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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훌륭한 연주자가 있으면 천리를 마다 않고 달려가 연주를 듣고 마는
재즈광입니다. 1988년 챨리 파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버드>(포리스트 휘태커 주연)를 만든 것도 그의
유별난 재즈사랑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나나 님의 공연을 보러 서울에 온다면 최근 그가 만든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처럼
<우리 회원들의 꿈꾸는 기적>이 아닐런지요.
예전에 써 놓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 관한 글인데 그가 우리 카페에 가입하길(?) 바라며 올립니다.
볼프강 피테르센 감독 ‘사선에서’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피아노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료 경호원인 르네 루소를 거시기(?)하려고 폼나게 피아노를 치는데 건반 위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음이
대역을 쓴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이스트우드는 1997년 카네기 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을 만큼 수준급의 연주가이다.
황량한 모래 벌판에 휘파람 날리며 시거 하나 입에 물고 석양과 황야를 오가더니
(석양의 무법자 1964, 황야의 무법자 1965) 급기야 미국 한 복판에서 매그넘 44라는 권총인지
장총인지 무쟈게 큰 총으로 범죄자을 아작(?)내는 더티 해리(더티해리 1,2,3,4 1971-1983)로 한 10년
총질하며 산 정통 공화당 보수 골통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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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 만큼 영화배우 오래하고 헐리우드판에서 놀았으면 그 정도 감독은 될 수 있지 뭐”라고 할지 모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경력이나 쌓으려하는 영화배우 출신의 그렇고 그런 감독과는 질적으로 다른 미국영화의
보석 같은 존재이다.
물론 배우 출신의 명민한 감독들은 몇몇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 케빈 코스트너, 멜 깁슨, 숀 펜, 데니 드 비토, 팀 로빈스,그리고 최근의 죠지 클루니까지.
그러나 1971년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0여 편을 감독하면서 일관된 주제의식과
작가적 관점을 견지한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유일하다.
그의 영화에는 비쥬얼이 없다
단지 배우의 캐릭터와 이야기로 모든 것을 풀어간다.
나른하지만 묵직한 눈물을 자아내는 ‘느림의 미학’이다.
그의 묵직함과 느림은 미국 사회전체를 아우르는 부조리와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현상을 바라보는 오랜 인생의 관찰자의 눈으로 끝맺음을 한다.
때로는 용서받지 못한 총잡이로(용서받지 못한자), 보안관으로(퍼펙트 월드),
권투 코치로(밀리언달러베이비), 뒤늦게 찾아온 사랑을 어쩌지 못하는 로맨스 가이로(메디슨카운티의 다리)........
‘페펙트 월드 1993’를 보자.
탈옥수 버치(케빈 코스트너)와 어린 아이 필립의 버디-로드무비 형식의 이 영화는
종교적인 이유로 일반 아이들과 다른 성장과정을 거쳐야 하는 필립과 부모세대부터
규정되어 버린 범죄자인 버치의 이야기이다.
미국인을 부적응자와 범죄자로 만들어버린 사회와 궁지에 몰아넣고 쥐몰이하듯
쫓는 미국의 수호자들(FBI). 그들의 곁에서 관찰하듯, 현상을 파악하려 노력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선이 ‘퍼펙트 월드’의 메인라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범죄자의 손에서 가녀린 어린아이를 구한다는 명분에 사로잡혀
그들이 나누는 우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총질만 하는 미국인에게
“왜 미국이 이 지경이 되었나?”라고 자문한다.
결과론에만 집착하는 추격자(미국)에게, 끊임없이 양산될 사회부적응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총질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과 구조적 모순을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휴먼 드라마 틀 안에서 무겁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메디슨카운티의 다리(1995)는 뭔가 없어 보이는 멜로드라마이다.
일단 이스트우드의 모습이 멋하고는 거리가 있다.
거기에 상대역인 메릴 스트립도 촌 아줌마이다.
“무슨 멜로가 멋진 주인공도 아니고 불같은 감정도 없고, 파격적인(?) 장면도
없어. 뭐 이래?”라고 할 지 모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이 볼품없는
사랑이야기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외관상 중년의 불륜을 그리지만 그리 부도덕해 보이거나 위험해 보이지 않다.
