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 만난 듯...2시간 넘게 이야기 꽃
입력일자: 2011-11-4 (금)
'고성서 서해까지'
정찬열의 최전방 지역 도보횡단
<9> 화천
화천군서 거쳐 마련해 모셔와 날마다... 팬들로 북적
“다음부터는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말에 너털웃음만
5월 11일(맑음) - 화천군 상서면 신풍리 2반 이정태씩 댁 -
아침에 광주를 출발하여 서울에서 일을 보고, 어둑 무렵에 화천읍에 도착했다. 오늘 저녁은 이정태씨 댁에서 지낼 예정이다. 엊그제 주유소에서 만났던 분이다.
거실 가득 나물을 말려놓았다. 아주머니가 산에서 나물을 캐 와서 삶은 다음 이렇게 방에 말린다고 했다. 농사이야기를 비롯 이 지방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6.25때 이야기,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 밤 깊도록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잠자리에 들었다. 창문을 여니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개굴개굴... 온 동네가 떠나갈 것처럼 울고 있다.
몇 십 년 만에 듣는 소리다.
낯선 나그네를 집에 불러 재워주는 주인을 생각한다. 헤어지면 그만인 사람에게 조건 없는 인정을 베푸는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이 따뜻해지는가 싶다. 나는 언제 누구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어준 적이 있었을까.
5월 12일(맑음) - 문화회관 방문, 이외수 소설가 면담,
날이 밝았다. 횡단 아홉째 날이다. 아침밥상에 봄나물이 상큼하다. 아주머니가 5년 전 산삼 캤던 이야기를 해 주신다.
산나물을 뜯으러 평소보다 약간 험한 산을 올랐는데 바위 밑에서 산삼을 발견했단다. 이 부근 산은 지뢰가 많기 때문에 1년에 한두 건씩 지뢰가 터져 사람이 죽거나 상하는 사고가 나기 때문에, 가급적 평소 다니지 않는 곳은 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 안 들어간 곳이 나물이 많이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깊은 곳으로 간다. 그날도 꽤 깊은 데까지 들어가 나물을 뜯다가 바위 밑에서 산삼을 발견했다.
산삼은 새들이 삼씨를 먹고 산 기슭에 똥을 싸 놓아 싹이 터서 자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삼을 모삼이라고 한다.
모삼은 그리 쳐주지 않는다. 모삼이 자라 다음 해에 아들 삼이 생겨나고, 아들 삼이 씨앗을 맺어 떨어지면 손자삼이 생겨나고, 그렇게 대를 이어 산삼이 번식하게 된단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운 좋게 모삼과 아들삼, 그리고 손자 삼을 함께 캐는 횡재를 누렸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춘천 감정소에 가지고 가서 물어보니 “한 뿌리에 소 대 여섯 마리 값은 받아야 겠다”고
하더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팔면 돈이야 좀 만져보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큰 돈 주고 산삼을 사 먹겠냐고,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산삼을 먹어보겠냐는 생각이 들더란다. 해서 그대로 집에 가져와 남편과 80노모, 그리고 아들 조카들까지 다 모아 식구들끼리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산삼 캤다는 소문이 나서 티비 방송국에서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산에 갈 때 입고 갔던 옷을 입으면 좋겠는데 꾸끔스럽게 장롱에서 옛날 어른들이 입으시던 옷을 꺼내와 연출을 하라는데 좀 불편하더라고 했다. 여하튼
방송국 기자들까지 산삼을 다 나누어 먹였다며, 산삼 캐가지고 동네방네 나누어 먹고 나니 참 마음이 편하더란다.
환하게 웃으며 얘기를 이어가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넉넉하다.
산새가 열매를 물어 나르고, 사람들은 거기서 자라난 산삼을 캐서 먹는다. 산새가 산삼도 낳고 나무도 낳는다.
시인은 이런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시로 풀어 쓴다.
