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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1 편
종교의 참 본질
.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 1934년
101:0.1 종교는 인간 체험의 일환으로, 원시적인 두려움의 노예 상태에서부터, 영원한 하나님과의 아들됨을 깊이 의식하는 문명인들의 숭고하고 웅장한 믿음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01:0.2 종교는 발전된 윤리와 사회의 진보적 진화에서 도덕의 선조이다. 그러나 종교 자체는 단순히 도덕적 운동에 그치지 않으며, 종교의 외적이고 사회적인 표현은 인간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움직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종교는 항상 인간의 진화하는 본성에 영감을 주지만, 그 진화의 비밀은 아니다.
101:0.3 성격자자의 믿음-확신 확신으로서 종교는, 불신앙적인 물질적 mind에서 비롯된 절망의 얄팍한 모순된 논리를 항상 이길 수 있다. 실제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된 빛"이라는 참된 내면의 목소리가 있다. 이 영의 인도는 인간 양심의 윤리적 자극과는 구별된다. 종교적 확신의 감정은 단순한 감정적 느낌을 넘어서며, 종교의 확신은 이성의 논리, 심지어 철학의 논리를 초월한다. 종교는 신뢰와 확신, 그리고 믿음이다.
1. 참된 종교
101:1.1 참된 종교는 자연적 증거에 의해 이성적인 설명으로 입증할 수 있는 철학적 믿음의 체계가 아니며, 또한 신비주의의 낭만적 추종자들만이 참여하게 되는 설명할 수 없는 황홀감의 신비적 체험도 아니다. 종교는 이성의 산물이 아니지만, 내면에서 보면 전적으로 이성적이다. 종교는 인간 철학의 논리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체험으로서 아주 논리적이다. 종교는 진화적 기원을 가진 도덕적 존재의 의식 속에서 신성을 체험하는 것이다; 시간 속에서 영원한 실체들과의 참된 체험을 나타낸다. 즉, 육체 안에 있으면서도 영적인 만족을 실현하는 것이다.
101:1.2 생각 조절자는 자아 표현을 위한 특별한 메커니즘이 없으며, 종교적 감정을 수용하거나 표현하기 위한 신비한 종교적 능력도 없다. 이러한 체험들은 자연적으로 부여된 필사자 mind의 메커니즘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조절자가 물질적인 mind와의 직접적인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로 설명된다.
101:1.3 신성한 영은 인간과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영적 생각 영역에서 접촉한다. 하나님을 향한 길은 너의 감정이 아니라 너의 생각에 의해 인도된다. 신성한 본성은 오직 mind의 눈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을 분별하는 마음, 깃들어 있는 조절자의 음성을 듣는 것은 순수한 mind이다. “거룩함 없이 누구도 주(主)를 볼 수 없다”고 했듯이, 모든 내적이고 영적인 교감은 영적 통찰력으로 불린다. 이러한 종교적 체험은 조절자와 진리의 영이 작용하면서 인간의 사상, 이상, 통찰, 영적 갈망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나타난다.
101:1.4 종교는 시각과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과 통찰에 의해 살고 번성한다. 종교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거나 독특한 체험을 발견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인류에게 이미 잘 알려진 사실에서 새롭고 영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데 있다. 가장 높은 종교적 체험은 이전의 믿음, 전통, 권위에 의존하지 않으며, 숭고한 감정과 순수한 신비적 감정의 산물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mind 안에 거주하는 영의 영향력과 영적 교통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며, 심리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체험의 실체로서 하나님을 믿는 체험적 실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101:1.5 종교는 물질적 우주론의 합리적 추측 산물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종교는 사람의 지성 체험에서 생기는 온전히 이성적인 통찰력을 창조한다. 종교는 신비스러운 명상이나 고립된 상태의 숙고에서 태어나지 않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 신비롭고 순전히 지적 이성과 철학적 논리로는 정의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참된 종교의 싹은 인간의 도덕적 의식의 영역에서 시작되며, 이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인간의 mind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생각 조절자의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의 영적 통찰력의 성장에서 드러난다.
101:1.6 믿음은 도덕적 통찰력을 가치의 양심적 분별과 결합시키며, 본래 있던 진화적 의무감이 참된 종교의 기원을 완성한다. 종교적 체험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의식과 믿는 personality가 살아남는다는 의심 없는 확신을 가져온다.
101:1.7 그러므로 종교적 갈망과 영적 충동은 단순히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싶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만드는 성질과 힘을 지니고 있다. 진화적 의무감과 계시의 조명으로 인한 의무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깊은 인상을 주어,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 권리가 없다고 결론짓는 mind의 위치와 혼의 태도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한 계몽되고 훈련된 개인들의 높은 수준의 철학을 뛰어넘는 지혜는,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그의 선함을 불신하는 것이 인간 mind와 혼 안에 있는 가장 진실하고 깊은 것―신성한 조절자―에 불충하는 것임을 궁극적으로 가르친다.
2. 종교적 사실
101:2.1 종교적 사실은 이성적이고 평범한 인간들의 종교적 체험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이것이 종교가 과학적이거나 심리적일 수 있는 유일한 의미이다. 계시가 계시임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사실에 있는 인간 체험이다; 계시는 자연 과학과 종교 신학이라는 겉보기에는 서로 다른 두 과학을 일관되고 논리적인 우주 철학으로 종합하며, 과학과 종교 모두에 대한 조화롭고 끊어지지 않는 설명을 제공하여 mind의 균형과 영의 만족을 창출한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인간 체험은 무한자가 어떻게 물질, mind, 영에 대해 자신의 의도와 계획을 실현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게 된다.
