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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교회
계시록을 열면 특이한 두 여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중에 하나는 붉은빛 짐승을 탄 [음녀]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음녀를 두고 천주교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상대적 위치에 놓인 [해를 입은 한 여자]는 곧 “정결한 처녀요 교회다.” 라는 반증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실상도 그렇게 드러나 있음을 볼 것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해를 입은 한 여자]나 또는 [14만 4천인]도 다 식양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할 것입니다. 끌어다 인용한다 해서 다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제본문1절 :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12장에서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은 대략, [해를 입은 여자]의 정체와 발아래 [달], 그리고 그 여자가 난 철장권세를 부여받은 [아이]일 것입니다. 별은 거의 12지파장 내지 12사도로 보고 있습니다.
주제본문은 앞으로 닥아 올 종말에나 일어날 사건입니다. 금번 이 사건을 다루므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교훈과 반면 우리들의 각오가 무엇인지에 대한 확고한 해답이 필요한 때(시기)입니다. 하여 어정쩡한 주해는 시간과 에너지만 소비할 뿐입니다.
필자의 견해를 피력해 나가 봅니다.
시작되는 일(1)절에서 한 여자가 해. 달. 별로 몸을 두른 장면은, 이는 마치 군인들의 군장이나 또는 여자들의 장신구처럼 일월성신으로 온몸을 둘렀습니다. 이러한 일은 의역이 아니고는 이해가 불가하다는 것을 피차가 잘 알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해]는 의역적인 면에서 이를 [하나님]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이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별도 12지파 장 또는 12사도로 그렇게 擬人化(의인화)해서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리만큼 달에 대하여는 견해가 완연히 엇갈리고 있습니다만, 이점에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해와 별을 인격으로 대비해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라면 달도 인격화 하여 예수로 봐야 이것이 균형 잡힌 성경관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여 필자는 달을 예수로 보는 견해입니다. 그 연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음어로 된 이 [해를 입은 한 여자]의 독특한 점은 바로, 짧은 한 구절 안(속)에 [해] [달] [별]을 한데 엮어 놓은 것입니다. 헌데 이 해, 달, 별을 보는 관점은 한 결 같이 인격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려는 것들이며, 이 때 특이한 현상은 바로 이를 보는 이들은 다 똑같이 본능적으로 요셉의 꿈을 푼 야곱의 해몽과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감출 수가 없는 심정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를 애써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어머니격인 달이 예수라면 여자의 발아래에 있다는 자체가 모순이요 치욕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기우요 오판임을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만이 해를 입은 여자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창37:9~11>
야곱은 요셉이 꿈에서 본 해를 아버지로 해몽했고, 주제본문 1절에 등재된 해도 누구나 하나님이라고 하니, 그러면 하나님은 곧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꿈속의 일월성신(해달별)을 두고 직계가족에 빗대어 해몽한 것은 곧 오늘날 교회의 구성요원을 상징한 암시였습니다. 교회는 넓게 보면 우주적이나, 작게는 가정(집)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교회의 원리요 실상인 것입니다. 가정은 位(위)와 역할이 확연히 다릅니다. 敎會는 會社와는 다르게 아버지와 자녀들이 있기에 가정에다 교회를 두셨던 것입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고전16:19> 참조<골4;15> <몬1:2>
하나님은 아굴라와 브리스가와의 가정이라고 하는 집에다 거처로 삼으셨기에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이집은 곧 하나님이 피로사신 교회입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
교회는 집이요 가정이기 때문에 교인들 상호간의 호칭은 형제자매로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本節에서 해를 입은 “한 여자”라는 것은, 이는 곧 협의적인 면에서는 일개 개인인 나를 지칭키 위해 단수로 표현한 것이며, 광의적인 면에서는 여자는 교회로 보기 때문에 이는 거룩한 무리들을 대변한 暗語(암어)의 [단수]에 지나지 않은 [단어]인 것입니다. 우리는 단수(개인)나 복수(교회)나 간에 신앙의 유전자가 저 여자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뜻을 깨닫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 달 별은 바로 한 가정의 살과 피를 나눈 직계가족을 묘사한 상징적 여자요 따라서 내용도 일개 가정사의 스토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를 가정에다 두시는 목적은 진리매매근절과 만민이 동시에 다 믿을 수 있도록 장소와 시간을 배려해 주시는 하나님아버지의 은덕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가정에다 두셨다는 것을 유념하신 채 言路를 따라 내려가셔야 될 것입니다.
