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고 ‘일등공신은 역시 노사모’라 한다. 2000년 봄 자생적으로 출현하여 자기조직적으로 확대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노사모는 인터넷의 특성과 기능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자마자 진로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라 한다. 제4대 대표 ‘일꾼’을 맡은 이는 일간지와의 회견에서 “노사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 같다”며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사모의 진정한 사명은 이제 비로소 맡겨졌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국민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대통령에게 실망, 자책하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던가. 어째서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원탁이 장탁(長卓)으로 변하고, 자유롭던 의견 교환이 상명하복으로 바뀌는가. 노사모가 이름 그대로 대통령 당선자를 사랑한다면, 다시는 이러한 실망과 자책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할 책무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바람과 감성에 호소, 대통령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이성과 지성으로 무장, 감시자와 비판자로 변신해야 할 때다.
‘7000만의 대통합’을 외치지만, 무엇보다 먼저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당선자에게 투표한 사람은 남한 유권자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유효 투표의 과반수 지지도 얻지 못했고, 박빙의 2.3% 차이가 당락을 갈랐다. 이 2.3% 중에는 거대 야당의 독주에 대한 견제 심리가 상당 부분 내포됐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 되도록 하려면, 노사모는 앞으로 5년 동안 비정부기구(NGO) 내지는 비영리기구(NPO)로 계속 남아서 진정한 조언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법 위에 권력이 있고 그 위에 시민단체가 있으며, 그 위에 국민 정서가 군림한다는 어느 일간지 기자의 지적도 깊이 새겨야 한다.
아무튼 국민 대통합을 주장하는 입을 ‘발전적 해체’라는 베일로 가리고 권력 투쟁의 냄새를 풍기는 상황에서는 진정한 국민 대통합을 기대할 수 없다. ‘찬반 토론’의 양극화 사고에 고착된 나머지 자유로운 담론에 의한 새로운 비전을 열지 못하는 풍토, 다른 의견에 대해 사이버 테러를 일삼거나 특정 언론 매체를 매도하는 풍토, 소수의 지지를 다수의 지지로 착각하고 오만에 젖어 획일성을 강요하는 풍토에서는 국민 대통합을 기대할 수 없다.
모노폴리야말로 민주주의의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열의 근본원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고 다른 의견을 배척하려는 풍토에 있다. 종의 다양성이 유지되는 생태계라야 건전한 생태계인 것처럼, 의견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라야 비로소 통합적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젊은피 수혈’을 앞세우면서 세대 교체라는 미명 아래 세대간 반목을 조장하는 풍토에서도 국민 대통합은 기대할 수 없다. 세대란 중첩되는 것으로 기계도 아니고 부품도 아니다. 공존할 수 있을지언정 교체의 대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세대 교체란 말 자체가 국민 대통합의 걸림돌이 된다. 우리가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넘느라고 고생했다면, 이제는 세대간의 장벽, 연령의 구획을 헐어내야 할 때다.
1925년생이나 1935년생은 구세대이고 1946년생은 신세대인가. 1946년생도 2008년이면 환갑이 넘는다. 2002년에도 또 한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피터 드러커는 1909년생이다. 노벨상 수상자의 나이 범위는 25~87세이고, 그들이 수상 대상 업적을 발표한 나이 범위도 20~83세였다. 몇 살이 창의적이고 몇 살이 구태의연한가. 귀중한 노인력을 사장시키는 사회야말로 낭비적인 사회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개발의 기본 명제가 다름 아닌 세대내 공평성과 세대간 형평성의 추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사람들 가운데는 인터넷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이번 선거중에도 보였지만, 자기 격리와 배타적 집단 분극화에 의한 반향실(echo chamber) 현상이 특히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의 불식도 앞으로의 노사모 활동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인터넷은 다양한 세대의 다양한 의견 표출과 수렴을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과 자유의 신장에 기여하는 자기조직적인 넓은 마당(public domain)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