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들어 ‘바람의 섬’에 가다
야생화 천국, 풍도
풍도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 위치한 조그만 섬이다. 대부도에서 24km 떨어져 있으며, 주변에 육도, 열도, 대난지도, 승봉도 등이 있다. 본래 남양군 대부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천군, 1973년에는 옹진군, 마지막으로 1994년에 안산시에 편입되었다. 공식 한자표기는 豊島이지만 바람이 많아 風島,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워 楓島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풍도 가는 방법은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하루 한 차례, 8시에 출발하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 여객선은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을 경유한다. 방아머리항에서는 9시 출발한다. 풍도에서 돌아오는 배는 홀수날에는 12시 30분, 짝수날은 12시 50분에 출발하며, 육도를 거친다.

풍도는 특히 야생화가 유명하다. 3-4월 봄철이면 마을뒷산이 온통 야생화 천국이다. 우리나라 섬 중에서 야생화가 가장 많은 섬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작가들이 꽃사진 촬영을 위해 자주 찾는 섬이기도 하다. 여객선이 하루 한 차례 밖에 없기 때문에 정기여객선을 타면 당일일정의 경우 섬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시간 밖에 없다. 여유있게 야생화 사진도 찍고 해안길 트레킹도 할려면 1박2일 코스가 바람직하다. 단체로 당일일정으로 다녀오고싶을 경우에는 영흥도 해양파출소 앞 낚싯배선착장이나 탄도항에서 아침 8시 이전 낚싯배를 빌려 다녀올 수도 있다. 야생화전문카페 등에서 이 방식을 이용하기도 하는 데 인원 20명 정도는 돼야 개인당 5만원 수준에서 다녀올 수 있다.

3월 22일(토), 필자가 속해 있는 사진동호회에서 계획했던 풍도 출사가 취소됐다. 20명 이상 돼야 낚싯배를 빌리는 데 인원이 부족하단다.
어찌할까 망설이다 아침 일찍 무작정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으로 차를 몰았다. 방배동 집에서 대부도까지는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대부도에서의 여객선 출발이 9시이니 시간여유가 있다. 드라이브 삼아 대부도에 도착하니 표가 이미 매진이다. 섬여행은 한국해운조합에서 운영하는 ‘가보고싶은 섬’ 홈페이지 등에서 인터넷 예약이 일반적인데 계획취소로 갑자기 ‘나홀로’ 풍도여행을 결심하다 보니 예약하지못하고 온 게 실수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선장에게 부탁해 본다. 혹시 취소하거나 미쳐 승선하지못한 여행객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궁즉통이랄까. 추가인원이 나 혼자 밖에 없어서인지 태워준다. 운이 좋다. 이렇게 해서 ‘바람 든 남자’ 드디어 '바람의 섬 풍도'에서 홀로 주말 1박2일을 보내게 됐다.

배가 방아머리선착장을 떠나자 마자 곧 구봉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구봉도는 ‘대부도 해솔길’ 트레킹 코스 1구간으로 구봉도와 대부도 사이 개미허리 모양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매우 아름다운 해안산책코스이다. 선착장에서 30분 가까이 가면 영흥대교 밑을 지나고 이후 넓은 바다로 향한다.

1시간 쯤 지나면 멀리 풍도의 윤곽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풍도 옆에 육도도 희미한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육도는 6개의 섬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0시 25분, 드디어 풍도 선착장에 도착, 아름다운 풍도마을과 주민들이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우측에 하얀 등대와 함께 풍도안내소가 보인다. 먼저 안내소에 들어가 풍도지도와 민박 소개, 주요 볼거리 및 야생화 등을 소개한 리플렛을 구한다. 안내소 옆벽에는 풍도를 소개하는 글 및 지도가 보이고, “풍도 야생화단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여진 현수막도 걸려 있다. 주민 한 분이 다가와 입도료 3천 원을 요구한다. 풍도민박에서 하룻밤 묵을 예정이라고 하니 통과시킨다.

풍도항과 마을이 매우 아름답다. 당긴 활 모양으로 둥글게 굽어진 해안을 앞으로 하고 후망산(175m)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후망산은 풍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일본과 청나라가 아산만에서 교전할 때 청인들이 망을 보던 산이라 하여 호망산(胡望山)이라 불렀는데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어 후망산이 되었다고 한다.

