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Gaul.
고대 갈리아인이 살던 곳.
지금의 프랑스와 벨기에, 서부 독일, 북부 이탈리아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켈트족인 갈리아인들은 지주계급의 지배를 받는 농업사회에서 몇몇 부족을 이루고 살았으며, BC 5세기경 라인 계곡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남하했다. BC 4세기 중반 여러
갈리아 부족들은 북부이탈리아를 지나 밀라노에서 아드리아 해안에 걸쳐 자리를 잡았다. 갈리아인들이 점령했던 이탈리아 지방을 로마인들은
갈리아키살피나(알프스 산맥 남쪽에 있는 갈리아)라 했다.
BC 390년 갈리아인들은 로마 시를 점령하고 약탈했는데, 이때문에 로마인들은 갈리아 정복을 마음먹었다
(→ 로마사). 갈리아키살피나인들이 BC 284년에 중부 이탈리아로 쳐들어와 충돌이 계속되었지만, 로마인들은 인수브레스족을 물리쳐 밀라노를 점령하고 완충지대에 식민지를 세웠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한니발은 갈리아인 부족 케노마니와 동맹을 맺어 로마에 대항했다. 그러나 로마에게 패했으며 로마는 BC 181년 갈리아키살피나를 정복해 식민지로 만들었다.
BC 2세기경 로마가 알프스 산맥을 넘어 프랑스 남부까지 영토를 넓혔을 때 갈리아인들은 이미 남프랑스 해안 지방에서 대부분의 상업을 장악하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알로브로게스족과 아르베르니족에 맞서기 위해 아이두이족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BC 120년 이후에는 론 강 유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BC 118년 로마는 해안에 식민지인 나르보마르티우스(나르본)를 세워서 프랑스의 남부지방을 갈리아
나르보넨시스(Gallia Narbonensis)라고 불렀다. 게르만의 일파인 킴브리족과 테우토네스족이 이곳에 쳐들어왔으나 BC 102년 마리우스에게 패배당했다
(→ 게르만족). 50년 뒤 스위스 지방에 있던 헬베티족과 게르만 지방에 있던 수에비족이 갈리아로 쳐들어오자 BC 58~50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나머지 갈리아 지방까지 점령했다
(→ 갈리아 정복).
BC 53~50년에 카이사르는 베르킨게토릭스가 이끄는 갈리아인의 반란을 진압했다. 그는 갈리아인을 관대하게 취급하고 갈리아 지방에 있는 도시에 자치권을 주었기 때문에 BC 49~45년 폼페이우스와 싸울 때 갈리아 병사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전에 갈리아의 종교적 중심지였던 루그두눔(리옹)은 로마령 갈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갈리아 전 지역은 나르보넨시스, 루아르 강 서쪽과 남쪽인 아퀴타니아, 루아르 강과 센 강 사이에 있는 중부 프랑스의 켈티카(또는 루그두눔), 갈리아 북부와 동부 지방인 벨기카 등 4개 지역으로 나뉘었다. 로마는 갈리아 전 지역에 도시를 세우고 도로를 놓았으며 상인과 장인(匠人)으로 구성된 중산계급 성장을 장려하는 한편, 옛 갈리아의 지주들에게는 세금을 부과했다. 21년
티베리우스 황제 때 갈리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그뒤
클라우디우스 황제(41~54 재위)는 갈리아 귀족들에게 로마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주고 갈리아 통치직에 임명함으로써 갈리아 귀족계급을 로마에 흡수했다. 이후 200년 동안 갈리아 지방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는, 잦아지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라인 강 중류에서 도나우 강 상류에 이르는 성벽을 쌓은 일과 몇 차례의 반란사건을 들 수 있으며, 또한 2세기초
그리스도교가 들어온 것도 큰 사건으로 꼽을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161~180 재위) 때에는 게르만인들이 성벽을 넘어왔다. 라인 강 주변의 변경 수비대가 반란을 일으켜, 192년 콤모두스 황제가 죽은 뒤 일어난 내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통화팽창과 물가상승 때문에 경기가 침체되자 도시민과 소농(小農)들은 타격을 입었다.
260년 갈리아·스페인·브리타니아는 트리어를 중심으로 하는 갈리아 제국을 이루었다. 이때 만들어진 동전과 수공품을 보면 켈트족의 옛 문화가 되살아났음을 알 수 있다. 성벽은 게르만의 침입으로 무너졌다. 아우렐리아누스는 273년 갈리아에 대한 로마의 권리를 주장했지만 게르만족은 멀리 스페인까지 로마 땅을 유린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그 뒤를 이은 황제들은 국방·행정에 대한 법률을 개혁했지만 갈리아 지방에서 일어난 혼란으로 제국 전체가 흔들렸다. 4세기 중반 게르만족은 물밀듯이 침입해왔고, 5세기경 서고트족은 아퀴타니아, 프랑크족은 벨기카, 부르군트족은 라인 강을 지배하게 되었다. 6세기초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가 일어날 무렵, 로마는 갈리아 지배권을 완전히 잃었다. 갈리아는 로마 문화의 중요한 보고(寶庫)였다. 갈리아 출신 작가들은 로마의 고전적인 문학전통을 오래도록 유지했으며 많은 원형극장들과 수로교(水路橋), 그밖에 다른 로마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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