기다리고 싶어서 기다린 것도 아니고, 빠지고 싶어서 빠진 것도 아닌 그저 운명처럼 다가온 늦깍이 사랑에 어떻게 흔들리는지, 그리고 미국은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서 만들어낸 소품 같은 영화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이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 장면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차 안에서 프란체스카가 오기를 기다리는 킨케이드의 표정.
내릴까 말까 고민하며 남편의 차 안에서 핸들을 꽉 잡고 고민하는 프란체스카.
결국 떠나는 프란체스카의 차를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바라보는 킨케이드.
짧은 장면이지만 두 사람의 뒤늦은 사랑이 가지는 모든 것을 말해 주는데
부족함이 없는 장면이다.
무료하게 늙어가는 삶 속에 찾아온 사랑. 떠나고 싶지만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책임감.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열정대로 할 수 없는 살아온 세월 등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프란체스카(메릴스트립)의 자녀들은 그녀가 죽은 뒤 남겨진 유품에서 그녀의 늦었던 사랑에 대한
배신감과 비도덕적이라 비난을 주저하지 않지만, 결국 그들을 이해시키는 힘.
그런 것이 이스트우드가 생각하는 인간과 사랑의 힘이 아닐까?
묵직하게 젖어드는 이스트우드의 사랑은 도착할 때와 똑같이 떠나지만 그가 남긴 사진 속,
메디슨 카운티 다리 저편에 그가 바라는 아늑함에 대한 염원으로 남겨져 있다.
킨케이드가 사진은 남겼듯 그도 영화를 남김으로서...
예상치 않은 보물을 얻었을 때 ‘Million Dollar Baby'라고 한다는데
우리네 인생에서 ‘Million Dollar Baby'는 무엇인가?
영화 ‘Million Dollar Baby'는 우리 모두에게 그것은 가족이라고 말해준다.
잘 나가던 권투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딸과의 소원한 관계 때문에
세상과의 교감을 피한 채, 유일한 친구이자 은퇴 복서인 스크랩(모건 프리먼)과
낡은 체육관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31살 된 여자가 발레리나를 꿈꾸지 않듯 복서도 꿈꿔서는 안 된다.”라는 구박에도
끈질기게 매달리는 매기(힐러리 스웽크)와 프랭키의 가족만들기가 ‘Million Dollar Baby’의 주요라인이다.
오랫동안 잊어버린 가족의 정을 느끼며 아버지와 딸 같은 관계로 발전할 즈음,
매기는 시합 중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프랭키는 그런 그녀의 바람대로 안락사를 시킨다.
‘Million Dollar Baby’에서 주목할 것은 두 사람이 가족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매기의 죽음 이후, 프랭키의 선택이다.
매기는 노처녀고 잘하는 것도 없는 여자지만 가족을 위해 작은 집과 팬케익 가게를
내는 것이 꿈이다. 철딱서니 없는 엄마와 사고뭉치 오빠지만 힘들게 번 돈을 그들을 위해 아낌없이 쓴다.
프랭키는 그런 그녀에게서 가족을 생각하고 자신과 인연을 끊은 친 딸을 생각한다.
프랭키에게 매기는 ‘Million Dollar Baby’인 것이죠.
두 사람의 관계를 도와주는 스크랩은 프랭키와 매기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게끔 조언을 주고
두 사람은 일련의 권투과정을 통해 진정한 가족이 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실루엣처럼 보여주지만 자세히 보면 중요한 결말이 있습니다.
매기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체육관을 스크랩에게 맡긴 프랭키는 어디로 떠난다.
시골 길 가의 팬 케익 집.
의자에 앉은 프랭키에게 주문을 받으러 여자가 다가온다.
유심히 영화를 본 사람은 그 여자가 영화 속에 잠깐씩 등장한 매기의 철딱서니 없는 엄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돌아가서 안락사 하기 전 장면.
매기는 프랭키에게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소원한다.
결국 그 소원은 자신을 저 세상으로 보내 줄 것(안락사)과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못나고 못됐지만 내 엄마와 오빠를 생각해 달라는 것이었다.