“ 찌르레기 한 마리 날아와 / 나무에게 키스했을 때 / 나무는 새의 입 속에 / 산수유 열매를 넣어주었습니다 // 달콤한 과육의 시절이 끝나고 /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 바람이, 떨어진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 그의 몸 안에 남아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 싹을 틔워 잎새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 나무는 그렇듯 /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 새떼가 날아갑니다 / 울창한 숲의 내세가 날아갑니다.”
시인 유하가 쓴 “나무를 낳는 새” 전문이다.
집 앞에 있는 이 마을 ‘광염성결교회’ 로 화제가 옮아간다. 이 마을이 40여호 되는데 이 교회 목사님이 열아홉에 쳐녀로 이곳에 와서 75세가 된 지금까지 교회를 섬기고 계신단다. 주일 헌금 천원 이 천원을 모아 교회를 증축하고 주위에 교회를 3개나 세웠단다. 외식 한 번 한적 없이 처녀로 지금까지 지내고 계시는 분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 한 번 만나 인사나 드리고 싶다며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전화를 해 보더니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하신단다. 점잖게 퇴짜를 맞았다.
화제가 무궁무진이다. 사근사근하게 얘기를 잘하신다. 이 부근에 인삼밭이 많이 늘어 산삼을 캘 수 있는 확률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란다. 이 마을에서는 오이와 호박을 많이 심는데 가락동 시장으로 내다 판다고 했다. 작년에 어떤 농가는 2,700평 밭에 호박을 심어 1억 정도를 벌었다고 한다. 요즘은 농사도 계획을 세워 잘 하면 웬만한 도시생활 부럽지 않다고 덧붙인다.
아주머니는 산에 나물 뜯으러 가신단다, 어제도 나물 뜯어 한 방 말렸는데 오늘 또 가세요 하고 물으니, 요즘이 나물철이라 이 때를 놓치면 안 된단다. 그리고 오후에 문화원에 창을 배우러 가신단다. 창이요? 하고 물으니 장고와 창을 배우는 문화교실이 생겨 배우기 시작했는데 요즘 제법 늘었단다. 이따 오후에 시간이 되면 가보겠다고 했다.
이메일을 열어보니 이외수 소설가로부터 답장이 와 있다. 일정이 빡빡하니 다음 기회에 연락을 주시라는 얘기다.
지금 지나가면 언제 또 만나러 온단 말인가. 이정태씨가 함께 군청에 들어가보자고 한다.
화천군청에 들렀다. “산천어와 수달이 사는 물과 어름의 나라, ‘화천’” 이라는 홍보판 벽에 걸려있다. 담당직원을 만났다. 이외수 소설가의 일정관리는 대부분 아내가 하고 있는데 저녁에 글을 쓰고 새벽에 잠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방문객을 그 시간에 맞춰 오후에 받기 시작한다고 했다. 오후 4시경에 방문하기로 했다.
군청직원이 현황을 설명해준다. 화천군 인구가 3만 정도인데, 난 개발을 억제하고 자연친화적인 농업이 되도록 연구
계몽을 하고 있단다. 인구를 유지하고 위해서라도 아이들 교육이 중요한 부분인데, 영어권과 학생교류를 하고 있고,
더 확대하려고 한단다. 미국에 오래 체류하는 게 쉽지 않다면 단기간 체류하는 프로그램이라도 추진하고 싶은데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도와달라고 요청을 한다. 영어교사 한 사람당 일 년에 3천 만원 정도 지불하는 것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 일정은 화천읍 구경하고 문화회관에 들렀다가 이외수씨를 만나고 오는 것으로 정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정태씨가 술 끊게 된 사연을 얘기한다. 몇 년 전, 아내가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왔다고 한다. 신경성 무슨 증세라 하는데 서울에 큰 병원을 비롯 용하다는 의원은 다 가 보았는데 도무지 차도가 없었다. 생생하던 마누라가 덜컥 누워버리니 앞이 노랗더란다.
생각다 못해 내가 술을 먹고 마누라 속을 얼마나 끓였으면 병이 다 났을까 싶어, 본인이 술을 끊겠다고 아내 앞에서
맹세를 했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의 병이 나았다. 그래 그 때 이후로 술을 한 모금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거짓말 같은 참말이라며 껄껄 웃는다.
