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캄보디아의 1993년 선거 이후에 의회와 정부 내에서 집권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의 정치권력이 더욱 공고화되어 온 이유를 선거제도와 정당체계의 수준에서 논의하였다. 선거제도가 정당체계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정당체계 수준의 특성이 선거제도의 형성과 실질적인 파급효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모두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구방법은 선거제도와 정당체계를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독립변수이자 종속변수로 간주한다. 연구결과 1997년에 개정된 선거법에서 비례대표제 의석할당방식 중에서 동트식을 채택한 이후 매 선거마다 집권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에게 유리한 정치적 왜곡효과가 발생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동트식이 비례대표제 내에서는 가장 비례성이 낮다는 점 외에도 실제로 다양한 선거구의 크기별로 비례성에 큰 격차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선거제도는 정당체계의 수준에서 볼 때, 외형상 다당제를 형성해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1당이 장기 집권하는 “1당우위정당 체계”(predominant party system)를 형성하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동일한 선거제도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적용되는 정치적ㆍ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른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일례로 정당이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방식이 민주적이라면 득표를 의석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정치적 왜곡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캄보디아의 유동적인 정당정치, 정당체계 수준에서의 낮은 경쟁성과 대표성이 선거제도의 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정치적 왜곡효과를 극대화시켰던 주요 배경이라고 주장하였다.
(영어 초록)
This study analyzes the reasons for the strength of the CPP (Cambodia People’s Party) in parliamentary and governmental elections since 1993. The focus is on the electoral system and the party system in Cambodia, including not only the effects of the electoral system on the party system but also the effects of the party system on the electoral system. They act both as dependent and independent variable to each other. The transformation of the electoral system in 1997 to apply the d’Hondt system for the allocation of proportional seats resulted in a distortional effect that provides the CPP with more seats in parliament. This is related to the interaction of seat allocation rules and varying district magnitude in Cambodia. As a result, a predominant party system is emerging since the 1998 elections. However, in changed political and social contexts, the results can be different in spite of the same electoral system. If parties mobilize the support from the electorate in a democratic way, the distortional effect of electoral system can be relatively lower. In this context, fluid party politics, low competitiveness and the lack of representativeness of the party system are the main reasons that affect the transformation of electoral system and increase the distortional effects of electoral system in Cambodia.
(목 차)
Ⅰ. 서론
1991년 파리협정을 계기로 본격화된 국가재건과정은 신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의회선거를 실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유엔과도통치기구는 서구적 자유민주주의의 기준에 따라 의회선거를 준비하였다. 이에 내전 이후 처음 실시하게 된 1993년 의회선거는 캄보디아가 1980년대의 일당주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다당주의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였다. 이렇듯 타율적으로 시작된 캄보디아의 민주화 과정이 과연 안정적인 민주주의 이행단계를 거쳐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이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다. 1993년 의회선거 이후 매 선거에서 국제선거감시단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캄보디아의 선거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상 1993년 의회선거 이후 캄보디아에는 현대정치사상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93년 의회선거 이후 지금까지 세 번의 의회선거(1998, 2003, 2008년)가 주기적으로 실시되어왔고, 선거과정에서 반대세력에 대한 집권여당의 가시적인 폭력과 억압의 수준이 약화되었었다는 점이다. 특히 매번 선거를 통해서 복수의 정당이 선거에 참여하고 3-4개의 주요 정당들이 의회와 정부의 권력을 나누어가지고 있어서 외형상 다당제를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반세기 간 일원주의적 정치원리 하에서 일당 혹은 일인지배자에 의해서 권력이 독점되었던 것과 비교해본다면, 1993년 의회선거 이후 의회와 정부에서 나타나는 권력분점의 양상은 캄보디아 정치현실에서 매우 낯설고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1990년대 이후의 캄보디아 정치가 민주주의로 점차 이행해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Kao Ki, Hourn, 1998; Peou 1998; ANFREL 1999; Roberts 2003).