101:2.2 이성은 과학의 방법이다; 믿음은 종교의 방법이다; 논리는 철학의 시도된 기법이다. 계시는 물질과 영의 실체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mind의 중재를 통해 통합을 이루기 위한 기법을 제공함으로 모론시아 관점의 부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참된 계시는 결코 과학을 부자연스럽거나, 종교를 비합리적이거나, 철학을 비논리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101:2.3 이성은 과학 연구를 통해 자연을 거슬러 올라가 첫째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지만, 과학에서 첫째 근원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변형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믿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과 영적 통찰을 확증하기 위해서 계시가 추가로 요구된다.
101:2.4 인간의 생존을 촉진시키는 하나님을 믿는 데는 두 가지 기본 이유가 있다:
1. 인간의 체험, 개인적 확신, 어떻게든 머리에 떠올린 희망과 신뢰는 깃드는 생각 조절자에 의해 시작된다.
2. 진리의 계시는 진리의 영의 직접적인 개인 사역, 신성한 아들들의 세상에서의 수여, 기록 된 말씀의 계시를 통해 이루어진다.
101:2.7 과학은 이성적 탐구를 통해 첫째 근원의 가설에 도달한다. 종교는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서기 전까지 믿음을 멈추지 않는다. 과학의 신중한 연구는 논리적으로 절대자가 실재하고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종교는 성격(personality)의 생존을 촉진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실체를 무조건적으로 믿는다. 메타물리학이 완전히 해내지 못하는 것과 철학이 부분적으로도 실패하는 것, 즉 과학의 첫째 근원과 종교에서 구원의 하나님이 동일한 신(Deity)임을 확증하는 것이 계시이다.
101:2.8 이성은 과학의 증거이며, 믿음은 종교의 증거, 논리는 철학의 증거이다. 그러나 계시는 오직 인간 체험에 의해 검증된다. 과학은 지식을 낳는다; 종교는 행복을 낳는다; 철학은 통일성을 낳는다; 계시는 우주 실체에 접근하는 이 삼자일치의 체험적 균형을 확인한다.
101:2.9 자연에 대한 깊은 명상은 단지 움직이는 자연의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자연은 오직 물질, 움직임, 생기―생명―을 보여준다. 특정 조건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결합하여 생명 형태로 나타나지만, 자연적 생명은 현상으로서 비교적 연속적일 뿐, 개체로서는 완전히 일시적이다. 자연은 인간-personality 생존에 대한 논리적 믿음을 제공하지 못한다. 자연에서 하나님을 찾는 종교인은 이미 먼저 그 자신의 혼 속에서 이 같은 personal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다.
101:2.10 믿음은 혼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낸다. 진리는 진화적 세계에서 모론시아 통찰을 대신하여, 인간이 자연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계시는 물질과 영적, 생명존재와 창조자,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성공적으로 다리를 놓는다.
101:2.11 자연에 대한 깊은 명상은 논리적인 지능적 인도, 심지어 살아있는 감독의 방향을 가리키지만, personal 하나님을 만족스럽게 드러내지는 못한다. 다른 한편에서, 자연은 우주를 종교의 하나님 작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그 어떤 것도 드러내지 못한다. 자연만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는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는 인간에게 자연 연구는 우주에 대한 더 높은 차원과 영적인 해석과 완전히 일치하게 된다.
101:2.12 계시는 시대적 현상으로서 정기적으로 일어난다; personal 인간 체험으로서 연속된다. 신성은 필사자의 personality 안에서 아버지의 선물인 조절자로서, 아들의 진리의 영으로서, 우주 영의 성령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초월적 자질은 인간의 체험적 진화에서 최상위(Supreme)의 사역으로 통합된다.
101:2.13 참된 종교는 실체에 대한 통찰력으로, 도덕적 의식의 믿음의 결실이며, 독단적인 교리에 대한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다. 참된 종교는 "영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한다"는 체험에 있다. 종교는 신학적 명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통찰과 혼의 숭고한 신뢰에 있다.
101:2.14 너의 가장 깊은 본성―신성한 조절자―는 의(義)를 간절히 목마르게 찾는, 신성한 완전의 갈망을 네 안에서 창조한다. 종교는 신에게 도달하려는 이 마음속의 욕구를 깨닫는 믿음의 행위이다; 따라서 구원받는 방법, personality의 생존 기법, 네가 진실하고 선하다고 생각하게 된 그 모든 가치는 혼의 신뢰와 확신을 가져온다.
101:2.15 종교의 실현은 위대한 학문이나 교묘한 논리에 결코 의존하지 않으며, 결코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종교는 영적 통찰력이며, 이것이 바로 세상의 위대한 종교 선생들, 심지어 예언자들조차 때때로 세상의 지혜가 없었던 이유이다. 종교적 믿음은 학문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모두에게 동일하게 열려 있다.
101:2.16 종교는 항상 스스로를 비판하고 판단해야 한다; 외부에서 관찰하거나 이해될 수 없다. personal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오직 영적인 것들에 대한 믿음과 체험에 대한 너의 통찰에서 비롯된다. 유사한 체험을 가진 모든 동료들에게는 하나님의 실체나 personality에 대한 논쟁이 필요 없으며, 하나님에 대해 확신이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논쟁도 진정으로 설득할 수 없다.
