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훈 병원 성모의 밤 행사에 참여했던 첼로 봉사자입니다.
지금껏 참여했던 성모의 밤 행사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유행가처럼 흥얼거린 노랫말에 이런 뜻깊은 사연이 담긴 줄 정말 몰랐고 신부님 강론에 맞추어 노래를 들으니 가슴이 아려오더군요. 특히 가슴으로 부르는 아베 마리아는 우리들의 노래가 되어, 하늘 가득 차올랐지요. 지금도 가슴 뭉클 해요.
보훈 성당 환우들에게 사랑 가득한 신부님이라며, 우리 지휘자님은 항상 자랑하십니다. 저희 성가대원 모두 성모의 밤은 은총 받은 시간으로 행복해 합니다. 신부님 덕분에 큰 은총 듬뿍 받은 시간되어 감사해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며칠 전에 제가 받은 문자 메시지입니다.
꼭 백일 전에 제가 이곳 중앙 보훈 병원 성당에 부임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서 '찬양미사로 수놓는 성모의 밤'을 기획했습니다. 기획안을 만들어 놓고 나서 어떻게 이 안을 실천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는 비단 성모의 밤 행사를 잘 치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곳에서의 사목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 첫 단추였습니다.
우선은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2월 26일경입니다. 보훈 병원의 환우들에게 제가 어떻게 원목 신부로서 봉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소식에 정신없이 응답해야 했습니다. 어느 때는 새벽녁에 임종을 앞두신 할아버지를 방문하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느닷없이 새벽 2시 반에 눈이 떠지길래 혹시 하는 마음에 처치실에 가서 기도를 해 드리기도 했으며, 늦은 밤이라도 저를 찾는 기척이 있으면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환절기라서 그런지 돌아가시는 분이 정말 많았습니다. 2월 말과 3월 초에는 삼일 연속으로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부임하던 날 짐정리를 하기도 전에 장례미사를 해야 했던 건 약과였습니다. 거의 사흘 밤을 새다시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 환우들은 국가유공자들이셔서 대부분 서울 국립 현충원이 아니면 대전 국립 현충원, 이천 호국원에 묻히십니다. 현충원에서는 매일 오후 2시에 합동 영결식을 합니다. 그래서 화장장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른 새벽 5시나 6시경에는 발인을 하고 장례미사를 해야 제 시간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침대에 누웠다가 늦기라도 하면 유족들에게 큰 결례가 될 수 있기에 아예 밤을 새던지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기를 사흘을 계속하니, 이러다가 나도 장례를 치룰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앉아도 서도 정신이 몽롱한 게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연속 장례 행진은 사흘로 멈추었습니다.
중앙 보훈 병원의 병실은 마치 미로와도 같습니다. 이집트의 전설 투탄카멘왕의 피라미드를 앞에 두고 선 고고학자처럼, 병실의 위치 파악을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보훈 병원을 휘젖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제가 도대체 얼마나 다니고 있나 계산해 보니 평균 천 계단이었습니다. 돈을 들여 운동할 필요가 없는 거리이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해서 얻게 된 소식을 도은영 비아 데레사 수녀님과 나인주 프란치스카 사무장과 실시간으로 공유했습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최우선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서로 눈으로 말하기로 했습니다. 혹시 우리 글로 이루어지는 문자 메시지에 의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영어로 하기도 했습니다.
의사소통이 필요한 핵심 멤버들은 모두 6명이었습니다. 그래서 6인 회의를 조직했습니다. 이름하여 '6인 회동'을 매달 초에 열어서 민주주의에 의한 의사결정을 시도했습니다. 누구나 발언할 수 있되 끝까지 듣는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절대로 결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식사로 마친다, 식사 비용은 제가 댄다, 등등이 6인 회동의 운영 수칙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첫 의제로 '찬양미사로 수놓는 성모의 밤' 행사 기획안을 제안하고 수정 검토를 거듭하기를 수 차례 반복했습니다.
마침 우리 성당에 컵초를 납품하게 된 신학교 후배 김종호 프란치스코와, 역시 신학교 후배로서 생활성가 가수인 신상옥 안드레아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신학교 시절 김종호는 알아주는 지휘자였고 신상옥은 작곡자였습니다. 노래는 기본이었구요. 세라핌 성가대 지휘자 김진숙 수산나님과 수시로 회동하거나 이 메일로 의견을 교환하거나 문자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성모의 밤 행사 기획안을 준비해 나갔습니다. 막판에 김종호는 저더러 슈베르트의 아메 마리아를 부르라고 시키는 바람에 혼줄이 났습니다. 유튜브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를 들으면서 연습하라고 하길래, 들어 보았더니,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악보도 없이 반주도 없이 무턱대고 듣기만 하면서 연습을 할래니까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한 백 오십 번 정도 연습을 하니까 곡조가 귀에 익어지고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성모당 앞 마당에서 행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반주용 키보드가 문제로 떠오른 의제였습니다. 연습용으로는 손색이 없는 것이었지만 야외에서 사용하기에는 모자라는 악기였습니다. 새로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바로 이때 성령께서 도와주셨습니다.