한편 캄보디아가 1993년 의회선거 이후 다당제 형태를 형성해오고 있지만 실질적인 정치권력은 현 총리가 주도하는 캄보디아인민당(Cambodia Pepole's Party, 이하 CPP)에 거의 집중되어 있어서 앞서 언급한 변화보다는 오히려 지속성의 측면이 강조되기도 한다(Hughes 1999; Lizee 1999; McCargo 2005) 말하자면, 1993년 의회선거 이후 지난 15년 간 캄보디아의 정치 무대에서 CPP가 패권정당이 된 것에 대한 분석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적 변화보다는 권위주의의 지속을 강조하는 연구자들은 캄보디아의 선거는 “CPP가 권력을 정당화하는 정치연극에서 필요한 하나의 과정”(McCargo, 2005)으로 전락하였고,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주기적인 정치경쟁의 시스템이 아닌 형식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정치조직들의 권력나눠갖기”(Heder, 1995)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일례로 가장 최근에 실시되었던 2008년 의회선거에서는 CPP가 전체 123석 의석 중에서 2/3 과반수 이상을 넘는 90석을 확보함으로써 야당은 의회 내에서의 입법능력 뿐만 아니라 행정부의 권력견제 기능을 실질적으로 상실하고 말았다. 물론 CPP가 장기 집권해왔다고 해서 캄보디아의 정치가 비민주적이라는 것을 곧바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정치가 민주주의적 요소와 권위주의적 요소가 공존하는 혼합체제(hybrid regime)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더 중요한 것은 CPP의 정치권력이 1993년 이래 수 차례의 주기적 선거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더욱 강화되어 온 원인을 설명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이행단계에 있는 신생민주주의의 국가의 민주주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에 관한 연구분석틀이 좀 더 세분화되고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최근의 연구경향과 맥을 같이 한다(Diamond 2002; Levitsky et al 2002; Shedledr 2002). 그러한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민주화 이행‘에 관한 연구의 초점이 세분화된 정치체제 분류의 이론화를 도모하거나 민주화 지체요인을 밝혀내고자”(최경희 2006, 68) 하는 데 주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 이행과정에 관한 평가의 기준이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로서 선거나 정당정치와 같은 제도적 측면에 주어져 있다. 물론 캄보디아가 처한 정치경제적 상황이나 사회문화적 특성들이 CPP의 패권화에 중요한 요인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선거와 정당정치라는 민주적 제도들이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제도의 민주성과 제도화수준은 CPP의 패권화의 정치적 의미를 설명하기에 매우 유용한 분석대상인 것이다. 실제로도 캄보디아와 같이 내부적으로 민주화운동과 같은 경험 없이 타율적으로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한 경우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원을 모두 포함하는 최대한의 민주주의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캄보디아의 민주화 이행의 지체요인을 참여민주주의나 자유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분석하기 보다는 선거제도와 정당체제의 수준에서 그 요인을 찾아내고자 한다. 특히 선거제도가 정당체제에 미치는 정치적 효과뿐만 아니라, 정당체제 수준의 특성이 선거제도의 형성과 실질적인 파급효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모두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방법은 선거제도가 정당체계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의 주요 연구방법론을 (Duverger 1963; Rae 1967; Sartori 1976) 수용할 뿐만 아니라, 선거제도 변화의 정치적 배경을 분석하는 방법(이상묵 2006)을 모두 적용함으로써 선거제도와 정당체제 간의 상호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선거제도가 정당체제에 미치는 정치적 효과만을 기계적으로 분석하게 되는 경우 구체적인 정당정치의 특수한 맥락을 간과하게 되고, 반대로 선거제도 형성 ․ 변화의 원인과 그 파급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정당정치의 특성만을 강조하게 되면 캄보디아 사례연구는 이론적 설득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구체적인 정치적 사실 맥락에 천착하는 지역학의 연구방법과 엄밀한 이론적 관점을 갖고 논리적 검증을 요구하는 비교정치학적 연구방법을 결합시키고 있다.
Ⅱ. 연구 분석틀
197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제 3의 민주화 물결’이 확대되면서 대부분의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의 민주주의 공고화에 관한 이론적 논의는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체제로 전환한 국가들의 정치현실에서는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후퇴하거나 지체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정치체제들이 완전히 민주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이 않고 자유민주주의와 폐쇄적 권위주의체제 간의 모호한 영역에 있는 것이다(Schedler, 2002). 특히 과거 식민지배의 역사적 유산을 뛰어넘어 나름대로의 근대화 과정을 밟아 온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우에 거의 모든 국가들이 민주주의적 요소와 권위주의적 요소가 공존하는 혼합체제(hybrid regime)의 양상을 띄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캄보디아 민주주의의 현 단계를 평가하는 것은 그 나라 민주주의 이행의 특수한 맥락, 즉 이행을 지체시키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연구는 민주주의에 관한 이론적 논의 중에서도 민주화 이행론의 학술적 담론이 활발해진 이후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유형을 보다 세분화시키고 있는 최근의 논의와 이론적으로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이론적 관점은 캄보디아와 같은 신생민주주의 국가에서 최소한의 민주주의 요건으로서 선거정치가 도입되었지만 실제로는 비경쟁적이거나 혹은 경쟁이 매우 제한되어 있는 경우를 설명하기 위한 유용한 분석틀을 제시해주고 있다. 일례로 다이아몬드(2002)가 유형화한 다양한 수준의 권위주의 정치체제 유형들은 서구적 자유민주주의와 폐쇄적 권위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캄보디아의 정치체제를 이해하는 데 명확한 이론적 틀이 될 수 있다. 그는 유형화 스펙트럼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폐쇄적권위주의가 가장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폐쇄적 권위주의(Politically Closed Authoritarian)-패권적선거권위주의(Hegemonic Electioral Authoritarian)-경쟁적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중간체제(Ambiguous Regime)-선거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로 세분화되어 있다.
