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았다. 서울, 그리고 금천구청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보았다. 11시 오분 전. 엘리베이터는 눈앞에 와 있었다. 그리고 12층 대강당. 사람들은 이미 많이 와 있었다. 순간 나는 좀 생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마당은 처음으로 접해본다.
건네준 이름표를 왼편 가슴에 달았다. 사람들은 제각기 분주해 보였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곳. 따라서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 하지만 곧 익숙함이 눈앞에 펼쳐졌다.
얼마쯤 이었을까. 저만치에서 체크무늬의 옷을 입은 한 여자를 볼 수 있었다. 나의 눈은 그의 시선을 쫓았고, 이윽고 나는 그 앞에 선다. 한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미 나는 담임이라도 만난듯 반가움에 인사를 했다. 안성에도 강의를 왔단다. 바로 씨드림의 대표인 단이 변현단님이었다. 행사장을 분주히 다니느라 인사도 길게 할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식을 바리바리 싸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 그러할까. 몇 날 며칠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스쳐가는 바람처럼 얼른 곁에 섰다.
소풍을 갈 때 학생이 된 신분으로 단이님과 한컷
곧 시작됨을 알리고, 나는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임원의 인사가 있었다. 단이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곡성에서 새벽 5시에 출발을 하셨단다. 그리고는 조목조목 인삿말을 하고는 작금의 종자법이라는 복병은 우리 시대의 화두라고 말씀하신다. 10년의 세월속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어디 한 두번 이었을까싶다. 그 안타까움은 모두에게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잠시 후, 전국 여성연합회의 부회장님이 연단에 오른다. 제주에서 새벽에 올라오셨단다. 토종이 무엇이길래. 작물이, 우리의 것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먼 곳에서... 그러면서 토종의 대중화와 종자의 중요성을 피력하신다. 귀는 모두가 열려있다. 이런분들이 있기에 모두의 가슴은 식을 날이 없다고 보아진다.
그리고 몇 분의 경험담... 우리는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것은 농업이라는, 씨앗이라는 한 울타리 속에서의 뜨거운 갈채였다.
어느새 중식 시간이 되었다.
잠시 군대 때의 훈련병처럼 우리는 줄을섰다. 그리고 식기를 받아들었다. 순간 나는 놀랐다. 밥. 그것은 누구에게나 구세주에 다름아니었다. 나는 밥이 없으면 죽는다, 라고 늘 속으로 되뇌이곤 했다. 그것도 5가지. 나는 조금씩 그릇에 담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5가지의 토종 밥을 한번에 먹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슴이 뭉클해 오는 것 같았다. 이런 복된 날이... 약간 마른편인 나는 오늘1kg은 늘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웠다. 세상은 거칠고 할일이 많고 거기서 이겨내는 게 삶이라는데, 지금 이 시간 만큼은 한마디로 먹고보자 오재영이었다.
나는 하늘에, 씨드림에 감사를 드리며, 눈치 안보고 맛있게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린 가지 나물과 함께.
눈앞에 보인다. 길위에서, 라는 닉네임. 길이 아닌 강당에서 나는 그를 보았다. 사실 뭔가 허전했다. 누가 누구를 알아본단 말인가. 우리는 닉네임 하나로 그동안 간접의 만남을 이어오지 않았던가. 이름표에 이름은 그대로 두고라도 윗부분에 닉네임을 표기해 놓았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유독 닉네임을 단 길위에서님은 쉽게 눈에 띄었다. 서로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상대방도 나를 익히 알고 있는 듯했다. 둘은 금세 친해진듯 일변 한컷을 했다.
길위에서님과(왼쪽) 함께 한컷
나는 다시 씨앗의 진열대를 둘러보았다. 혹시나 했던 닉네임이 눈앞에 있었다. 세아(용인). 오늘 이곳에서 나눔을 하시는구나. 앞에 여러가지의 씨앗이 놓여있었다. 나는 물어보았다. 혹시 세아님 아니시냐고. 상대방은 미안한듯 말듯한 미소로, 방금 계셨는데 어디가셨을까, 한다. 나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나에게 댓글도 몇 번 단 적이 있는, 그래서 서로는 익히 알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후 우리는 만났다. 서먹함은 잠시였다. 아니 서먹함은 주지 아니하였다. 그리고는 옆에 계신분을 소개하신다. 바로 네미님. 익히 알고도 남았다. 나는 네미님으로부터 언젠가 근대와 아욱을 나눔받은 적이 있었다.
벌써 시간은 2시를 치닫고 있었다. 우선 우리 셋은 햇살이 반쯤 비추는 강당의 베란다로 보이는 곳에 앉았다. 저만치엔 산을 배경으로 아파트와 주택들이 낮게 앉아 있었다. 햇살 한점 우리들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우리는 서로 입가에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우리는 어찌보면 서로 밀린 이야기가 하나도 없을 법한, 실체가 살아있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은 곧 기우였다. 우리들의 농사 아야기, 씨앗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마치 소꿉 친구라도 된 듯 가까이 마주앉아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럴즈음 어느샌가 세아님께서 둥굴레 차를 가져오셨다. 우리는 한잔씩 받아들었다.
우리는 모두가 가식없는 진실이 담긴 대화였다. 물욕이 배제된 하나의 천의무봉(天衣無縫)이었다.
얼마쯤이었을까. 누군가가 과자처럼 만든 누룽지 몇 개씩을 봉투에 담아 들고왔다.
