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치료하여 주옵소서(출 15:22-27)
할렐루야! 2010년이 훌쩍 지나가고, 2011년이 벌써 우리 곁에 다가왔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눌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초부터 연말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을, 다사다난한 가운데서도 큰 탈 없이 잘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2011년에도, 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해, 첫 시간을, 주님의 성전에서 맞이한다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은헤 중의 은혜입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예비해 놓으신 하늘의 축복과 땅의 기름진 축복을 오늘 주의 성전에 나온 여러분 모두 다 풍성하게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축복의 근원,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을 통해서 믿음의 가문, 축복의 가문이 자손대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어리인들도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오늘 이 시간, 하늘의 복을 다시 한번 풍성하게 쏟아 부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2011년도 교회 표어는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치료하여 주옵소서”입니다.
2011년, 올 한 해,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자녀들에게, 또한 학생들에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치료의 역사, 회복의 역사, 발전의 역사, 번성의 역사,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육신이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늘 건강하며, 여러분의 심령이 더욱더 강건해지고, 여러분의 삶이 더욱더 풍성함으로 회복되며, 치유되기를 소원합니다. 마음의 소원하는 모든 일들이,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기도하는 모든 일들이, 바라고 소망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더욱더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소원합니다.
신명기 33:29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 수많은 민족들이 있었지만, 세계를 제패한 강대국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민족은 이스라엘 밖에 없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도 큰 사랑과 은혜를 받은 백성들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있을 때, 애굽에 7년 풍년이 있은 후, 7년 흉년이 들었습니다. 야곱과 그의 자녀들이 살고 있던 가나안에도, 양식이 없어,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심한 기근이 들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그들이 미디안 상인에게 팔았던 요셉을 만났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의 요청으로, 형들은 가나안에 가서, 아버지 야곱과 모든 형제, 친척들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와 살았습니다.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을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셉도 죽고, 애굽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고,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서, 야곱의 자녀들은 자유인의 신분에서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편안한 삶에서, 고통과 핍박의 삶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 왕들은, 그들 위에, 감독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더 나아가 산파들을 시켜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태어난 아이들을, 하나님이 두려워 죽이지 못하자, 아예 애굽의 모든 백성들에게 명령하기를 옆집에서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씨를 말려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엄청난 핍박이요, 환난이요, 고통이요, 죽임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다행히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곤고한 중에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고, 광야에 나가 외로이 양을 치고 있던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7-8절 말씀을 보면,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데려가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 하에, 홍해를 건넜습니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르게 하셔서, 아무 탈 없이, 홍해를 육지까지 건넜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감격하여,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렸습니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출 15:4-5)
모세와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고, 모든 여인들도 그를 따라,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습니다. 미리암이 여인들에게 소리쳤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평생 고된 노동을 하며,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을 통하여,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죽음이 그들을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도, 육지 같이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열 가지 재앙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직접 홍해를 건넜습니다. 매일 매순간, 하늘을 보면,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순종함으로 사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그 감격과 그 행복은, 며칠 동안 지속되었습니까? 삼일 만에, 그 행복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감격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작심삼일이었습니다.
왜 그 행복이 날아가 버렸습니까? 물 때문이었습니다. 마실 물이 떨어졌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후, 삼일이 지나자,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마실 물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물을 발견하였는데, 그 물은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습니다. “마라”라는 말은 “쓴물”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라라는 곳으로 인도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잠시 잠깐 다른 데 갔다 온 것이 아닙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직접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마라에 도착한 것입니다. 왜 다른 곳으로 인도하시지 않고, 왜 마라라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을까요? 왜 코스를 조금 바꾸셔서, 엘림으로 직접 인도하지 않으셨을까요?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충분히 물을 마실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인데, 왜 하나님은 엘림으로 먼저 인도하지 않으시고, 마라라는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을까요? 엘림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도 아닙니다.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엘림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어차피 그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면, 왜 좋은 곳으로 바로 인도하시지 않고, 물은 있으되, 쓴물이라 먹을 수 없는 마라라는 곳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을까요?
“찰스 코우만”이라는 여사의 글 중에, 이런 체험담이 있습니다.