다이아몬드는 이 유형화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정치체제(2001년 기준)를 패권적선거권위주의로 규정하였다. 외형상 최소민주주의의 요건인 선거가 주기적으로 실시되고 반대정당도 허용되지만 실제로 선거에서 반대정당에 대한 집권세력의 정치적 억압이 존재하고, 반대정당이 CPP를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캄보디아의 2007년 지방선거를 관찰했던 한 연구자는 다이아몬드의 유형화에 따라 그 나라 정치체제가 경쟁적권위주의로 갈 수도 있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CPP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만큼 선거과정의 공정성이 유지되거나 더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정연식 2008). 그러나 선거제도의 경우 비민주적으로 개정되어 불공정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하더라고 일단 형성된 제도는 쉽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선거제도가 미치는 정치적인 효과를 분석적으로 규명하는 것은 정치제제를 유형화하는 작업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선거제도를 선거와 관련된 모든 규칙과 절차로 광범위하게 규정하기 보다는 실증적인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서의 의석할당방식(seat allocation rules)과 선거구의 크기(district magnitude)로 그 범위를 제한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의 선거제도는 누가 선출공직자로 충원되고 또 어떠한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권력을 행사하는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박찬욱 2000).
캄보디아의 경우 1993년 선거 이전에는 선거제도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1992년 유엔과도통치기구 내 선거조직에서 마련한 선거법 초안은 곧바로 캄보디아 선거법의 모태가 되었다. 유엔 선거법에 기반하여 캄보디아 역사상 최초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의석할당방식이 도입되었으며 1997년에 선거법이 개정된 후에도 이 원칙은 지속되고 있다. 이 원칙에 따라 모든 선거에서 정당은 후보를 선출하고 당선된 후보를 최종적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례대표제 내에서 의석을 할당하는 구체적인 계산법은 1997년 선거법 개정을 기점으로 하여 유엔선거법에서 명시한 최다잔여방식에서 최고평균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이론적으로 보면 비례대표제는 크게 최다잔여방식(largest remainder system)과 최고평균방식(highest average system)로 나뉘는데, 최대잔여방식은 1석을 배정하는 데 필요한 득표수를 미리 확정하고 그 수를 쿼터로 하여 각 정당의 득표수를 나눈 후, 몫에 해당하는 의석수를 배분하고 잔여의석은 나머지가 큰 순서대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다양한 계산법이 있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은 헤어쿼타방식(Hare quota)과 드롭쿼타방식(Droop quota)이다. 전자는 단순히 총 유효 투표수를 총의석으로 나눈 값이고 후자는 총유효투표수를 (총의석수+1)로 나눈 값이다. 드롭쿼터는 더 많은 의석을 소수점 이전에 분배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설정한 값이기 때문에 헤어쿼터보다는 군소정당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Taagepera & Shugart 1989). 한편 최고평균방식은 각 정당의 득표수를 미리 정해진 일련의 나눔수로 나누어 몫이 큰 순서대로 의석을 배분하는데, 이 방식에서도 나눔수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크게는 동트식(d'Hont), 생라그방식(Saint-Lagu), 그리고 수정된 생라그방식(modified Saint-Lagu)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동트식은 비례제대표원칙을 택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하는 방식으로서 단순히 자연수의 수열을 나눔수로 사용한다. 생라그 방식은 나눔수를 1,3,5,7..등 홀수의 수열을 사용하며, 수정된 생라그 방식은 첫 번째 나눔수를 1.4로 설정한다는 점이 다르다(Taagepera & Shugart 1989). 이론적으로는 최고평균방식에서 동트방식의 비례성이 가장 낮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비례대표제 의석할당방식의 비례성은 선거구의 크기가 클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서 선거구의 상이한 크기들은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유권자 투표의 지정학적 분할이나 정당간의 득표비율과 같은 요소와 상호작용하여 선거제도의 정치적 효과를 더욱 크게 만든다(Rae 1997).
