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관해서는 수많은 연구 논문과 저서가 간행되었다. 지금도 관련 단행본이 대략 하루 한 권씩, 관련 논문이 매년 수천 종씩 나올 정도다. 앤서니 홀든의 말처럼 페미니스트, 마르크스주의자, 포스트모더니스트, 탈식민주의론자 등이 저마다 입맛에 맞게 셰익스피어를 난도질한 지도 오래다. T. S. 엘리엇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갖가지 틀에 맞춰 해석하려는 시도가 워낙 많았으므로, 이제 유일하게 시도되지 않은 방법은 그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뿐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오늘날 셰익스피어에 관한 연구, 저술, 공연 등의 활동은 엄연히 하나의 ‘산업’이 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에 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아서, 셰익스피어에 대한 과대평가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이런 비판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으니, 가령 셰익스피어에 관한 최초의 기록 가운데 하나도 험담이었을 정도다. 볼테르와 톨스토이도 셰익스피어를 깎아 내렸으며, 현대의 저명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도 “셰익스피어는 다른 사람이 이미 쓴 내용을 뒤따라 썼을 때에만 진정으로 훌륭한 극작가”라고 비아냥거린 바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비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가운데 순수한 창작은 몇 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당대에 널리 알려진 여러 소설이나 희곡을 각색한 내용이었고, 때로는 남의 작품에서 특정 구절을 그대로 베낀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셰익스피어가 당대에도 종종 ‘표절 작가’로 비난을 받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표절이나 모방은 비교적 흔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지닌 독보적인 예술적 가치를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사실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위대함뿐만이 아니라 그 진부함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인기만점의 통속극이었던 그의 희곡이 오늘날은 대중과 멀어진 채 상아탑에서 일종의 ‘경전’으로 취급되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왕가’를 ‘재벌가’로 바꿔놓기만 해도, [햄릿]이나 [리어 왕]이나 [맥베스]는 오늘날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 못지않게 우리에게 친숙한 줄거리다. 만약 지금 당장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가지고 연속극을 만들어도 웬만한 드라마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적어도 그 대사마다 ‘명대사’ 아닌 것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사후 수백 년 간 절대적이었던 셰익스피어의 권위
셰익스피어 당시에만 해도 영국에서는 공문서나 학술서를 라틴어로 작성했고, 심지어 최초의 ‘영어 문법책’조차도 라틴어로 되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1611년에 간행된 ‘흠정역 성서’(킹 제임스 성서)와 함께 영어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셰익스피어는 ‘신조어’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 사용된 단어는 약 2만 개인데 그중 신조어가 약 2천 개에 달한다. “가령 우리가 입만 열었다 하면 열 마디 가운데 한 마디는 신조어라고 생각해 보라.” 빌 브라이슨의 말은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천재성을 한 마디로 요약해준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갖가지 표현은 오늘날 영어에서 관용어구로 자리잡았다. 가령 “살과 피”(flesh and blood, 혈육), “마음의 눈”(in the mind's eye, 기억), “더러운 행실”(foul play, 반칙) 등이 그렇고, “지나간 것들의 기억”(remembrance of things past)과 “소리와 분노”(sound and fury)와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각각 마르셀 프루스트와 윌리엄 포크너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제목으로도 쓰여 더욱 유명해졌다(물론 프루스트의 소설의 영어 제목은 이제 프랑스어 원제에 더 가까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로 대체되었지만).
셰익스피어의 가장 중요한 업적인 희곡은 중세의 연극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평면적이고 진부한 인물 대신 햄릿, 폴스태프, 이아고, 맥베스 같은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일대 혁신을 이루었다.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을 가리켜 “그들은 물론 허구의 존재이지만, 그 사실성은 우리의 사실성을 능가한다”고 단언한다. 나아가 셰익스피어는 희극과 비극 모두에서 비교적 고르게 걸작을 남겼다는 점에서 역대의 어느 극작가와도 다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기본적으로 무대 공연을 위한 것이었다. 사후에도 그의 작품은 꾸준히 공연되었고,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새로운 해석과 시도가 이루어졌다. 1879년에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래트퍼드에서는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RSC)이 설립되어 이후 연극 공연과 배우 양성에 기여했다. 특히 [햄릿]은 수많은 배우들의 출세를 보장하는 확실한 등용문으로, 20세기에만 해도 존 배리모어, 존 길구드, 로렌스 올리비에 같은 명배우들이 햄릿을 연기해 격찬을 받은 바 있다.
셰익스피어 원작 영화도 수백 편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헨리 5세](1944)와 [햄릿](1948), 프랭크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1968) 등이 유명하다. 가장 독특한 영화로는 일본의 거장 감독 쿠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의 숲](1957)과 [란](1985)이 손꼽히는데, 각각 [맥베스]와 [리어 왕]을 일본 중세 사극으로 각색해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작품을 교묘하게 재구성하고 현대적으로 풍자한 코미디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가 아카데미상을 휩쓸며 새삼 이 극작가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다. 사후 수백 년간 문학계에서 셰익스피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벤 존슨은 “그는 한 시대를 위한 작가가 아니라 온 시대를 위한 작가”라고 격찬했고, 괴테는 자신은 셰익스피어의 소유물이 되었다고 고백했고, 빅토르 위고는 “셰익스피어가 곧 연극”이라고 단언했으며, 조이스는 무인도에 떨어질 경우에는 단테보다 셰익스피어의 책을 들고 가겠다고 장담했고, 심지어 버지니아 울프조차도 [자기만의 방]에서 뿌리 깊은 성차별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와 똑같은 문학적 재능을 지닌 누이”에 관한 비유를 든 바 있다.
셰익스피어는 문학 외의 분야에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 가운데 한 장면을 묘사한 수많은 그림 중에서는 라파엘전파의 화가 존 에버레트 밀레이가 [햄릿]의 내용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오필리아](1852)가 유명하다. 음악 중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토대로 한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오셀로](1887)와 [폴스태프](1893)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셰익스피어 관련 음악은 아마도 멘델스존이 작곡한 극 부수음악 [한여름 밤의 꿈](1843)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이 아닐까.
‘진짜 정체’를 둘러싼 구구한 주장들
셰익스피어에 관해 논할 때면 심심찮게 따라붙는 묘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둘러싼 구구한 추측이다. 물론 오늘날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극작가 겸 배우가 16세기 중후반에 영국에서 살았다는, 그리고 오늘날 전해지는 유명한 희곡 및 소네트의 작가라는 데에 대부분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사실은 당대의 다른 인물의 필명에 불과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떠돌아다녔다. 어째서일까?
한편으로는 앞에서 말했듯이 셰익스피어에 관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바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막대한 명성을 생각해 보면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이 그토록 드물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16세기까지만 해도 영국 내에서는 지금처럼 체계적인 기록 보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셰익스피어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당대의 다른 저명한 극작가나 그들의 희곡에 관해서도 상당 부분을 ‘모르고’ 있다. 즉 셰익스피어만 예외는 아니라는 뜻이다.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스탠리 웰스는 셰익스피어의 ‘진짜 정체’를 둘러싼 구구한 주장들이 하나같이 속물근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한다. 즉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결코 대단한 이력이나 학력을 지니지 못한 시골 출신의 일개 극작가가 그런 걸작을 줄줄이 써냈다고는 믿을 수 없다는 오만함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당대의 유명한 지식인이나 명사 가운데서 ‘천재 희곡작가’의 위상에 더 잘 어울릴 법한 인물을 물색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