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3: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슬퍼하며’ dp's; (5594 사파드 P,VQNG dPos]li) 통곡하다. 울부짖다.
< 아브라함의 슬픔 >
중국의 진시황제는 늙지도 않고 죽지 않는 불로초를 구하다가 결국 병으로 죽었다. 사람은 생명의 기한이 끝나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죽음을 보며 슬퍼한다. 다시는 이 땅에서 살아있는 모습으로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생 함께 할 것 같았으나 죽음의 현실로 그 생애가 끝나니 아무리 예견된 죽음이라 할지라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오랫동안 사랑으로 함께한 사람의 죽음은 누구보다도 깊이 슬퍼하고 애통할 수 밖에 없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 은혜의 복된 인생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였다. 그러함에도 사라의 죽음은 아브라함을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애통하게 한다. ‘슬퍼하다’는 가슴을 치며 울부짖음으로 통곡하는 것, ‘애통하다’는 큰 소리로 슬피 우는 것이다. 같은 내용의 단어를 연속 사용함은 사라의 죽음이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큰 슬픔인지 잘 표현하고 있다. 육체의 죽음이 이토록 애절한 슬픔과 애통을 가져오는데 영적 죽음의 슬픔은 어느 정도일까? 영적 죽음은 영원한 이별뿐 아니라 영원한 심판이기에 이보다 더 슬프고 애통스러운 일이 없다.
사라는 헤브론에서 죽었다. 헤브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과 연합됨을 의미하는 곳이다. 헤브론의 다른 말은 ‘기럇아르바’이다. ‘기럇’은 성읍, ‘아르바’는 ‘넷’의 뜻이다. 에덴 동산에는 네 강이 있고, 스가랴는 ‘네 바람’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며(슥 1:18). 희생제단은 네 모퉁이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사실로 보면 헤브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연상하게 한다. 사라는 이 땅의 인생을 하나님의 품에서 끝내며 영혼의 새로운 삶도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