한편 이론적으로는 동트방식이 비례대표제의 다양한 의석할당방식 중에서도 가장 비례성이 낮지만 현실적으로는 비례대표제를 운영하는 많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동트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이것은 동일한 선거제도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적용되는 정치적 ․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Blondel 1969; Bogdanor 1983). 따라서 선거제도의 정치적 효과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과 형성되고 난 뒤 실제 적용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그 나라의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듀베르제(Duverger), 래(Rae), 사르토리(Sartori) 등 많은 정치학자들이 선거제도는 정당이나 의회와 같은 다른 정치제도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독립변인으로 간주해왔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선거제도의 채택과정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는 등 선거제도를 종속변인으로 보려는 논의도 축적되고 있다(이상묵 2006, 166). 이러한 방법은 기존에 선거제도의 정치적 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이론화 작업을 추구했던 비교정치학적 국가사례 연구들이 상대적으로 간과해왔던 구체적인 정치적․사회적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연구는 선거제도의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정당체제의 측면에서 고찰할 것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캄보디아에서 정당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이고 정당체계의 특성은 선거를 통해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동안 캄보디아의 신생민주주의에 관한 연구가 주로 선거와 정당을 중심으로 연구되어 왔지만(Than 2004; Kao 1998; Downie 2000; 이동윤 2005; 정연식; 2006), 선거제도의 측면에 초점을 두고 분석적으로 논의되거나 둘 간의 상호관계를 본격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선거제도의 불공정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는 차원에 그쳤을 뿐이다(Gallup 2002). 물론 ANFREL이 1998년 선거제도의 불비례성에 대해서 분석하기는 했지만(표 5, 6) 선거제도의 정치적 효과나 제도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선거제도와 정당체계는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독립변수이자 종속변수라는 연구 분석틀 내에서 크게 두 가지의 논의를 하게 될 것이다. 3장에서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분석하고 그것이 정당체계에 미치는 정치적 효과를 논의한 뒤, 4장에서는 그러한 선거제도가 형성되게 된 정치적 배경으로서 정당정치의 특성을 정당체제의 수준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Ⅲ. 선거제도의 비례성분석과 정치적 효과
1. 선거제도의 비례성 분석
1) 의석할당방식
의회 내에서 정당의 의석수는 정당의 당세나 영향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당 간의 권력배분과 상호작용의 패턴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치적 효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데 정당 간 의회의석의 향배는 의석할당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특히 비례대표제는 다수대표제에 비해서 계산방식이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을 적용하는가에 따라 정당 간 의석분포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93년 선거법은 1997년과 2002년에 걸쳐 두 차례 개정되었는데 비례대표제 의석할당방식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적용방식이 헤어쿼터식에서 동트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의회선거법 118조). 우선 이러한 의석할당방식의 변화가 네 번의 의회선거에서 각 정당 간 의석분포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네 번의 선거결과를 모두 헤어쿼타방식과 동트방식으로 계산하여 그 결과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1993년 선거에서 헤어쿼타방식과 동트식에 따른 의석할당결과
1993총선
CPP
FUN
BLDP
기타
Total
총유효투표수
1,530,943
1,821,886
52,923
510,678
3,916,430
총 득표율
39.63%
47.16%
1.35%
11.86%
100%
헤어쿼타제
의석율
51석
42.5%
58석
48.3%
10석
8.33%
1석
0.83%
120석
최소투표수
30,018
31,411
5,292
-
-
동트방식
의석율
54석
45%
66석
55%
0석
0석
120석
최소투표수
28,350
27,604
-
-
-
* 총 20개의 정당이 선거에 참여하였다. 기타로 분류된 17개의 정당 중에서 실제로 1% 이상을 획득한 정당은 단 2개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 1석을 얻은 정당은 Moulinaka 이다.
*Cambodia National Election Committee의 1993년 선거결과 집계자료 참조.
<표1>에서 볼 수 있듯이, 만약 1993년 선거에서 동트식이 적용되었다면 제1당인 FUNCINPEC은 50% 미만의 득표율을 갖고도 50% 이상의 의석을 획득하게 됨으로써 의회 내에서 FUNCINPEC의 주도로 각종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1992년 선거법을 적용한 결과 군소정당에게도 의석이 배분되었기 때문에 FUNCINPEC은 의회 내에서 다수당이 되지 못했다. 1993년 선거에서는 실제 득표율 80% 이상을 CPP와 FUNCINPEC 두 정당이 획득하였고 21개 지역단위에서 각각의 정당득표율로 의석을 할당한 결과 득표율이 1.35%인 BLDP(Buddhist Liberal Democractic Party)이 10석을 얻었고 1.37%인 Moulinaka도 1석을 획득하였다. 결과적으로 1992년의 유엔 선거제도에서 적용한 헤어쿼터식 의석할당방식은 특정한 정당에게 이익을 부여하거나 또는 손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헤어쿼터방식에서 동트방식으로 개정된 선거법을 적용한 1998년, 2003년, 그리고 2008년 선거에서 의석할당방식에 따른 의석배분의 결과를 비교해보자.
