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갖고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에 관한 모든 자료를 보아도 분명 세자유리왕 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세자란 용어는 분명 태자보다 하위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총 168번의 태자라는 용례가 나오는데 오직 3건의 세자란 용어가 고구려 관련 기사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 3건 모두 중국문헌을 그대로 뻬낀 것이라서 고구려에서 왕의 아들을 세자라고 불렀다는 증거가 못되며, 고구려는 분명 왕의 아들을 태자라고 불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의 세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분명 태왕, 황천의 아들, 천제의 아들 이런 표현들은 고구려가 제후국이 아닌 천하의 중심국가임을 말해줍니다. 광개토대왕은 은덕이 황천을 적지고, 그 위력이 사해에 진동했으며, 불손한 무리들을 전부제거했다는 것은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을 말해줍니다.
그럼에도 세자란 말을 쓴 것이 의문이 갈 수 있습니다. 나 역시 이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고대에는 太와 世자는 서로 같은 의미로 통용되어 사용했습니다. 주나라 문왕을 세자라고 했고, 그 주에는 세자는 곧 태자라는 용례가 에기에 나웁니다. 춘추에서도 마찬가지로 태숙을 세숙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 태자와 세자의 차별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세자라는 말은 대를 잇는 자식이란 뜻이며, 그것이 본래 왕위를 계승할 자식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여러 왕자들 가운데 왕위를 잇는 자식을 특별히 지칭하기 위해 태자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세자와 구별을 짓게 한 것입니다. 청나라의 작위에서는 세자가 2위로 확실히 구분을 짓습니다. 본래 세자란 뜻은 천자나 제후의 적자(계승자)를 의미하는 것이며, 천자와 제후간에 태자와 세자로 서로 구분을 짓는 것은 후대의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세자유리왕은 도리어 광개토대왕릉비문이 당대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려주는 자료는 될지언정, 고구려가 제후국을 자칭했다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한문의 문제인데 정말 날카로운 질문을 했군요.
비문의 태자, 세자의 문제는 서로 통용되는 말이기 때문에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나중에는 차별이 분명히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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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글을 쓰니 마음이 약간 새롭습니다.
첫댓글 그랬군요...
역시 좋은 지식 배워갑니다. 김용만 선생님 or 교수님? 어떤 존칭이 더 좋으세요?
좋은쪽으로 불러드릴려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