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꽃 품 47 - 석가족을 몰살시킨 위두다바
47.
오로지 꽃을 따는 데
집착하고 있는 사람을
죽음이 휩쓸어간다.
잠든 마을을 홍수가 휩쓸어가듯.
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승원에 머무실 때 급류에 휩쓸려 죽은 꼬살라 국왕 빠세나디의 아들인 위두다바와 관련하여 위 게송을 설하셨다.
어느 날 빠세나디 왕은 사왓티의 자기 왕궁 위층 창가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왕은 수천 명의 비구들이 탁발을 하기 위해 거리를 지나 아나타삔디까, 쭐라 아나타삔디까, 위사카, 그리고 숩빠와사의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들과 같이 비구 승가를 위해서 무언가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곧 부처님을 찾아뵙고 허락을 받아 아난다 장로와 그 일행에게 공양을 올리게 되었다.
왕은 비구들이 도착하면 자기가 직접 발우를 받아 들고 음식을 담아 비구에게 건네주곤 했다. 이같이 공양을 베풀던 중 여드레째가 되던 날 왕은 정신이 흐트러져서 직접 공양 올리던 일을 소홀히 했다. 그 바람에 다른 비구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나고 공양에 책임이 있는 아난다 장로만 혼자서 왕궁에 가 음식을 받아오곤 했다. 그래서 왕은 많은 비구들을 공양하지 못했다.
왕은 이 사실을 알고는 부처님께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여 곧 사신을 까삘라왓투에 보내어 석가족의 공주를 자기 왕비로 삼겠다고 제의했다. 이 요청을 받은 석가족 사람들은 회의를 열어 마하나마 왕과 노예 사이에 태어난 아주 예쁜 와사바캇띠야를 공주라고 속여서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에게 보냈다.
빠세나디 왕의 사신이 돌아와서 왕의 청을 석가 사람들이 받아들였다고 보고하자 왕은 공주가 누구의 딸이냐고 물었고, 사신은 석가족의 마하나마 왕의 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매우 흡족해 했다.
왕은 즉시 그녀를 왕비로 책봉하고 오백 명의 궁녀들로 하여금 왕비를 시중토록 했다. 그리고 왕비는 곧 아들을 낳았는데 왕은 아들의 이름을 위두다바라고 지었다. 위두다바는 어릴 때부터 외가에 가고 싶어 했으나, 왕비는 그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야 외가에 가도록 허락했다. 그 전에 왕비는 따로 석가족에게 편지를 띄워, 이제 아들이 외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아들에게 왕자에 합당한 대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석가족은 회의를 열었고, 노예의 아들과 상대하지 않게 하려고 왕자 위두다바를 객사에 쉬게 하는 한편, 자기네의 나이 어린 공주나 왕자들은 모두 지방으로 여행을 보냈다. 위두다바는 그 곳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까삘라왓투를 떠났다. 위두다바가 그렇게 떠나고 나서 그가 묵었던 방을 청소하던 궁녀들은 여기가 노예의 아들이 묵었던 곳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우유와 물로 방을 닦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위두다바의 일행 중 남아 있던 한 사람이 우연히 그 소리를 듣고 기겁을 하여 그 이야기를 곧 위두다바에게 전했다. 위두다바는 놀라고 흥분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소리쳤다.
"더러운 석가족 놈들! 내가 만약 왕권을 잡으면 석가족 놈들을 모두 말살하고 그놈들의 피로 내가 앉았던 그 자리를 씻으리라!"
위두다바는 이렇게 사왓티에 돌아왔고, 이 사실은 왕자를 호위했던 대신을 통하여 빠세나디 왕에게도 전해졌다. 왕도 석가족에 대해 대단히 화가 나서 왕비와 위두다바의 지위를 박탈하여 노예로 삼아 버렸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다음 부처님께서 왕실을 방문하시게 되었다. 왕은 멀리까지 나와서 부처님을 매우 공손하게 마중하여 궁내의 아주 높은 자리에 앉으시게 한 뒤 세 번 절을 올렸다. 왕은 저간의 사정을 모두 부처님께 사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석가족이 왕에게 한 행위는 참으로 옳지 않은 것이었소. 그러나 대왕이여, 와사바캇띠야가 분명 마하나마 왕의 딸이기도 한 만큼 귀족의 피를 받은 여인이요. 그리고 위두다바로 말하더라도 또한 왕의 아들임이 분명하오. 그러니 그들의 신분을 노예로 만든 것은 재고해야 할 것이오."