<표 2> 1998년 선거에서 헤어쿼타방식과 동트식에 따른 의석할당결과
1998 총선
CPP
FUN
SRP
KDP
CNSP
Others
Total
총유효투표수
2,030,802
1,554,374
669,653
89,999
71,105
456,555
4,902,488
총득표율
41.42%
31.71%
14.27%
1.84%
1.45%
9.31%
100%
헤어쿼터제
의석율
56석
45.90%
40석
32.79%
24석
19.6%
1석
0.82%
1석
0.82%
0석
122석
최소투표수
36,264
38.859
27,902
동트방식
의석율
64석
52.46%
43석
35.25%
15석
12.30%
0석
0석
0석
122석
최소투표수
31,731
36,148
46,644
*KDP: the Khmer Democratic Party
*CNSP: the Cambodian Nation Supporting Party
*Cambodia National Election Committee의 1998년 선거결과 집계자료 참조.
<표 3> 2003년 선거에서 헤어쿼타방식과 동트식에 따른 의석할당결과
2003 총선
CPP
FUN
SRP
KDP
RP
기타
Total
총유효투표수
2,447,259
1,072,313
1,130,423
95,927
76,086
346,829
5,168,837
총득표율
47.35%
20.75%
21.87%
1.86%
1.47%
6.7%
100%
헤어쿼터제
의석율
66석
53.65%
28석
22.76%
29석
23.58%
0석
0석
0석
123석
최소투표수
37,079
38,296
38,980
동트방식
의석율
73석
59.35%
26석
21.14%
24석
19.51%
0석
0석
0석
123석
최소투표수
33,524
41,242
47,100
* RP: the Rice Party
*Cambodia National Election Committee의 2003년 선거결과 집계자료 참조.
<표 4> 2008년 선거에서 헤어쿼타방식과 동트식에 따른 의석할당결과
2008 총선
CPP
FUN
SRP
NRP
HRP
기타
Total
총유효투표수
3,429,374
303,764
1,316,714
337,943
397,816
346,829
6,010,277
총득표율
57.06%
5.05%
21.90%
5.62%
6.61%
5.77%
100%
헤어쿼터제
의석율
74석
60.16%
6석
4.88%
27석
21.95%
7석
5.69%
8석
6.50%
1석
0.81%
123석
최소투표수
46,342
50,627
48,767
48,277
49,727
346,829
동트방식
의석율
90석
73.17%
2석
1.63%
26석
21.14%
2석
1.63%
3석
2.44%
0석
0%
123석
최소투표수
38,104
151,882
50,642
168,971
132,605
* 헤어쿼터식을 적용할 경우 기타정당은 LDP(Liberal Democratic Party)이1석을 획득하게 됨
*Cambodia National Election Committee의 2008년 선거결과 집계자료 참조.
위의 표들에서 볼 수 있듯이, 동트식은 1998년 의회선거 이래 매선거마다 CPP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이었다. 1998년 선거에서 CPP의 실제 득표율은 41%에 그쳤으나 의석율은 53%을 넘었고, 2003년 선거에서도 47%의 득표율로 약 60%의 의석율을 획득함으로써 의회 내에서 명백한 다수당으로서 1당의 자리를 확보하였다. 특히 2008년 선거에서는 CPP가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CPP의 득표율이 전체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에 대정당일수록 유리한 동트방식의 특성이 더욱 확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CPP를 제외한 다른 모든 정당들은 헤어쿼타방식을 적용하였을 때보다 의석율이 더 낮아졌다.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최고평균방식 중에서도 가장 비례성이 낮은 동트방식은 캄보디아의 실제 선거에서도 CPP가 의회와 정부 내에서 보다 지배적인 다수당(majority)이 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따라서 1997년 개정선거법과 2002년 개정선거법의 비례성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97년 선거법의 경우 의석할당방식의 미묘한 변화가 어떠한 정치적 효과를 초래할 지에 대해서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명확히 알기 어려웠다. 처음으로 채책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수정된 동트방식과 동트방식의 계산법 중 실제로 어떤 것을 적용할지를 자주 번복했기 때문이다. 1997년에 신설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NEC)는 1998년 7월 26일의 제2대 의회선거를 앞두고 5월 6일-29일 사이에 “NEC 절차 및 내부규정”에 관한 4개의 규정을 발표하였으나 실제로 어떤 방식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공식적인 발표를 번복함으로써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선거관리위원회(NEC)가 5월 29일 전에 발표했던 의석배분방식은 발린스키(Balinski)와 영(Young)이 제안한 수정된 동트방식이었고, 5월 29일에 발표된 방식은 동트방식이었으나 그 미묘한 차이에 대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CPP당원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원칙적으로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하여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그 인적구성을 보면, 위원장에서부터 사무총장 그리고 직원의 대부분이 CPP 당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중립적이기보다는 CPP에 유리한 선거제도를 적용하고자 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래의 표 <5>와 <6>은 1998년 의회선거에서 4석을 가지는 Kampong Chhang 지역을 예로 들어 수정된 동트방식과 동트방식을 각각 적용해본 결과이다.
