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는 지나갔나 보다. 몇 일 간격으로 비가 더 오겠지만, 너무 오랜 가뭄 끝이라 강을 채우고, 푸른 산의 목마름을 채우려면 조금 더 와 줘야 할 것 같다.
지난 6월에는 후기를 3편을 썼었다. 사랑의 집과 소록도와 안양교도소를 다녀와서 쓴 후기들이다. 그 중에서 안양교도소후기를 골라 7월호 나눔지에 냈던 것은 그만큼 첫발걸음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첫걸음에서 감동을 가슴 가득히 안고 왔던 이유가 더 컸기 때문이다. 후기를 쓰고 나서 뒷 얘기들에 신경이 쓰이는 것도 안양교도소후기가 처음인 것 같다. 사람 좋아 보이는 안양교도소 교도관 아저씨들과 일반인들의 예상을 뒤엎는 푸른 옷을 입은 아저씨들에게 내가 쓴 후기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또, 다른 교도소에서 내 후기는 어떻게 보여질까? 한 번쯤 만나 인연이 있는 분들께는 평안과 따스함을, 아직 인연이 되지 않은 다른 교도소들에는 내 글을 통해 부러움이나 반성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솔직함이다. 사회적인 편견으로 아직 어쩔 수 없는 것이 장애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배려라 해도 교도소 내에서 만큼이라도 일반재소자들과 장애인재소자들이 공평치 못 한 대우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7월에도 어김없이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어 간다. 봉사 전 날, 최건웅님의 음악방송을 들으며 이인수님의 '떡'이라는 시를 낭송해 달라고 요청하게 되었다. 쌀로 생겨나서 밥도 못 된 것에 슬퍼하다 가난한 시인을 만나 그 미소 앞에 비로소 보람을 느낀다는 내용의 시였다. 사람들은 많이들 쓸모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에겐 가는 꼭 필요한 사람이기에 세상에 나와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를 낭송하고 바로 후에 떡값을 드릴테니 떡을 해 가자는 최건웅님의 메시지가 왔다. 지난달에 수박과 차와 과자류만 준비하면서, 우리 아저씨들이 떡을 참 좋아하는데, 재정이 부족해서 자주 못 해 간다는 큰샘물님의 말을 내가 기억하고 있었듯이 처음 참가했던 최건웅님도 기억하고 계셨나 보다.
당일, 조금 더 부지런히 서둘러 사무실로 직접 들렀다. 8월에는 방학이라 만날 수 없기에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하게 되었다. 특히 어머님의 간호에 매달려 계신 최건웅님과 오래 전부터 이름만으로 알고 지내던 정난희님과, 처음 참석해서 뵙게 된 천리안회원 댕기님을 만나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약간의 들뜬 마음으로 들어 선 안양 교도소는 변함없이 하얀 얼굴로 우뚝 서 있다. 그 곳에서 나온 교도관님들과 먼저 반가운 웃음을 나누고 한 번쯤은 낯이 익은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따라 끝에 있는 교실로 들어서자 푸른 옷 입은 서른 분 정도 아저씨들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봉사라는 것이 어디든 그렇지만, 처음은 호기심이나 설레임같은 기분으로 참석하게 되고 두 번째, 세 번째, 회가 거듭할수록 정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승훈 목사님의 기타반주가 어울려진 예배를 드리고, 상을 차린다. 커다란 수박을 썰고, 통닭을 접시에 담고, 색 고운 떡을 차리고, 제 철이라 더 맛있고 값도 싼 천도 복숭아를 상마다 나누고, 큰 주전자 두 개에 커피를 가득 타고 얼음을 넣어 냉커피와 음료수를 준비한다. 너무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음식들 앞에 체면도 없고, 배고프던 차에 정신 없이 먹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의 시간... 두 달 있어야 만날 수 있는 그 분들과 하고 싶은 말을 들려주고 듣고, 곧 출소하시는 분의 각오도 듣고, 준비해 간 몇 편의 글들을 낭송도 한다. 나는 통신에 오라 와 있던, 용욱이란 아이가 백일장에서 상을 받고 쓴 기도문을 낭송하게 되었다. 그냥 훑어 볼 때는 잘 썼다 하고 지나갔던 글이 직접 낭송하자, 내가 용욱이란 아이가 된 것처럼 코끝이 시큰거리는 것이었다. 중간중간 목이 메여 낭송이 끊기는데도 소리 없이 들어 주시는 분들이 고마워서 보니까 커다란 아저씨들이 고개를 숙이고 듣고 계시거나 몇 분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낭송을 듣고 계시는 것이다. 감동과 기쁨 속에 찬양과 간증과 대화의 시간들이 지나고, 주어진 두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아쉽게 일어나 악수를 나누거나 눈인사로 서로를 배웅하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 교도소 봉사이다.
무더운 날씨, 처음 왔을 때보다 왠지 모를 갈증이 인다. 비가 조금 더 내려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