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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기구를 타고 200여m 상공에서 내려다 본 경주보문단지 일대. 우리 가족에게 경주는 명성에 걸맞는 많은 문화유산과 함께 볼거리, 놀거리가 참 많은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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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삼 |
| 우리는 평소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여행지를 선택할 때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명성'을 따라간다. 어떤 이들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한적하고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을 골라서 간다.
또 어떤 이들은 지도를 펴들거나 여행 안내책자를 들춰보며 어디로 갈까 고민하기도 한다. 혹자는 목적지를 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절반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아이들이 쉬는 토요일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데…. '명성'과 '색다름',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문화답사 전문단체인 (사)대동문화의 경주 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을 만났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이름 난 여행지인 경주를 전문해설사와 함께 간다면 색다른 여행으로 안성맞춤이겠다 싶었다.
“슬비야! 우리 (3월)25, 26일에 경주 갈까?” “예, 좋아요. 아빠,”
“예전에 가거도랑, 흑산도랑 같이 갔던 조상열 교수님이랑 갈건데….” “괜찮아요. 설명도 재밌게 잘 해주시잖아요.”
“그래. 우리 예슬이도 갈거지?” “언니 가는데 당연히 가죠.”
사실 경주는 우리 가족에게 비교적 익숙한 지역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해마다 한 번씩은 가다시피 한 곳이기에. 지난해 가을에도 단풍색과 어우러진 경주에 가서 몇 군데 유적지를 찾았다. 자전거를 빌려 보문단지 일대를 돌고 열기구에 올라 경주시내도 내려다 본 경험이 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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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비와 예슬이한테 경주는 문화유산이 많은 곳, 무덤이 많은 곳, 그리고 열기구가 있는 곳, 자전거와 미니오토바이 등 탈 것이 있는 곳 등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 찾은 불국사도 '멋진 곳'으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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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삼 |
|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벌떡 일어났다. 아이들을 깨웠더니 금세 일어난다. 아빠를 닮았는지, 그저 놀러 간다면 한밤중에라도 일어나는 녀석들이다.
바깥 날씨는 조금 쌀쌀했다. 계절은 분명 봄인데 날씨도 여행 떠나는 아이들 마냥 약간은 흥분됐는가 보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활짝 핀 매화와 연분홍 진달래꽃은 완연한 봄을 실감케 했다. 둔탁한 색을 벗어던지고 서서히 녹색 옷으로 갈아입는 초목들도 눈을 맑게 해준다.
정오를 훨씬 넘겨 경주에 닿은 우리 일행은 늦은 점심을 먹고 곧장 '감포'로 내달렸다. 그곳에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의 산골처(散骨處)인 '대왕암'을 만났다. 대왕암은 네 개의 바위가 십자형의 수로를 만들면서 서 있다. '죽어서도 동해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대로 문무왕의 뼈는 화장해 동해바다에 흩뿌렸단다.
왼쪽 저편으로는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정자 '이견대'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신문왕이 '세상의 파란을 없애고 평화롭게 한다'는 전설의 피리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은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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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왕의 산골처로 알려진 '대왕암'. 그 앞에서 답사 참가자들이 원주민 문화유산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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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삼 |
| 대왕암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감은사터'도 찾았다. 감은사는 부처의 힘으로 왜구를 막겠다는 생각으로 문무왕이 짓기 시작해 신문왕대에 완공한 절. 터와 더불어 그 유명한 '감은사지3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3층석탑이라는 설명을 들은 탓인지 더 웅장하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버스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서쪽으로 넘어간 해의 자취를 알아볼 수 없을 즈음 '안압지'에 닿았다.
