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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땅 인터뷰 프랑스 출판문화의 기수 ‘아르마땅’을 가다
<문화사랑방 인서점> 글나루 팀장 심재법
12월 4일 인천공항, 나는 여전히 ‘꼭 가야하나!…’라는 나 자신의 출국에 대한 의문을 짙게 내려 깔린 공항의 연무 속에 던지면서 동시에 재깍거리는 시간의 쉬지 않는 긴장을 느꼈다. 마침내 이륙의 굉음이 울리자 나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내가 정말, 파리행을 감행하다니.. 더구나 무슨 ‘국제정책포럼’이라니! 이렇게 낮선 여행에 몸을 맡겼지만 그래도 이성은 여전히 작동하는가. 생각이 강물처럼 흐른다. <문화사랑방 인서점>이 비록 민주주의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첫 ‘사회과학서점’이라는 간판을 걸었고 또 내가 어버지의 대를 이어 경영에 나섰다고는 하지만, 사실 나는 우리 인서점과 같은 작고 어린 몸집의 배경을 가지고도 ‘세계진보정책’을 논하는 ‘국제회의’에 참가한다는 건 그 무엇보다 그간 이 땅의 진보운동에 열정적으로 관여한 많은 단체와 전문지식인에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스럽기 그지 없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나 개인으로는 이 번 여행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그러나 무엇보다 진보 정책이라던가 또는 출판문화에 대한 아무런 경험과 식견이 없는 무지한 신출내기로서 이 회의에 참가한다는 것은 인서점이 그리고 내가 감내하기에는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점을 출판인 회의와 상의하고 또 극구 사양하기도 했으나 원래 함께 가기로 한 이춘호 회장님마저 바쁜 국내 일정 때문에 출국이 불가능해지자 나는 더 마음이 무거워지는 속에서 홀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식비용을 포럼이 부담해 준다고는 하지만 근래 와서 적잖게 경영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이번 나의 출국을 위해 우리 인서점이 감내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란 걸 짐작하고 인서점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또 우리 가족이 십시 일반으로 크고 작은 봉투를 보내며 ‘걱정말고 대학졸업 여행 삼아 잘 다녀오라’고 격려 해 주긴 했으나 그래도 이번에 내가 출국을 감행한 것이 정당한지 혹은 괜한 객긴지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어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서점’은 몇 번이나 역사 속으로 살아질 번 했었다. 그 때마다 모금을 통해 다시 세워주곤 했던 <문화사랑방 인서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고 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옷깃을 여미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인서점을 그렇게 절절하게 사랑하는 이유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이 땅의 민주주의를 향한 혁명의 정신이다. 군사독재의 혹독한 탄압에 마지막 숨결을 몰아 쉬던 이 땅의 80년대 민주주의 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서점이 그들과 함께 하면서 겪어낸 시련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향한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 수 없고 기억해 두어야 할 귀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제 다시 그 때 그 보수정권에게 정권을 내 준 상황에서 이제 다시 인서점이 그들이 살려 내야 할 희망의 씨앗이란 걸 생각해 보면 이제 다시 우리 인서점은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에 어떤 식으로든 보탬이 되는 의미를 이 번 여행 길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인서점과 출판인회의가 함께 하는 닷새간의 포럼 개막식 행사 앞 뒤로 참여한 ‘한국진보도서전시’가 끝나자마자 이후로 이어지는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내 안 속으로 작정한 별도의 일정을 위해 곧바로 나섰고 마침 이 길에 잠깐이지만 한신대 이해영교수님과 함께 숙소를 정하는 모처럼의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여간, 나는 이 번 여행에서 그 무엇보다 파리의 구석구석을 찾아가서 세계문화의 중심지대가 어떤 것인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 이러한 나의 욕심에는 포럼의 황해로처장님과 프랑스에서 유럽 캠핑카 여행 업체를 운영하고 계시는 이상준님의 강력한 권유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출판문화의 한 지점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꼭 아르마땅 출판사를 방문해서 그들이 새로운 출판문화의 방식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가고 있는 현장의 모습을 찾아 그 가능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더 좋은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포럼 공식 일정이 끝난뒤 내가 이해영교수님과 행동을 같이 하자 이번 포럼에서 멋있는 통역으로 칭송이 높던 번역가 한 분이 나의 이런 욕심을 자청해서 지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런 뜻 밖의 친절은 한미 에프티에이 관계에서 우리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지성으로 떠올라 수 많은 미디어 논쟁에서 그 탁월한 식견으로 논쟁마당을 휩쓴바 있는 이해영교수님의 힘이었습니다. 더구나 이해영교수님은 우리 인서점의 ‘초청좌담회’에 초대된바 있었다.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에서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게 되어 자연스레 나와 교수님을 파리시내로 끌어내서 걸어가게 했고 더구나 영광스럽게도 이 석학교수님과 나를 맥주잔으로 부딪는 아주 근사한 추억거리와 긴 여행의 여정을 호사까지 마련해 주었습니다.
