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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그리고 장로 감독은 한 직분
Ⅰ 들어가는 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세우신 것은 교회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에 속하여 한 회원이 되기 전에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먼저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가 된다. 이 몸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이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또한 성도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성경대로 믿는 신약지역교회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러면 지역교회의 머리는 누구인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피의 구속을 이루셨다(행20:28). 즉 ‘양떼’를 사기 위해서 하나님 자신의 피를 지불하셨다.
교회(엡1~3장)는 가장 고귀한 피갑을 주고 사신 것으로,(고전6:19), ‘한 몸’(고전12:13)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몸을 자신의 피로 사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소홀히 여기시겠는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방치하려고 교회를 세우셨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은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라고 말씀하셨다.(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으나, 이제는 너희 영혼들의 목자와 감독이 되신 분께 돌아왔다’
이 말씀에서 ‘목자와 감독’은 각각 다른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주님에 대한 다른 명칭일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피로 사신 교회를 이 땅에 남겨 두시어 그분의 뜻을 수행하게 하시는데, 양무리의 ‘목자와 감독’의 역할을 하는 직분자를 선임하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양들의 감독자인 목자에 따라 양떼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도 하고, 말라 비틀어 죽기도 한다. 요한복음(10:1~18)은 삯꾼목자와 선한목자를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에도 두 종류의 목자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Ⅱ 교계의 목사 그리고 장로와 감독은 어떠한가?
각 교단의 교리에 나타난 직분의 문제는 어떠한가? 각 교단의 헌법과 교리를 보면, 성경에도 없는 교회의 직제를 만들고 비성경적인 규칙을 제정하여 실행함으로써 기형적인 한국식 기독교라는 썩은 열매를 무성하게 맺고 있다.
다음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통합,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의 헌법에 제시된 목사와 장로, 감독에 대한 내용을 발취한 것이다.
1. 대한예수교장로회 “예장합동”의 헌법
<제3장 제2조 교회의 항존직> 교회에 항존할 직원은 다음과 같으니 장로(감독)(행20:17,28, 딤전 3:7)와 집사요, 장로는 두 반이 있으니 1. 강도와 치리를 겸한 자를 목사라 일컫고 2.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일컫나니 이는 교인의 대표자이다.
<제5장 제1조 장로의 기원> 율법 시대에 교회를 관리하는 장로가 있음과 같이 복음 시대에도 목사와 협력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자를 세웠으니 곧 치리 장로이다.
<제5장 제2조 장로의 권한> 강도와 교훈은 그의 전무 책임은 아니니 각 치리회에서는 목사와 같은 권한으로 각 항 사무를 처리한다(딤전5:17, 롬12:7~8).
2. 대한예수교장로회 “예장통합”의 헌법
<제4장 제22조 항존직> 항존직은 장로, 집사, 권사이며 그 시무는 70세가 되는 해의 연말까지로 한다. 장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1. 설교와 치리를 겸한 자를 목사라 하고, 2.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한다.
<제5장 제26조 목사의 직무> 목사는...., 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한다.
<제6장 제39조 장로의 직무>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치리 회원이 되어 목사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3. 대한기독교장로회 “기장”의 헌법
<제1장 제12조 교회의 직원> 1. 신약성서에 있는 교회의 항존 직원은 목사와 치리장로와 집사이다.
<제5장 제30조 장로의 자격> 상당한 식견과 통솔능력을 가진 남녀로서 딤전(3:1~7)에 해당하고 무흠한 교인으로 5년을 경과한 사람이라야 한다.
<제5장 31조 장로의 직무>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은 교인의 대표로서 목사와 함께 치리 회원이 되어 교회의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의 영적 사항을 살핀다....,
4. 기독교대한감리회 “기감”의 교리와 장정
<제5장 제89조 감독의 자격과 선출> ① 정회원으로[목사로] 20년 이상 계속 시무하고 그 연회에서 4년 이상 시무한 이로 그 연령이 55세에서 68세까지 된 이...,
이와 같이 예장합동, 통합, 기장, 기감교단들은 모두 목사와 장로와 감독을 각기 다른 직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목사를 장로나 감독으로 부를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하고 있지만, 같은 헌법에서 모순되게 이 세 가지가 각기 다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세 가지가 다른 것이라는 이들 교단들의 헌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교회의 직분이 어떤 것인지 바르게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장로와 감독을 목사와 분리된 직책으로 규정하고, 오히려 양무리(교인들)인 지역교회의 목동으로 세워진 목사는 교인들을 지배하는 구조로 만들어 놓았다.