101:2.17 심리학은 종교적 반응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현상을 연구하려 시도하지만, 종교의 실제적이고 내적인 동기와 작용에까지 도달할 수는 없다. 오직 신학, 즉 믿음의 영역과 계시의 기법만이 종교적 체험의 본질과 내용을 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3. 종교의 특성들
101:3.1 종교는 생명력이 강해서, 배움이 없는 데서도 지속한다. 그릇된 우주론과 거짓된 철학에 오염되어도 종교는 살아 있다; 형이상학의 혼란을 겪어도 살아남는다. 종교적 흥망의 역사를 통틀어, 또 이를 통해서, 인간이 진보하고 살아남는 것을 늘 지속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윤리적 양심과 도덕의식이다.
101:3.2 믿음에서 생기는 통찰력, 곧 영적 직관은 생각 조절자와 관련하여 우주 mind가 부여한 것이고, 이 조절자는 아버지가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영적 이성, 곧 혼의 지능은 성령이 준 자질, 창조 영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영적 철학, 곧 영 실체들을 깨닫는 지혜는 진리의 영이 내려주는 것이며, 진리의 영은 수여 아들들이 함께 사람의 아들딸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이들 영 자질들은 조율하고 서로 연합하여 인간을 잠재적 운명 안에서 영 성격자(spirit personality)로 만들어낸다.
101:3.3 이 동일한 영 personality는 초기의 원시적 형태인, 육체적 죽음을 넘어서 생존하게 되는, 조절자가 소유한 것이다. 인간 체험과의 결합 안에 있는 영의 기원을 가진 이 복합 독립체는, 살아 있는 움직임이 멈추고, 물질인 것과 영적인 것의 그러한 일시적 협동 관계가 분리될 때, 신성한 아들들이 마련한 생명 방법의 수단으로, mind와 물질로 이루어진 물질 자아의 분해에서 (조절자의 보호 안에서) 살아남게 된다.
101:3.4 종교적 믿음을 통해서 인간의 혼은 자신을 드러내고, 솟아나는 혼의 본성이 지닌 신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독특한 방법으로 그 믿음은 필사 성격자로 하여금 지적이고 시험하는 어떤 벅찬 사회 상황에 반응하도록 유인한다. 참된 영적 믿음(참된 도덕 의식)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드러난다:
1. 타고난 불리한 동물 성향이 있는데도, 윤리와 도덕이 진보하게 만든다.
2. 쓰라린 실망과 참패 앞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숭고한 신뢰를 낳는다.
3. 자연의 역경과 물리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깊은 용기와 자신감이 생겨난다.
4. 좌절시키는 병, 살을 에는 육체의 고통이 있어도 설명할 수 없는 차분함과 지속하는 평안을 나타낸다.
5. 부당한 대접과 아주 지독한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도, 신비스러운 차분함과 성격의 침착성을 유지한다.
6. 사정없이 닥치는 운명의 잔인함과 겉보기에 자연력이 인간의 복지에 전혀 무관심한 듯해도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신을 의지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7. 온갖 반대되는 논리가 전시되어도, 하나님을 믿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키고, 모든 다른 지적 궤변을 견디는 데 성공한다.
8. 거짓된 과학의 속이는 가르침과 건전하지 않은 철학의 그럴듯한 망상과 상관없이, 혼의 생존에 대한 불굴의 신앙을 계속 나타낸다.
9. 현대의 복잡하고 치우친 문명이 짓눌러 지워준 과중한 짐과 상관없이, 살고 승리한다.
10. 인간의 이기심, 사회적 대립, 산업의 욕심, 정치적 부적응이 있는데도 이타주의의 계속된 생존에 공헌한다.
11. 죄와 악의 당혹스러운 존재와 상관없이, 우주의 통일과 신의 인도하심을 믿는 숭고한 믿음을 변함없이 고수한다.
12.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계속한다. “비록 그가 나를 죽이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를 섬길 것이다”라고 감히 선언한다.
101:3.17 따라서 우리는 세 가지 현상을 통해 인간 안에 신성한 영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개인적 체험―종교적 믿음에 의해서; 둘째, 개인 및 인종적 계시에 의해서; 셋째, 실제 인간 존재의 실제적이고 힘든 상황에서 펼쳐지는, 앞에서 설명한 12개의 영적인 수행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물질적 환경에 대한 비범하고 비자연스러운 놀라운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다른 현상들이 존재한다.
101:3.18 바로 이처럼 생생하고 강렬한 믿음의 실천이야말로 종교 영역에서 필사 인간이 인간 본성의 가장 뛰어난 자질인 종교적 체험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며 그것이 영적 실체임을 확신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4. 계시의 한계
101:4.1 너희 세계가 대체로 기원, 심지어 물리적 기원조차도 무지한 상태이기 때문에, 때때로 우주론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현명한 듯 보였다. 그리고 항상 이것은 미래에 문제를 일으켰다. 계시의 법들은 수고하여 얻지 않은 지식, 곧 때 이른 지식을 나누어주는 것을 그들이 박탈함으로 인해 우리를 크게 방해한다. 계시된 종교의 일부로 제시된 어떤 우주론이든지 간에, 그것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구시대적인 것으로 되어 버린다. 따라서 미래의 그런 계시를 연구하는 이들은 그에 따라 제시된 우주론에서 오류를 발견하게 되면, 그 계시가 포함하고 있는 참된 종교적 진리를 버리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101:4.2 진리의 계시에 참여하는 우리가, 상관들이 내린 지침에 의해 무척 엄격하게 제한된다는 것을 인류는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1천 년 동안에 있을 과학의 발견을 예상할 자유가 없다. 계시자들은 계시 명령의 일부를 구성하는 지침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이나 어떤 미래에도, 이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고 본다. 이 시리즈의 계시 발표에 담긴 역사적 사실과 종교적 진실이 다가올 시대의 기록 위에 서겠지만, 짧은 몇 년 안에, 물리학과 관련된 많은 진술들이 추가적인 과학적 발전과 새로운 발견의 결과로 수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새로운 발전의 결과를 우리가 지금 예측하고 있지만, 우리는 계시하는 기록 속에 사람이 발견하지 않은 사실을 포함시키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계시가 반드시 영감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자. 이 계시에 담긴 우주론은 영감을 받지 않았다. 이 우주론은 우리가 오늘날의 지식을 조정하고 분류하라고 받은 허가에 의해 제한된다. 신이 준 통찰력, 영적 통찰력은 선물이지만, 인간의 지혜는 진화되어야 한다.