우리는 통일신라시대 귀족들의 사치스럽고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적으로 '포석정'과 '안압지'를 떠올린다. 그 가운데 안압지는 문무왕이 삼국통일의 업적과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만든 인공연못. 평지를 파서 물을 끌어대고 돌을 쌓아 세 개의 섬을 만든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물이 흘러드는 입구는 거북의 머리 형상이고, 연못 주위는 리아스식 해안처럼 세밀한 굴곡이 지게 만들었으며, 물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가물거나 장마가 져도 일정한 수량을 유지했다는 게 원주민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
해설사는 또 "당시 이 연못가에는 꽃을 심고 새를 길렀다. 왕족과 귀족들은 이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임해전'에 앉아 꽃과 새와 산을 바라보며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는 사교의 장이고 서로 친목을 다지는 자리였다. 그러면서 포석정보다도 더 운치 있고 한층 어지러운(?) 연회를 벌인 곳이 안압지라는 게 여러 학자들의 견해"라고 덧붙여 준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우리는 빼어난 야경을 자랑하는 안압지를 한 바퀴 돌았다. 어디가 거북의 머리 형상인지, 굴곡이 얼마나 세밀한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신라의 달밤'을 배경으로 조명을 밝힌 안압지는 환상적인 밤풍경을 연출했다. 연인들이라면, 아니 어느 누구라도 반할 수밖에 없는 경관이었다. 분위기에 취해 마실 줄 모르는 술이라도 단숨에 넘어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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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적인 밤풍경을 보여준 '안압지'.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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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삼 |
| 우리가 하룻밤을 묵기 위해 찾아간 곳은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서라벌요'. 여기에는 분청사기의 맥을 잇고 있는 여성도공 김두선 선생의 작업실이 있으면서 민박을 치고 있다. 구수하면서 질박한 아름다움이 감도는 도예공의 집은 아늑했다.
이튿날은 도자기 빚기 체험으로 하루를 열었다. 첫 번째 체험은 이미 만들어진 자기에 나만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 가느다란 붓에 도자기에 쓰이는 물감을 묻혀서 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다.
아이들의 붓놀림은 거침이 없다. 그러면서도 표정에선 사뭇 긴장감과 도공 뺨 칠 정도의 진지함이 묻어난다. 그들의 붓끝에서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지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예쁜 마음도 묻어났다.
다음은 도자기 빚기 체험. 준비된 흙으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한다. 예나 지금이나 왜 학교 앞 문방구에서 찰흙이 불티나게 팔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한 솜씨지만 정성껏 접시를 빚었다. 해놓고 보니 근사해 보인다. 대체로 만족이다.
아이들은 인형을 만든다. 작은아이 예슬이는 동화 속에 나오는 돼지 삼형제를, 큰 아이 슬비는 우리가족을 빗대 크고 작은 돼지 네 마리를 만든다. 그리고는 이름을 새기고 그림도 그려 넣는다. 둘 다 흐뭇한 표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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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주물럭거리며 도자기 빚기 체험을 하고 있는 예슬이. 체험하는 동안 도예가의 숨결을 느끼면서 마음과 몸이 훌쩍 자란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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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삼 |
| 경주답사 기념품으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우리가 직접 빚고 문양과 이름을 새긴 작품들은 나중에 김 선생이 장작가마에다 구워내고 그 가운데 성한 것은 집으로 보내준단다. 내 작품이 제대로 구워져서 그것을 받아본다면 큰 기쁨일 것이다.
아니, 꼭 받아보지 않더라도 경주에서의 도자기체험은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아이들은 금세 전통을 빚는 도예가의 숨결을 느끼면서 마음과 몸이 훌쩍 자란 것만 같다. 동심도 토실토실 여물면서….
내 마음결도 도자기체험을 마치고 분황사 석탑과 불국사, 대릉원(천마총), 국립경주박물관을 돌아보는 내내 진흙처럼 보드라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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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에서 문화유산 해설에 귀 기울이고 있는 답사 참가자들.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문화유산을 보니 역시 달리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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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삼 |
|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생각해도 경주에서의 이틀은 정겨운 우리 문화유산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가슴으로 느낀, 그리고 흙을 만지며 마음결까지도 고와진 '알토란' 같은 시간이었다. 짧지만 정말 오진 여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