하여간 우리가 예정대로 포럼에 참가했던 다섯분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꼭 가봐야 한다고 강권하던 인문지성의 기수 ‘아르마땅’ 출판사로 향한 것은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나는 가는 길 내내 고개를 숙이고 우리 조국의 역사를 떠 올렸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결국 인문지성에 불과한 그저 그렇고 그런 하나의 책임에도 불과한걸 사회과학 이라거나 더 나아가 이념서점 더 가혹하게는 ‘빨갱이들의 사상’이란 굴레를 씌워서 책을 빼앗고 사람들을 잡아가는가 하면 그렇게 많이 죽이기까지 했던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거기서 민주주의는 실로 역사의 시련 그것이었습니다. 세계진보지성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아르마땅 이라는 한 출판사로 향하는 길에 내가 이런 강렬하고 슬픈 추억을 떠 올려 마음 아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겨우 고갱이를 깨워서 투쟁해 가던 길에서 우리의 출판인과 출판사와 양심적인 지성과 특히 이 대열에 함께 했던 노동자와 농민이 빨갱이 서적으로 규정된 이념의 유통과정에서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고 도망 다니고 그들의 가족을 고통스럽게 했었던가. 비록 그 과정의 아주 작은 일이지만 인서점과 인서점의 대표인 나의 아버지가 잡혀가는 걸 보았으며, 박종철이라는 서울대 학생이 죽었던 해 겨울입니다. 그 때 나는 다섯 살 어린나이로 늘 피신해 있던 아빠를 따라 인서점에 왔다가 아빠가 국가보안법으로 붙잡혀 가자 텅빈 인서점에서 그 어린 나이로 낮선 형사가 밥을 사주고 재워주고 놀아주는 실로 어이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경험을 하기도 했었으니….. 그 때의 이 나라 꼴이 어떻겠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런 뜻 밖의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우리는 파리 시를 관통해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일행 여섯이 아르마땅 출판사에 도착하자 출판사의 홍보담당자라고 보여지는 몇 사람이 우리를 친절하게 맞았고 이어서 출판사의 모든 정황에 대해 기탄없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담당자의 설명은 적잖이 낮 설고 상상으로 가득찬 놀라운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친절과 즐거운 분위기를 위해 애쓰면서 가끔씩 질문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르마땅 담당자가 물이 흐르듯 설명해 나가는 걸 조용히 들었습니다. 내가 영문학을 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영어로 소통을 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형편에 더구나 열 손가락으로 짚어보기에도 바쁜 아르마땅의 불어 설명을 듣다 보니 사실 나는 거의 귀머거리나 다름없었지만 번역을 담당한 우리 한국인 여성은 여전히 재치 있는 통역으로 이 특별한 인터뷰의 소통을 도왔는데, 소통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는 없어도 서점에서 태어나 서점에서 자랐고 이제는 그 서점에서 일을 하는 나로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또 그래서 어색하기는 하지만 가끔씩 질문이 준비되기도 하는 인터뷰였습니다.
l 아르마땅 출판사는 어떤 곳인가. 우리 아르마땅 출판사는 프랑스와 그리고 불어권에 있는 여러 나라의 인문학을 중심으로 ‘다종 소량을 출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지금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출판물의 종수를 기록하고 있다. 매일 10종 안팎의 출판물이 생산되고 있다.
l 모든 출판물이 인문과학인가. 아니다. 대략 인문과학이 80% 정도이고 국제관계가 20%이며 이 중에도 상당량의 영상 비디오가 포함되고 있다.
l 그렇다면 생산 단가가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상업성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획단계에서 시스템화하고 이 조건에 충족되는 출판물은 원칙적으로 적자가 나지 않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많은 종수의 출판이 될수록 우리 아르마땅에겐 좋은 일이다.