101:4.3 진리는 항상 계시이다: 깃드는 조절자가 일하는 결과로서 계시가 드러날 때 그것은 자동 계시이고, 어떤 다른 하늘 대리자, 집단, 또는 personality의 활동으로 제시되는 경우는 시대적 계시이다.
101:4.4 마지막 분석에서 종교는 그 자체의 고유하고 신성한 우수성을 나타내는 방식과 정도에 따라 그 열매로 판단되어야 한다.
101:4.5 계시는 항상 영적인 현상이지만, 진리는 상대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일 수 있다. 우주론과 관련된 진술은 결코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지만, 그러한 계시는 적어도 일시적으로 지식을 명확히 해준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
1. 오류를 권위 있게 제거함으로 혼란을 줄인다.
2. 이미 알려졌거나 알려질 사실들과 관측들을 조율한다.
3. 먼 과거의 중요한 사건들에 관한 잃어버린 지식의 중요한 부분을 복원하는 것이다.
4. 다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중요한, 부족한 부분을 체워줄 정보를 제공한다.
5. 동반된 계시에 포함된 영적 가르침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우주 자료를 제시한다.
5. 계시로 확대된 종교
101:5.1 계시는 영적 획득의 진리에서 진화의 오류를 분류하고 가려내는 데 필요한 작업을 통해 오랜 세월의 시간을 절약하는 기술이다.
101:5.2 과학은 사실을 다룬다; 종교는 오직 가치에 관심을 둔다. 깨달은 철학을 통해 mind는 사실과 가치 두 의미를 통일하려고 애쓰고, 따라서 완성된 실체 개념에 도달한다. 과학은 지식의 영역이고, 철학은 지혜의 영역이며, 종교는 믿음을 체험하는 분야임을 기억하라. 그러나 종교는, 그럴지라도, 다음 두 단계의 명시를 보여준다:
1. 진화로 생긴 종교. 원시적 숭배의 체험, mind에서 파생된 종교이다.
2. 계시된 종교. 우주에 대한 태도, 이것은 영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영원한 실체들이 보존되고, personality의 생존에 대한 확신과 믿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우주 신의 궁극적인 성취이다. 조만간에 진화 종교가 영적 확장의 계시를 받기 위해 예정된 이것은 우주 계획의 일부이다.
101:5.5 과학과 종교 모두가 논리적 추론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떤 기초를 가정하고서 시작한다. 그래서 철학도 세 가지의 실체를 가정하고 그 일을 시작해야 한다:
1. 물질인 몸.
2. 인간의 초물질 단계, 혼이나 깃드는 영까지도 포함한다.
3. 영과 물질 사이에, 물질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의 상호 소통과 상호 연관성을 위해 작용하는 인간 mind.
101:5.9 과학자는 사실을 수집하고, 철학자는 사상을 조율하며, 선지자는 이상을 높인다. 느낌과 감정은 종교의 변함없는 수반 요소이지만 종교는 아니다. 종교는 체험적 감정일 수는 있지만, 감정은 체험이 아니다. 논리(합리화)나 감정(느낌) 모두 본질적으로 종교적 체험의 일부이지만, 둘 다 개인의 mind 상태와 기질적 성향에 따라 실체에 대한 영적 통찰력을 증진하기 위한 믿음의 수행과 다양하게 연관될 수 있다.
101:5.10 진화 종교는 진화하는 인간 안에서 예배하는 특성을 발전시키고 창조하는 일을 맡은 지역 우주의 mind 보조자가 부여한 결과물이다. 그러한 원시 종교는 윤리와 도덕, 즉 인간의 의무감과 직결된다. 그러한 종교들은 양심의 보장을 전제로 하며, 비교적 윤리적인 문명의 안정을 가져온다.
101:5.11 개인적으로 드러난 종교는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세 분을 대표하는 수여 영들의 후원을 받으며, 특히 진리의 확장에 관여한다. 진화된 종교는 개인에게 개인 의무라는 개념으로 몰고 간다; 계시된 종교는 황금률인 사랑에 점점 더 중점을 둔다.
101:5.12 진화한 종교는 전적으로 믿음에 달려있다. 계시는 신과 실체에 대한 확대된 진리가 제시된다는 추가된 보장을 받고, 실제 체험에 관하여 더욱 가치 있는 증언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체험은 진화로 얻은 믿음과 계시된 진리, 이 두 가지가 실제로 소용되는 연합의 결과로서 축적된다. 이러한 인간의 믿음과 신성한 진리의 결합은 실제로 모론시아적 personality를 획득해 가는 길에서 좋은 성품의 소유를 의미한다.
