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6)
2006-11-21 11:15:42
[117차] 삼각산 산행기
2006. 11. 21. / 박광용
산행일 : 2006. 11. 19. (일), 맑음.
코 스 : 용화1매표소-족두리봉-향로봉-비봉-문수봉-대남문-구기동 계곡-구기매표소
참가자 : 광용(대장), 광열, 상국, 경호, 부종. (총 5명)
서총의 지령(?)에 따라 삼각산 산행대장을 또 맡았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지난주에는 치악산으로 좀 뻑센 종주산행을 하였기로 이번에는 조금 수월한 코스로 가는 것으로 공지를 올렸다. 숨은벽으로해서 호랑이굴-여우굴도 좋은 코스임에 틀림없지만, 추운 날씨에 힘들 것 같아 미리 포기하고, 비봉에 순수비를 모조품으로 복제하여 다시 설치해뒀다는 얘기에 그 모조품이라도 보고 싶어 비봉으로 가기로 한다.
삼각산에는 여러번 다녀서 그런가, 참여 인원이 많지 않다. 굳이 독촉하지 않고 오는 사람만 모시고 가기로 한다. 졸고가 새벽에 보낸 문자는 불참을 알려왔다. 아마도 T-30 참가한 후 뒤풀이가 거나했던 모양이다. 생졸은 부산으로 갈 듯하더니 참가했고, 뱅고은 봉사활동에 대한 얘기를 꺼낸 죄(?)로 할 수 없이 참가했다. 곡사는 자형의 병환이 위중함에도 불구하고 한 달 만에 참가했고, 지난 주 불참한 죄(?)로 할 수 없이(?) 참가한 서총을 포함, 나까지 총 5명이 정확히 0835에 불광역에 모였다.
몇 번을 왔던 길인데 들머리 찾기가 쉽지 않다. 조금은 허술한 경계선을 넘어가려 했지만 관리소에서는 이미 울타리를 모두 설치해뒀더라. 조금 헤매다가 0900 용화1매표소로 진입한다. 조금 쌀쌀한 아침 기운에 손 끝이 시려운데,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등에서 땀이 쭈르륵 흐른다.
입었던 재킷을 벗느라고 쉬고, 물 한 모금 마신다고 쉬고, 족두리봉 슬랩 앞까지 오르는데 네 번을 쉰 것 같다. 쉬다가 출발하려 하면 꼭 무슨 얘기가 다시 나오는 등... 김지미-나훈아 시리즈부터 놈현까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이디피에스는 하루종일 입가에 미소를 머금케 한다. 너무 자주 쉰 탓인가? 다시 출발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우회하며 올라와서 뒤돌아본 족두리봉에는 어슬프게 내려오는 산님들이 위태로워 보인다. 길은 하난데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피할 곳을 찾지 못해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길, 고수님이나 대사님이 리드하고 확보 단디해서 한 번은 가고 싶다. 대사님 언제 함 리드 해 주실람미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한 번 둘러본다. 저 커다란 향로봉은 우회할 것이고, 비봉이 뾰족하게 보인다. 그 뒤로 문수와 보현이 나란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보현봉에서 뻗은 사자능선이 동쪽 아침 햇살에 눈부시다. 형제봉능선을 타고 북악터널을 건너간 능선 마루금이 스카이웨이 팔각정을 따라 북악산을 뾰족이 세운다. 그 오른쪽으로는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오른쪽 안산에는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안테나가 설치돼 있다.
다시 향로봉을 향한다. 1010에 당도한 슬랩 초입에는 공단 직원이 나와서 '위험 구간이니 우회할 것'을 권고한다. 오른쪽으로 오래된 낙엽이 쌓인 길을 따라 급한 오르막을 오르면 비봉능선길의 주능선에 붙는다. 다시 주변을 조망하니 이제는 삼각산의 주봉들이 한눈에 잡힐 듯 가까이 와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만경대가 훨씬 멀리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인수봉이 더 멀리 있다는 것을 매 뻔(?)을 강조해도 믿질 않는다.
비봉 오름길... 한 구간 신경 써야 하는 곳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오를 수 있다'고 설득하여 5명 전원이 모두 오른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누구누구는 우회하고 그러던데 오늘은 뱅고도(?) 잘 오른다. 팔다리가 길어 홀드를 잡는 것이 훨씬 수월하더라...