12장의 중요한 부분을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대략 아래와 같은 것입니다
[해]는 우리의 家長 [하나님아버지]를 상징한 것이며,
[여자]는 [교회]를 지칭한 또 다른 문학적 용어요,
여자의 발아래 [달]은 우리 주 [예수]를 반영한 것이며,
면류관의 [12별]은 [12사]도요,
철장권세를 보장 받은 [사내아이]는 [순교자]이며,
[남은 자손]이라고 한 이 무리들은 환란을 통과한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한때 두때 반때]는 사건의 시기가 지상최대의 [대 환란]때를 말씀함입니다.<단12>
※ 여자의 정체는 교회요 그 교회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무리들입니다.
總體的 日月星辰의 意 (총체적 일월성신의 의)
이 여자는 음녀와 다르게 일월성신으로 치장을 했습니다. 이는 바로 이 여자의 [소속]은 하늘에 속해있다는 의미이며, 반면 땅의 음녀와는 그 [위상]과 [가치]가 [천양지차]임을 보여주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치와 소속은 하늘입니다.
신분과 소속 ; 먼저 우리(교회)의 신분과 소속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현 위치 ; 다음은 우리의 현재위치를 찾아봅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12;22~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18:36>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3:20>
대략 여기까지만 상고해 봐도 우리의 신원과 위치가 하늘에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해를 입은 여자는 주님의 몸 된 교회임을 알 것입니다.
이제 좀 구체적이요 보다 면밀하게 풀어가 봅니다.
[해를 입은 한 여자] ; [해]는 어둠이 없는 밝은 빛으로써 이는 성도들의 부끄러운 죄가 씻기어 깨끗해졌다는 의미요, 빛 가운데 있으니 행실이 바르다는 뜻이며, 여자(교회)가 해를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또 해속(안)에 여자가 들어 있다는 말이 되므로,
+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3:3>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자신 안에 깊이 묻어 감춰두시어 사단으로부터 우리를 뺏을 수 없도록 조처해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나는 하나입니다. 이제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입니다.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 야곱은 解夢(해몽)에 있어서 해는 아버지로, 달은 어머니로, 그리고 별은 아들들로 풀었기에 필자는 여자의 발아래 달을 예수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서두에서 모든 이들이 다 해와 별까지는 인격체로 인정한다면 달도 인격체로 보는 것이 이 마당에서 만은 일관성과 균형 잡힌 성경관이라 할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꾼 꿈속의 일월성신을 한 가정에 빗대어 해몽했습니다. 하여 예수께서는 자신의 옆구리에서 우리를 출산해 내셨기에 이것은 어머니와 동일한 사역이라 이를 달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달이 해를 반영하듯 성자께서는 성부를 한 치의 오차 없이 모두 다 반영하셨습니다.
발아래 예수 ; 그러면 왜 여자의 발아래 예수가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반석위에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는 건축공법의 논리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그러한 공법을 채택한 연유는 음부의 권세가 요동쳐도 진동치 못하도록 방지책의 일환인 특단의 조치로써 이는 지상에 더없는 천국 技法인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히12:28>
교회는 지지기반이 단단한 바위요 이 바위는 반석이라 하며 반석은 바로 예수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10:4>
위 두 구절말씀인즉 교회아래는 반석이 있다는 것이고, 이 반석은 곧 예수라 하셨으니, 이제 이를 계산해보면, 성경은 교회를 여자라 하니 그러면 해를 입은 여자발아래 달은 자연스럽게 반석이신 예수다. 라는 해답이 절로 산출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아래 반석은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 하도록 견고한 조치이며,
+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하셨도다.(셀라) <시89:37>
달이신 예수는 우리의 증인이시오 그 증거와 교회는 달처럼 영원히 견고할 것입니다.