l 경영의 ‘특별한 원칙’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것인가. 우리는 일반출판물엔 관심이 없다. 아르마땅은 전문성을 가진 인문지성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찾아 이를 연결하고 출판한다. 그 다음 우리는 이 전문지식을 ‘유통’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이런 인문지식의 수요와 소비 즉 ‘관심’의 전체 구조를 세분화 하고 시스템화 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인문학의 관심에 초점을 맞춘 우리의 출판구조와 시스템은 반드시 ‘판매와 이윤’으로 연결해 준다. 물론, 여기엔 아르마땅의 능동적인 활동이 전제되고 이는 출판의 전문화와 세분화 그리고 시스템이 전제된다.
l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소량 다종 출판이 결국 생산비의 증가와 유통의 어려움을 가져오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게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상상을 높여 보라. 인문학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사회단체와 전문지식인이 있다. 이런 관심을 우리 아르마땅 출판사의 출판 씨스템에 도입하는 것이다. 즉 그런 관심을 ‘정부지원’과 ‘사회단체의 지원’을 인프라로 확보함으로써 연구와 재정지원으로 묶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량 다종 출판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인 이득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쌓아놓은 구조의 토대와 어우러지고 있는 지식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전반적인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것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l 그렇다면 출판물의 소비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일반독자를 상대로 하지 않는다. 전문지식을 원하는 전문가와 사회단체를 상대로 출판한다. 그러기 때문에 한 판에 3,000부를 찍는 일반출판물과 달리 150부 정도를 기준으로 출판한다. 또한 ‘관심’을 출판으로 연결하는 데 상당한 기동성을 발휘한다. 대개의 출판물이 극히 짧은 시간에 출판된다. 관심을 갖은지 10일 안에 출판되기도 한다.
l 그렇다면 철저하게 디지털화 된 출판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 우리는 어떤 전문지식에 관심을 갖는 극소수의 생산과 소비자를 찾아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대단히 신속한 결과 물을 내 놓는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전자출판이며 아주 적지만 시스템이 적용되는 150부가 출판되고 이는 미리 예정된 소비자에 의해 거의 즉시 소비된다. 때로 사회적 관심 즉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때는 즉각 즉 불과 하루 만에 재판을 찍어 낼 수도 있다.
l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하기 않겠는가. 그렇다. 우리 아르마땅은 각 업무 분야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 된 150명의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 ‘관심’은 곧 우리 ‘아르마땅의 능동성과 기동성이 투입되는 곳’이다. 그러자면 그 관심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 출판의 어려운 점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우리 아르마땅의 장점이다.
l 그렇다면 출판사와 서점의 이윤은 어떻게 되는가. 프랑스는 법적으로 서점에서 5% 이상의 할인은 불가능하다. 출판사는 대체적으로 1년의 유통기간에 서점에 40%의 마진을 주고 있다.
l 한국과의 출판관계도 있다고 들었다. 아르마땅은 한국의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출판했으며 지금 현재 그 약 400쪽 정도의 요약 본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의 관계를 희망하고 있으며 특히 인서점에서 연결해 준다면 논의 하겠다. 우리는 이미 2명의 한국관계 전문가가 도와주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많은 소규모 출판사와 서점이 묻을 닫고 있다. 새로운 방식을 상상해야 한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일반적인 인문학적 관심이 아니라 아주 전문적인 소수 지식인 그룹의 관심이다. 특히 불어권의 관심은 우리 아르마땅이 원하는 곳이다. 불어로 출판될 수 있는 이 두 나라의 관심을 하나로 묶고 소량으로 출판하는 것은 두 나라 그리고 두 사회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그런 ‘관심’에 우리 아르마땅의 출판정신과 원칙과 그리고 시스템이 작동하고 나아가 우리의 이윤도 보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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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동안 아르마땅의 주요 관계자인 디렉터들의 말과 그리고 나중에 내가 특별히 혼자서 아르마땅을 방문하면서까지 확인한 것을 숙소로 돌아와서 대충 이렇게 정리하다가 나는 또다시 성공담론이라는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에 파김치가 되어가는 우리의 열악한 인문학 출판현실을 떠 올리면서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우리 ‘문화사랑방 인서점’ 경영의 현실에 마음이 쓰렸다. 그러나 이 신자유주의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우리의 성공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약육강식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 신자유주의라는 늪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아르마땅의 새로운 방식이 내 안에서 정말 희망의 고갱이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마치 가을날 먼 하늘의 조개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여기서 특별히 밝혀 할 것은 공식 방문이 끝난 후에 내가 다시 단독으로 아르마땅을 방문했을 때 특별히 총책임자의 면담까지 주선해 준 아르마땅 관계자와 통역을 맡아 수고해주신 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이번 포럼 참여와 또 아르마땅 방문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인터뷰 글로 자료집을 준비하는 포럼의 황해로처장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화사랑방 인서점>의 인문학 읽기운동 <글나루>의 팀장 심재법 올림 |
* 시, 수필 또는 사진 등 이야기거리를 보내 주세요.