6월 12일에 이곳 성당을 방문하여 국가유공자들에게 노래 위문을 하러 올 예정이었던 '휘 브라더스' 총무인 이홍기가 찾아왔길래 이 문제를 상의했더니, 당장 인터넷을 뒤져서 키보드가 아니라 전자 피아노의 시장 가격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일제 야마하에서 만든 270만원 짜리가 최고였습니다. 당장 제 외대 동기동창 김용태 제노에게 문자로 물었습니다. "도와줄래? 270이란다." 바로 답이 왔습니다. "그럽시다."
아침에 춘천 교구장 김운회 주교님께 지원 요청을 드렸습니다. 이러 저러 해서 악기를 하나 사야 하겠는데, 코스모스 악기 사장님께 전화 한 통 해 주십시오? 그냥 내 이름으로 왔다고만 해라. 이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수녀님과 함께 가서 매장을 들러 보았습니다. 야마하 제품은 없었고 롤랜드 제풍이 있었습니다. RD 800. 270이 아니라 400이었습니다. 페달에 스피커에 스탠딩(받침대)을 합하니 소매가격으로 490이었습니다. 낭패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김용태 제노에게 문자를 날렸습니다. 마침 주교님 백으로 직원은 저더러 회장님 손님이라며 도매가격으로 줄 수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래도 400이었습니다. 역시 당장 답이 왔습니다. "130을 송금 완료했음. 연말에 세금계산서만 잘 끊어주시오." 이래서 국내 최고 성능의 스테이지 피아노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음향과 조명은 이현호 스테파노 선교사가 알아서 해결해 주었습니다. 단돈 50만원을 받고 자기가 보유하고 있던 최고 성능의 장비를 싣고 왔습니다. 보훈 병원측과의 연락은 제가 직접 병원장을 방문해서 해결했습니다. 진료부원장 김춘동은 마침 제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어서,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습니다. 황 마태오씨는 현관문 디자인과 현수막을 맡아서, 또 예그리나 성가대원이시고 화원을 운영하시는 형제분은 성모당 장식과 화단 관리를 맡아서, 일사천리로 착착 준비해 나갔습니다. 평화방송의 중계 문제는 성 목요일부터 제가 교섭을 진행했습니다.
섬모의 밤 행사 당일은 마리아회에 속한 자원봉사자 거의 전원이 총출동해서 준비했습니다. 고운 한복들을 차려 입고 행사장을 장악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들이 휘젖고 다니는 듯 했습니다. 성모상 머리에 씌울 화관도 정성껏 준비해서 미리 올려 드렸습니다. 컵초도 미리 넉넉히 준비해 두었고, 봉헌대도 점검했습니다.
행사 직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도대체 몇 명이 참석할지 예상할 수가 없으니 의자를 얼마나 식장에 배치할지 난감해 진 것입니다. 이때 역시 '반짝 성령'께서 일러주셨습니다. 200명 이상 온다, 밀어부쳐라! 그런데 성당 안에 있는 장의자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수녀님께서 정색을 하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요셉회 형제분들 허리 다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귀를 막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입원시켜드릴께요."
긴박했던 시간이 지나고 아무도 없는 자정 무렵 휘황찬란하게 촛불이 켜진 성모당 앞에서 제가 성모님께 속삭였습니다. "성모님, 저 잘 했지요?"
첫댓글 신부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성모의 밤 행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PBC 평화방송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했습니다.
신부님, 짱 잘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모두들 기뻐하셔서 저도 사제로서 행복했습니다.
성모의밤 행사,, 그리고 미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계속 이렇게 이말밖에는,,
환우님들 보호자분들을 뵙고 나의교만이 부끄러웠습니다
늦은 걸음 이지만 넘어지지않고 잘 걸어보겠습니다
수고들,많으셧습니다 감사했습니다
!!!!!!!!!!!!!!!!!!!
😊한마디로 감동입니다. 모두가 오케스트라 단원이었습니다. 명지휘자는 신부님이셨고요. 성모님께서도 환우와 그 가족들과 함께...ㅎㅎ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