<표 5> 수정된 동트방식에 의한 의석배분 과정
정당
총득표수(v)
할당의석(S=V/Q)
동트방식
HA=V/(S+1)
최대평균
잔여의석할당
전체
전체할당의석
CPP
78,692
1.87
V/1+1
39,346
1
1+1
2
FUN
47,046
1.12
V/1+1
23,523
1
1+1
2
SRP
11,143
0.26
V/0+1
11,143
0
0
Others
31,882
Total
168,76
2+
2
2+2
4
*출처: ANFREL, 1999, Cambodia structuring for justice and peace: Report of missions on the 1998 elections,(Bangkok: ANFREL), p. 44의 표를 인용함.
<표 6> 동트방식에 의한 의석배분 과정
정당
총득표수(v)
할당의석(S=V/Q)
동트방식
HA=V/(S+1)
최대평균
잔여의석할당
전체
CPP
78,692
1.87
V/1+1
39,346
1
1+1
FUNCINPEC
47,046
1.12
V/1+1
23,523
0
1+0
SRP
11,143
0.26
V/0+1
11,143
0
Others
31,882
Total
168,76
2+
1
2+1
동트방식
HA=V/(S+1)
최대평균
잔여의석할당
전체
전체할당의석
V/2+1
26,231
1
2+1
3
V/1+1
23,523
0
1
1
V/0+1
11,143
0
0
2
3+1
4
*출처: ANFREL, Cambodia structuring for justice and peace: Report of missions on the 1998 elections,(Bangkok: ANFREL), 1999, p. 44의 표를 인용함.
두 방법의 차이점은 수정된 동트방식이 V/S+1의 계산법을 적용한 후에 한 번에 잔여의석을 모두 순서대로 할당하지만, 동트방식은 V/S+1의 계산 방식을 적용한 후에 모든 잔여의석의 할당이 종결될 때까지 한번계산에 한 의석씩만 할당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계산 원리는 제1당이 다른 당과 득표차이가 많을수록 더욱 더 제1당에게 유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물론 위의 표에서 예로 든 Kampong Chhang지역에서는 SRP의 실제 득표수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수정된 동트방식으로 계산되어도 1석 획득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FUNCINPEC의 경우에는 동트방식으로 바뀌면서 1석을 CPP에 내주는 결과가 발생하였다. CPP 반대정당들은 1998년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1997년에 개정된 동트방식의 제도적 불공정성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 결과 2002년에 한 차례 더 개정된 선거법에서는 동트식을 유지되지만, 선거법 규정 내에 계산원리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CPP의 정치적 의도를 파악한 반대정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러한 선거제도를 개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실제로는 동트식을 더욱 확고히 한 것에 불과했다. 이는 일단 제도가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 제도적 속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CPP가 1998년 선거에서 의회의석의 50% 이상을 획득했기 때문에 의회내에서 선거법 개정에 관한 논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 선거구 크기
선거구의 크기는 유권자 한 표의 가치를 기준으로 할당된 의석수를 의미하는데, 선거구의 상이한 크기는 그 자체로서도 의미를 갖지만 유권자 투표의 지정학적 분할이나 정당 간의 득표비율과 같은 요소와 상호작용하여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캄보디아의 경우 선거구 크기가 소선거구(1석), 중선거구(2-5석), 그리고 대선거구(6석이상)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원칙적으로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소선거구에서는 단순다수대표제와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선거구의 크기가 클수록 비례성이 높아지고 1석 선거구에서는 다수당인 1당이 승자독식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거구의 크기별로 표의 가치가 동일하지 않은 비등가성의 문제는 실제 의석할당방식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비례성을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이 된다. 비등가성 수치는 1에 가까울수록 한 표 가치의 등가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데, <표 7>에서 보듯이 선거구의 크기가 작을수록 비등가성 수치는 1에서 멀어진다. 2002년에 선거구 크기획정과 관련된 개정선거법에 따라 현재 총 24개의 지역선거구가 있는데, 그 중에서 소선거구가 9개, 중선거구가 4개, 그리고 대선거구가 11개이다. 2003년 의회선거를 기준으로 하여 계산한 비등가성 수치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표 7> 선거구 크기별 비등가성 비교
선거구크기
비등가성 수치
평균투표율
소선거구(1석)
0.29-1.62
76.5
중선거구(2-5석)
0.89-1.04
84.76
대선거구(6석이상)
0.89-1.18
83.45
물론 동일한 소선거구라고 할지라도 인구편차에 따라서 비등가성의 간격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최고 과대대표 되는 지역(0.29)과 최저 과소대표 되는 지역(1.62)이 모두 소선거구에 있다. 또한 2003년 선거의 전국평균 투표율 83%이었으나 소선거구의 평균투표율은 이보다 낮았기 때문에 소선거구에서 과대대표/과소대표 현상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9개 소선거구 내에서 지역별로 인구의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표 8> 소선거구 내 인구편차와 비등가성 비교
인구수
인구편차
비등가성 수치
Kaoh Kong
70,414
4.39
1.28
Mondol Kiri
21,362
1.33
0.39
Preah Vihear
65,754
4.10
1.20
Rotanak Kiri
54,650
3.41
1.00
Krong Preah Sihanouk
89,158
5.56
1.62