산삼을 캐 와서 팔지 않고 남편을 비롯 온 식구를 나누어 먹였다는 아주머니. 그리고 마누라가 아프니 평생 좋아했던 술을 끊어버린 남편의 이야기가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어제 서울역 지하철에서 보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하철 차창에는 좋은 시나 그림, 그리고 이야기가 붙어있었다.
“황혼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였다.
“몇 년 전 샌드라 대이 오코너(77세) 전 미국대법관 이야기가 신문에 보도되어 세상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미국 사법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 이었으며 이는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남편이 알츠하이머 병으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녀는 대법관과 남편의
내조자 사이에서 방황하다 결단을 내렸습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미련 없이 최고의 영예라고 생각하는 대법관 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점점 기억을 잃고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만난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주위에서는 오코너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오코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남편만 행복하다면 나는 기쁩니다.
그녀의 이 대답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그녀의 말을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젊어서의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고 황혼의 사랑은 다른 누군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 이라고...’ 점점 삭막해져가는
세상에 오크너의 헌신적인 사랑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화천군 문화회관을 방문했다. 아주머니들이 낮 시간에 모여 장고와 창을 배운다고 했다. 건물이 제법 웅장하다.
2층 나무 바닥이 깔려있는 널찍한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한 쪽 벽이 유리로 되어있다. 사람이 벽에 그대로 비춘다. 댄스 교습소에 온 듯한 느낌이다.
40이나 되었을까. 앳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 선생이 장고를 치면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 소절씩 짚어가며 선창을
하면, 여러 학생들이 따라 부른다. 척 들어보니 젊은 선생의 장구 다루는 솜씨가 범상치 않다.
장구는 허리가 잘록해 세요고(細腰鼓)라고 한다. 그래서 세워놓고 보면 꼭 모래시계 같다. 시간을 담고 있는 본색을
드러내는 자태이다. 장구 속에 있는 무한을 흠모하는 자를 고수(鼓手)라 한다. 그들이 호리병 속의 시간을 꺼내 대나무
채로 재단하는 것을 박(拍)이라 한다. 그리고 잘게 부순 박 위를 걷는 것, 그것이 춤이다.
장구 소리가 들리면 노래가 나오고, 노래가 가락을 타면 춤이 나온다. 하는 사람도 보고 듣는 사람도 절로 어깨가 들썩여지고 저절로 흥이 난다. 예술이란 게 별거 아니다. 하는 사람 즐겁고 보는 사람 재미있으면 그게 바로 예술이다. 음악도 미술도 문학도 다 그렇다.
우리 가락이라 그런지 어디서건 장구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흥이 난다. 꾸미지 않고 지휘하지 않아도 장단에 맞춰 흘러가다 보면 어느덧 감동의 바다에 이르게 하는 것이 국악이 아닌가 싶다. 자고로 ‘소리는 호남이요, 춤은 영남이란’ 말이
있는데, 오늘 장구에 맞춰 소리를 배우고 있는 이 강원도 아주머니들 때문에 ‘소리라면 강원도’ 라는 말이 나올지
혹 누가 알겠는가.
선생님이 장고를 멈추고 잘 못된 지점을 일일이 지적하며 다시 교습을 하고, 학생들을 차례차례 불러보라며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선생님의 사례비는 화천군에서 지불하고, 주일에 한 씩 모여 우리 고전 음악을 배운다. 2년 정도 하더니 제법 솜씨가 늘었다고 이선생이 은근히 마누라 자랑을 한다. 시골에서도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여가를 틈내어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니 다행이다.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라고 이선생이 덧붙힌다.
이정태씨과 함께 감성마을로 향했다. 모를 잔뜩 실은 차가 지나간다. 산골짜기를 한참이나 차를 타고 갔다. 꽤 깊은
산이다. 화천군에서 부지를 마련하고 집을 지어 이외수 소설가를 모셔왔다고 한다. 감성마을 입구 골짜기에는
돌배나무 꽃이랑 살구꽃이 피어 화사하다. 아직 길이 다듬어 지지 않아 자동차가 기우뚱거리며 힘들게 올라간다.
