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어른 되다’ 인천 유나이티드 방승환①
지난 해, 인천 유나이티드는 ‘파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선수들과 함께 K리그에 거대한 ‘파란’을 일으켰다. 비록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울산현대에게 패해 정규리그 우승컵은 내줬지만, ‘통합 1위’ 라는 가장 빛나는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이렇듯 시민구단의 희망을 안고 출항한 인천 유나이티드호는 성공적으로 K리그에 안착했다. 그중 으뜸 조타수는 단연 프로데뷔 2년 차의 신예, 방승환. 사실 4강 플레이오프전에서 이상헌에게 연결한 그의 어시스트와 추가골이 없었다면 인천의 챔피언결정전 진출 또한 없었을 것이다.
방승환의 프로 데뷔 첫해 이미지는 노랗게 염색한 그의 머리색처럼 강렬했다. 거침없이 솔직한 말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어쩜 방황기가 길었던 탓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며 내심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겨울비가 내리던 1월의 어느 날, 인천 유나이티드 숙소 근처 카페에서 방승환을 만났다. 유자차를 시키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말하자 “헤이즐넛 시키는 기자님도 안 어울리기는 마찬가지” 라고 응수했다.
그의 유쾌한 유머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 따뜻한 차 기운이 들어가자 더 그러했다. 그 때문에 늦은 저녁, 그와의 인터뷰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그 긴 시간동안 방승환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놀아볼 만큼 놀아도 봤고, 부모 가슴에 못도 박아봤다며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 그리고 이제는 진짜로 축구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그.
우리도 모르는 사이 방승환, 그는 어느새 소년에서 어른이 돼 있었다.
-동계훈련 시작됐죠? 네. 요즘 오전에는 웨이트 및 기본기 훈련하고, 오후에는 런닝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곧 중국에 가서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하고, 귀국 후에는 다음달 23일에 열리는 ‘2006 통영컵 국제프로축구대회’ 에 출전해요.
-작년 시즌은 많이 아쉬울 것 같습니다. 많이 아쉽죠. 우승해야했는데 못 했으니까. 그렇지만 올해 하면 되죠.
-2004년에는 인천이 13개 구단 중 12위라는 성적을 거뒀죠. 그렇지만 2005년에는 통합 1위라는 화려한 성적으로 복귀했는데, 그 비결이 있다면요.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축구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력으로 하는 스포츠인데, 당시 훈련도 많이 못한 상태에서 시합에 나가야했거든요. 그렇지만 점점 발을 맞추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조직력이 좋아졌고, 그것이 2005년에 빛을 보게 된 거죠. 동계 때 “올해는 한 단계만 더 올라서자” 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팀 훈련 뿐 아니라 각자 개인운동도 많이 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저희는 잘할 수밖에 없었어요. 비록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저희 세계에서는 저희가 1위입니다. 저희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장외룡 감독님은 진정한 승부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검증 받아야하는 신인선수들을 게임에 뛰게 하셨는데, 방승환 선수도 그 중 한 명이었죠. 감독님이 저를 믿어주셔서 정말 좋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처음 컵 대회 시작하고 게임을 뛰는데, 골도 못 넣는 등 시기적으로 안 좋았을 때가 있었어요. 그래도 감독님은 다시 저를 믿어주시고 게임 뛸 기회를 주셨죠. 제가 잠깐 못 뛰고 뒤에서 훈련하고 있을 때, 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며 전화를 해주셨습니다. 그때 다시 게임에 나가 열심히 뛰었고, 경기도 이겼죠. 덕분에 다시 또 기회가 왔고, 그렇게 기회가 올 때마다 최선을 다해 제 가 해야 할 몫을 했습니다.
-장외룡 감독님 어떠세요? 감독님 참 좋으시죠. 늘 열심히 저희를 가르치세요. 4시간 이상 주무신 적이 없다고 하시잖아요. 이 이야기는 아시죠? 감독님이 저희 선수들을 감동시킨 이야기. 저희 팀이 4연승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광주전이 고비였어요. 전반전 때 골을 먹히면서 팀 조직력이 급격히 무너졌어요. 결국 경기 중에 저희끼리 싸우다 나왔어요. 라커룸에서 감독님이 저희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이번 한번만 열심히 뛰어달라고 하셨어요. 결국 저희가 이겼는데, 감독님께서 경기 끝나고 존댓말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해주셨어요. 사실 매번 경기가 끝날 때마다 늘 존댓말로 인사해주세요. 이런 감독님 정말 처음 봐요. 사실 제가 약간 다혈질이거든요. 경기 중에 흥분 잘했는데 장외룡 감독님 만나서 많이 없어졌어요. 선생님이 그런 걸 싫어하시는데, 맞춰 가다보니 성격을 많이 고칠 수 있었어요.
