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곡공보교 증축비 순조모집
동아일보 1935년 1월 15일자
[원문] 전북 정읍군 감곡공립보통학교는 지난 6년5월의 개교이래 수업아동의 수는 매년증가함에 불구하고 학급수는 여전히 두 학급으로서 복식으로 교수하는 중인바 그 불편이 약간이 아니라 교육상 지장이 만타하야 학급수를 증가코저 면장 김 00씨와 00장 00씨와 유력한 0씨등이 당국에 00한 결과 면민으로부터 750원만을 부담하면 학급하나를 증가시키겠다는 당국의 양해를 얻어가지고 곧 기부금 모집을 순조롭게 진행하여 오는 봄에는 공사에 착수하리라하는데 총공사비는 도와 군 00비의 보조금을 합하여 1천7백원이라 한다.
[해설] 정읍시 감곡면에 있는 감곡초등학교에 관한 신문기사이다. 감곡초등학교의 연혁을 살펴보면 1931년 6월 1일 감곡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이후 감곡국민학교를 거쳐 현재의 감곡초등학교에 이르고 있다. 2012년 2월까지 졸업생 누계는 총 8,500 여명에 이를정도로 많은 학생을 배출하였지만, 현재는 쇠락하는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듯 재학생수는 크게 줄어 전교생이 48명(2012년 현재)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개교하여 몇년되지 않은 동안 계속해서 증가하는 학생을 감당하지 못하였던지 복식수업이라는 것을 실시하였다고 되어있다. 여기서 복식수업이란 요즘같으면 학생수가 턱없이 줄어든 농촌학교에서 한 교사가 여러 학년을 같은 교실에 배치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형태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농촌의 인구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한정된 교실에서 많은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한 교실에 두개 이상의 학급을 편성했던 그런 방식의 복식수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즉 한 교실에 두개의 학급을 배치하여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실시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국민학교에 다디던 1970년대까지도 이러한 형태의 교육과정이 있었던 바 오후반에 편성된 학생들은 오전반 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어쩌다 함께 등교하는 날에는 교실에서 밀려난 학급의 학생들은 미술이나 체육등 야외에서도 가능한 수업을 받았던 것 같다. 운동장 모래땅에 도화지를 놓고 불편한 가운데 그림을 그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신문기사에서 언급한 '복식수업'이라는 용어는 '복식학급'으로 수정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학년과 학생수에 비해 교실이 부족해서 빚어지는 일이었던바,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면장을 비롯한 유지들과 면민들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결과 도와 군의 지원금을 받아내 드디어 교실증축을 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이 신문기사는 전하고 있다. 학생수가 넘쳐나 학급당 학생수가 때로는 70 여명에 이르기도 하고 급기야는 한 교실을 두개 반이 사용해야만 했던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여건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교육 선진국에 비하면 개선할 점과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과거 농촌지역의 학생수가 넘쳐나서 교실증축을 고민하던 시절, 지금은 학생수가 절대 부족하여 통합과 폐교를 고민해야하는 농촌교육의 현실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첫댓글 인생이 다 그런거지
노랫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