Stueng Traeng
45,064
2.81
1.48
Otdor Mean Chey
62,346
3.89
1.14
Krong Kaeb
16,044
1.00
0.29
Krong Pailin
22,375
1.39
0.49
또한 <표 9>에서 보듯이, 1997년 개정선거법이 적용된 이후 매번 의회선거에서 각 정당이 선거구 크기별로 얻은 득표율과 의석율 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보너스율을 보면, 소선거구에서 CPP가 얻은 의석이득이 중․대선거구에 비해서 크다. 물론 2008년 의회선거는 소선거구에서의 보너스율은 다소 감소하고 중․대선거구에서의 보너스율이 이전 선거보다 높아지긴 했다. 이는 2008년 의회선거에서 CPP가 24개의 모든 선거구에서 5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소선거구에서의 보너스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표 9> 선거구 크기별 보너스율
1998
2003
2008
선거구크기
CPP
FUN
SRP
CPP
FUN
SRP
CPP
FUN
SRP
NRP
HRP
소선거구
33.42
-20.67
-5.70
43.23
-16.79
-16.98
27.72
-3.78
-14.10
-4.74
-2.3
중선거구
15.17
8.80
-9.31
13.90
4.95
-14.83
20.86
-5.29
-3.43
-5.82
-3.97
대선거구
9.68
5.49
-2.0
9.65
0.62
0.53
14.49
-2.39
0.51
-4.92
-5.77
* NRP: Norodom Ranariddh Party
* HRP: Human Right Party
이러한 맥락에서 선거구의 크기를 획정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정치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선거구 크기 획정의 정치적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집권당이 정당의 이익이나 정치적 추세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선거구를 조작하거나, 아니면 선거구 조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개혁을 방치하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경우 소선거구의 과대대표문제나 중․대선거구의 과소대표되는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소선거구의 수를 차츰 늘려나감으로써 집권당의 정치적 이익에 맞추어 선거구를 획정했다고 할 수 있다. 1998년과 2003년 의회선거에서 각각 소선거구가 1개와 2개가 추가로 신설되었는데, 3개의 선거구가 모두 역사적으로 CPP에 대한 정치적 반감이 매우 강했던 곳이라 1석 선거구로 독립시키게 되면 제 1당이 그 지역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보다 유리했기 때문이다.
1998년 의회선거에서 처음으로 1석 선거구가 되었던 Pailin 지역은 CPP가 지속적으로 캄보디아 북서부 지역에 대한 완전통제권을 갖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캄보디아 북서부의 Battambang지역은 크메르루즈의 잔당세력의 본거지로서 반CPP 정서가 매우 강했던 곳이며 1998년 크메르루즈가 정부에 투항하기 전까지 북서부지역은 반정부 크메르루즈 세력이 지뢰를 설치하고 무기 및 탄약을 유입하는 중요한 거점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8년 의회선거를 위해서 Pailin을 Battambang으로부터 독립된 선거구로 만든 목적은 당시 반정부 세력의 지지기반인 북서부 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Pailin의 반 CPP 감정은 1998년과 2003년 선거에서 SRP를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특히 2003년 의회선거에서는 Pailin 지역선거관리위원회 8인이 모두 CPP인사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69.52%)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여전히 이 지역에서의 반 CPP감정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CPP는 2008년 선거에서 결국 이 지역의 1석을 획득하게 되는데, Pailin이 소선거구가 아니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2. 선거제도의 정치적 효과: 정당정치의 대표성과 경쟁성의 약화
앞서 살펴본 것은 의석할당방식과 선거구의 크기라는 두 가지 선거제도가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다수당인 집권여당이 의석수를 늘리는데 더욱 유리하게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CPP는 과반수를 충분히 넘는 의석수를 기반으로 의회 내 입법권 뿐만 아니라, 정부 내 행정권력을 제도 내에서 합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는 내각책임제 정부형태를 채택하고 있어서 여당이 다수당으로서 의회를 장악할 경우에 의회에 의해서 선출되고 해임되는 내각은 보다 강력한 행정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거제도는 변화의 시기에 각 정당이 서로 상이한 선호구조를 표출한 것이기 때문에 일단 형성되면 그 구조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CPP의 득표율을 위협할 만한 강력한 반대정당 세력이 나타나지 않는 한 현재의 캄보디아 선거제도는 CPP에게 계속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면 이렇듯 비례성이 낮은 캄보디아의 선거제도는 정당정치의 측면에서 어떠한 정치적인 효과를 초래하게 되었는가. 크게 두 가지의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정당정치의 대표성을 약화시키게 된다. 