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호남선 철로가 놓이면서 이곳 정읍에도 정읍역, 신태인역 등 6개의 역이 등장한다. 당시로서는 첨단의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는 기차가 쉬어가던 역은 자연스레 사람과 물산이 모이면서 도시가 성장하게 되었다. 정읍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서 기존의 중심지였던 고부와 태인을 제치고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식민지 한반도에 정착하기 위해 밀물처럼 들어오는데, 아무래도 교통이 편리한 항구나 기차역이 통과하는 곳을 발판으로 거주하게 되었다. 이곳 정읍시의 경우 정읍시내나 신태인읍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지금도 곳곳에 그들이 남긴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남은 흔적들을 청산해야 할 역사라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소멸시키거나 강제로 철거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 치욕의 역사를 우리가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억의 고리'가 되는 유형의 흔적들을 잘 보존해야 할 것이다.
1876년 개항 이후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남겨진 근대문화유산을 국가에서는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전북의 경우 2014년 12월까지 모두 59건(정읍의 경우 8건)이 등재되어 있다. 정읍의 경우에도 계속하여 더 등재 신청하여 보존해야할 꺼리들이 있음에도, 여러가지 사정으로 진척이 되지않는 상황이어서 안타까움을 갖게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정읍시내에 남겨진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을 사진으로 살펴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건축물들은 점점 무너지고 스러져가는데, 역사적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것들은 하루빨리 지정을 받아 복원하고 보존해야 할 것이다. 아쉽게도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이 있는데, 사진으로나마 촬영해두었던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정읍시 상동, 정읍교육청 부근 청와삼대 식당 맞은편에 위치했던 일본식 건물. 예전 이곳을 작은 과수원이라 불렀던 점을 상기한다면 과수원을 운영했던 일본인과 관련된 건물일 수도 있겠다. 이 건물은 현재 철거되고 최근 이곳에 원룸 주택이 들어서 있다.


정읍신문사와 구 소방서 사이에 위치했던 일본식 건물. 현재 이 건물도 사라진 진 것 같다.

정읍시 수성동, 정읍 구 도심에 위치한 정읍경찰서장 관사건물. 옛 농지개량조합(구 옥돌생고기식당)건물 맞은편. 중앙2길 21. 일본식과 서양식 건축양식이 절충된 근대문화유산으로 충분히 등재될 만한 건물이다. 이미 등록문화재로 등재된 장수경찰서 관사와 흡사한 모습인데, 이곳도 그만한 가치가 있음에도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않아 더욱 더 황량한 모습이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정읍경찰서 관사건물. 이 부근에는 정읍군수 관사도 있었다고 한다.

정읍도심 새암로가 시작되는 제일은행 부근의 일본식 건물. 이른바 혼마치(본정통)이 시작되는 곳으로 당시 일본인들이 기존 상권을 피해 새로운 상가를 이루었던 곳. 지금은 의류판매점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

제일은행 뒷편의 건물. 이중처마가 일본식 건물의 특징을 이룬다.

정읍시 수성동, 정읍 구도심에 위치한 내장사 포교당이라 불리는 일본식 사찰건물. 군산의 동국사가 일본식 사찰로 유명하듯 이곳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 여겨진다.

금오호텔 앞, 쑥국과 모주로 유명한 충남집이 위치한 일본식 가옥 건물.

최근 철거되어 사라져버린 정읍시 연지동(터미널과 정읍역 사이)에 위치한 일본식 가옥. 완벽한 모습을 가져 보존 가치가 있었는데 철거되고 지금 이곳은 부근 숙박업소의 주차장으로 이용된다.

정읍시 수성동(소지명으로 말하면 구미동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일본식 가옥.
첫댓글 차츰 사라져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