또 다른 차원에서는 교회를 보양함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임금들은 백성위에 군림하나 우리주님은 몸을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맡은 자들은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5:3>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5~11>
우리를 위하여 극히 높고 높은 분이 아주 낮고 낮게, 아니 죽기까지 낮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두고 사물인 반석을 인용해 표현하는 시점에, 사물인 달을 예수로 인용함에는 별반 무리가 없다고 보며, 위치에 있어서 한편에는 “반석[위]에” 또 다른 편에서는 “발[아래]”,이렇게 같은 대상을 두고 [위]와 [아래]라는 상반된 단어를 사용했으나 이 두 낱말의 앞뒤문맥을 보면 여기서의 [위][아래]는 동일한 위치를 표현한 것으로 同意同伴의 단어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또 달이 여자의 발아래 있다면 그 발은 달처럼 아름다울 것입니다.
+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5>
예수이름을 傳播하는 자들의 발은 저 여인의 발아래 달처럼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해야하는 것은 우리는 오직 이곳에서 저곳으로 다만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 존재일 뿐입니다. 오로지 그분만이 이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심입니다.
음녀는 존망을 짐승에게 맡겼고 교회는 존망을 달이신 예수께 맡긴 것입니다.
여자의 발아래 달은 예수입니다. 예수 없는 교회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교회라면 의당 하나님아버지와 예수와 12제자가 있어야 교회가 있어야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열두 별의 면류관] = <계1;20>에서는 사람(使者)을 사물인 별에다 비유로 인용했습니다. 하여 열 두별은 곧 12사도들입니다. 교회의 근본 성분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나 교회의 출발지는 그의 12사도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피로 주님의 피를 증거 하였기에 저들의 복음은 천국복음이요 영원한 복음입니다. 하여 저들은 하나님의 동역 자들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 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3:9>
저들은 우리에게 집을 짓도록 터를 가져다준 자들이므로 그들은 아래와 같이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12:3>
여러모로 보나 12별은 12사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12사도들은 주님의 남은 고난을 자기들의 육체로 채웠습니다. 순교는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써 세상에서는 패배로 취급하나 천국에선 승리로 간주되어 승리의 상징인 면류관을 여자의 머리에 씌워주셨습니다. 교회는 승리의 산실입니다. 우리의 전쟁은 힘겹게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겨놓고 싸우는 100%승리의 전사들인 것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16:33>
천상의 여인은 그 옷이 태양처럼 찬란하고, 머리는 별빛처럼 초롱하며, 발은 달빛처럼 영롱한 빛을 띤 청아한 여인상입니다. 하여 이는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여기서 자각이 필요한 점은 12(별)사도나 또는 교회(여자)는 예수를 낳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여자나 12사도를 낳는 다는 점을 유념하시고 전개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점에서 착각들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시정들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제본문 2절;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산모의 진통은 옥동자를 낳듯이 이는 창세 이후 전무후무한 환란의 진통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이며, 여자 즉 교회가 진통을 겪게 되면 순교자가 발생하게 되는 법입니다. 어찌 고통과 진통 없이 나라와 민족이 생기겠습니까! 2절에서 여자가 해산의 진통으로 울부짖음은, 재림직전에 일어날 교회의 환란을 암시한 장면입니다. 이사야66장을 잘 음미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제본문 3절 ;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사람은 영과 육으로 나뉘어 있듯이, 붉은 용은 미혹의 영이요 붉은 짐승은 용의 육체와 같은 존재입니다. 말세에는 성도들이 붉은 짐승에게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일곱 머리 열 뿔에 대하여는 상식이 부족하여 이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주제본문 4절 ;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용의 꼬리로 별 삼분의 일을 땅에 내던진 것을 두고 다니엘의 예언을 빌어 말하자면 성도들의 권세가 깨어지는 그야말로 참혹한 환란이 시작하는 중일 것입니다. 여기서 붉은 용은 계시록 17장에 등장 하는 붉은 짐승과 동의어이며, 이는 마치 2000년 전에 있었던 사건처럼, 요셉의 아내 마리아가 주님을 낳으니 헤롯왕이 죽이려는 것과 동일한 사건입니다. 말세에도 이런 사건이 다시 한 번 재현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여과기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붉은 짐승(용)에 대한 보다 나은 것을 보려면 [멸망자의 성전]이라는 글을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짐승에 대하여는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주제본문 5절 ;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누구든지 이 철장권세를 얻어 내려면 먼저 모든 율법과 외식적인 직분을 내려놓고 그야말로 평신도가 되어 같은 형제의 반열로 들어서서 그들을 섬기며 그리고 주의 이름을 끝까지 부르다가 목 베임을 받아 순교를 해야 비로소 철장권세가 손에 쥐어지는 것입니다.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 많은 이들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하니 이를 지레짐작으로 예수로 알고 말들을 합니다만, 그러나 성도들 중에 이긴 자 즉 순교자에게도 주어지는 권세가 철장권세입니다.
