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이미숙의 매력은 기관차처럼 강한 변신의 에너지다. 스크린 컴백작인 영화 ‘정사’에서부터 ‘단적비연수’ ‘베사메무쵸’ 코믹영화 ‘울랄라 시스터즈’까지, 멜로와 코믹물을 넘나들며 그녀는 새 이미지로 자신을 단장해왔다.
그녀가 매혹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베일에 싸인 듯한 신비감 때문이다. 그녀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만 팬들을 만난다. 토크쇼나 인터뷰는 사절이다. 40대 나이, 결혼한 여배우들이 즐기는 남편과 가정에 대한 수다 역시 그녀에게는 기대할 수 없다.
한국의 대표 여배우인 그녀는 그래서 늘 궁금증의 대상이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이미숙의 일과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소문도 많다. 결혼한 후부터는 가정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것에 대해 일일이 답하지 않았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할리우드 영화의 제목처럼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다. 지난 6월, 용인민속촌에서 만난 그녀는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감독 이재용, 제작 영화사 봄)의 막바지 촬영을 하고 있었다. ‘스캔들’은 조선시대 최고의 요부와 바람둥이 그리고 정절녀가 벌이는 사랑게임을 그리는 상열지사. 이 영화에서 그녀는 조선시대 최고의 요부인 ‘조씨 부인’역을 맡았다. 그녀와 인터뷰 자리에 마주앉기까지는 5시간의 지루한 기다림이 있었다. 미안했던 걸까. 이미숙은 자신을 향한 궁금증에 대해 가뭄 끝의 소나기처럼 시원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 일과 가정에 양다리 걸치고
◆ 적당히 사는 여배우는 되고 싶지 않았다
-더워서 많이 힘들 것 같아요. 틀어 올린 머리에 한복까지 입고 하루종일 촬영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어요
2월 초에 양수리 세트장에서 찍을 때는 너무 추워서 솜바지 껴입고 촬영했는데 벌써 여름이네요. 영화 한 편 찍다 보면 정말 세월이 훌쩍 간다니까요. 그러다 보면 한 살 또 먹고. 열심히 했으니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올 거예요.
현장 분위기가 아주 좋아요. 배용준씨나 전도연씨도 아주 열심히 해주었고요. 후배들이지만 나는 촬영현장에서는 누가 선배다 후배다 따지질 않아요. 상대 연기자고, 영화 속 인물일 뿐이죠. 원래 선후배 차별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일할 때는 동료로 생각하고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캔들’에서 맡은 역이 요부잖아요. 더구나 조선시대 인물이라 연기하기가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연기하는 데 불편함을 느꼈다기보다는 과연 그 인물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죠. 조씨 부인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어깨 너머로 ‘사서삼경’을 깨쳤지만, 여자로 태어난 것에 한과 불만을 지니고 있는 여자예요. 역할을 맡고 여러 가지 상상을 많이 했었어요. 요즘도 튀는 여자가 있듯이 그 시대에도 분명히 잘난 여자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매력적인 캐릭터라 더 욕심을 부리게 되더라고요. 만족해요.
-이미숙씨는 지금이 오히려 최고 전성기인 것 같아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건가요
쑥스럽지만 그런 얘길 많이 들어요. 40대 여배우가 전성기를 누릴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해서인 것 같아요. 결혼한 여자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한다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된 거죠. 이런 현상은 꼭 배우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에요. 비즈니스나 다른 전문 분야에서도 성공한 여자들이 참 많으니까. 본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사회의 인식과 정서가 바뀌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여배우가 가정을 갖고 아이 엄마가 되면서 인기가 떨어지는 경우를 흔히 봐요. 당신도 결혼 후 좌절해본 적이 있나요?
당연하죠. 연기를 계속 할까, 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 결혼하고 나서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몰라요. 배우로 태어났으니 배우로 마감을 해야 되는데, 그 길에 가정이 생긴 거예요. 가정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살아야 하나, 가정 때문에 배우로서의 내 삶은 또 얼마나 포기를 해야 되나, 그런 갈등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사실 편하게 사는 방법도 있었죠. 가정을 꾸려가면서 내가 갖고 있는 재능도 살리고 그냥 끊임없이 일하는 방법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기를 계속 한다면 그렇게 편하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결혼하고 나서 영화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꼭 10년이 걸렸는데, 그 시기가 저에겐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 가족의 희생이 내겐 채찍질,
◆ 의사로 청춘 보낸 남편 여생 즐기라고 미국으로 보내
-4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아직도 처녀 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는 결혼한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여자니까 이거 이상은 안 돼라고 정해주는 자리가 있거든요. 그게 참 싫었어요. 할리우드 배우들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주면서도 왜 우리는 안 된다는 건가요. ‘결혼했으니까 이제는 이런 역할을 해야 돼, 어떻게 결혼한 여자가 그런 역할을 해’감독도 그렇고 작가도 마찬가지로 배우를 보는 시야가 좁았던 거예요.
-가정보다는 일에 더 비중을 두고 살다보면 자연히 가족들의 희생이 따를 텐데, 그런 고민은 안 해봤나요?
다행히 가족들이 이해를 많이 해줘요. 가정에 안주하지 말고 타고난 재능을 살려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죠. 아이들 교육도 신랑과 시댁 식구들이 다 챙겨줘요.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의 길을 가라’는 거죠. 가족들의 배려에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런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없었겠죠.
-아무리 ‘독한 배우’라도 당신은 여전히 엄마잖아요. 가끔은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 연기고 일이고 다 팽개치고 곁으로 달려가고 싶지 않나요.