선착장 공터에는 ‘풍도소망탑’도 눈에 띈다. 신경을 써서 둘러보지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울 정도의 아주 작은 돌탑이다. 다양하게 채색된 돌을 쌓아 만든 소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소망탑일 것 같다. 풍도는 야생화단지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1894년 청일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던 ‘풍도해전’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서해안 교통교역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외세침탈이 잦았던 섬이다. 소망탑은 풍도의 아름다움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소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동북아 평화를 기원하는 염원도 담겨 있다.

여객선에서 미리 예약해둔 ‘풍도민박’(032-831-7637)에 짐을 풀고 서둘러 마을을 둘러본다. 주민은 불과 50여 가구, 주민수는 100명이 조금 넘는 것 같다. 한 때는 1,000명 가까이 살았다는데 주민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대남초교 풍도분교가 위치하고 있다. 유치원생 2명, 초등학생 2명에 선생님 2명이란다. 그래도 이 학교는 8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니슈퍼가 있는데 열쇠가 잠겨 있다. 나중에 알아보니 초인종을 눌러야 주인이 나온다고 한다.

파출소 분소도 있고 한전 발전소, 청년회관, 복지회관 등도 있다. 학교 담벽에는 이곳 분교 출신인 김준봉 시인의 시가 여러점 걸려있고 마을 담벽 곳곳에 벽화들도 눈에 띈다. 2012년 경기문화재단의 ‘풍도여지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벽화, 이정표, 조형물 등 섬마을이 산뜻하게 꾸며졌다. 섬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었다.

민박집에서 조금 일찍 점심식사 후 야생화단지로 올라간다.
마을에서 후망산을 올려다 보면 큰 은행나무가 보인다. 은행나무 옆 산길이 야생화군락지이다. 풍도민박 옆으로 은행나무를 향해 ‘동무재’라고 부르는 가파른 고갯길을 오른다. 고갯마루에서 좌측 은행나무 숲길로 향한다.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무려 510년이나 된 거목이다. 높이 25m, 나무둘레가 7.5m에 이른다. 은행나무 옆에는 마을주민들이나 방문객들이 쉴 수 있는 정자가 세워져 있고, 약수터도 있다.

경관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곳에 서면 풍도항과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바다 건너 육도가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은행나무는 풍도를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나무로, 이괄이 평안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인조가 난을 피해 풍도에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그 때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 한다. 왕이 심은 나무라 하여 ‘어수거목(御手巨木)’이라고도 부른다.

은행나무 우측 후망산 오솔길로 들어서면 야생화 군락지가 시작된다. 오솔길이 아기자기하다. 그냥 산책길로도 더할 나위없이 좋다. 지그자그로 후망산 정상까지 이어진 산책길 좌우에는 복수초, 풍도바람꽃, 노루귀, 현오색, 풍도대극 등이 지천이다. 가히 ‘야생화 천국’이라 부를 만 하다. 너무 흔해 꽃이 꽃같이 보이지않는다. 혼자 산을 헤매는 내가 반가운지 꽃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꽃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이 섬에선 꽃이 주민이고 사람이 꽃이다.

꽃들이 다칠까봐 조심조심 사진촬영에 들어간다. 맨바닥에는 작은 매트를 깔기도 하고 접사용삼각대를 세우기도 한다. 워낙 작은 꽃들이다 보니 접사를 위해 엎드리기가 일쑤인데 이 경우 꽃이 밟히지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오후 한나절 내내 촬영했는데도 지루하지가 않다.

오솔길 초입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꽃은 복수초다. 한 겨울 눈 속에서 환하게 꽃을 피우는 야생화. 설연화라고도 부른다. 히말라야 고산에서는 5-6천m 높이에서도 설연화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모양은 일반 복수초와는 약간 다른 것 같다. 풍도의 복수초는 가지복수초라고 하며 다른 곳보다 꽃이 크고 색이 진하다. 특히 꽃 아래에 진초록 잎이 꽃과 잘 어울린다.

바람꽃은 변산바람꽃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곳 바람꽃은 풍도바람꽃이라 부른다. 식물학자인 오병윤 교수가 2009년 변산바람꽃의 신종으로 학계에 보고하였고, 2011년 1월 국가표준식물목록위원회에서 풍도바람꽃으로 정식으로 명명됐다고 한다. 풍도바람꽃은 우선 꽃이 변산바람꽃보다 크다. 결정적으로는 밀선(蜜腺)의 크기다. 변산바람꽃은 생존을 위한 진화의 하나로 꽃잎이 퇴화하여 2개로 갈라진 밀선(꿀샘)이 있다. 풍도바람꽃은 밀선이 변산바람꽃보다 좀 더 넓은 깔때기 모양이다.

