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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의 효심을 기리기 위한 절
<삼국유사(三國遺事)> ‘효선편(孝善編)’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때, 손순(孫順)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홀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 그는 부처님의 감응으로 신기한 석종(石鐘)을 얻어 출천(出天)의 효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손순은 홍효사(弘孝寺)라는 절을 세우고 석종을 안치하여 부처님의 은혜와 부모에 대한 효행을 널리 선양했다고 한다. 경주 모량리에 있었다는 이 절의 석종은 후백제와의 전란으로 없어지고 절만 남아 있었으나 그 절 또한 세월 속에 사라졌다. 이에 경주 손문(孫門)의 후손이 손순의 효행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1997년 이곳에 건립한 절이 홍은사다.
절집을 나서서 오른편의 제법 널찍한 산길로 오른다. 15분쯤이면 ‘약수터 정상 1.1km’라는 푯말이 서 있다. 약수는 말라 버렸고 계곡에 걸린 통나무 다리를 건넌다. 낙엽이 푹신한 산사면을 가로질러 나아가면 주능선에 닿는다. 이곳에는 묵은 묘지 4기가 산등성이 따라 나란히 있다. 흥해 배씨(興海 裵氏)의 묘지다. 문인석을 갖춘 흐릿한 비문을 보니 생전에는 벼슬깨나 했음직하다. 후손이 없는지 비문은 마모돼 식별이 어렵고, 묘지에 자란 수목으로 짐작컨대 돌보지 않은 지 꽤 오래인 듯싶다.
이제부터는 구암지맥을 따르는 주능선으로 이어간다. 능선이라 하지만 수령이 제법 돼 보이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뒤섞인 울창한 숲속이다. 배씨 묘지를 뒤로 하고 된비알로 한 구비 넘어서면 ‘약산 700m’라는 푯말이 있다. 평탄하던 산길은 이내 경사가 가팔라지고, 하늘로 향해 곧추선 늘씬한 참나무들은 계절의 변화에 잎을 떨어내고 있다. 지그재그로 잇던 산길은 지형도상의 550m봉을 오른편에 두고 산사면 우회로를 따른다. 산비탈의 경사가 심하다보니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안전을 배려하지만 낙엽이 쌓인 산길은 무척 미끄럽다. 잠시 후 다시 주능선을 만난다. 정상 360m라는 푯말을 지나 올라서면 왼편 홍은사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벤치가 놓여 있고 곧 산정에 이른다.
정상에는 표석과 이 산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고, 뒤편에는 무덤 같은 봉화대터와 전망대가 있다. 그렇지만 산정에서의 주변 조망은 좋지 않다. 정상 가장자리에 설치된 목재 데크의 전망대는 임하호를 내려다볼 수 있지만 이곳 역시 주변의 수목으로 시원한 조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른편에는 용계다리가 내려다보이고, 왼편으로 멀리 수곡교와 중평신단지가 언뜻언뜻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펼쳐지는 임하호의 물살은 눈부시게 푸르고, 산중 호수를 떠올리게 할 만큼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임하댐은 다목적 수자원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4년 12월에 착공, 1992년 6월에 완공되었다.
잡풀에 뒤덮여 묘지처럼 돼 버린 봉하대터는 본래 약산 봉수대로 임서면과 임남면에 소속된 봉수로 보인다. 이 봉수대는 청송 진보의 남각산 봉수대에서 받아 다시 신석산 봉수대를 거쳐 안동 남산 봉수대로 연결시켜 주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산불이 휩쓸고 간 서북쪽 능선
하산은 일단 구암지맥의 마루금을 따르게 된다. 물론 중간 중간 헷갈리는 지점이 몇 곳 있어 독도에 신경을 기울여야 하지만 대체적으로 길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정상에서 서쪽(임하임도 푯말) 방향으로 내려서면 봉분이 큰 무덤을 만나고 15분 정도 지날 무렵 오른편 능선으로 이어가야 한다. 이제부터는 오른편에 임하호가 수시로 보이고,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야트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어야 하는 능선길로 금소리 갈림길까지는 빨라도 2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잠시 후 산불의 흔적이 시작되면서 묘지가 자리한 봉우리(447m)를 넘어 내려섰다가 다시 삼각점(길안 303, 2004 복구)이 있는 389.8m봉에 이른다. 잔디가 없는 마사토 묘지 1기가 있는 이곳은 시원한 임하호의 풍광을 가장 또렷하게 볼 수 있어 좋다. 소나무에는 ‘구암지맥 389.8m 준·희’라는 조그만 아크릴 표시판도 걸려 있다.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의 산길은 마루금을 따라 더욱 확연하지만 주변의 소나무들은 화마가 휩쓸고 간 생채기를 남긴 채 모두 고사하고 말았다.
숯덩이로 변한 나무들이 도열한 지대를 지나 바위가 듬성듬성한 능선으로 오르면 401m봉이다. 이 봉우리에서 뒤돌아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산등성이 끝머리에 약산 정상이 붓끝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 맞은편의 삼각형 봉우리(388m봉)를 쳐다보고 날등을 내려서면 불에 탄 이정표(약산 4.5km)가 쓰러져 있고, 산길은 388m봉 왼편 산허리를 가로질러 나아간다. 발아래로는 산자락을 휘감으며 흘러가는 길안천을 따라 고곡리, 멀리 금소리 일대가 훤하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다시 주능선을 만나고, 오른편 산자락을 따라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와 임하호를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 20여 분간 주능선과 야트막한 봉우리를 좌우로 넘나들며 산길이 이어져 다소 혼란스럽다. 드디어 산불지역을 벗어나면서 조림지를 만나고 드문드문 자리한 묘지를 지나면서 시야도 트여 임하리 일대를 볼 수 있다. 움푹 팬 구덩이가 보이는 봉우리를 지나면 지형도상의 269.4m봉도 머리를 드러낸다. 안부 소로를 지나 무명봉에서 서쪽으로 진행한다. 잠시 후 만나는 안동 권씨 묘지를 지나면 금소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여기서 구암지맥이 끝나는 임하리까지는 1시간이면 가능하다. 산행은 지맥의 마루금을 벗어나 왼편으로 내려서면 30분이 채 걸리지 않아 금소리마을에 닿으면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