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칙 운문호일(雲門好日)-운문스님의 날마다 좋은 날
“스스로 모든 걸림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날마다 좋은 날”
➲ 본칙 원문
擧 雲門垂語云 十五日以前不問汝
十五日以後道將一句來 自代云 日日是好日
➲ 본칙
이런 얘기가 있다.
운문스님께서 법문을 하셨다.
“십오일 이전에 대해서는 그대들에게 묻지 않겠다.
십오일 이후에 대해서 한마디 말해 보라.”
(대중이 말이 없자) 자신이 (대중을) 대신해서 말씀하셨다.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다.”
➲ 강설
위 내용은 운문스님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대중들에게 법문하신 것이다.
십오일이라는 말로 미루어 볼 때 결제에 들어가는 날이나 해제하는 날일 수도 있다.
만약 법문하는 날이 십오일이었다면 오늘 이전과 오늘 이후로도 될 수 있는 말이다.
또한 십오일은 보름이니,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보름달을 연상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설명하는 것은 ‘십오일’로 인해서 불필요한 궁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십오일은 ‘지금’이다.
운문스님은 묻고 있다. 과거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러니 물을 것도 없다. 그대들도 과거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
그러나 ‘지금’부터는 어쩌겠는가?
자, ‘지금’이 문제이다. 온갖 망상 가득한 것은 ‘지금’이 아니다.
운문선사가 그런 것을 알고 싶겠는가?
사실 운문선사는 대중들에게 알고 싶은 것이 없다.
이 법문은 지금 바로 깨어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부질없는 꿈같은 생각인
전도몽상(顚倒夢想)에 빠져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인가?
눈을 번쩍 떠 보란 말일세. 이 멋들어진 세상을 제대로 보라니까!!”
다만 생각만으로 ‘나날이 좋은 날이야!’라고
자기최면을 건다고 편안하고 자유로워지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스스로 모든 걸림으로부터 벗어났을 때에만 가능한 경지이다.
➲ 송 원문
去却一拈得七 上下四維無等匹 徐行踏斷流水聲 縱觀寫出飛禽跡
草茸茸煙冪冪 空生巖畔花狼藉 彈指堪悲舜若多 莫動着 動着 三十棒
➲ 송
하나를 버리고 일곱을 잡음이여!
➲ 강설
하나란 절대적인 것을 상징한 것이고, 일곱은 상대적인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니 일곱이 무엇과 무엇인지를 조사하려고 애쓰지 말 것.
하나를 버렸다 하니 어찌 버리며, 일곱을 잡았다 하니 또한 어찌 잡으리오.
다만 고개를 살짝 돌려 본 것일 뿐이라. 괜스레 하나니 일곱이니 하며 찾아다니지 말게나.
➲ 송
위아래 동서남북 견줄 자가 없노라.
➲ 강설
말들은 잘도 하지.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그랬던가?
정말로 좋은 때가 있기는 했던가?
추호라도 좋고 나쁨이 있었다면 그것부터 놓게.
‘날마다 좋은 날!’이니, 제발 운문선사를 욕보이지 말고 그냥 두게나.
➲ 송
천천히 가면서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 끊고,
➲ 강설
지금 이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시나? 하긴 물소리 따라가기 얼마나 바쁠까.
괜스레 급하기만 하지.
산이 사라지고 물도 사라지며 사람마저 사라진 곳에,
산은 의연하고 물은 콸콸 흐르며 사람은 유유자적하도다.
➲ 송
무심히 보며 나는 새 자취를 그려내도다.
➲ 강설
설두노인네가 끝내 사람을 골탕 먹인다고?
그건 다만 그대 생각일 뿐. 이미 비밀을 너무 많이 털어놓았는걸. 그렇고말고.
그게 어디 남의 집 얘기던가. 새만 그릴까 보냐. 온갖 것 다 그려내지.
그러나 붓 한 자루도 필요 없다네.
➲ 송
풀 무성하고, 안개 자욱함이여!
➲ 강설
그러나 그대 적막에 빠져 있지는 말게나.
풀 무성하고 안개가 자욱한 이 소식을 알아야 남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으리라.
➲ 송
수보리 앉은 바위 가에 꽃 어지러이 널렸으나,
➲ 강설
게송의 이 구절과 다음 구절은 아래의 얘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보리존자가 바위에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며 수보리존자를 찬탄하였다.
“허공에서 꽃비를 내리며 찬탄하는 이는 누구인가?”
“저는 제석천왕입니다.”
“그대는 어찌해서 찬탄하는가?”
“존자께서 반야바라밀을 훌륭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존경스럽기 때문입니다.”
“나는 반야에 대해서 아직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찬탄하는가?”
“존자께서는 말씀하심이 없고 저는 들은 바 없으니, 이것이 진짜 반야입니다.”
이에 또다시 땅을 진동하며 꽃비를 내렸다.
수보리존자에게 누가 감히 허물을 찾을 수 있으랴.
아뿔싸! 그 생각이 망쳐놓고 있다네.
선정에 잠겼다던 수보리여! 어찌 제석천왕의 흐릿한 눈도 피하지 못했소?
흩어놓은 꽃처럼 어지러이 칭찬만 난무했구려.
➲ 송
손가락을 튕기며 수보리를 가엾이 여기노라.
➲ 강설
설두노인네의 이 말씀에 또 속는 사람 속출하지.
어깨 으쓱하며 수보리존자를 내려다보진 말 것. 그렇다고 올려다 볼 것도 없네.
수보리존자는 그래도 ‘하나’는 확실했었지.
비록 그 ‘하나’ 때문에 꽃으로 망신을 당하지만….
그런데 그대는 어떠우?
➲ 송
꼼짝하지 말라! 움직이면 삼십 방망이니라.
➲ 강설
천지를 활보해도 나무라진 않겠지만,
그러나 꼼짝하지는 말라. 눈에 띄는 순간 몽둥이 비가 쏟아질 것이니.
괜스레 저승사자가 미소 지으며 따르게 하지 말게나.
[불교신문3675호/2021년7월20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