101:5.13 진화 종교는 믿음의 확신과 양심의 확인만을 제공한다; 계시종교는 믿음의 확신뿐 아니라 계시된 실체들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진실을 제공한다. 종교의 셋째 걸음, 종교의 체험에서 세번째 단계인 모론시아 상태, 모타를 확고히 붙잡는 것이다. 모론시아 진보에서 계시된 종교의 진리는 점점 더 확장된다; 너희는 최상의 가치들, 신성한 선함들, 우주 관계들, 영원한 실체들, 궁극의 운명들에 관한 진리를 더욱 알게 될 것이다.
101:5.14 모론시아 진보를 통하여 내내, 진리의 확신은 점점 더 믿음의 확신을 대체한다. 너희가 마침내 실제의 영 세계로 부름받을 때, 그때 순수한 영 통찰력이 주는 확신은 믿음과 진리 대신에 작용하든지, 또는 그보다 personality가 확신하는 이 예전의 기법과 더불어, 그리고 그 위에 겹쳐서 작용할 것이다.
6. 진보적인 종교 체험
101:6.1 계시된 종교의 모론시아 단계는 살아남는 체험과 관련이 있으며, 그 단계의 큰 욕구는 영(spirit)의 완전한 성취이다. 또한 확장된 윤리적 봉사를 하도록 재촉하는 부름과 연합하여, 예배하려는 더 높은 욕구가 존재한다. 모론시아 통찰력은 칠중 신, Supreme(최상위), 심지어 궁극위에 이르기까지 계속-확장되는 의식을 포함한다.
101:6.2 모든 종교적 체험, 물질적 수준에서 시작하여 완전한 영적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조절자는 Supreme 존재의 실재를 개인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비밀이다; 바로 이와 같은 조절자는 또한 궁극위의 초월적 성취에 대한 너의 믿음의 비밀을 지닌다. 진화하는 인간의 체험적 personality는 실존하는 신성한 조절자 본질과 결합함으로써, 완성할 최상 존재의 잠재력을 이루며, 이것은 본래부터 유한을 뛰어넘는 궁극의 초월 personality에 이르기 위한 기초가 된다.
101:6.3 도덕적 의지는 이성에 기반한 결정들을 포괄하며, 이는 지혜로 보강되고 종교적 믿음에 의해 승인된다. 이러한 선택들은 도덕적 personality의 행위로, 도덕적 personality 존재를 증명하며, 이는 모론시아 personality의 선구자이자 궁극적으로 참된 영의 지위이다.
101:6.4 진화론적 유형의 지식은 원형질 기억 물질의 축적에 불과하다; 이는 생명존재 의식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지혜는 원형질 기억에서 연상 및 재조합 과정을 통해 형성된 아이디어를 수용하며,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mind를 단순한 동물 mind와 차별화 한다. 동물도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지혜의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진리는 아버지와 아들들의 영, 생각 조절자 및 진리의 영이 그러한 마음에 부여함으로써 지혜를 부여받은 개인에게 접근 할 수 있게 된다.
101:6.5 유란시아에 수여된 그리스도 미가엘은 세례를 받을 때까지 진화 종교의 지배 아래 살았다. 그 순간부터 십자가에 못박힌 사건까지, 그는 진화 종교와 계시종교를 결합한 인도를 받고서 그의 일을 추진했다. 부활의 아침부터 승천할 때까지 그는 물질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전환하는 모론시아 생애의 다양한 단계를 거쳤다. 승천 후에, 미가엘은 Supreme을 실현하는 Supremacy 체험의 주(主)가 되었다; 네바돈에서 최상위의 실체를 체험하는 무제한 능력을 가진 유일한 성격자가 됨으로서, 즉시 그의 지역 우주에서, 그 우주에 대하여, 그는 최상의 주권자 지위에 도달했다.
101:6.6 사람의 경우에, 깃드는 조절자와 궁극에 융합하고 그 결과로 일체가 되는 것―사람과 하나님 본질의 personality 통합―은 그를 Supreme의 살아 있는 부분이 될 수 있게 하며, Supreme을 위해서, 그리고 그와 함께, 마침내 우주에서 봉사를 끝없이 추구하는 영원한 생득권을 한때 필사자였던 그런 사람에게 보장해 준다.
101:6.7 시간이 흐르는 수단으로 공간을 거치는 그러한 멋지고 흥미를 자아내는 모험을 떠나기 위해서, 계시는 필사 인간에게 먼저 지식을 생각 및 결정으로 체계화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음에, 자기-중심적 사상들을 점점 실용적이면서도, 그럼에도 초월적 사상으로 변화시키는 고귀한 임무에 끊임없이 힘쓰기 위해 지혜를 이용하도록 명령하며, 심지어 조절자는 아들들의 진리 영이 행동하기 위해 준비되도록, 실제 인간의 보완물로 그것들이 구성되게 하여, 유한한 mind 안에서 그 같이 연계하고 그것들을 이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감히 그것들을 통합하고 영성화 한다. 이 진리 영은 시-공간에서 나타나는 파라다이스 진리―우주적 진리―의 표현이다. 생각-결정, 논리적 이상들, 신성한 진리를 조율하는 것은 의로운 성품을 소유하게 만들며, 이것은 필사자가 늘 확대되고 증대되는 모론시아 세계들의 영적인 실체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101:6.8 예수의 가르침은 아름답게 조화된 지식, 지혜, 믿음, 진리, 사랑을 아주 넘치게 담고 있으며, 그래서 현세에서 마음의 평안, 지적 확신, 도덕적 깨우침, 철학적 안정, 윤리적 민감성, 하나님 의식, 그리고 personal 생존의 분명한 확신을 완벽하게 동시에 제공하는 최초의 유란시아 종교를 구성했다. 예수의 믿음은 인간 구원의 궁극적인 완성을 향한 길을 제시했고, 다음을 제공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성취를 위한 최종적 목표를 향한 길을 열었다.