교단의 비성경적인 헌법에 따라 교회들은 비성경적인 소위 성직자 계급을 구축하여 소위 평신도들을 지배하는 것은 물론, 소위 성직자로 차별화한 그들 사이에도 철저히 위계질서를 구축해서 지배하게 함으로써 성경의 권위나 영적권위가 아니라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권위를 행사한다. 이러한 체계를 소위 교단헌법과 교단교리로 규정하여 인간의 전통을 지키게 하고 성경적 실행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교단 안에서 성경적 교리와 실행을 주장하면 제명당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성경에서 목사의 자격에 대한 명시적인 기록이 어디에 있는지 제시할 수 있는가? 없다. ‘목사는...’이라고 시작하여 설명하는 구절은 한 곳도 없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에 목사가 있는 것은 비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반면 장로와 감독의 자격과 직무에 대한 기록이 있는가? 있다(딤전3:1~7, 딛1:5~11). 그렇다면 교회들에서 시무하는 목사들은 비성경적인 직책이고, 장로교의 장로와 감리교의 감독은 성경적인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Ⅲ 성경의 말씀은 한 직분이다
1. 목사 그리고 장로, 감독은 동일한 직분이다.
목사와 장로와 감독은 동일한 직분이다. 성경 말씀 자체가 이 사실을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이 세 가지 명칭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면, 목사가 지역교회의 목동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목사에 대한 자격과 직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하지 않으시고, 장로교의 장로나 감리교의 감독에 대해서만 말씀하셨다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은 결코 옳지 않다. 위에서 제시한 교단들의 헌법이 맞는다면, 즉 목사와 장로와 감독이 동일한 하나의 직분이 아니고 각기 다르다면, 교회에는 ‘감독’과 집사만 있어야 하고 목사와 장로는 없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교회의 구성원들을 언급함에 있어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빌1:1)이라고 말씀함으로써, ‘성도들’을 먼저 언급하고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그 다음으로 언급하여 성도들 이외에 ‘교회의 직분’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사도직분을 제외하면 신약지역교회에서 ‘직분’이라고 명시된 것은 감독과 집사밖에 없다(딤전3:1,10,13). ‘감독’은 보호자 또는 점검자이다. 즉 ‘양들을 돌본다는 의미에서’ 감독인 것이다. ‘장로’란 단어도 이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쉽게 말해서 ‘감독은 양들을 먹일 의무가 있는 선임된 장로’이다(행20:17,28).
로마가톨릭과 감리교의 주교와 감독이란 직제는 성경에서 설명하는 감독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목사인 감독들과 장로들은 지역의 회중들을 감독하고, 각 지역마다 여러 명이 있었다(행20:17,28). 우리가 목사와 장로와 감독이라는 명칭에 대해 고찰 할 때,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이러한 명칭이 모두 ‘양을 치고 먹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2. 목사 양을 치고 먹이는 목자
우리말에서 목사(牧師)나 목자(牧者)는 같은 뜻이며, 당연히 이 말이 지칭하는 대상도 같다. 다만 목자는 우리말에 실제로 양을 기르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첫 번째 뜻이고, 두 번째 뜻이 믿는 사람을 양으로 비유하여 목사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표현일 뿐이다. 영어에서도 실제로 양을 치고 돌보는 사람을 지칭할 때나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할 때도 모두 다 ‘shepherd’나 ‘pastor’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한다.
에베소서(4:11)에서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이들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라는 말씀에 따르면, 교회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 목사와 교사가 있는 것이다. 짧게는 교회가 세워지는 사도행전의 초반부에, 길게는 사도시대까지(약 A.D. 90년까지) 교회에는 사도와 선지자가 있었다(고전12:28).
그러나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엡2:20) 후에는 더 이상의 사도와 선지자는 교회에 없었다. 이는 사도나 선지자들을 계승하는 다른 사도나 선지자를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교회가 전무한 상태에서 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기록하는데 쓰임 받은 것으로 그들의 직무를 마쳤던 것이다. 따라서 에베소서(4:11)에 따라 현재 교회에서 성도를 섬기는 목사와 교사가 있으며, 또한 집사(딤전3:8~13)가 있고, 전도자는 현재적으로 선교사로 보는 것이 성경적이다.