세아님께서 소개를 하신다. 보령산골총각님이시란다. 맘씨 좋은 총각님표 누룽지와 차를 마시며 우리는 창가의 적당한 햇빛을 받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세아님의 이지적이면서 세심함이 내포된 분으로 보여졌으며, 네미님은 그야말로 이를데 없는 순박한 인성의 소유자로 느껴졌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무르익을즈음 자연스레 카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색동양파님, 그리고 도로육송님의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다. 내가 말했다. 도로육송님은 40대쯤으로 야성적으로 일하시는 남성분 아니신가요, 라고. 순간 두 분은 박장대소 하신다. 현실이 예상을 빗나간 순간임에 틀림없었다. 곧 반전에, 반전은 시작되었다. 사실을 알게된 후, 우리는 웃고 또 웃었다.(도로육송님께는 죄송하지만 절대 인신공격은 아니올시다)
우리는 그곳에서 2시간을 넘게 마주했다. 생면부지의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한 그 원천은 과연 무엇인가. 씨드림. 그것은 우리를 이어주는 하나의 가교였으며 하나의 둥지였다.
벌써 시간은 4시를 넘어섰다. 우리는 4시30분부터 시작되는 나눔의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강당은 수백명의 인파로 가득했다. 곧 나눔은 시작되었다. 입구에 발을 딛자 그곳엔 주인이 앉아 있었다. 바로 소작농님. 인천지역을 대표해서 오신 모양이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눴다. 역시 달랐다. 일일이 작게 포장을 해서 씨앗의 명칭을 표기해 놨기에 우린 그냥 집기만 하면 되었다. 꼼꼼함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나는 서너개의 봉투를 집어들었다. 주는이의 보답은 정성껏 심어서 잘 자라 좋은 결실을 맺는 것일게다.
세아님과 네미님은 처음 온 나보다 단연 아는 분이 많았다. 나에게 네미님께서 불유구님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여 기대를 했으나 많은 인파로 결국 찾지를 못하고 실패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카페에서 활동이 많으신 우리꺼가좋아님을 소개해 주셨다.우리는 겨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배경엔 늘 사람들로 시끄러울 정도였다. 모두모두 반가웠다. 생소함이 저만치 물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수십, 아니 수백 가지쯤 되어보이는 씨앗을 종류별로 천천히 들여다보며 마음에 들면 선택을 했다. 정작 멍석을 깔아 놓으니 너무 많아서인지 욕심은 여느때와 달랐다. 나는 적당히 소지하고 밖으로 나왔다.
벌써 하루의 햇살은 저만치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부디 씨드림이여 오늘과 같이 번창하여라. 그리고 세차게 뻗어 하나의 횃불이 되어라. 그리하여 모두는 하나가 되고, 씨앗은 하나의 값진 생명체가 되어라!
첫댓글 역시~~
적재울님이십니다~~
어제
넘넘 즐거웠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오지 못해 죄송하네요
어느분이 세아님이신가요?
두분의 아름다운 여성분중 첫번째 분이 세아님이십니다.
반가웠습니다. 정다운 모습에 마음이 훈훈합니다~^^
적재울님을 비롯하여
씨드림 활동을 하시는 모든 분들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적재울님 글에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네요.
저도 올 한 해 농사 잘 지어
내년엔 꼭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어제 모임 분위기를 아주 잘 묘사해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처음 적재울님을 뵈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씨앗 나누는 시간에 만나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했지만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토종 작물로 같이 식사를 해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올해도 건강하시고 농사도 원하시는 대로 잘 되길 바라겠습니다.
적재울님 글을 접하고 보니 더 친근함이 전해집니다 어쩜 첫대면인데도 구면인것처럼 토종씨앗과 농사로 이야기 꽃을 피워도 뭐그리 할얘기가 많은지 지루할틈이 없었읍니다 씨드림은 초창기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가입은 2016년 8월에 가입하여 선배님들 헌신적인씨앗나눔의 노고가 있었기에........ 씨앗도 참으로 많이나눔도 받았읍니다 특히 세아님 육송님 내비도님께 감사드립니다 열씸히 농사지었으나 씨앗채종도 못한것도 있기도 하지만..... 나름 열심히 나눔했읍니다 토종씨여 널리 널리 퍼져야된다고 생각하면서 .......적재울님 까페에서 자주뵈어요 나만의 노하우도 부탁드립니다 보령에 산골총각님 반가웠읍니다 순박한 그표정.
앗! 네미님도 안녕하세요
어제 좀 늦게 가는 바람
에 정신이 없었네요
다음에 건강한 모습으로
뵈어요 ~~
총회에 오셨군요 많은분들이 오시기도했지만~~ 닉네임으로만 통하든 회원들인지라 ~~~ 옆에계셔도 모르죠 뵈었으면 좋왔을텐데요 올해 농사대풍하시길~~~
히히~
4일만인가? 컴에 들어왔더니 적재울님의 귀한 모습을 보게 되는군요~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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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2015년인가 씨드림에 가입하여 이곳 정서를 잘 모르고 구억배추씨 나눔의 격한 배움이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당신 응원해 주신분들도 많았었습니다. 어제 행사에서 적재울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을 법게되어 모처럼 즐거웠습니다. 씨앗에서 씨앗되기가 이리도 행복한 일입니다.
아~세아님 안녕하세요?올해도 건강하시고 농사 풍년 돼시길~~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어제와 그제에 올려주신 사진 잘 보았습니다. 씨드림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하셨습니다. 두루 감사합니다~~^^
뭐... 그냥... 한건데요~^^; 놀해에도 열심히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