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논리적 함정에 빠진 것일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일 하나로 대통령선거 전체를 재단하는 무모한 글일 수 있다. 그러니 진지하게 읽을 글이 전혀 못된다. 굳이 읽으려면 최대한 무심한 마음으로 가볍게 읽어 주길 바랄 뿐이다.
물론 아예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를 알면 열을 알 수 있단 속담도 있고,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안다(一葉落 天下知秋)'란 시구도 있으니 처음 마음먹은 대로 써볼까 한다.
나는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2012년 대선에서 일어난 보수진영의 승리와 진보진영의 패배는 양 진영의 실력 격차로 인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아닌가?’란 생각을 가끔씩 해왔다.
엊그제 신문을 읽다가 그 계기가 됐던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신문 보도의 내용은, 교육부가 전국의 초등학교 1∼2학년생 가운데 본인이 원하면 오후 5시까지 학교가 돌봐주는 것을 내용으로 한 ‘초등 방과 후 돌봄 확대·연계 운영계획’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2014.01.27. 언론보도 참조)
이 보도가 뭐 길래 나로 하여금 다시 대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는가?
2012년 대선 기간 중 양 진영(새누리당-민주당)이 최종적으로 내놓은 대선정책공약의 종합버전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물론 실제로 읽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다 읽어보진 못했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인 ‘교육’ 분야만큼은 꼼꼼히 읽어 보았다.
새누리당이 이 버전의 교육 부분에서 첫 번째로 제시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바로 교육부가 1월 27일에 발표한 ‘초등 방과 후 돌봄 확대·연계 운영계획’과 관련한 것이다.
내용은 ~
희망하는 초등학생들에게 학교가 오후 5시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온종일 돌봄학교’를 도입하고, 맞벌이 가정 등이 추가적인 돌봄을 희망하는 경우에는 오후 10시까지 ‘온종일 돌봄 교실’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엊그제 교육부가 발표한 ‘초등 방과 후 돌봄 확대·연계 운영계획’은 이 공약의 실행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언론 보도는 내용이 상당히 비판적이다.
먼저 한겨례신문의 기사 제목을 보자.
대통령 공약인데…초등 돌봄교실 무늬만 ‘무상’
1만5000∼2만원 간식비는 유료 예산 부족으로 반쪽 실시 우려
한국일보의 기사 제목은 이렇다.
초등 돌봄교실, 정책 따로 현실 따로
일선 학교와 교육청 "교실 확충도 어렵고 일부 프로그램 유상으로"
마지막으로 중앙일보의 기사제목이다.
희망자 8만 명 는다는데 … 준비 덜 된 돌봄 교실.
인력·예산 부족 질 저하 우려
언론의 보도만 보면 박근혜 정부는 뭔가 한참을 잘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기사를 보며 나는 2012년 대선을 떠올렸다.
교육전문가를 자처하는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정책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책 부분의) 실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상징적인 정책이었다.
당시 나는 새누리당의 이 정책을 민주당이 내놓은 정책공약 종합버전의 교육부분 첫째 정책과 비교해 볼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취학연령 단축, 유치원 1년 의무교육, 초등학교 5년 단축 등 학제 개편 검토’ 라는 것이다. 직접 언급된 것은 아니지만 ‘ ~ 등 학제 개편 검토’이란 표현에 주목하면 이것은 내용적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치고 5년제 과정으로 하겠다는 것까지 포함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실현 가능한 것인가?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다. 집권 5년 동안 정부가 지닌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여기에 투입해야 실현할 수 있다.
물론 그래도 그로 인한 사회적 이익이 크면 해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익이 있는가?
예컨대 초등학교 과정을 5년으로 단축하면 초등학교 교육이 저절로 좋아지는가? 나아가 우리 교육의 다른 문제들을 웬만큼이나마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가?
실행을 위한 사회적 비용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행해서 실제로 얻게 되는 이익은 결코 크지 않다.
물론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거라면 얘기가 다를 수 있다. 초등학교는 6년제가 아니라 5년제로 하는 것이 좋고, 중·고등학교도 따로따로 3년제로 하기 보다는 합쳐서 5년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초등 6년, 중·고등학교 각각 3년이란 학제는 이미 사실상 100년 넘게 시행되어 온 것이다. 이미 사회의 모든 것이 여기에 적응해 있다. 바꾸는 데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과도기적으로는 상당한 혼란도 각오해야 한다.
비용은 엄청나게 큰 데 그로 인해 얻는 이익이 적은 것을 굳이 첫째 정책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는가?
게다가 민주당의 첫 번째 교육공약은 국민이 절실하게 원하는 것도 아니다.
과연 학부모들이 초등학교가 5년제가 아니라 6년제라서 큰 불편을 느끼고 있는가? 그런 학부모들은 거의 없다.
초등학교 방과 후에 아이를 맡길 마땅한 곳이 없어 불편을 느끼는 학부모에 비하면 1/10도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민주당의 공약은 학부모의 이해와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공약에 불과하다. 교육전문가 중에서도 현실감각이 매우 떨어지는 어떤 특정인의 주장을 별다른 정무적 검토도 없이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
물론 사람들은 대부분 공약집을 읽지 않는다. 아무도 읽지 않으니 대선 결과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이 공약 때문에 민주당이 선거에서 졌을 리는 없다. 나 또한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최종적으로 내놓은 정책공약 종합버전의 교육부분을 읽고서 나는 양 진영의 실력 격차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대선 정책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문가 - 정책 보좌진 - 정무 판단을 내리는 보좌진 … 등등이 서로 수없이 밀고 당기는 긴장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아니 그런 긴장된 과정을 거쳐 만들어져야 마땅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단 하나의 정책을 통해서도 그 안에 담겨진 대선진영 전체의 실력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2012년 12월, 나는 양 진영의 대선정책공약 종합자료집을 읽으면서 이렇게 빌었다.
“그래 제발 아무도 읽지 마라. 기자들조차도 제발 읽지 말아 달라.”
사실 국민 절대다수가 양 진영의 정책공약자료집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 바람직한 일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을 반대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 어쨌든 새누리당은 결국 승리했고 우리는 박근혜 정부 치하에서 살고 있다.
첫댓글 저도 공약집 안읽었어요 ㅎㅎ 우리아이 지금 방과후 돌봄에 있고 만족하지만..아이들 원하는데로 다 받아준다는 발표에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이샘의 생각에 적극 공감. 진보진영은 보수 진영 비난하기에 바쁘지만 그들이 국민에게 어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국민이 바보는 아니니까요.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