* 보낼 곳 ismbs@hanmail.net
다음까페 <인서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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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2009.2월 <글나루> 서평1
어! 500년 전, 토정 이지함이 ‘마르크스 강의’를 했다.
<토정 이지함>
토정 이지함에 대해, 성정이 급하다거나 과격하다거나 심지어는 미쳤다는 사람까지 있었지만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미 500년 전에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을 설파하고 다니는가 하면 학문에 매달려 벼슬길만 쳐다보는 양반들을 향해 “숫자를 계산하는데 밝으니” 장사를 해서 민중을 먹어 살려야 한다”며 오직 천민만이 할 수 있는 말업인 상업, 공업, 어업 같은 업종에 종사할 것을 권장하면서 이를 국가가 나서서 부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민중을 향해선 “너희가 나라의 주인이고 하늘이니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고 했으니, 이 경천동지의 철학과 사상을 퇴계는 어찌 이해 할 것이며 조정인들 이해하겠는가. 진보학자 율곡마저 그의 탁월한 사상엔 감탄했으나 혀를 끌끌 차는데 그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북학의 시원이 되었고 이 땅 진보이론의 광맥이 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 후 수구적 영남학파와 진보적 기호학파의 파당과 갈등과 사화의 원천이 되기도 했고 그 줄기는 도도히 흘러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집권 한나라당과 진보적 민주당의 원류가 되었던 것이다.
하여간, 토정 이지함의 발언은 그 당시에도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대역죄인의 소리였고 그 소리는 또 우리가 87년 6월의 민주주의 항쟁에서 깃발에 써 올린 바로 그 구호가 아니던가. 그러니 그 당시 이지함의 마르크스 강의는 결국 미친놈으로 취급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스스로도 그걸 알았고 그래서 무쇠솥을 쓰고 다니며 현실과 저항했고 그 무쇠솥에 밥을 해 먹으며 민중과 하나가 되고자 했다. 그 500년 후의 세상을 사는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퇴계나 율곡이 그렇게 숭상한 주자 성리학은 한마디로 세상을 이치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서양 철학의 ‘이성’과 대동소이하다. 이성이란 무엇인가. 좀 거칠게 정리한다면 세계의 본질은 신의 섭리라는 것이요, 이는 정신의 발현이고, 지식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권위이며 그 힘이자 권력이 아닌가. 곧 ‘형이상학’이라는 것이다. 동양 사람들은 그걸 ‘리’라 했고 또 양이라 칭하면서, 그 ‘리’ 즉 ‘이성’에 대응시킨 ‘기’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니까 하늘에 땅을 태양에 달을, 열에 냉을, 양에 음을 대응시킨다. 그리고 이는 곧 성리학의 주류와 비주류가 되었지만… 이건 다시 말해 형이상학과 유물론 아닌가. 이 학문의 집권세력과 도전세력의 주류와 비주류는 곧 실제 권력장악에서도 수구와 진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장과 반론의 근본을 이뤘던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성리학은 늘 이 이성과 이성에 대응하는 감성, 그리고 그 둘을 하나로 묶은 이론의 어느 하나 또는 둘의 관계를 어떻게 잘 성명하느냐 하는 문제로 압축되었던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인성과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성리학의 ‘성’ 또는 ‘이’나 서양철학의 ‘이성’의 개념은 동과 서 그리고 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으로서 그리고 도구로서 언제나 철학적 인식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양의 ‘리’와 ‘기’는 서양의 이성과 감성이었다는 것이다.