1. 물질적 속박으로부터의 구원은 영이신 하나님의 아들 지위를 개인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다.
2. 지적 속박으로부터의 구원은 인간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 영적으로 눈이 먼 상태에서의 구원은 인간이 필사 존재와 모론시아 존재로서 모든 우주 생명존재들의 형제로 의식하는 친교 관계를 깨닫게 한다; 즉 영적 실체 사역을 발견하고 영적 가치의 선함을 계시한다.
4. 자신의 불완전에서 구원은, 우주의 영적 수준을 달성하고, 궁극적으로 하보나의 조화와 파라다이스의 완성을 실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5. 자의식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자아로부터의 구원은, Supreme mind의 우주 수준 달성하고 모든 자의식을 가진 존재들과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6. 시간의 구원은, 하나님을-인식하고 하나님을 향한 봉사에서 끝없이 진보하는 영원한 생명을 성취한다.
7. 유한자로부터의 구원은, 생명존재가 Supreme을 통해 신(Deity)과 완벽하게 일체됨으로써, 최후자 이후 absonite 수준에서 궁극위를 발견하는 초월적인 시도에서 이루어진다.
101:6.16 그러한 일곱 가지 구원은 우주의 아버지를 만나는 궁극의 체험을 완벽하게 완전히 실현하는 것과 대등하다. 이 모든 것의 가능성은 인간의 종교적 체험에서 믿음의 실체 안에 담겨 있다. 그렇게 담겨 있을 수 있으니, 예수의 믿음이 궁극의 것을 뛰어넘은 실체로부터도 자양분을 받았고, 그 실체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예수의 믿음은 그러한 것이 시-공간 진화 우주에서 겉으로 나타날 수 있는 한, 우주의 한 절대자 상태에 접근하였다.
101:6.17 예수의 믿음을 통해, 필사 인간은 시간 속에서 영원의 실체를 미리 맛볼 수 있다. 예수는 인간 체험을 통해 최후의 아버지를 발견했고, 육체적 생명의 형제들도 그를 따라서 아버지를 발견하는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들은 현재 신분 그대로, 예수가 그의 신분대로 한 것처럼 아버지와 함께 하는 이 체험 속에서 똑같은 만족까지도 얻을 수 있다. 미가엘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수여한 결과로서, 새로운 잠재력들이 네바돈 우주에서 실제가 되었고, 이 중의 하나는 만물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길, 영원의 길을 새롭게 비추는 것이었다. 이 길은 물질적 육체를 가진 존재들조차도 우주의 행성에서 초기 생애를 살아가면서 걸어갈 수 있다. 예수는 인류가 아버지가 정해주신 신성한 유산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길을 제시한다. 예수 안에서 인간, 심지어 신성한 인간일지라도 믿음의 체험의 시작과 끝이 풍부하게 나타난다.
7. 개인의 종교 철학
101:7.1 아이디어는 단지 이론적 행동 계획일 뿐이고, 긍정적인 결정은 검증된 행동 계획이다. 고정관념은 검증 없이 수용된 행동 계획이다. 개인의 종교적 철학을 구축하는 재료는 개인의 내적 체험과 환경적 체험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지위, 경제적 조건, 교육 기회, 도덕적 경향, 제도적 영향, 정치적 발전, 인종적 경향, 그리고 당시와 장소의 종교적 가르침 모두 개인의 종교적 철학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타고난 기질과 지적 성향 또한 종교 철학의 형태를 뚜렷이 결정한다. 직업, 결혼, 그리고 친족 모두 개인의 삶의 기준이 진화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101:7.2 종교 철학은 기본적인 개념의 성장과 실험적 삶의 체험에서 진화하며, 이 두 가지는 동료를 모방하려는 성향에 의해 수정된다. 철학적 결론의 타당성은 의미에 대한 민감성 및 평가의 정확성과 관련된 날카롭고 정직하며 분별력 있는 사고에 달려 있다. 도덕적 두려움을 가진 자는 높은 철학적 사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새로운 체험의 수준을 탐험하고 미지의 지적 영역을 탐색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101:7.3 현재 새로운 가치 체계가 등장한다; 원칙과 기준의 새로운 공식들이 정립된다; 습관과 이상이 재구성된다; personal 하나님에 대한 어떤 개념에 도달하고, 그에 따른 관계성의 광범위한 개념들이 뒤따른다.
101:7.4 종교적 생활 철학과 비종교적 생활 철학의 큰 차이점은 인정된 가치들의 본질과 수준, 그리고 충성의 대상에 있다. 종교 철학의 진화에는 네 단계가 있다: 그러한 체험은 전통과 권한에 복종하도록 몸을 맡기면서, 다만 순응하는 체험이 될 수 있다. 아니면 그 철학은 일상을 안정시키기에 겨우 충분할 정도로, 하찮은 성취로 만족될 수도 있고, 따라서 그러한 우발적 수준에서 일찍부터 성장이 멈춘다. 그러한 사람들은 혼자서 충분히 잘 지내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셋째 집단은 논리로 지적 수준까지 진보하지만, 문화에 종이 된 결과로서 거기서 침체에 빠진다. 문화적 사슬의 잔인한 손아귀에 아주 단단히 붙들려 있는 대단한 지성인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로 딱하다. 자기 문화의 사슬을, 과학이라 거짓되게 부르는 유물론적 사슬과 바꾸는 자를 지켜보는 것은 똑같이 애처롭다. 넷째 수준의 철학은 모든 관습과 전통의 장애로부터 자유를 얻고, 감히 생각하고, 행동하고, 정직하고, 충성스럽고, 두려움 없이, 진실하게 살 수 있다.