+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2;26,27>
[그 보좌] = 寶座(보좌)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는 임금들이나 앉는 자리로 알아 이를 예수님의 보좌로 생각키 쉬우나 이는 오산인 것입니다. 이것도 순교자들에게 적용되는 단어의 보좌임을 알고 이글을 해독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 <계20:4~6>
그렇습니다. 순교자들은 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좌라는 말도 그들에게는 무리가 없는 단어인 것입니다.
[올려가더라] 우리가 여기서 주의할 점은, 올라간다는 것은 휴거가 아니라 순교자의 영혼들이 승천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휴거는 죽은 자와 산자가 동시에 구름 속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만, 순교는 그 영혼이 그때그때 수시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여 아이가 올려갈 때는 [함께] 또는 [구름 속]으로 가는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철장권세는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철장권세는 마리아에게나 혈통적 이스라엘유대민족에게나 기타 타 교파에게 부탁이나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의 이름을 굳세게 잡고<계2;13>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하며<계2> 그 이름을 배반치 않는 <계2;9> 교회와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로보아 이 해를 입은 여자는 종말에 있을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교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세에 또 다시 탄생하시어 부활승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아실 것이니 그러므로 이 아이는 순교자들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주제본문 6절 ;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해를 입은 여자]는 주님이 피로사신 교회로써 종말에 일어날 예언적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해를 입은 여자]가 [이스라엘] 또는 이를 [마리아]로 보는 견해들은 합당치 못한 주해입니다. 해를 입은 여자의 사건에 대한 시기가 종말 직전이라는 것이 성경으로 밝혀지면 허다한 왜곡된 주해들은 물러가고 정답으로의 길은 좁혀질 것입니다.
[사건의 시기] (중요한 대목입니다. 주의하셔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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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본문<계12>장에는 해를 입은 여자가 뱀의 낮을 피하여 양육 받는다는 말씀이 두 번 수록되어있고, 그 사건은 내용과 기간이 동일한데도 불구하고 그중에 특이한 사항은 기간을 표기한 단어입니다. 6절에서는 “천이백육십 일 동안”, 이렇게 [일(日)]로 표기되어 있는가하면, 14절에서는 [때]라는 단어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이라고 표기되어져 있음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시록12장 사건은 종말에 이뤄진다는 단초를 제공해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그 증거는 <단12:2~9>에 기록되어져있습니다.
+ 내가 들으니, 모시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사람이 그의 오른손과 왼손을 하늘로 쳐들고 영원히 살아 게신 분에게 맹세하면서 말하였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지나야 한다. 거룩한 백성이 받는 핍박이 끝날 때에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단12:7>
위 말씀의 내용은 천년왕국직전에 일어날 사건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계시였습니다.