매기의 죽음으로 매기와의 가족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프랭키는 매기의 가족으로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느리다.
그의 느릿함에는 세상 속 인물의 행보, 혹은 사회를 지켜보는 관망자를 통해
조금씩 변화하는 인식과 패러다임의 묵직함이 있다.
성급하고 무리한 결론을 도출하려는 젊은 감독들에 대한 우려를 가르치는 듯 그의 영화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시간이 주는 지혜를 배우라는 것 같습니다.
‘스페이스 카우보이 2000’ 에서 그들은 천천히 고민하고, 천천히 움직이지만 그것이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 것이라 말하지 않으며, 카메라워킹과 테이크 길이에서도 그 의지를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지면상 그의 작품을 모두 거론하지는 못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의 작품 속에서 일관된 작가적 논점을 견지해 왔다.
미국은 짧은 역사 속에서 너무 성급하게 달려왔고, 너무 많은 것들을 버리려고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버려서는 안 될 것들, 그것들을 버림으로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한 반성은 그의 모든 영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사실 그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긋하지만 예리한 관점은
그가 미국영화 속에서 지나온 시간이 큰 몫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 그가 구축해낸 독특한 세상을 보는 시선은 너무나 명확하다.
‘미스틱 리버 2003’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2006’ ‘아버지의 깃발 2006’ ‘그렌 토리노2009’
‘체인질링 2009’ 등 최근 그의 작품 또한 스타일에 연연하지 않고, 이야기와 캐릭터만으로,
그리고 그들에게 부여한 시간의 지혜만으로 묵직한 감동을 준다.
오랫동안 어떤 장르건, 어떤 이야기 소재건 자신이 세상에 던지고 싶은 주장을
영화를 통해 일관되게 노력해 온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의 영화에는 분명 ‘울림’이 있다.
느리지만 묵직하게, 오래토록 여운이 남는 재즈의 울림처럼.....
蛇足) 1.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공화당 보수주의자인데 어느날 총기금지 휴대법안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마이클 무어가 전美 배우조합장을 지낸 챨톤 헤스톤에게 무례하게 굴자
자신에게 인터뷰를 올 경우 라이플로 죽여 버리겠다고 기자들에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한동안 ‘보수 골통’으로 곤혹을 치른 적이 있음.
총 맞을까 겁났나? 마이클 무어는 이스트우드에게 인터뷰 요청은 안 함.
2. 최근 그가 만드는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남아공 럭비팀 주장
프랑소와 피나르와 함께 남아공 사회를 하나로 통합한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맷 데이먼,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입니다.
첫댓글 아 이글은 제가 그동안 미스터 이스트우드에게 느꼈던 걸 너무나 자세하게 멋지게 얘기해 주셨읍니다...전 그를 진정한 예술가라 생각 합니다..멋진글 감사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기적..같이 보러가요^^.
영화보러 울산에서 서울로 오라는 말쌈은 영화비로 20만원을 지출하라는 말씀과 같다는...어--허....ㅎㅎ
농담도 못해요 ㅋㅋ! 이십이 아니라 오십이 든다 해도 못가겠습니까?? 영화 방개 함 치죠 !!
아 연기파 배우들이 모두 나오는 군요
함께 나눔의 시간을 위하여... 그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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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 감독은 제가 참 좋아하는 감독인데...
모건 프리먼이 만델라 대통령으로 나오는데 연기는 두말하면 잔소리죠. 맷 데이먼은 <본 아이덴터티>시리즈류의 영화보다는 이런 영화가 잘 어울리지요...
이미 그의 연기와 작품세계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적이 있습니다. 때려야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그의 영화에는 비쥬얼이 없다. 단지 배우의 캐릭터와 이야기로 모든 것을 풀어간다. 나른하지만 묵직한 눈물을 자아내는 ‘느림의 미학’이다."란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시합니다. 그가 만든 '우리가 꿈꾸는 기적'이란 영화가 나오면 영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수구 골통이지만 미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필림에 담을 때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지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저와 같은 회원이된다 나머지 글은 시간내어 읽어 봐야 겠네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울 회원이 된다면 인물면에서 그의 옆자리에 앉을 분은 자연인님 밖엔 없다는 어----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