101:7.5 어떤 종교 철학이라도 그 진정한 검증은 그 철학이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의 실체들을 구별하는지 아닌지, 한편 동시에 지적 노력과 사회적 봉사에서 그들이 통합하는 것을 인정하는지 아닌지에 있다. 건전한 종교 철학은 하나님의 것과 시저의 것을 혼동하지 않는다. 종교를 위한 대체물로서 순수한 경이로움에 대한 미적 숭배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101:7.6 철학은 대체로 양심을 일깨우는 옛 이야기였던 원시 종교를, 우주 실체의 상승하는 가치 속에서 살아있는 체험으로 변화시킨다.
8. 믿음과 신념
101:8.1 신념은 삶을 동기화하고 삶의 방식을 형성할 때 비로서 믿음의 수준에 도달한다.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신념일 뿐이다. 확신이나 확정적인 신념도 믿음이 아니다. 믿음 수준에 도달하려면 그 mind 상태가 실제로 삶의 방식을 지배해야 한다. 믿음은 참된 개인적 종교적 체험의 살아 있는 속성이다. 진리를 확신하고,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선을 존경하지만, 그것들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구원에 대한 믿음의 태도는 오직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하며,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성격화시킨 존재이자 무한히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
101:8.2 신념은 항상 제한하고 묶는다; 믿음은 확장하고 풀어놓는다. 신념은 고정되어 있지만, 믿음은 해방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종교적 믿음은 고귀한 신념들의 연합 그 이상이다; 그것은 높은 철학 체계 그 이상이다; 그것은 영적인 의미들, 신적인 이상들, 최상의 가치들과 관련된 살아있는 체험이다; 그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람에게 봉사한다. 신념은 집단의 소유물이 될 수 있지만, 믿음은 개인의 것이 되어야 한다. 신학적 확신을 한 집단에게 제시할 수 있지만, 믿음은 오직 개별 신자의 마음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101:8.3 실체들을 부정하고 신자들에게 가정된 지식을 수여할 때 믿음은 변질된다. 지적 성실성에 대한 배신을 조장하고, 최상의 가치와 신성한 이상에 대한 충성을 헐뜯을 때, 믿음은 돌아서 버린다. 믿음은 필사자의 삶에서의 문제-해결 의무를 결코 피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믿음은 편협, 박해, 불관용을 조장하지 않는다.
101:8.4 믿음은 창조적 상상력을 방해하지 않으며, 과학적 조사의 발견들을 향해 이치에 맞지 않는 편견을 계속하지도 않는다. 믿음은 종교를 활기 있게 만들고, 신자에게 영웅답게 황금률의 실천을 강요한다. 믿음의 열정은 지식에 따른 것이며, 믿음의 분투는 숭고한 평화로 이끄는 전주곡이다.
9. 종교와 도덕성
101:9.1 종교의 어떤 계시도 이전의 진화적 종교에 의해 형성되고 강화된 윤리적 의무의 요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참되다고 볼 수 없다. 계시는 진화된 종교의 윤리적 시야를 확장시키며, 동시에 모든 이전 계시의 도덕적 의무를 확장시킨다.
101:9.2 인간의 원시 종교에 (또는 원시인의 종교에) 대해 너희가 비판적 판단을 내릴 때, 너희는 그러한 야만인의 깨우침과 양심의 상태에 따라서, 그들을 판단하고 그들의 종교적 체험을 평가해야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지식과 진리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종교를 판단하는 실수를 하지 말라.
101:9.3 참된 종교는 혼(soul) 속에서 숭고하고 깊이 있는 확신으로, 인간에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최고 개념, 삶의 가장 큰 가치, 우주의 가장 깊은 실체를 구성하는 모론시아적 실재를 믿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강력하게 훈계한다. 이러한 종교는 단순히 영적 의식의 가장 높은 명령에 지적 충성을 굴복시키는 체험이다.
101:9.4 미(美)에 대한 탐구는 그것이 윤리적일 때와 도덕적 개념을 풍부하게 할 때만 종교의 일부로 간주된다. 예술은 오직 높은 영적 동기에서 비롯된 목적을 담을 때만 종교적이 된다.
101:9.5 문명화된 인간의 깨달은 영적 의식은 특정한 지적 신념이나 특정한 생활 방식보다는, 삶의 진리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간 존재의 상황에 올바르고 선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기술에 중점을 둔다. 도덕적 의식은 인간이 일상적인 행동의 통제와 인도에서 준수해야 할 윤리적이고 솟아나는 모론시아적 가치에 대한 인식과 자각을 나타내는 이름일 뿐이다.
101:9.6 종교가 불완전한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 본질과 기능의 두 가지 실질적인 명시가 있다:
1. 종교의 영적 충동과 철학적 압박은 인간이 도덕적 가치를 자신의 동료들의 사건에 직접적으로 투사하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종교의 윤리적 반응이다.
2. 종교는 인간의 mind에 신성한 실체에 대한 영적 의식을 창조한다. 이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선행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믿음 의해 유도되며, 영적 가치의 상위 개념과 조화된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사건에서 검열자이며, 시간의 향상된 실체와 영원의 더 지속적인 실체에 대해 영화롭게 된 도덕적 신뢰와 확신의 형태가 된다.
