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거창엘 갔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러 가지만 이번엔 목적이 달랐다.
고3시절 하숙했던 하숙집 주인 어른을 뵙기 위함이었다. 열흘전에 전화로 안부를 묻고, 지난 주에 한번 인사차 들러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백수에게 수시로 발생하는 일들과 궂은 봄비 때문에 미루었다.
어제는 집을 나섰다.
먼저 전화를 드리니 걱정부터 하셨다.
"별일 없었냐?
지난 주에 온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오다가 사고라도 났는가 해서 걱정했다."
"별일 없습니다. 점심시간 안에 도착하겠습니다."
지난 주에 가지 못한 것이 죄송했다.
해마다 몇 번은 찾아 뵙는데 더 자주 찾아 뵙지 못해 마음 한 편이 늘 불편했다.
실은 일년에 거창을 여러 번 찾는다.
거창 가면 거창친구들,
서양화가 이상남화백님, 해운대고등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교사 그리고 하숙집 어른을 한번에 모두 찾아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점심식사, 커피, 저녁식사를 모두 각기 다르게 바쁘게 만나야 보고 싶은 얼굴들을 보고 다소 홀가분하게 돌아올 수가 있다. 그래도 빠뜨린 쪽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모교인 거고 옆 작은 아파트에 사시는 어르신은 전에는 고인이 된 친구 신인선이 집에서 골목으로 서너집 들어가는 한옥에 사셨다.
당시에 그 어르신은 거창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셨는데 박봉으로 살림이 어려워 사모님께서 거고생들을 상대로 하숙을 치셨다. 당시 그 집엔 할머니와 선생님 내외, 3남 2녀의 자녀들이 모두 공부를 하고 있어서 선생님 혼자서 가정을 꾸려 가시기에는 아주 힘이 드셨다.
내가 그 집에 하숙을 했을 당시 선배들이 있었고, 친구들은 김현갑, 이준신이 그리고 후배가 같은 방, 건넛방, 아래방에서 같이 하숙을 했다.
하숙집 주인 어르신이 선생님이셔서인지 집안 분위기는 언제나 조용하고 공부하기에 좋았다. 그리고 구성원들도 다들 좋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모두 뿔뿔이 헤어졌다.
이준신이는 졸업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 합천 대병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시기에 한번 만난 적이 있고, 김현갑이는 졸업 후 36년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그 뒤 진주, 부산에서 만난 적이 있다.
어제 만난 하숙집 주인 어르신은 올해 연세가 93세다.
거창 창동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하시고, 5년전 사모님과 사별하시고 지금은 둘째아들 내외와 함께 사시는 노인이시다.
집에 들어가서 처와 함게 큰절을 올렸다.
노인은 반갑게 맞으시며 젊은(?) 우리들 건강 걱정을 먼저 하셨다.
점심식사를 하러 밖으로 모시고 나왔다.
"우체국 앞에 괜찮은 횟집이 있는데 그리로 가자!"
"아직도 오토바이를 타세요? 정말 조심하세요."
"괜찮아, 내 발인걸, 타야 할멈 산소도 가 보고 그러지."
"지난 해 11월에 미국 아들, 딸 집에 갈 때도 혼자 인천가서 미국갔다, 지난 2월말에 돌아왔는데 아직은 괜찮아."
"그래도 조심하세요. 특히 오토바이를 타실 때는요."
순간 가슴이 찡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드라이브를 했다.
덕유산 자락을 끼고 있는 북상 소정을 지나 고제를 돌아오면서 옛날 이야기, 어르신이 젊은 시절 근무하셨던 지금은 폐교가 된 학교들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는 댁에 모셔다 드리고는 돌아서면서 작별 인사를 올렸다.
"교장선생님, 건강하세요.
100세까지는 사셔야죠."
"아니,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