서양이 힘을 중심으로 한 부성적 가치와 논리인 이성에 의해 지배와 복종과 승패에 집중한 반면 동양은 이성의 ‘관계’ 항으로 설치된 ‘감성’ 즉 모성적 가치에 집중하여 하늘보다는 땅과 자연, 낮보다는 밤 그리고 왕보다는 백성에 즉 유물론이고 과학적인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 보고자 했던 것이다. 성리학을 단지 권력쟁취를 위한 도구적 가치로 이해하고 기득권을 위한 왕권유지의 방편으로 삼았던 영남학파에 비해 조선의 진보 진영인 기호학파는 ‘이’에 대응하는 ‘기’ 즉 자연과 백성 물질에 근본을 두면서 성리학의 ‘이’보다는 그 ‘이’가 밝히고자 하는 ‘세계의 본질’을 향해 ‘기’를 작동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토정 이지함 뿐만 아니라 서경덕, 이이, 정약용 등 조선의 탁월한 학자가 모두가 진보학자들인 기호학파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자연의 섭리를 따라 백성을 역사의 주체로 보고 과학적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지만, 그들은 모두 영남학파의 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주는 한직을 통해 연명하거나 아니면 산천을 떠 돌아야 했던 것이다.
이지함은 고려말 명신이자 대 학자인 목은 이색의 직계 자손이고 당대의 왕족을 부인으로 맞아 들인 명문 거족의 당당한 양반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그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광인이 되어 세상을 떠 돌았으니 이는 바로 그의 사상이 500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렀기 때문이며 천지개벽의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즉 땅을 하늘로 본 죄 값 다시 말해서 그가 이미 그 때 민주주의라는 새 하늘을 보았기 때문이다. *
2009년 2월 27일 <문화사랑방 인서점> 글나루의 도사공 아저씨 심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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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009.2월 <글나루> 서평2
인간은 지식을 가진 무서운 동물이다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이제 그 답을 말하는 이가 있다. 그 사람은 바로 1944년 1월 18일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사망했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우리는 서서히 인간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라고 말하는 프리모 레비다. 프리모 레비는 한창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1943년 12월 13일부터 10개월에 걸쳐서 생사를 넘나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포로 환경을 견뎌내고 기적적으로 살아 남는데 성공한 사람이다.
그의 기록은 인간으로서 인간을 위한 귀중한 인간의 증언일 수 밖에 없지만, 하루가 다르게 강도를 높여가면서 인간정신을 파괴하는 열을 올리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악마에 대응하기 위해 인문학적 성찰만이 대안이라는 우리 <문화사랑방 인서점>의 대안과 ‘이것이 인간인가?’란 제목에서나 ‘인간은 동물’이며 ‘인간과 인간의 조직’에서 ‘인간의 정신을 깨어나게 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잔학성을 막지 못한다’는 내용에서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이런 내용을 1982년 저 어두웠던 군부독재의 암흑을 향해 간판으로 내 걸었던 인서점으로서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서점이 군부독재 정권을 향해 ‘인간은 지식을 가진 무서운 동물’ 이라는 구호를 내 걸었던 것은 우리 인간 자신과 그리고 인간의 조직에 대해 우리의 막연한 희망과 기대 그리고 이에 따른 의존성을 탈피함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인식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 저항하는 능동적인 인간주체를 발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 우리의 이런 희망을 알고 증언해 주기를 자청한 듯, 프리모 레비가 자신이 경험한 역사의 참혹한 현장을 세시히 증언하고 있다. 의심할 나위 없는 한 인간이 어떻게 ‘지식을 가진 무서운 동물’로 변해 가는 정황과 그리고 그 동물 수용소에서 수용소를 운영하던 독일의 힘이 증발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인간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인간회복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면서 프리모 레비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아니 인류를 향해 묻고 있다. 우리가 진정 인간인가? 라고…… 그렇다. 우리는 분명 인간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인간이 아닐 수 있다. 왜? 인간은 결국 ‘지식을 가진 동물’이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 ‘악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인간은 위대하다’고 ‘그렇지 않다’고, 그건 단지 전쟁 마당이었고 그리고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이었을 뿐’이지라고 강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다 인가. 우리의 내면에 아니 ‘나의 내면’에 진정 그렇게 ‘인간에 대한 확신’이 존재한단 말인가. 우리는 이 글을 읽으며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말한다. ‘수용소가 있는 한 아니 존재 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인간이 될 수 없다’라고 말이다.
