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0.
실패로 배우기
이런 걸 절망이라 한다. 전멸이다. 거의, 대부분, 모두가 죽었을 때 전멸이라고 표현한다. 이랑에 심었던 김장배추 모종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일주일 사이에 모두 녹거나 말라버렸다. 한낮의 평균 기온은 35℃ 내외이고 새벽에도 24~25℃ 주변을 맴돌고 있다.
여전히 너무 덥다. 입추가 한 달 전이었고 그사이에 처서(處暑)와 백로(白露)가 지났다.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단호하게 이야기하면 더위가 그친다는 뜻이다. 백로에는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지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히며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도 식물도 긴 무더위에 모두 지쳐버렸다.
배추 모종이 더 필요하다. 사라진 모종만큼 채워 넣어야 할 판이다. 모종 심기가 미숙했을 수도 있다. 물관리가 소홀했을 수도 있으며 더위로 인한 자연재해일 수도 있다. 비닐 멀칭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여하튼 모종이 죽었으니, 대책이 필요하다. 텃밭에 배추가 자라야만 가을 수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교육생들의 대표가 부단한 노력으로 500여 개의 배추 모종을 센터에서 재수령해 왔다.
절망 속에 희망이 있다고 했다. 한 번 경험한 일들은 학습효과가 상당히 크다. 멀칭한 비닐 구멍을 넓히거나 모종을 이랑보다 높게 심기도 하고 주위에 물구멍을 뚫는 방법도 모색되었다. 일부는 비닐을 걷어내는 단호함을 보였다. 급수에 대한 부족한 근거의 토론이 이루어졌다. 광합성을 위해 아침에만 급수해야 한다는 주장과 주야로 물을 줘야 빨리 정착한다는 유튜브 영상도 제시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아는 이는 없다. 아니 애당초 정답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까맣게 멀칭된 이랑 위로 파릇파릇한 배추가 나란하게 줄 맞춰 심어졌다. 아침저녁으로 아기 보살피듯 발걸음 소리를 먹이는 이들의 간절함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빈 땅으로 놀릴 수 없듯이 나눠준 배추포기보다 적은 수확량은 나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 갈수록 더 큰 차이가 날 테고, 결국은 극복되지 않을 테니 시작부터 뒤처지기는 싫어질 뿐이다. 마음은 복잡하고 몸은 뭘 해야 할지 모른다. 그 사이에 배추는 잎사귀를 하나씩 만들고 있다.
“이렇게 하면 실패한다는 걸 배우세요” 귀농귀촌지원팀장이 한 말이다. 농으로 던진 말이고 위로를 가득 담은 말이라 생각한다. 이 생뚱맞은 한마디가 알 수 없는 용기를 주는 이유는 뭘까.
첫댓글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 에서 크게 웃었네
속담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참 팩트있게 위트가 있어
배추가 성공하건 말건 이글 읽고는
웃을수 밖에 ᆢ
남들도 다~~아 많이 죽었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