산 여신 같지 않아 보인다. 그것도 참,
6만년 넘게 살았으면 얼굴에 인생이 지긋지긋하단 표정하고 인생을 달관한
느낌이 날 것 같은데 그게 전혀 아니다.
"…생일은 왜?"
"나중에 아르벤이 내 생일 잊어버리면 삐지려구."
"65218년이나 살아놓고 삐질 일도 참 많다."
"여자는 말야, 섬세하기 그지 없다구. 그러니까 자기가 그러면 삐질거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원래 이렇게 말을 하던가? 6만년동안 인생의
권태는커녕 능구렁이만 가득 찬 모양이다. 나중에 이벤트 같은 것도 해줘야
할텐데 도대체 뭘 해야 산전수전 다 겪은 여신을 만족시킬 수 있으려나?
이것도 참 고민이네.
"다 제대로 있어요?"
"그대로 있군요. 몇 가지 없어진 것은 있지만 큰 문제는 없을 듯 한데…."
아리나가 일행들을 주룩 훑어보더니 작게 한숨을 푹 내쉰다.
"놔두고 갈 수도 없고 들고 가기도 그렇군요."
"뭐 그건 내가 날라줄게. 걱정마."
"…정말입니까?"
"죽은목숨도 몇 번이나 살려준 사람한테 그런 얼굴 하면 못써."
중간에 밥을 한번 먹고 꾸준히 걸은 것도 몇 시간, 다들 지쳐서 죽으려고
할 때쯤 나타난 무너져서 막힌 통로는 일행의 힘을 쭉 빼기에 충분했다. 얼
핏보기에도 암반이 떨어져 완전히 막혀 있는 게 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제
느는 그걸 보더니 또 주먹을 들어올렸다.
"또 부실까?"
"그러다 무너져."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민폐 끼치는 사악한 마녀로 보겠다. 스트레스 많이 쌓
여서 주체를 할 수가 없나, 부시는 걸 왜 이렇게 좋아해?
주먹을 올리는 제느의 팔을 잡아 끌어내리곤 눈총을 주니 지기는 커녕 불만
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린다. 요 모난 성격도 고쳐야돼 정말. 무슨 일
이 생기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갈 스타일이다. 처음에 봤던 그 청초하고
자애로운 여신은 대체 어디로 실종된거야?
"다른 길 없어?"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다른 출구로 나가는데…."
중간에 무너져 내린 통로를 보며 제느가 고개를 가로젓더니 주머니에서 이
상한 걸 꺼내서 몇 번 두드렸다. 얘가 없다면 정말 없는 건데.
"다른 출구까지 가려면 직선거리 20…그냥 걸어서 5시간, 우리는 이리저리
돌아야 하니까 하루종일 걸어야겠다."
"한 시간이 시급한데 곤란합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부시려면 부시겠는데 원래 출구가 실제로는 없는 허상이잖아."
손가락을 세우는 제느의 설명에 낙담하는 아리나의 표정이 정말로 우거지상
의 표본이다. 걷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는지 털썩 주저앉아버린 나머지 셋
의 표정도 처참했다.
"난 더 이상 못 업어. 때려 죽여도 못 업어."
"자기야, 어떻게 나갈 방법 없어?"
"조금 위험한데…."
제느의 시선이 여태 여신을 업고 와서 지쳐 널브러진 제느 쪽으로 가더니
걱정스러움으로 잔뜩 물들었다. 그리고 결단이라도 내렸는지 표정이 바뀌었
다.
"잘 들어. 이제부터 문을 열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 너희들의 그 도약마법
처럼 안전하지 않으니까 손 한번 놓으면 그대로 끝장이야. 나도 찾을 수가
없다고."
"…얼마나 위험한 겁니까?"
"여기 시간이 뒤틀려있으니 운 좋으면 다른 데로 날려가겠고 운 나쁘면 한
1초 늦게 살아가게 되겠지."
"그건 저희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겠죠?"
"너희 신이나 잘 간수해라.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도 없어."