더구나, 우리는 저 군사독재와 유신시대를 보내면서 그들이 장치한 온갖 도구에 의해 ‘민청학련’이니 ‘통혁당’이니 무슨 ‘사회주의’니 ‘맑스’니 ‘국가전복사건’이니 하는 등의 수 많은 공안사건을 겪었으며 그 때의 그 법이 엄연히 살아 있는 촛불 공안의 시대를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잔인한 범죄의 늪을 피해 잠시 한 세월 민주주의가 꽃피는가 했지만, 결국 다시 그들을 불러들였고 그래서 일시 단잠에 빠져 있던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이 대한민국을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는 개과 천선했고 착해졌고 더구나 ‘이젠 다시 그런 짓을 아니하겠다’고 다짐한다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두렵다. 언제 또다시 재판 다음날 새벽에 형장의 밧줄을 걸지도 모른다면 지나친 우려인가. 언제 민주주의를 떠 받히고 있는 행정, 사법, 입법의 세 기둥이 국가보안법의 난동에 출렁이고 나라의 대들보가 꺾일지…… 국가보안법은 그 재 가동의 꿈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 ‘이것이 인간인가’는 한 전쟁포로가 자신의 아픈 기억을 되살려 증언하는 고발문학이지만, 그러나 이 기록은 작가의 말대로 인간의 ‘내적 해방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향해 던지는 ‘인간에 대한 비웃음’이자 그 비웃음을 통해 인간의 미래를 ‘지식을 가진 무서운 동물’의 세상으로부터 구해내고자 하는 인간세상을 향한 경종이 아닐 수 없다. 그 미래에 잠복해 있는 자본주의를 향해 말이다. 인간의 죽음이 목전에 와 있지 않은가. 프리모 레비의 절규가 떠 오른다.
“인간의 죽음에 앞서 영혼이 떠났다” *
2009년 2월 27일 <문화사랑방 인서점> 글나루의 도사공 아저씨 심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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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평택의 농꾼 무예
이 글은 문화사랑방 인서점의 다음 까페에 올라와 있는 ‘농꾼 무예님의 세상 읽기’를 쓰시는 무예님이 까페에 올린 글입니다. 무예님은 평택에서 배 농사를 지으며 많은 시민단체와 특히 민주노동당의 지역활동에 열성을 다 하고 계십니다.
* 편집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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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고.. 허리야... 한 해 농사 준비 끝...
오늘 오후 늦게 서야... 올해 2월 들어 계속 씨름 하던 배 밭의 가지치기 작업이 일단 마무리 되었다..
2월에.. 날씨가 조금 풀린다 싶자.. 본격적으로 한 손에 가위를 잡고.. 또 허리에는 낭창낭창하는 얇실한 톱도 하나 차고...
아침 밥 만 먹으면 사다리 두 개 잡고 나와서.. 이 사다리 저 사다리에 양 다리(?)를 걸치고 허리 힘(?) 하나로 균형을 잡으면서... 오른 손으로 톱질 해... 왼 손으로 톱질 해.... 이 짓을 한 달 여를 했다.(덕분에 허리에 매일 파스를 붙이고 살아야 했다...)
드디어.. 오늘에야... 하늘도 감동하셨는지... 배밭의 배나무 들을 전부 다 가지치기를 해 줄 수 있었다. 매 해마다... 가지치기 하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맡겼었는데... 가만히 보니...
해마다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다른 사람이 나무를 다루다 보니... 나무가 제 모양을 잡지 못하고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시(市)의 영농지도사 분이 말씀해 주시기를.... 지도소 안에 있는 배나무 밭을 열심히 관찰한 후... 묘리를 터득해서 나 나름대로 한 번 도전해 보라는 충고였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이론과 틀을 세워서 홀로 가지치기를 시작한 것이... 근 한달 여를 끌어 온 것이다...
그래도 해 놓고 보니... 일단 내가 일하기는 쉬운 대로 해 놔서 마음에 드는데...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가 궁금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지도소에 가서 상황 설명을 했더니... 지도사 분 말씀이...
" 원래 배나무라는 종류는 아무렇게나 잘라 놔도 싹이 잘 돋아 나는데.. 나중에 그 가지치기 한 줄기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인지 만 고민하면 된다.. " 고요 .. 일단 속으로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 자네도.. 이제 배농사가 경력이 10년인데... 가지치기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야 해... 다른 사람은 아직도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걸랑... 그래도 젊어서 그런지... 의욕이 넘치는 구만... "
칭찬인지.. 격려인지 모를 충고를 듣고 왔습니다...다시 시내의 지구당사에 와서 사람들에게... 아이고 죽겠다.. 를 연발했더니 부위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럼... 해마다 같은 일을 하면... 아예... 같이 일을 배우고 할 수 있는 사람 한 명.. 골라요... 공연히 혼자 죽어나지 말고..."