3. 영혼들의 목자와 감독
감독(bishop)의 자격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 말씀은 딤전(3:1~7)이다. 여기서 감독은 행전(20:28)에서 ‘양떼를 돌보는’ 감독자(overseer)라고 불리며, 또한 에베소서(4:11)에서는 목사(pastor)라고 불린다. 이러한 명칭들은 모두 ‘한 양무리의 한 목자’(shepherd)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벧전(5:1~4)에서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다. 목사와 감독은 ‘선임된, 즉 안수 받은 장로’이며(빌1:1, 행14:23, 딤전5:17), 그의 다스림은 영적인 것이다(딤전5:17, 히13:17).
신약성경에는 로마가톨릭이 만든 대주교(archbishop)란 직책이 없다. 로마가톨릭은 ‘bishop’을 ‘감독’이라고 부르지 않고 ‘주교’라고 부르며, 주교 위의 직책을 대주교라고 부른다. 감리교는 목사 위에 감독이 따로 있고, 또 감독위에 감독회장까지 있다.
반면 벧전(2:25)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Shepherd)와 ‘감독’(Bishop)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결국 로마가톨릭은 예수님보다 높은 지위를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다. 감리교 교리에 따라면, 목사 위에 감독이 따로 있어 목사들을 선임하고 그들의 임지를 결정하며 목사들 위에서 지배하는 직책이다. 이러한 직제를 가지고 실행하는 것은 로마가톨릭과 마찬가지로 비성경적이기 때문에 한국식 기독교의 썩은 열매에는 감리교의 열매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가톨릭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대주교 위에 교황이 있으며, 감리교는 감독회장이 있으니 얼마나 비성경적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직책을 만들어 놓은 것인가? 따라서 로마가톨릭의 대주교라는 명칭이나, 감리교의 감독이라는 명칭은 분명 기독교 모독하는 표현이다. 교황은 주교, 즉 감독보다 두 단계나 높은 직책이고, 감독과 감독회장은 목사보다 각각 한 단계와 두 단계가 높은 직책이라면,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높은 직책인데, 어찌 이런 비성경적인 헌법과 교리를 수용할 수 있겠는가?
4. 장로의 대장은 당회장이 아니라 목자장‘이다(벧전5:1-4)
1) 내가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또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서 권한다(1절).
여기서의 ‘장로들’이란 행전(20:17)에서 언급되는 ‘교회의 장로들’이나 딤전(3장)에서 언급되는 ‘감독’과 같은 의미에서의 ‘장로들’이다. 제도화된 장로교에서 선출된 장로들과는 전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장로들이란 양무리를 보살피는 감독들이다. 교회행정을 주관하는 나이 많은 몇 안 되는 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영적 지도자인 ‘목사나 장로들’이다.
2)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2절)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라는 언급은 시몬 베드로와 연관된 특징적인 표현이다. 요한복음(21:15~17)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식사를 마치신 후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베드로에게 특별히 물으셨고, 이에 대해서 베드로가 대답했을 때, 이때마다 주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먹여라,’ ‘내 양들을 쳐라,’ ‘내 양들을 먹여라.’는 말씀을 세 번에 걸쳐 명령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양 무리를 치고 돌본다.’는 말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을 ‘장로’라고 말하면서 양들을 돌보라는 권면을 하고 있다. ‘돌보다.’라는 말은 바울이(행전20:28) 언급한 ‘교회의 장로들’의 사명과 직접 관련된다. 장로들, 즉 양 무리를 맡은 목사나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들을 섬기고 돌보며 지도하고 마지못하여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역에 임해야 한다고 베드로는 훈계하고 있다.
3)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어라(3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어라’는 말씀은 장로, 즉 목사가 양 무리 앞에 군림하여 그들을 지배하는 독재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나, 복음을 전파하고 구령하는 일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있어서까지도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모든 면에서 양 무리의 본이 되고자 항상 노력하며 기도하는 목사나 장로는 애당초 그들의 지배자로 군림하기는 틀린 사람이다. 반대로 양 무리 앞에 군림하여 그들을 지배코자 하는 목사나 장로는 아무리 언행에 주의하면서 가면을 쓰더라도 그들에게 본이 되기는 애당초에 틀린 사람이다. 목사나 장로는 기본적으로 ‘섬기고 보살피는’ 사람이다.