그녀는 일년 동안 애벌레가 나방이 되어 나오는 것을 관찰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먼저 번데기 과정을 걸친 뒤에, 나방이 되어 나오는데, 번데기에서 나방이 되어 나오는 구멍이, 너무 작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작은 구멍으로 큰 몸집이 빠져 나오느라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코우만 여사는, 도와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가위를 가져다가, 나방이 나오는 구멍을 넓게 절개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나방은 손쉽게, 그 번데기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방이 이제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야 하는 순간, 그 나방은 날개의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날지를 못했습니다. 그 나방에게는 작은 구멍을 빠져나오는 긴 시간의 몸부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그 나방은, 강인한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고, 살아가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나방에게도 마라의 쓴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놀만 빈센트 필 박사는,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쪽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글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품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지키고 있다. 하나님의 눈이 나를 보고 계신다. 내가 어느 곳을 가든지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는 글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일까요? 물은 있되, 쓴물이라 마실 수 없는 마라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일까요?
시편 139:8-10절을 보면,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안 계시는 곳이 없으십니다. 엘림에도 계시고, 마라에도 계십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당하였던 애굽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환난을 보고, 아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신명기 32: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림에도, 마라에도, 가나안 땅에도, 애굽에도, 홍해에도, 광야에도 언제나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엘림이 아닌 마라로 인도하셨을까요? 왜 쓴물을 경험하게 하셨을까요?
오늘 말씀 25절 끝부분에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시험에 비참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모세에게 원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물은 있되, 쓴물입니다. 그래서 마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모세를 향하여, 원망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급하게 애굽을 나왔던 삼일 전 일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물은 있되, 엄청나게 많은 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건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것은, 기도했다기보다는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했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모세에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14:10-12)고 소리쳤습니다.
이스라엘의 원망을 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홍해를 마른 땅 같이, 마르게 하셔서,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상하지 않고, 다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뒤쫓던 애굽의 모든 병사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홍해에 수장시켜 버리셨습니다. 그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 난후, 온 백성이 함께 춤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삼일이 지났습니다. 물은 있습니다. 쓴물이라 마실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달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그들을 시험하시려고, 문제를 내 놓고 계신 것입니다.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삼일 전에 경험했던 일을 기억하여 보면,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라면, 마실 수 없는 쓴물을 마실 수 있는 단물로 바뀌게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은 무조건 원망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놓은 시험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12: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는 복을 주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 주시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 삼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단 하나의 조건은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도 떠났습니다.
창세기 22:2절을 보면,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 관한 말씀도 자세히 살펴보면, 처음 고향 땅을 떠나라고 했을 때는, 큰 축복을 아브라함 앞에 제시해 주고,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2장을 보면,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는,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뿐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한다고, 분명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주신 복을 이 땅에서 누릴 뿐 아니라,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한 것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것입니다. 되풀이 되는 역사를 보면서, 좋은 점은 본받아야 하고, 나쁜 점은 버려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처럼, 새로운 해, 1월 1일, 새해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고향과 친척과 우상을 만들어 팔았던 그의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잘 믿고 순종의 삶을 사는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사는지,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이 가득했던 애굽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정말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불순종하는지, 날마다, 매순간마다, 불기둥으로, 구름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정말 바라보고 있는지, 하나님은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허물 가운데 있던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마귀와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던 우리를 구해 주셨습니다. 사망과 저주와 절망과 낙심 가운데 있던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애통이 없고, 죽음이 없고, 사망이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를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통하여 시험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쓴물로 시험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시험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라를 지나면, 엘림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시험을 통과하면, 축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쓴물이 단물로 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실 수 없는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한 나무를 물에 던졌을 때, 쓴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한 나무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에 들어오실 때, 우리의 쓴물 인생이 단물 인생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악을 덮어주시고, 우리의 삶을 깨끗하게 해 주시며,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살아가십시오.
마태복음 4:23-24절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을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십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웁니다. 천국 복음을 듣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습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사야 53:5절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2011년, 올 한 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치료하여 주옵소서”
다윗은 시편 103:2-5절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속량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2011년, 올 한 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고, 인격이 변화되고, 성품이 변화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언어가 변화되고, 행동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장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 쓴뿌리가 있다면, 말끔하게 제거되고,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통하여, 회복의 역사,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치료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의 삶을 살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 치료의 역사, 회복의 역사, 번성의 역사가 2011년 한 해 동안 풍성하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깨끗하지 못한 삶과 상한 심령과 무너진 가정을 치유하여 주소서.
무너진 주의 제단이 회복되게 하시고, 부흥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여 주옵소서.
새로운 한 해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새롭게 소망을 거지고 달려 나아갈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심령이 변화됨으로, 우리의 가정이 회복되고, 다시 세워지고, 우리의 교회가 회복되며, 부흥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충북 청주시 흥덕구 수곡 2동 777번지 한마음아파트 1차 상가 302호
효성선교교회 김종민 목사
후원계좌: 401821-52-054536 농협 김종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