멀리서 보니 2층으로 된 제법 큰 기와집이 눈에 들어온다. 다리를 건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까이 가 보았다. 2층은 강당이고 아래층은 숙소로 사용하는 성 싶다. 큰 박스처럼 보이는 시멘트로 지어진 건물이 선생이 생활하는 건물이라고 했다.
비석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세워진 돌에는 이외수 선생의 글이 적혀있다. 이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각양각색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아무리 쓸모없는 /사람같이 보인다해도/ 반드시 남들과는 다른 / 보석 하는쯤은 가슴에 /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 이외수 장편소설, ‘칼’ 중에서 - 옆에 이런 말이 새겨져있다. “나 하나의 마음이 탁해지면 / 온 우주가 탁해진다. - 이외수 장편소설, ‘황금비늘’ 중에서 - 이런 말도 적혀있다. ”생각에 기인해서 인생을 살아가면 / 번뇌 속에 흔들리게 되고 / 마음에 기인해서 인생을 살아가면 / 평온 속에 안주하게 된다. - 이외수 장편소설 ‘황금비늘’ 중에서- “ 이런 말들이 적혀있는 돌들이 서른 개쯤 될 성 싶다. 글씨가 모두 같은 필체다. 다음에 선생으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로 받았는데 거기에 쓴 글씨체와 똑 같아 본인의 글씨인 줄을 알았다.
선생의 거처로 갔다. 군청직원을 비롯 몇 사람의 방문객이 대기중이다. 선생의 아내가 나오시더니 선생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며 좀 기다리리라고 한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안내를 담당하고 있다.
좀 있으니 선생이 나왔다. 수염을 길게 기른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모습이다. 반갑게 맞아주신다.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밖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소리며 장비소리가 시끄럽다. 안방으로 옮겨가잔다.
방 가운데 원목으로 만든 나무탁자기 놓여 있다. 뒤쪽으로 긴 나무막대기에 걸려있는 크고 작은 붓이 백여 자루는 될
성 싶고, 빗자루 모양의 큰 붓도 대여섯 자루가 세워져있다. 그림을 그리다 만 화판 여남은 점이 벽에 기대 세워져 있다. 한 쪽에는 바둑판이 놓여있다. 등받이가 있는 푹신한 방석의자가 놓여있는 걸 보니 그림 작업실 겸 응접실로 쓰는 모양이다.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흰색 옷을 입은 주인이 하얀색 방석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방안 분위기가 편안하고,
주인도 그렇다. 이웃집에 놀러온 기분이다. 심부름하는 학생이 방석을 가져다준다.
준비해온 명함을 꺼내 드리며 수인사를 나누었다. 이 지방을 지나면서 하마터면 선생님을 못 뵙고 갈 뻔했다고 말문을 트자 너털웃음을 웃는다. 대뜸 나이가 어떻게 되시느냐고 묻기에 대답을 했더니, 나보다 두 살이 많으시다. 그래 내가,
오늘은 초면이니 이렇게 지내고 다음부터는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하니 또 털털하게 웃으신다.
두 시간 넘게 계속된 이야기는 이렇게 화기애애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40이나 되었을까. 앳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 선생이 장고를 치면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소절씩 짚어가며 선창을 하면,여러 학생들이 따라부른다.
화천군에 부지를 마련하고 집을 지어 이외수 소설가를 모셔왔다고 한다.
감성마을 골짜기에는 돌배나무 꽃이랑 살구꽃이 피어 화사하다. 길가에도 시비가 서있다.
이외수씨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외수씨의 방에 백개는 족히 넘을 붓이 걸려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문학은 물론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다.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두살이 위다.
이정태씨 부부,두분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젊어서의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고
황혼의 사랑은 다른 누군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얘기가 생각났다.
모를 잔뜩 실은 자동차가 지나가고 있다.모판에서 모를 기를 다음 모내기 할 논으로 옮기는 중이다.
못줄을 띄어가며 여럿이 노래를 부르며 모를 심던 일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2011년 11월 4일 미주한국일보 기사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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