이 두 신구약 성구에는 기간의 표기가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단어가 같았으며, 또 다른 일맥상통한 점이 있는데, 이는 바로 다니엘서는 거룩한 백성이 핍박을 받는다고 써 있는가하면, 해를 입은 여자도 핍박을 받는 다는 것이 공통된 점입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계12:13>
여기서 크게 주목해야할 것은 ☞핍박입니다. 핍박의 내용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단12:1>
이에 대하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도 동일하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마24:21,22>
<계12장>사건은 종말직전에 개국 또는 창세후 전무후무한 대 환란이 벌어질 것이요, 여자는 단수가 아닌 복수로써 거룩한 백성임을 알려 주시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해를 입은 여자가 이스라엘이라든가 또는 마리아라는 註解(주해)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음을 보셨을 것입니다. 허면 이제 이 여자를 교회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소유된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세에는 핍박을 받는다는 메시지입니다.
여자로 표기된 교회 = 다니엘서는 주의 거룩한 백성을, 계시록에 와서는 왜 여자로 표현했을까!!.... 그 이유는 우리의 왕이신 주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백성과는 유기적인 관계라서 부부로 묘사한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살아있는 교회는 그 사명이 생육과 번성이므로 하여금, 예수는 신랑, 그리고 그의 백성은 여자 또는 신부라 하여 주님과의 일심동체를 표현한 것이며, 교회는 출산의 기능이 있어 복음의 자녀들을 배출하기에 여자라는 단어가 합당한 표기라서 이에 채택된 단어일 것입니다.
반면 교회는 광의적인 면에서는 여자이나 부분적으로는 굳세고 강건한 남자 또는 군병. 종. 나그네 또는 밭 질그릇 등등 단어에 구애받지 않고 현장사역에 따라 그에 합당한 단어를 그 때 그 때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전개되면 신부된 교회는 주님과 더불어 신혼의 단꿈을 만끽할 것입니다.
주제본문 7~9절 ;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미가엘은 천상과 지상에서 양면전쟁을 할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12:1~4> [미가엘이 도울 것이다]
1 그때 대장군 미가엘이 분명히 일어설 것이다. 네 민족을 지키려고 싸우러 나설 것이다. 그때에 엄청나게 어려운 때가 찾아오리라. 나라가 생긴 이래 그토록 어려운 일이 있었던 때가 일찍이 없었을 것이라. 하나 그때에 하나님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 네 백성들, 그 어려움 벗어나리라.
2 그때에는 땅속에서 잠자던 자들이 깨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사람도 있고 영원한 수치와 멸시를 당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3 그러나 하나님의 슬기를 간직한 이들과 많은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이끈 자들은 하늘의 별들처럼 언제까지나 빛나리라.
4 그러니 다니엘아, 이제 이 책을 덮어 두어라. 아예 묶어 두어라. 마지막 때가,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묶어 놓은 곳에 도장을 찍어 놓아라. 수많은 사람들이 어찌해야 좋을지 이리저리 헤맬 것이다. 앞일이 어찌될 줄 몰라 허둥댈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되면 이 책을 보고 많은 이들이 깨달으리라.<현대어>
다니엘이 묶어 봉인한 비밀을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활짝 열어 만천하에 공개해 주셨습니다.
이 글을 보시고 깨닫는 자가 많아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주제본문 10절 ;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우리를 계속 대적하며 참소하던 <욥1;9.2;4> <슥3;1,2>이런 자들이 천상에서는 쫓겨나 천상은 정화되어 좋겠습니다만 지상은 참으로 힘겨운 전쟁을 치러야할 것입니다.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기었으니] 여기서 우리는 심호흡을 가다듬고 이기는 것에 대하여 심사숙고할 때입니다.
이기는 자들에 있어서 누가 누구와 무엇 때문에 싸워야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 결과로써 상급은 어떠한가를 연구하여 그 답을 손에 쥐고 신앙생활을 해야 정도로 갈 것입니다.