퍼뜩... 머리가 번쩍였습니다.. 이런 좋은 생각을 못했다니... 아이고.. 이제 내 머리가 진짜.. 돌머리 수준이 되는구나... 했죠... 그래서... 미리 물색해 둔 사람이 이미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지는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죠...
*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이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 시, 수필, 소설, 기행문. 칼럼, 그림, 만화 등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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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문화사랑방 칼럼>
직접민주주의를 생각 하자
뉴욕유권자쎈타 사무총장 김동찬
이 글은 ‘뉴욕유권자쎈터’ 사무총장 김동찬님의 글입니다. 뉴욕유권자쎈터의 김동석소장님과 김동찬사무총장님은 2005년과 그 이듬해 인서점의 문화사랑방 ‘좌담회’의 초청연사로 초대되어, 유태인이 어떻게 미국정치를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미국에 대한 한국의 외교역량강화에 좋은 의견을 주신바 있습니다. 또한 2007년엔 미의회에서 ‘위안부결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켜 세계정치무대를 놀라게 하면서 일본 외교를 패닉상태에 빠뜨린바 있으며, 현재 미국의 진보정치가 실험될 오바마 정치 무대의 탄생에 적잖이 기여함으로써 한미관계의 외교접점의 중심에 서게 되어 우리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에 김동찬님이 우리 인사모 까페에 올려주신 이 글에 진심으로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화사랑방 인서점
직접민주주의를 생각하자 전세계의 현실 민주주의가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점점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해지고 투표율은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중앙정치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불신은 세계 어느 곳이나 있고,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는항상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 것이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중은 똑똑해 졌고 인터넷을 통해서 수많은 정보가 넘치고 대중들이나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보는 정보나 일반 대중이 보는 정보 모두 별 차이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중앙권력이 더욱더 똑똑해지고 다양해진 대중의 기대와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중앙권력은 전체 국가적인 국방, 외교, 비상상황 관리, 일정정도의 세금과 분배에 대한 권한 정도를 남기고 가장 작은 단위 즉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동 수준의 정부에 모두 이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입법과 사법, 행정, 조세의 상당부분의 권한을 동단위나 구단위의 정부에 넘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 지역 정부의 자발적인 충성으로 중앙정부를 지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 왜 유권자들이 점차 대의 민주주의로 부터 등을 돌리고 자신들의 관심이 높은 동호회나, 종교등으로 관심을 더 가질까? 과연 관심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유권자들 자신들의 요구를 대의 민주주의를 통해서 구현할 수없다고 판단하기에 분노로 외면을 하는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닥친 대공황을 이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서 밑으로 내려간 정부에 의해서 극복되어 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작은 타운(자양동 보다 작음 인구 3000여명 정도)에서 모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자포자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타운 정부에서 푸드 스탬프와 같은 일종의 식량 지원 쿠폰을 발행했습니다. 단 이 쿠폰의 그 동네의 농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농장으로 물건을 사러 몰려들었고 농장은 팔리지 않은 농작물을 팔고 직원을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삽시간에 타운의 경제가 살아나고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수많은 지역 정부의 모범들이 계속해서 발굴이 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알려지면서 전국의 타운들이 이와 같은 고민과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타운은 자체적인 경찰 소방관 법원 그리고 타운 의원에 의해서 조례를 만들고 타운 세금을 거둘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운의 권한을 벗어난 치안의 문제에 대해서 주경찰이나 연방경찰이 타운의 요청에 의하여 개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법들이 주마다 다릅니다. 대부분 일상의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은 타운의 조례입니다. 사실상 미국의 연방정부 권력이 일반 시민들에게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력은 세금과 국방밖에는 없습니다. 아 또하나 우체국과 노약자, 빈민을 위한 식량배급과 의료에 관한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모든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된 사회에서 미국인들은 숨이 막혀 살 수 가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 타운은 회사를 만드는 것과 똑같이 주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자체적으로 타운의 시장과 의원들 경찰과 교사를 지명하거나 선출합니다. 물론 위의 내용은 3월 중순에 한국의 지방자치 연수차 뉴저지에 오는 한국의 지방의원들을 위한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출판을 하려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왜곡된 대의 민주주의의 폐단을 극복하고 장차 통일을 준비 하는데 있어서 직접 민주주의가 상당히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
2009년 2월 28일 뉴욕에서 김동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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