주님께서는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이들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왔다.’(마20:28)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너희 가운데서 큰 자가 되기 원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하고,..., 너희 가운데 으뜸이 되기 원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한다.’(마20:26,27)고도 말씀하셨다.
목사나 장로는 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양 무리를 치고 보살피며 본이 되는 목사나 장로가 되는 유일한 길이다. 주께서는 섬기러 오셨기 때문에 양 무리를 섬기고 보살피는 ‘목자’셨다. 그분께서는 친히 자신을 일컬어 ‘나는 선한 목자이다’(요 10:11,14)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선한 목자’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나는 선한목자이다.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다.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도망쳐... 이는 그가 삯꾼이어서 양들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요10:11~13).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4절)
영광의 면류관은 신실한 장로들이 받는다. 영광의 면류관은 실제로는 장로들의 몫이다. 목자장은 주님이시다. 그런즉 장로들, 즉 목사나 장로들은 목자장 밑에 있는 목동들인 셈이다. 이와 같이 신약성경이 말씀하는 장로가 지역교회의 감독들, 즉 목사나 장로들이다. 왜냐하면 장로들의 대장에 대해 성경은 당회장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베드로전서(5:4)에서 ‘목자장’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문맥을 정확히 읽기 바란다.) 결코 장로들의 대장은 당회장이 아니라 목자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은 장로가 오늘날 한국교단들의 장로가 아니라, 누구를 말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장로들에게 양떼를 돌보라고 당부하시는 것이다. 행전(20:17)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초청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교회, 즉 양떼를 당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장로들을 양떼의 감독자들(20:28) 이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이 장로들이 오늘날 장로교회의 장로라면, 바울은 성경적 원칙을 벗어나 담임목사는 따돌리고 소위 오늘날 ‘교단헌법’에 나와 있는 것처럼 ‘행정과 권징을 담당하고 치리하는 장로들’만 불러 놓고 양떼를 돌보라고 눈물을 흘리며 당부한 것인데, 이러한 주장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5) 장로회에서 안수한다.
딤전(4:14)에서 ‘....,장로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너에게 주어진 것을(은사) 소홀히 여기지 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 장로회(presbytery)가 나오며, 감독(목사와 장로)이 선임될 때 장로들이 안수를 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안수한다는 것은 계승자의 머리에 손을 얹음으로써 권위를 넘겨주는 오랜 관습을 따른 것이다. 이 절차는 행전(14:23)에서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분명 각 성읍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성경을 가르쳐서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게 되면 각 성읍의 교회에 장로들을 선임했다. 이것은 오늘날 개신교회의 장로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각 성읍의 교회에서 섬기는 목사를 선임했던 것이다. 즉 선임된 장로들은 목사요, 감독인 장로인 것이다. 따라서 먼저 장로 된 목사나 장로들(감독들)이 함께 모여 장로회를 구성하여 지역교회의 목사나 장로(감독)에게 안수했던 것이다. 행전(14:23)에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고..., ’라고 말씀하는데, ‘임명’(ordination)은 직분을 맡기는 것이며, 벧전(5:1,2)과 딤전(5:17)의 내용과 일치한다. 여기서 장로회를 구성하는 장로들과 또 선임된 장로들이 오늘날 장로교를 비롯한 개신교회의 장로라면, 한국의 교단들은 목사가 아닌 장로들에게 안수를 받아야만 목사가 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6) 영적 권위로 잘 다스리는 장로들