[주체] ;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에 있어서, 이기는 자들의 주체는 목사도 아니요 장로도 아닌 그야말로 평신도라고 하는 형제들이며,<계12:11>
[방법] ; 이들의 이기는 방법은 순교로서 죽기까지 자기생명을 아끼지 아니함이며,<계12:11>
[대상] ; 그들의 敵(적)은 666짐승인 율법주의자들이 될 것이고,<계13;15~>
[목적] ; 이들이 이렇게까지 싸워야 할 목적은 곧 주의 이름을 사수하여야함에 있는 것입니다 <행15;25>
+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행15:25>
그로 말미암아 이들의 상급은 철장권세를 받아 만국을 통치할 것입니다.<계2;26~>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겨야 할 대상이, 내 육체나 자아가 아님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본에 지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철장권세를 목표를 둔 성도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최종목표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시말 하자면, 내 육체와 자아를 이긴 자들이 그 다음으로 해 내야 할 것이 바로 목숨을 걸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을 사수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 <행21:13>
참 아버지의 이름 참 보혜사의 이름 참 성자의 이름인 예수라는 이름을 위하여 내 목숨을 바칠 것을 각오하고 그날이 오는 그 때까지는 그 이름으로 내 자아를 날마다 죽이시며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한날 666짐승이 나타나면 주의 이름을 부르지 못 할 극한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주제본문 12절 ;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본 절에서 너희는 우리그리스도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며 이 상황이 내 생애에 벌어진다면 이제 전원이 다 환란을 준비하셔야 될 것입니다.
주제본문 13절 ;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환란을 넘어 순교도 각오하셔야할 것입니다.
주제본문 14절 ;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여기서 참으로 궁금한 것이 광야일 것입니다. 하여 어떤 목사는 광야를 글자 그대로 해석한 나머지 광활한 목초지인 몽골로 가서 벌써 자리를 잡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이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 광야를 일명[가정집교회]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도망 가야할 곳은 곧 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일명 가정교회!.... 참으로 황막하기 그지없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성교회처럼 웅장한 건물도 없고 고도의 언변가도 없으며 화려한 프로그램도 없어서 그야말로 황망한 광야가 따로 없다 싶은 곳입니다. 음식으로 치자면 고기와 부추와 산해진미 같은 것이 기성교회라면, 가정교회는 만나와 같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666짐승의 박해를 덜기위해 가정으로 들어가 예배를 드려야할 것입니다.
1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당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그 날에 예루살렘 교회가 크게 박해받기 시작하여, 사도들 이외에는 모두 유대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그를 생각하여 몹시 통곡하였다. 3 그런데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서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끌어내서 감옥에 넘겼다.<행8;1~3>
위의 핍박이 말세에 재현될 것입니다. 스데반은 죽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죽음을 맞았고 사울(사도바울의 또 다른 이름)은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자들을 잡으려고 공문을 받아서 다메섹까지 잡으러 다녔습니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행9;13,14>
이것으로 미뤄보아 가정에서의 예배를 활성화하여 만인제사장이라는 말이 실상으로 이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종말에 휴거는 집에서 들림 받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눅17:34,35>
잠자리(침상)와 맷돌은 가정집에 있는 것들입니다.
휴거의 대상은 직계가족입니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食口)]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벧후2:5>
교회는 인수와 상관없이 식구의 개념이 아주 강하고 뚜렷해야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3:35>
휴거지는 가정이요, 휴거 자들은 가족들인 것을 성경에서 보셨다면 말세에 이리저리 방황치 마시고 가정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예배를 드리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여기서 잠깐 敎會 觀에 대하여 변명의 한 말씀드리고자합니다.
교회의 장소가 꼭 가정집이여야하고 인수도 10여명을 기준으로 하다는 것이 아니라, 장소는 지상에 기존해 있는 천연적인 것들이나, 아니면 일개 개인의 소유로 된 건물이던지 무엇이나 무상으로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요, 인수는 제한을 두지 않으나 교우들의 관계는 가족적인 인식과 호칭도 직계가족 간에 통용되는 것이라야 한다는 지론입니다. 교회의 인수는, 옛날 대가족시대의 숫자, 즉 예수께서 제자들과 떡을 떼던 숫자가 제일 이상적이라 하겠습니다.