이에 빠세나디 왕은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와사바캇띠야와 위두다바의 신분을 예전대로 회복시켜 주었다.
이후 빠세나디 왕은 부처님을 뵙기 위해 군사령관 까라야나에게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표지인 왕관, 옥쇄, 왕홀, 반지와 망토를 잠깐 맡겨 두었는데, 그는 왕자 위두다바에게 이들 다섯 가지 표지를 주어 왕으로 추대하였다. 왕이 된 위두다바는 지난 날 석가족에게서 당한 모욕을 상기하고 곧 군대를 일으켜 석가족을 멸망시키려고 진군해 나갔다.
이날 새벽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석가족들이 파멸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을 아시고 석가족을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하시어 석양 무렵에 허공을 날아 까삘라왓투 근처로 가셨다. 부처님께서는 그늘이 아주 짧은 나무 밑에 앉으셨다. 그때 위두다바는 아주 큰 반얀나무 그늘 아래 서 있다가 부처님을 보았다. 그는 곧 가까이 다가와 부처님께 머리를 땅에 대고 인사를 올린 뒤 여쭈었다.
"부처님, 이 더운 날씨에 왜 이렇게 그늘이 엷은 곳에 앉아 계십니까? 저쪽에 그늘이 좋은 반얀나무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시어 앉으시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여래에 대해 상관하지 마시오. 내 종족의 그늘이 나를 시원하게 해주고 있소."
위두다바는 곧 부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고 곧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려 인사를 드린 다음 군대를 이끌고 사왓티로 떠났다. 이에 부처님께서도 허공을 날아 제따와나 정사로 돌아오셨다. 이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부처님은 위두다바의 침공을 막아내셨으나, 네 번째로 위두다바가 군대를 이끌고 석가족을 치러 가자 부처님께서는 석가족의 업을 읽으시고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그냥 정사에 남아 계셨다.
꼬살라의 위두다바는 국경에 이르러 부처님이 보이지 않자 주저하지 않고 까삘라왓투로 진격해 석가족을 공격하여 석가족은 마침내 다 멸망하였고, 단지 마하나마를 따르거나 석가족이 아니라고 자기 출신을 부정하는 소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위두다바는 군대를 철수하는 도중 날이 저물자 아찌라와띠 강변에 천막을 치고 하룻밤 야영을 하기로 했다. 그때 위두다바를 비롯하여 전생에 악업을 짓고 석가족을 직접 살해한 병사들은 강둑에 천막을 쳤고, 전생과 금생에 악업을 짓지 않은 병사들은 강가 모래밭에 천막을 쳤다. 그런데 밤이 되자 이상스럽게도 많은 강둑에 개미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병사들은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천막을 옮기게 되었다. 그래서 강둑에 자던 병사들이 강가 모래밭으로 잠자리를 옮기는 대신 강가 모래밭에서 자던 병사들은 잠자리를 강둑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자리를 옮기고 나서 개미들의 등살은 좀 덜해져서 그들은 잠이 들었다.
그런데 밤중에 강의 상류에서 큰 폭우가 내려 순식간에 강물이 불었다. 그리하여 강가 모래밭에서 잠자던 수천 명의 병사들과 위두다바는 급류에 휩쓸려 물고기와 거북이의 밥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출신 종족이 멸망한 것과, 위두다바를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물에 휩쓸려 가버린 두 비참한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석가족들은 과거 전생에 강물에 독약을 풀어서 많은 고기들을 죽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 그들이 저지른 그런 집단적인 불선업 때문에 오늘날 이런 불행을 겪게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홍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위두다바의 일을 계기로 다시금 느꼈으리라. 거센 홍수가 잠자는 마을을 휩쓸어 가듯이 죽음이라는 홍수도 감각적인 쾌락에 집착해 있는 중생들을 휩쓸어 가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으셨다.
오로지 꽃을 따는 데
집착하고 있는 사람을
죽음이 휩쓸어간다.
잠든 마을을 홍수가 휩쓸어가듯.
Pupphāni heva pacinantaṃ 뿝파니 헤와 빠찌난땅
byāsattamanasaṃ naraṃ 브야삿따마나상 나랑
suttaṃ gāmaṃ mahoghova 숫땅 가망 마호고와
maccu ādāya gacchati. 맛쭈 아다야 갓차띠.
Death carries away a man
who is gathering flowers and
whose mind attached to sensual pleasures,
as a flood sweeps away a sleeping vill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