물론 외관상 매 선거에서 의회를 구성하는 주요 정당들이 전체 유권자의 9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나누어 갖고 있으므로 정당정치의 대표성은 높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1993년 의회선거 이후로 투표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는 점은 실질적으로는 정당정치의 대표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더욱이 선거제도가 군소정당을 의회 내에 진입할 수 없게끔 작용함으로써 소수의 유권자 의사를 대표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는 것도 정당정치의 대표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트식 의석할당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던 1993년 선거에서는 군소정당도 지지기반이 강한 곳에서 의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선거제도가 정당정치의 대표성을 높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군소정당이었던 BLDP는 전체 득표율 중에서 두 지역(Banteay Mean Chey, Batt Damgbang)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얻었고 전체 120 석 중에서 10석을 할당받게 되었다. 그 지역 선거구들은 태국과 국경을 접한 북서쪽 지역으로서 폴폿 정권 시기에 발생한 캄보디아의 난민들 대부분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며 BLDP의 당대표인 손산(Son San)이 이끌었던 반정부저항세력 KPNLF(Khmer People's National Liberation Front)의 주요활동지였다는 점에서 그 지역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가 의회 내 정당구도에 반영되었던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선거제도의 비례성이 높아지면 정당구도가 파편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파편화와 대표성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다원적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발전된 서구국가의 정당체계를 보더라도 의회내 정당구도가 양당체계로 발전되어 나오고 있다. 캄보디아의 경우 의회 내 정당의 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집권당과 야당과의 의석격차가 커지고 실질적으로는 집권당이 의회와 정부 내 권력을 거의 장악하고 있으므로, CPP가 유권자들의 다양한 요구들을 수렴하고 그것을 정책에 잘 반영해낸다면, 정당정치의 대표성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당정치의 대표성은 정당구도의 파편화보다는 오히려 개별정당 수준에서 CPP의 당내 민주주의 수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CPP는 의회와 정부 내에서 유권자의 요구를 대표하기보다는 권력창출과 유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정당정치의 대표성이 높다고 할 수 없다.
둘째, 선거제도의 낮은 비례성 때문에 정당정치의 경쟁성이 약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선거구의 크기가 작은 선거구일수록 특정지역에서 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야당이나 군소정당은 제한된 선거자원을 활용하여 그 지역에서 선거캠페인을 하지 않거나 주력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선거제도에 의해서 정당이 어떠한 유권자 집단에 호소할 것인가가 미리 제한됨으로써 정당들 간의 자유로운 경쟁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정치가 경쟁적인가를 평가하려면 선거의 전 과정, 즉 선거캠페인 시기, 투표, 그리고 개표이후의 사후절차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제도가 선거의 전 과정에서 각 정당의 선거캠페인의 정도와 범위, 유권자의 투표방식, 그리고 선거결과에 따른 정치권력의 배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선거제도는 선거과정에서 정당정치의 경쟁성을 약화시키는 주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선거제도에 의하여 의회 내 압도적인 다수당이 존재하게 됨으로써 정당정치가 CPP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주도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장기적으로 보면 선거과정 뿐만 아니라 의회와 정부 내에서도 정당정치의 경쟁성은 낮아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 간 동일한 선거제도가 적용된 결과 캄보디아의 정당정치는 외형상 복수정당체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1당이 강화되는 정당체계가 형성되어 왔다. 복수정당체계와 반대정당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지만, 선거가 거듭되더라도 하나의 정당만이 장기간에 걸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치하게 되는 "1당우위정당체계"(predominant party system)인 것이다.(Sartori, 1976). 물론 1당우위정당체계는 경쟁적 정당체계의 하위범주이므로 그러한 정당체계는 근본적으로 정당정치의 경쟁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쟁적 정당체계로 분류되고 있지만, 경쟁적 정당체계 내에서는 가장 경쟁성이 낮고 비경쟁적 정당체계 내에서는 가장 경쟁성이 높은 "패권적 정당체계"(hegemonic party system)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패권적 정당체계 내에도 하나 이외의 정당이 존재할 수 있고, 정권교체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 두 정당체계 간의 차별성은 합법적으로 지배정당과의 경쟁이 가능한가 하는 것으로 귀결되는데, 캄보디아의 경우 형성 중인 1당우위정당체계라는 경쟁적 정당체계가 비경쟁적 정당체계인 패권적정당체계로 변질될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이미 선거제도의 조작으로 인해 의회와 정부 내 압도적인 다수당이 된 CPP가 선거를 포함한 여타 정치과정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자원을 다른 정당에 비해서 매우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합법적인 방식 내에서 지배정당과의 경쟁이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