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이태리 배낭여행
첫째날 1/2
1. 이스탄불 국제공항
로마까지 두 시간 반 거리를 남겨놓고 터키 이스탄불에서 환승을 위해 4시간 대기. 4시간의 지체는 약 20만원의 값어치다. 직항인 에미레이츠가 이 터키항공보다 20만원 쯤 더 비싸니까. 아, 물론 자동차에 비교하면, 3000cc 고급차로 가느냐, 1500cc 보급형 차로 가느냐 하는 차이도 있긴 하다. 이 비행기에는 핸드폰 충전 포트도 없고, 의자도 뒤로 재낄 수도 없게 고정이 되어 있어 돈값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긴박한 비즈니스 여행도 아니고 20만원 대신 약간의 불편과 4시간 지체는 그래도 남는 장사다. 슬슬 좀이 쑤시려고 할즈음 이스탄불에 내렸으므로 잠깐 쉬었다 가는 것도 오히려 좋았다.
이스탄불까지 타고 온 비행기는 좌석이 3 x 3 배열인 중형의 기종인데, 손님이 없어 3명 줄에 1명씩 앉아서 왔다. 덕분에 발 뻗고 반쯤 누워서 오다가, 두세 시간 꿀잠도 잘 수도 있었다.
이스탄불 국제공항은 (공항 정식 명칭은 따로 있지만 알기 쉽게) 터키의 어려운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환승하기 직전, 게이트 라운지 화장실에 갔었는데, 노숙자들이 득실거리는 서울역 지하철의 화장실과 똑같은 지독한 찌린내가 진동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서울역 노숙자의 익숙한 냄새를 맡게 될 줄이야. 공항 면세 구역 안에는 앉을 수 있는 휴게시설도 전혀 없었다. 와이파이도 유료인데 와이파이 자판기가 있어 구매를 시도해 봤으나 얼마나 복잡한지 몇 번 시도해도 안 되던 참에, 유럽 출신으로 보이는 두 젊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I can't do this, would you try and show me how to do, please" ㅎㅎㅎ 두바이에 살다보니 영어회화는 별로 늘지 않았지만, 되고 말고 자신있게 말은 하게 되었다. 위의 말도 이상한 문장이겠지만 걔네들이 잘 알아 듣고 시도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걔네들도 결국은 실패를 하고 돌아섰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와이파이가 된다고 하는 빵집에 가서 빵 한 쪽과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런데 와이파이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나 와이파이 하기 위해서 빵과 커피를 산 건데 그렇다면 취소하겠다고 했더니, 키 큰 남자 점원이 나를 좌석으로 데리고 가더니 내 폰을 달라고 해서 직접 입력해줘서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다. 이 쪽 혈통이 우리와 비슷해서 목소리 큰 쪽이 이기나보다. 터키 이스탄불 공항하면 알아주는 허브 공항인데, 이토록 초라한 모습에 많이 놀랐다. 나라살림의 궁색함을 느끼게 하는 이 나라의 대표 공항의 초라한 얼굴이었다.
2 로마 피우피치오 국제공항
이스탄불 공항에서 쇠락해가는 나라의 초라함을 느꼈다면, 로마 공항에서는 입국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상상치도 못 했던 높은 위상에 한껏 고무되기도 했다. 입국심사를 위해 안내 표시대로 가고 있는데, 연두색 형광조끼를 입은 공항 스텝이 멀찌감치에서부터 나를 보더니 "코리아? 코리아?"하고 외친다. 대한민국과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양반인가 생각하고 "예스, 코리안" 했더니 옆에 몇 나라의 국기가 그려진 입간판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라고 한다. 알고보니 간편 입국 게이트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스캔 리더기에 여권 대서 읽히면 1차 게이트가 열리고, 서너 발자국 더 가서 표시된 발자국 모양 앞에 서면 카메라에 내 얼굴이 잡히고 2차 게이트 오픈, 역시 가이드 라인따라 조금 가면 입국심사원이 있는데, 그냥 여권에 도장 하나찍어주면 이태리 입국 완료! 이 모든 일이 아마 1분도 채 안 걸렸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간편입국 대상국 국기가 그려진 나라는 우리나라 포함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영연방국 그리고 두세 나라가 더 있었다. 일본도 포함이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어에 자존심이 강해서 국제공항에조차 외국어 안내판이 없기로 유명했던 프랑스에서도 중국어 간자가 병행표기 되더니 로마 공항엔 아예 중국어 간판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중국에 대한 예우라기 보다는 몰려드는 중국인 등살에 어쩔 수 없는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세계열강 몇 개 국가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한민국의 위상! 로마 처음 발걸음부터 느낌이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