101:9.9 믿음은 도덕적 의식과 지속하는 실체의 영적 개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종교는 인간이 물질적이고 자연적인 세상의 제한에서 벗어나 영원하고 영적인 세계의 초월적 실체로 나아가는 경로가 된다. 이는 구원의 기법과 점진적인 모론시아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10. 사람을 해방하는 종교
101:10.1 지적인 인간은 자신이 자연의 아이이며, 물질적 우주의 일부인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는 에너지인 우주에서, 수학 수준의 운동과 긴장 속에서 개별의 personality가 생존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한다. 물리적 원인과 결과를 살펴본다고 해도 사람은 결코 영적 실체를 헤아릴 수도 없다.
101:10.2 인간은 자신이 관념적 우주의 일부라고 인식하지만, 비록 개념이 인간의 생애를 넘어 지속될 수는 있지만, 마음에 품은 personality의 개인적 생존을 가리키는 개념은 그 어떤 것에도 내재되어 있지 않다. 논리와 이성의 가능성을 모두 소진하더라도, 논리학자나 추리하는 자에게 personality의 영원한 생존에 대한 진리가 결코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101:10.3 물질적 법칙의 수준은 원인과 결과의 연속성, 선행 작용에 대한 결과의 끝없는 반응을 제공한다; mind 수준은 개념적 연속성의 지속을 암시하는데, 이는 기존 개념들로부터 개념적 잠재성의 끊임없는 흐름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두 우주적 수준 모두 탐구하는 필사자에게 지위의 편파성과 우주의 일시적 실체, 제한된 생명 에너지가 소진되면 소멸될 운명의 일시적인 personality라는 견딜 수 없는 긴장감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101:10.4 오직 영적 통찰력을 얻도록 이끄는 모론시아적 길을 통해서, 사람은 우주에서 그의 필사 지위에 본래 있는 사슬을 언젠가 깨뜨릴 수 있다. 에너지와 mind는 파라다이스 신에게 돌아가는 길을 제시하지만, 인간의 에너지나 mind의 부여는 파라다이스 신으로부터 직접 나오지 않는다. 오직 영적 의미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는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현재, 사람에게 자질을 부여하고 깃들기 때문에 이것이 진실이다. 인류는 종교적 체험과 참된 믿음의 실천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진리의 믿음적 수용은 인간이 물질적 한계의 제약에서 벗어나, 죽음이 있는 물질적 영역에서 생명이 있는 영적 영역으로 안전하게 인도될 수 있는 합리적 희망을 제공한다.
101:10.5 종교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지적 지속성과 철학적 확신을 주고, 인간과 하나님, 부분적인 것과 완전한 것, 인간과 하나님을 혼합하여, 인간의 삶을 안정시키고 풍요롭게 하는데 있다. 바로 종교적 체험을 통해서 인간의 이상적 개념이 현실로 부여된다.
101:10.6 결코 과학이나 논리로 신이 있음을 증명할 수 없다. 이성만으로 종교적 체험이 가치 있고 선하다는 것을 결코 입증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진실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영적 가치의 타당성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종교적인 체험의 실체를 증명하기 위해 인간 수준에서 행해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접근법이다. 그러한 믿음은 물질 세계의 기계적 지배와 지적 세계의 불완전으로 인한 잘못의 왜곡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믿음은 개별적인 personality의 계속적인 생존에 관한여 필사자가 생각하는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믿음은 사랑, 법, 통일이 있는 창조, 그리고 진보하면서 신(Deity)에 도달하는 우주적 창조에서, 실체의 완성과 영생에 이르는 유일한 여권이다.
101:10.7 종교는 인간의 이상주의적 고립감이나 영적 외로움을 효과적으로 치료한다; 종교는 신자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새롭고 의미 깊은 우주의 시민으로서 자격을 부여한다. 종교는 인간의 혼 속에서 분별할 수 있는 희미한 의로운 빛을 따르면서, 그가 무한자의 계획과 영원자의 목적과 한편이 된다는 확신을 준다. 그렇게 자유로운 혼은 즉시 이 새로운 우주, 그의 우주에서 평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101:10.8 네가 그러한 믿음의 변화를 체험할 때, 너는 이제 더 수학적 우주의 노예가 아니라, 오히려 우주의 아버지의 자유로운 자발적인 자녀가 된다. 해방된 자녀는 더 이상 시간적 존재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맞서 혼자 싸우지 않는다; 모든 자연과 싸우며 희망 없는 상황에 처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희망 없는 환상에 의존하거나 허황된 오류에 신뢰를 두었을지 모른다는 마비된 두려움에 더이상 동요하지 않는다.
101:10.9 오히려, 지금,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분적 그림자에 대한 실체의 승리를 위해 함께 싸우는 전사들로 동원된다. 마침내 모든 생명존재들은 하나님과 무한에 가까운 우주의 신성한 무리가 영원의 삶과 신성한 지위를 얻기 위한 초자연적인 투쟁에서 자신들의 편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한 믿음에 의해 해방된 자녀들은 최상의 세력들과 영원의 신성한 personality들의 편에서 시간의 투쟁에 확실히 참여했다; 그들의 궤도에 있는 별들조차도 이제 그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마침내 그들은 내면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주를 바라보며, 모든 것은 물질적 고립의 불확실성에서 영원한 영적 진보의 확실성으로 변모한다. 시간 그 자체도 움직이는 우주에 파라다이스 실체들가 드리운 영원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101:10.10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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