비봉!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다고 붙여진 봉우리, 비봉! 어렸을 때 교과서 사진으로만 봤던 그 비석, 천오백년 풍파에 시달려 깨지고 닳고 갈리고... 그 순수비를 원형과 일치하게 모조품을 만들어 최근 설치했단다. (물론 원본은 박물관에 보관 중임.) 총알 자국까지 그대로 복원했다는데... 생졸님 말마따나 이끼도 좀 끼게 하고, 색상도 좀 어둡게 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그런 모습을 갖추게 되리라... 그리고 그 원본 비석의 머릿돌을 찾는 작업을 했다는데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모양이다. 그 머릿돌은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멋진 사진으로 흔적을 남기고, 내림길을 조심조심... 다시 능선을 타고 진행하다가, 1110 사모바위에 당도한다. 좋은 자리 있을 때 무조건 먹잔다. 진짜로 좋은 자리를 잡고 식탁을 차린다. 생졸은 기러기임에도 불구하고 보온 도시락을 싸오고, 서총도 자신이 했다는 밥을 풀어놓는다. 김밥과 라면, 목동표 김치, 커피, 매실주, 누룽지 막걸리, 귤, 사과, 양갱........
서총이 새로 사온 접이 의자가 새로운 모델이다. 편하게 생겼는데, 우째 좀 무거워 보인다. 이제 네 개나 사뒀으니 신입 산객이 들어올 날만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서총의 걱정거리 하나 들어주자면 신입회원이 빨리 들어와야 하는데...
승가봉을 지나 문수봉 초입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고, 직진하면 문수봉으로 곧바로 오르는 길이다. 여기서는 두 파로 나뉜다, 직진파와 우회파. 뱅고는 ‘문수봉은 문수가 있을 때만 오른다’는 새로운 룰을 공표하고 생졸을 이끌고 우회파를 리드해버렸다. 근데 우회파한테 지령(?)을 잘 못 내렸다. 남장대터로 가려면 ‘청수동 암문’에서 만나자고 해야 하는데, 뱅고의 세뇌공작에 말린 탓인지 ‘대남문’에서 만나자고 해버렸다. 지령을 수정하려고 전화를 매 뻔씩이나 해 보지만 대답 없는 공허함 뿐이더라.
문수봉 오름길에는 등산로 정비작업의 일환으로 철 난간 설치작업이 한창이고 착암작업 하는 관계로 주변에 돌 가루가 날린다. 11/21에는 완공예정이라고 현수막이 붙어 있다. 다음에 갈 때에는 편한 길이 다듬어져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굳이 철 난간이 없더라도 조심하면 오를 수 있는 길이라 여기고 찾아온 길인데, 이제 그 맛을 찾을 수 없게 돼버렸다.
한 구간에서 오른손가락이 불편한 곡사가 홀드를 당기지 못해 5미터 슬링으로 당겨준다. 나 역시 사진으로만 보던, 참선대의 개구리 바위(? 다른 이름이 많음)가 탐스럽다. 문수봉에 이르자 선달님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지사. 뱅고가 제창한 룰을 지키자는 주장에 따라 오늘은 작은 문수봉(태극기가 있는 봉우리)에만 오른다.
곧바로 대남문으로 가서 문루에서 쉬고 있는 우회파를 만난다. 이제 와서 다시 청수동 암문으로 가자고 할 수도 없고, ‘막내회집’이 그리워 그냥 구기동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중간에 한 번 휴식하며 사과와 귤, 서총이 집에 가서 마시려고 남겨온 매실주를 그냥 비워버렸다. ‘갖고 온 음식 갖고 가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그래도 지켜지는 셈인가?
택시로 남대문으로 이동하고 대낮에 앉은 ‘막내회집’에는 이렇게 여유 있고 널찍해서 좋더라. 휴일 낮에 이 집을 찾으면 좋을 듯... 남겨간 고구마와 양갱으로 쥔장 마음을 뺏아 맥주 두 병을 공짜로 마셨나? 추가로 주는 안주가 더 많고 좋더라...
그 다음은 시청 앞에서 찾아 나선 호프집, 어디에도 없더라. 30분을 헤매며 찾은 집은 뱅고가 제일 좋아하는 타입이라... 진짜로 30년 전 옛날,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바로 그런 분위기... 분위기에 휩쓸려 한 잔, 강아지 얘기에 또 한 쪼끼.... 그렇게 저녁은 깊어만 가더라...
++++
오랜만에 일요 산행에서 취해서 늦게 들어간 집안에는 휑한 바람만 불고 있고, 천둥번개가 치기 일보 직전이다. 곁님의 서릿발 선 한 마디는
"산에 갔다 이래 늦으면 다시 산에 갈 수 있을 줄 아나? 제대로 연락은 해야지..."
오메!!! 무서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