노루귀들도 힌색 또는 분홍색으로 하늘하늘 애교를 부린다.

노루귀의 줄기솜털이 햇볕을 받아 보석처럼 빛난다.

오솔길 후반에는 산 정상 아래 야생화탐방객안내소가 위치해 있고 조금 더 가면 T자 길로 갈라진다. 야생화 보호를 위해 오솔길 좌우에는 로프로 막아놓았다. 풍도대극은 T자길 좌측 능선 아래 약간 비탈로 내려가면 많다. 풍도대극이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40년 일본인 후루사와가의 주장이 일본 식물지(Journal of Japanese Botany)에 실린 것이 최초라 한다. 그는 풍도에 자생하는 종을 잎이 좁고 총포 내에 털이 밀생하는 특징을 가지는 것을 확인하여 변종으로 처리하여 학명을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우리나라 식물명감(박만규, 1949)에 ‘풍도대극’으로 기재되어 국명을 얻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풍도해안 산책에 나선다. 트레킹 코스는 풍도항 - 파출소-몽돌해안-등대-채석장터-북배-후망산 정상(군부대)-야생화탐방객안내소-야생화 오솔길-은행나무-마을 코스로 약 5km,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북배에서 후망산 정상까지는 희미한 등산로가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길이 조성되어 있지는 않다. 안산시에서 조만간 풍도둘레길을 조성할 예정이라 한다.

파출소를 지나 시멘트해안길로 들어서면 바다쪽 시멘트 턱에 풍도 주민 고상오님 필체로 섬 생활사와 주민들의 애환서린 글과 그림들이 적혀 있다. 겨울 내내 도리도리섬에 들어가서 어머니, 아버지가 굴 딴 돈으로 인천 유학했다는 얘기, 풍도의 옛 언어는 파도와 시집 온 여인네들의 도서지방어, 경기어, 충청어, 전라어, 황해어를 합쳐 만든 말이라는 얘기, 전쟁에 부모잃고 9살에 민며느리로 시집와서 고생만 죽도록 하고 새끼낳고 사니까 그래도 좋다는 송춘순 할머니 얘기 등. 이 역시 경기문화재단 문화활생공명 프로젝트 ‘아름다운 섬 풍도를 걷다’의 일환으로 만든 것이다.

해안길 코너를 돌면 멀리 하얀 등대가 보이고 산책로 따라 몽돌해안이 이어진다. 풍도의 몽돌은 ‘진달래석’이라 불리우는 붉은 색을 띠는 돌로 올망졸망하다. 몽돌해안 끝 산중턱에 세워진 등대는 1985년 8월 16일에 최초로 점등된 것으로 후망산 동쪽 인천과 평택, 당진항을 항해하는 선박과 어선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되었다. 170계단을 올라야 한다.

지금은 공사가 중지된 채석장터를 지나면 풍도의 명소 북배에 이른다. 풍도 서쪽 해안의 비경으로 붉은 바위를 뜻하는 ‘붉바위’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배’는 긴 바위를 뜻하는 것으로 푸른 바다와 붉은 바위들이 만나 풍도 만의 독특한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곳은 조망이 멋질 뿐 아니라 공터도 넓어 야영객들의 비박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몇몇 젊은이들의 야영 모습이 아름답다.

북배 앞바다에는 조그만 바위섬이 보인다. 썰물 때는 이 섬이 본섬과 이어져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고 밀물이 되면 다시 섬이 되는데 이를 ‘북배딴목’이라 부른다. ‘딴목’에서 ‘딴’은 ‘외딴’ 또는 ‘떨어진’의 뜻이고 ‘목’은 목처럼 가늘게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제 트레킹 후반이다. 후망산 정상을 향해 가벼운 산행을 시작한다. 북배에서 채석장 가기 직전 우측 능선을 타고 약 45분 쯤 비탈길을 오르면 정상능선 군부대 앞으로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가면 한전발전소를 지나 선착장으로 내려가고, 군부대 앞에서 좌측 능선으로 더 오르면 통신탑이 설치된 후망산 정상에 이른다.

정상을 넘어 조금 내려가면 다시 야생화군락지 상단에 위치한 야생화탐방객안내소를 만난다. 배 출항까지는 시간여유가 조금 있다.

오솔길에서 노루귀, 풍도바람꽃, 현호색 등과 다시 정을 나눈다. 자식들을 섬에 두고 떠나는 부모의 마음같이 서운하고 아쉽기만 하다.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면서 발길을 옮긴다. 꽃들이 작별인사를 하듯 살랑살랑 머리를 흔든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