해를 입은 여자는 교회요 이는 바로 한 피 한 몸을 나눈 한 家庭 事의 스토리입니다.
주제본문 15,16절 ;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막8:15>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히2:1>
저로써는 좀 더 깨달음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두 광야 = 성경에는 광야가 두 종류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양육 받는 광야가 있는가하면, 다른 하나의 광야는 마귀의 거처로써 이는 사막을 두고 비유로 하신 광야일 것입니다. 이 광야의 특징은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그 광야에서 샘솟던 구약의 반석이 지금은 가정으로 옮겨져 있음을 자각할 때입니다.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계3:20>
아멘, 당신은 우리 집의 가장되시고 당신의 계명은 우리 집 가훈이십니다.
주제본문 17절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여자는 복수의 집합체] 주제본문 첫 구절에 [해를 입은 한 여자]라는 단어가 단수로 기재 되었기에 이를 마리아로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본문은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이라는 문자에서도 자들 이라는 복수의 단어가 사용된 것은 그 여자가 단수가 아닌 복수의 집합체임의 端的證據(단적증거)인 것입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 ; 남은 이라는 말은, 같이 있다가 한쪽이 없어지고 한쪽만 처져있는 것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하여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는 말은 곧 해를 입은 여자가 낳은 사내아이와 같은 한 무리로 구성된 집합체임이 전제되는 단어의 문장(구)입니다.
이 여자는 곧 말세에 교회에서 일어날 일을 보여주신 것으로서, 여자의 일부의 무리는 순교하여 하늘로 불리어 올라가고, 여자의 남은 일부의 무리는 죽음에 버금가는 환란을 통과 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이르는 말인 것입니다. 여기서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숙제의 답을 잘 풀어준 사람은 사도바울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죽은)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4: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4:15>
위 본문에서 [자는 者]라 하는 것은 순교자를 두고 이르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명은 장문관계로써 생략하되 이를 요청하거나 또는 필요시에는 하시라도 게시해 올리겠습니다.)
말세에 순교가 있는 것은 다 못 찬 14만 4천의 수가 완성되는 것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계명에 대한 오류] 여기가 바로 주의가 대단히 요구되는 구절입니다.
+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문제는,
많은 주석가들이 본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한 이 계명을, 이를 마치 십계명으로 오인한 상태에서 해석에 임하기 때문에 오늘날 엉뚱한 주해를 양산해 내어 수다한 무리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계명(眞 誡命)] =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우주에 단 하나밖에는 없는 것처럼, 계명도 오직 단 한 계명만이 존립하여야 합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존전에 인정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구계명인 십계명은 이미 폐지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해 놓았기에 그러므로 [해를 입은 여자]가 마리아나 또는 이스라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할 것입니다.
신약에서 하나님敎會의 誡命은..................................
+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일3:23>
.............................................................................
이것이 그야말로 <계12;17>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 진(새) 계명과 구 계명이 충돌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고, 그 바람에 목숨을 잃는 사람과 환란을 겪어야 할 사람으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을 겪고 살아남은 주님의 몸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참 계명을 사수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곧 구 계명에는 여호와라는 성부의 이름이 들어있고, 새 계명의 신관에 있어서는 예수라는 성자의 이름이 들어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초대교회처럼 다시 이름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행9:14>
종말에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규합된 무리들이 나타날 것이나, 그러나 그 무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짐승 격에 지나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 무리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앞세워서 자기들의 교파내지 교주의 이름을 성도들의 이마에 인 치려고 광분 할 것입니다.
이름싸움은 곧 계명싸움이요, 계명싸움은 곧 이름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이름을 들고나가 신자들의 이마에 인을 치듯이 전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의 증거] 예수의 증거라 하면 여러 각도에서 여러 면으로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종말과 연관된 예수의 증거를 론 해야 이것이 바른 메시지요, 바른 복음이 될 것입니다.
