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기총회때 계획했던 김삿갓 유적지 방문을 전남 화순군 동복면으로 결정했습니다.
회원뿐 아니라 주위에 본사업회에 많은 관심을 갖고계신 많은 분들께서 이번 답사에
참여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 답사일정
일시 : 2008년 6월 13일(금) 오전6시30분 출발
출발장소 : 덕정동 회천농협앞
목적지 : 전남 화순군 동복면 일대에 김삿갓유적지 답사
※ 화순군 김삿갓 유적지 소개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시인 김삿갓이 방랑을 멈추고 生을 마감한 고장.
동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남덕원비.
이 碑는 조선시대 역원(驛院)에 대한, 유일하게 남아있는 비다.
세월풍파에 씻겨 아름다운 전각문자가 이젠 희미하다.
남덕원비 옆에, 동복오씨의 시조에 대한 비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군루에 아침 일찍 올라 진종일 돌아갈 줄 몰랐네
석양빛은 가을이 이르려 함인지 긴 바람이 불어가더니
동산에 달이 솟아 오는구나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허지를 찾기위해 동복면사무소에 들렀으나
휴일인 터라 면사무소 앞 김삿갓의 詩碑만이 나를 반겨준다.
물어물어 찾아온 김삿갓의 초분이 있다는 구암마을. 거북바위가 있나보다.
그러고보니, 동복의 옛지명 중에는 구성(龜城)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구암마을 입구에는 김삿갓이 명을 다하여 가매장을 했던 곳이라 쓰인
碑가 나란히 서있고, 멀리 오른편에 망미대가 길손을 반긴다.
난고(蘭皐) 김병연 (1807~1863). 김립(金笠)이라고도 불리며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性深),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출생.
1811년(순조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廢族)이 되었으나 멸족을 면하였다.
일족이 상민으로 전락하자, 당시 6세였던 그는, 형 김병하와 함께 어머니를 따라
광주, 이천, 가평, 평창을 전전하다가 영월 어둔 산협에 은거하였다.
그가 20세 되던 해, 영월도호부 백일장에서 김익순을 통탄하는 글을 써
장원을 하였으나 그후 김익순이 조부임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모친과 처자를 남겨둔 채, 조상에 지은 죄가 커서 하늘을 보기 두렵다 하여
삿갓을 쓰고 대지팡이에 의지하여 방랑의 길을 떠났다.
금강산을 비롯한 팔도의 명승지와 서당을 두루 섭렵하여 방랑생활을 계속하면서
많은 시구(詩句)를 남겼다.
1850년 전라남도 화순군에 당도한 김삿갓은
지금은 동복수원지에 편입되어 수몰된, 화순군 이서면 소재의 물염적벽을 보고
그 풍광이 중국의 적벽에 비견해도 손색이 없다하여 이 일대에 머무르며
그의 生을 다할 것임을 예견하였다.
당시 찾아오는 식객들을 후대했던 압해丁氏 창원군公 백인당派의 종가 사랑채에
기거하며 산자수병한 자연경관을 즐기며 시를 쓰다가
1863년 3월29일, 정씨의 사랑채에서 57세를 일기로 生을 달리하였다.
그의 시신은, 마을 동편 동뫼에 초장한 후 3년 뒤 그의 후손에 의해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식리에 이장되었고 지금은 파묘의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다.
35년여 동안 방랑하면서 해학과 민중의 삶이 담긴 시와 많은 변형시를 남긴
방랑시인 김삿갓은,
미국의 윗트먼, 일본의 석천탁목과 함께 세계3대 <詩 혁명가>로 꼽힌다고 한다.
김립선생 초분 유허지지. 비문 뒷편이 동뫼, 야트막한 동산이다.
올라가 보니 파묘의 흔적은 쉬이 찾을 수 없고
나즈막한 봉문 몇이 이름 없이 나를 맞는다.
옛날에는 길손들이나 주인없는 시신을 이곳에 묻었다 하여
똥뫼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구암리 마을 앞 압해정씨의 선산 못지않게
이 곳 동뫼도 내 보기엔 그윽한 명당이다.
忘者에 대한 사람 인심 살아있는, 그런 명당.
절반이나 이즈러진 서가에는 수 천의 책이 있고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한 개의 벼루가 있어
묵향에 스스로 깊이 취하니 마음이 한가롭구려
미약한 이 몸이 이밖에 또 무엇을 더 바랄쏘냐
성심, 동복에서 쓰다.
귀산(龜山, 혹은 와우산(臥牛山))에 세워진 망미대(望美臺).
최근에 새롭게 단장하기 시작한 망미대의 입구.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있었던 당시, 강재 정시룡 선생이 거북바위에
새겨놓았다는 망미대라는 글자에서 우국(憂國)의 숨결이 느껴진다.
정시룡 선생은 김삿갓의 시신을 직접 장례지냈던 분이다.
美는, 임금을 뜻할 터. 망미대는 역시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바위를 돌아가면 정자 구실을 하는 동굴이 있다는데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난간이 설치되고 비가 와서 미끄러워
그 동굴을 가까이 촬영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김삿갓 시인도 저 동굴에서 한동안 수련을 하셨다던데.
육각정으로 지어진 망미대.
망미대에서 바라본, 김삿갓의 숨결이 남아있는 구암마을 전경.
망미대의 김삿갓 詩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