둘이서 숙덕숙덕 이야기하더니 그렇게 결론을 낸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다는 말만은 확 와 닿았다. 빨리 바로 갈 수 있는 거라
위험한건가? 아리나가 소리를 치며 주저앉으려는 일행들을 일으켜 세우고
제느는 손으로 내 팔을 휘감더니 슥슥 더듬었다.
"자아, 힘 좀 발휘해봐요 서방님."
"아니 무슨 힘?"
"밤에만 힘쓰지 말고 지금 쓰라고. 여기가 이리저리 뒤틀려있어서 문을 열
려면 좀 머리가 아프거든? 내 힘으로는 부족해."
"으응. 뭐 그래. 알았어. 하여간 후들거릴 정도로 빼가 지는 말아."
으아악. 자꾸 이러다 말라죽겠다. 힘이 쭈욱 빠져나가면서 손이 쥐라도 난
것처럼 저릿저릿하고 팔이 찌릿찌릿해서 등에 업고 있던 아이를 놓칠뻔 했
다. 그래도 무식한 강도가 나아졌다고 해야하는지 모르겠네.
제느는 얼굴에 미안한 표정을 잔뜩 짓고선 저릿저릿한 팔을 주물렀다.
"좀 아팠지? 미안해. 자기야."
"아, 아니야. 괜찮아. 견딜만 한데 뭐."
"아프잖아. 팔 이리 줘."
괜찮대도 굳이 주무르는데 손이 닿는 데마다 시원하다. 그래도 나 생각해
주는건 우리 제느 밖에 없구나. 다른 일행들은 짐 잃어버렸다고 구박하고
구해줘도 고맙다고 한마디 말도 안하는데 말야.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되는
거라구.
"자기는 그 애 절대 놓치면 안 돼. 알았지? 내가 열 문은 불안정해서 한번
놓치면 진짜 이번에 영영 잃어버릴 지도 몰라. 아무데나 떨어진 곳에 우리
아이가 있었다니, 이런 행운은 둘도 다시없어. 그러니까 꼭 안고 있어야해?
"
"에이.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보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지."
정신 잃은 사람이 무려 둘인데 다들 지쳐 가지고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어
쨌든 몸을 추스려 일어나 준비를 했다. 거동 못하는 사람을 그나마 체력이
남아있는 사람이 업고 소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줄로 몸을 묶었다. 솔직
히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제느가 하도 겁을 줬다.
"조심해."
꿀떡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라는 건 내 착각이려나? 누구도
긴장한 표정이 없다. 제느는 내 손을 잡은 채로 앞의 허공을 손바닥으로 한
번 문질렀다. 방금 빼간 내 힘이 거기에서 느껴지고 순간 환하게 밝아진다
싶더니 검게 뚫린 구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잠깐, 이게 끝이야?"
사람 키 만하게 그저 넓어진 구멍을 가리키며 질문하니 제느가 고개를 끄덕
인다.
"거창하게 할 필요 있어?"
그런거냐? 라니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저번에 여기에 오기 위해
아리나랑 나랑 네프리스랑 크리스랑 한 건 뻘 짓이었단 말인가?
자괴감에 사로잡힌 사이 제느가 검은 구멍을 손가락으로 만지자 마치 물결
이 이는 것처럼 파문이 천천히 퍼져나갔다.
"돌아가면…."
"응?"
구멍을 만지던 하얀 손이 어둠을 움켜쥐자 연기가 새나오듯 검은 연기가 날
리기 시작했다.
제느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나를 돌아보고 일행들의 손을 잡고 문을 바라보
고 있는 제느를 돌아본 다음 문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녀의 얼굴은 뭔가
결심을 한 것처럼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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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먹고 살려고 하니 틈이 없군요;
더구나 이것저것 하다보니 틈틈히 쓰는 수밖에는 없더군요.
돈 벌어 먹고 사려면 힘듭니다 이거.
하여튼 챕터 9 끝났습니다.
다음 챕터 10 은 [당신과 나 사이에]
가 되겠습니다.
첫댓글 오오 연재다 연재 ㅋㅋ
ㅜㅜ 드디어 연재하시다니
언젠나 감사합니다!
연재 감사함니다!!! 언제 완결인것인가!!
언제.......... 이건 월간연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