예수의 증거는 두 방면으로써 표면적인 증거와 지식적인 증거가 있으며, 그중에 첫째는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행태가 외적증거이고, 다음으로 지식적 증거에 있어서는 그렇게 부르짖는 그 이름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여 바로알고 전파함이 진리복음증거입니다. 주의 이름 안에는 천상천하에 중요한 모든 것들이 다 그 이름으로 약속이 포함되어 있음을 깊이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타인들에게 주의 이름을 불러 그들에게 그 이름을 들려주고, 그 이름을 들은 그들에겐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할 필요성, 즉 그 이름의 가치성을 일러 전하야 할 것입니다.
그 이름은 곧 휴거, 심판여부, 하나님의 자녀, 죄 사함, 생명, 14만4천, 영복(靈福), 영원한 복음, 기타 등등이 다 주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증거 하는 것은 곧 그것이 천국복음이요 그것이 영원한 복음이며 이것이 곧 목숨을 걸고 사수하여야 할 증거의 이름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24:9>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
+ 20 이런 일들을 증거하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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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형제님! 긴 글 올리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 형제님께서 올리신 글이 바른 것인지 아닌지 분별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형제님의 글을 읽을 수 있을만한 수준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는 분들이 저희 안에는 계시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희 홈페이지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희는 말씀을 단순하게 믿으며, 믿은 말씀을 삶에서 십자가로 살아내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그리샴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지식적인 글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낮고 겸손한 마음으로 간증하거나 고백해 주시기를 더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피차간에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는 일이라 믿기에 그렇습니다. 저는 형제님이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계시는지에 관하여 보다 형제님이 어떻게 생기셨으며, 주님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지에 대하여 더 관심이 많습니다. 얼굴은 그 사람의 아주 많은 것에 대하여 말하여 주는 편지이며, 삶에 대하여 나누는 진솔한 이야기는 그 사람의 향기를 드러내 준다고 믿기에 그러합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서로 논쟁이 될만한 지식에 관한 교제보다도 "형제 안에 있는 그리스도!", 즉 형제를 통하여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편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님께서 형제들 간에 지식을 가지고 논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식은 형제를 서로 넘어지게 하는 올무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자신의 삶 가운데 거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간증이나 고백은, 늘 은혜에 목마른 형제들에게 시원한 생수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교제나 나눔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매우 기뻐하시는 것 같더군요. 주님도 지식을 지극히 숭배하는 사람들에 의해 판단 받으셨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그러한 우를 저희도 범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일은 어린 아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더군요. 아니 어린 아이라야 주님을 바르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린 아이는 결코 지식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에 말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정말 단순하고 순수하게 사랑을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저는 늘 배우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헛된 지식이 저의 눈을 가리우지 않기를 진실로 바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 책 한 권이면 족하고 족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주님을 사랑할만한 모든 은혜는 이미 다 입었다고 믿습니다. 그리샴의 모든 동역자분들 역시도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린 아이들처럼 순수하게 믿고 살아가고자 하는 그리샴 공동체 안에서, "부르지저" 형제님께서도 편안히 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반갑습니다, 형제님! ~~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날마다 나의 실존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경험함으로 알고 있는 지식의 말씀들을 몸으로 더 깊이 배우기 원합니다. 인도하여 주시는 성령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라스피노 형제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제 안에 성경의 지식으로 체워지기 보다는 오직 순결한 마음과 사랑으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 되길 원합니다. 그것을 공동체의 삶을 통하여 발견하고 배우며 날마다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길 원합니다. 부르지저님께도 주님의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샴 공동체를 통하여 날마다 진실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아멘! 내 삶에 말씀이 실체가 되어 행하길 원합니다. 할렐루야!
형제님의 순수한 신앙에 높이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염려와 조언 고맙습니다.
여기서 제 변명은,
얼굴도 그리고 심성도 궁금하고 중요하겠지만
신앙관이 어떠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사료되어 이를 드러내 보여드렸을 뿐입니다.
수용 여부는 각자의 몫입니다.
주안에서 평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