딤전(5:17)에서 말씀하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어떤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감독의 직분을 원하면’(딤전3:1)이라는 말씀과 같이 감독이나 목사의 직분에 자원한 사람이다. 그들의 우선적인 일은 양들을 먹이는 것이다(요21:15~17, 벧전5:1~4). 첫 번째 일은 구령하는 것이 아니며, 큰 건물들을 짓는 것도 아니고, 학교를 세우거나 구제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의 첫 번째 일은 양들을 먹이는 것이다(벧전5:1~4). 분명 그들은 양들을 인도하고 보호해야만 한다(요10:1~18). 그러나 목사나 장로, 즉 잘 다스리는 장로들이 그들의 양들을 먹이지 않으면 그들은 방어(防禦)하고, 인도하고, 안내할 양이 없게 되는 것이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양 무리의 본이 된다. 또한 그들이 섬기는 동기는 큰 수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벧전5:1~4). 그들은 어떤 양들을 돌보아 양육하고, 어떤 양들을 자식처럼 돌보아 어버이 역할을 하며, 어떤 양들을 때리기도 한다(살전5:14, 살후3:6). 또 그들은 어떤 양들에 대해서는 다른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양 무리로부터 쫒아 낸다(고전5:13, 요삼9~10). 그들은 가정을 먼저 잘 돌보며, 잃어버린바 된 사람들에게서도 존경받는 사람들이다(딤전3:7). 즉 그들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존경받는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선포하며(행20:26,27), 공개적으로 증거하고, 강단에서뿐만 아니라 가가호호 방문하여 증거 한다. 밤낮 성경을 공부하고 묵상하며(시1편, 딤후2:15), 딤전5:21,22; 4:12~16; 6:1~2에 주어진 교훈들을 따른다. 그들은 긍정적인 사람들과 부정적으로 대적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말씀을 전파하고(딤전6:3~5,17, 20~21, 딤후2:17), 믿음 안에 있는 말씀을 보존하며, 살전5:2~22, 롬12:7~21의 교훈을 따른다. 이런 목사나 장로(감독)들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인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목사와 장로와 감독은 한국식 기독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7) 남자,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감독의 직분은 지역교회에서 공식적인 지위이다. 그런데 여자는 결코 이런 지위를 부여받을 수 없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장로들은 남자이며, 모든 감독들은 남자이고, 모든 사도들도 남자이며, 모든 집사들도 남자이다(딤전3:2, 딛1:6, 딤전3:11,12). 만일 어떤 여자가 구령하는 선교사라면 그녀는 복음을 전파하고 성경을 가르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지, 한 교회의 목사로, 즉 감독과 장로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직분을 받은 여자목사들이나 여자집사들은 하나도 없다. 변개된 어떤 영어성경들 가운데는 롬16:1을 여자집사(deaconess)라고 번역했지만, 여기의 헬라어 단어 ‘디아코논’(διάκονον)은 중성이지 여성이 아니다. 특히 집사의 경우, 개역한글판성경은 딤전3:11에서 ‘ㄱ)그들의‘집사들의’ 아내들도 이와 같이’라는 말씀을 ‘여자들도 이와 같이’라고 변개시켜서 여자집사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리고 바른 성경에는 주석하기를 )그들의 아내들,(바른성경)로 주석을 하기도하였다.
딤전(3:2)에서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결코 교황이나 신부들은 양무리를 돌보는 목사나 감독, 혹은 장로일 수 없고, 어떤 여자도 목사(장로, 감독)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교회들에는 얼마나 많은 여자목사, 여자장로, 여자집사들이 있는가? 바울은 그의 생애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을 목사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그는 결코 감독과 장로로 선임된 적이 없다. 바울의 고백은 이렇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받았다’(딤후 1:11). 바울은 교회를 세웠고, 장로들을 선임했고, 강론하고, 성경을 가르쳤지만 지역교회의 목사가 결코 아니었다. 그의 사역은 교회의 기초가 된 것이었다(엡2:20, 고전12:28). 그리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믿고 실행했던 것이 현재 교회가 따라야 하는 표준적인 믿음의 길인 것이다.
Ⅳ 나가는 글
지금까지 고찰해 본 것과 같이 제도화된 한국교회는 성경을 잘못 이해한 열매로 맺혀진 교단들 헌법과 교리는 비성경적인 직제와 지배구조를 만들었으며, 성경적으로 섬기고 실행하고자 하는 순수한 양심을 지닌 목사나 혹은 장로나 집사를 배척하고 있다. 바르게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올바른 성경해석으로 돌아가서 성경대로 신약지역교회의 교리와 실행에 전면(全面)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여)하여 비성경적인 교단의 헌법과 교리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성경의 말씀대로 믿고 실행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
너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마라. 너는 모든 일에서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길들을 평탄케 하실 것이다. 너는 스스로 지혜로운 체 말고 여호와를 경위하며 악에서 떠나라(잠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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