두 아이가 모두 미국에 있어요. 굉장히 보고 싶죠. 곁에 있어주지 못하니 아이들이 얼마나 섭섭해하겠어요. 하지만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된다면 이 엄마를 바라보며 흐뭇해하지 않을까요. 그 순간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도전해야겠죠.
-얼마 전 남편 홍성호 박사가 30년간 운영했던 병원을 그만두셨더라고요. ‘홍성호 성형외과’하면 강남에서도 알아주는 병원인데, 갑자기 문을 닫아 많이 놀랐어요. 이 일을 두고 세간에서는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돌았고…
‘왜 갑자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에요. 결혼할 때 그랬어요. 쉰이 넘어 아이들도 크고 기반이 잡히면 남들이 아쉬워할 때 그만두자고. 옆에서 남편을 지켜보면서 참 힘들게 산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나는 작품이 바뀌면 다른 역을 맡고 촬영을 위해 지방이나 외국에도 자주 나갈 수 있죠. 늘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삶의 환경이 자주 바뀌니 세월 가는 것도 모르고 살잖아요. 그런데 우리 신랑은 늘 똑같은 생활이에요.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여자들을 대하며 평생 산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이겠어요.
스무 살에 의대에 들어가서 전문의, 의학박사가 되고 지금 이 나이까지 공부와 일밖에 모르고 산 사람이 우리 남편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사람이 여든까지 산다지만 앞으로 온전한 몸과 정신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는 시간은 10년도 채 안 남았다, 나머지 인생은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삶을 즐기면서 지내라고요. 10대 반항아처럼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라 그랬어요.
지금 남편은 아이들이 있는 미국에 가 있어요. 쉰이 넘은 나이지만 랭귀지스쿨도 다니고 골프도 치고 취미삼아 사진도 찍으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죠. 평생 일만 하고 살았는데 그 정도의 대가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두 분 모두 보통 사람들과는 삶의 방식이 틀린 것 같아요. 결혼 후 이미숙씨가 혼자 일본으로 갔을 때, 그 다음해 하와이로 떠났을 때도 불화설이 파다했어요. 두 분에게 이런 소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소문에 신경 쓰면서 살 이유가 뭐 있어요. 공인이지만 부부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다 시시콜콜 남에게 알려줄 책임이나 의무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개인적인 가정생활이잖아요. 다만 우리 부부 사이에 무슨 큰 일이 생겼다라든지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겨 팬들에게 알려야 될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말해야죠. 헤어지면 당연히 헤어진다고 이야기 할 거고…. 그건 공인의 의무예요. 하지만 사실이 아닌 일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며 살 필요는 없다는 거죠.
우리 부부가 사는 방식이 남다른 건 사실이에요. 몇 달씩 부부가 떨어져 지낸다는 걸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죠. 그래서 불화설이 나오는 거고. 결혼 초부터 우린 서로의 영역과 자유를 인정해주며 살았어요. 그리고 여지껏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고요. 안 된다 된다 서로 억압하고 간섭하지 않으니까 다툴 일이 없죠. 신랑이 병원을 어떻게 운영하고 누굴 만나든 그건 남편 몫이고, 내가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고 어떤 배우를 만나든 그건 내 일이잖아요. 누구 남편이니까 누구 부인이니까 이렇게 해야 된다는 공식 없이 서로를 인정해주면서 산다는 얘기예요.
◆ 끝없는 불화설은 부부의 특별한 생활방식 탓,
◆ 톱스타답게 부와 명예 당당히 즐기겠다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이미숙씨처럼 당당하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얼마 전 당신은 화장품 브랜드인 ‘로뎀’의 CF 모델로 국내 최고의 개런티(10억)를 받아 또 한번 부러움의 대상이 됐어요
배우라면 인기와 재력을 겸비해야 된다고 봐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가 연기만 해가지고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어요. 배우가 돈을 버는 만큼 이제는 자신을 가꾸는 데 투자해야 된다고 봐요. 단순히 돈을 버는 데만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게 자신을 만들어나가야죠. ‘저 사람은 파격적인 대우를 받아도 될 만큼 훌륭하다, 저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내 삶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요. 연기자가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부는 당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죠.
이번 로뎀 CF 계약을 하면서도 단순히 제품의 이미지 모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한 배우가 2003년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잠깐 그 이미지만 가지고 제품을 파는 방식은 이제는 바뀌어야 된다고 봐요. 개런티를 떠나 배우가 직접 제품을 써보고 뭐가 좋은지 직접 얘기할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요.
-당신은 참 욕심이 많은 사람 같아요. 영화, 드라마에 CF까지, 한시도 일을 놓지 않으니…. 휴식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욕심이라는 게 값어치에 대한 욕심이지 단순히 일의 양에 대한 욕심은 아니에요. 정말 욕심을 냈다면 주부 역할로 1년 내내 3개 방송사 드라마를 휩쓸었겠죠. 물론 휴식도 필요하죠. 이번 영화 촬영이 끝나면 가을 전까지는 쉴 계획이에요. 여름방학에 아이들이 미국에서 돌아오면 무조건 아무 일도 안 해요. 1년에 딱 한 번이니, 아이들과 보내는 그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고 값지겠어요.
용인민속촌 촬영장을 나서며 이미숙은 우거진 숲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20년 전 드라마 ‘장희빈’에 출연할 때, 당시 처음 문을 연 이곳 민속촌에서 촬영을 했었다. 그때는 어린 나무들뿐이었다. 어린 나무가 자라 숲이 되는 세월 동안 그녀는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로 팬들의 가슴을 적셨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배우 이미숙은 한결같은 젊음과 열정으로 우리 곁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