-감독님이 팀을 잘 이끌어 나가시것 같아요. 지도력이 있으세요. 또 항상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시죠. “오늘 경기를 져도 다음 경기 이기면 된다” “한 경기에 연연하지 마라” 고 늘 말씀하세요. 시합 때 항상 목표를 세워주시는데, ‘목표만큼 하면 된다’ 고 생각하세요.
전기리그 시작할 때는 “‘몇 승 몇 패’ 가 목표다”, 후기리그 시작할 때는 “전기 때 이만큼 했으니 이번에는 이만큼 하자”고 목표를 세우고, 목표대로 이루게 만드세요. 또 중요한 경기에서 실수할 때도 결코 다그치는 법이 없으시죠. “사람은 누구다 다 실수하는 법이니까 괜찮다”며, “경험으로 배우라”고 좋게 넘어갑니다.
-장외룡 감독님은 항상 ‘기본에 충실해라’ 를 강조한다고 들었습니다. 축구에 대한 기본을 항상 강조하십니다. 패스, 트래핑 등 어릴 때 배운 기술이나 자세들을 많이 신경 쓰라고 말씀하시죠. 아울러 ‘기본에 충실해라’ 는 ‘운동장에서 지킬 것은 지켜라’ 는 뜻도 가지고 있어요. 운동장에서는 아무도 다치게 하면 안돼요. 상대팀이라 할 지라도요. 어차피 그 사람들도 같은 길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지저분한 경기를 할 바에는 차라리 지라고 하시죠. 항상 칠판에 ‘페어플레이’ 라고 쓰십니다. 강하게 하되 꼭 페어플레이하라고.
‘인내, 희생, 노력’ 도 강조하시는데, 이것이 우리 선수들의 모체에요. 선수들 핸드폰을 보면 배경화면에 이 말이 적혀있어요. (핸드폰을 보여주며) 봐요. 써 있죠? 인내, 희생, 노력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이룰 수 있다고 믿어요. 참고 희생하고 노력하면 뭐든지 이뤄지겠죠? 올해 한 번 더 고생하면? 음… 그렇다면 작년보다 더 잘할 텐데… 이런! 우승이네?
-그래도 프로세계에서는 페어플레이 정신보다는 승리제일주의가 더 지배적이지 않나요? 사실 힘들죠. 그렇지만 페어플레이 정신을 지킨다는 것이 몸싸움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묘하게 차거나 반칙을 하는 행동 등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몸싸움은 하되, 팬들 앞에서 보기 안 좋은 행동은 하지마라고 해석하시면 되요.
-결승전에 올라가기는 처음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제 축구인생에서 처음입니다. 중학교 때는 잘하는 팀에 있지 않았고, 고등학교 때는 선수들이 좋았지만 성적을 내지 못했어요. 대학 때도 꼭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죠. 프로 와서 처음으로 결승에 올라갔는데, 전 저희 팀이 이길 줄 알았어요. 진짜로.
-홈경기에서 5대 1로 패했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자신감이 너무 많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선수들 대부분이 올해 경기하면서 진다는 생각을 안했거든요. 당연히 이길 줄 알았죠. 사실 올해 저희가 울산한테 강했어요. 해볼만한 팀이라 생각했는데 골을 너무 쉽게 허용하면서 빨리 무너졌습니다.
-선수들 스스로 느끼는 충격도 심했을 것 같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바로 핸드폰을 껐어요. 제 스스로에게 너무 창피했어요. 주장 (임)중용이 형과 같은 방을 쓰고 있었는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서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이기고 지는 것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남은 경기는 하나뿐이었습니다. ‘비록 우승을 못하게 될지라도 열심히 하자’ 는 생각이 들었구요. 다시 다같이 운동하고 마지막 게임 열심히 뛰자고 마음을 모았죠.
-연습구장도 없이 훈련하던 팀으로서 또 하나의 신화를 썼다고 생각하는데요. 인천문학구장 보조경기장, 숭의경기장을 돌면서 연습했죠. 파주 트레이닝 센터를 빌릴 때도 있었고, 그것마저 안 되면 가평으로 훈련을 갔어요. 운동장이 없어서 약간 불편한 게 있지만 그것뿐이에요. 울산과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나게 됐을 때, 언론에서 가난한 구단과 부자 구단이라고 비교했는데, 그 기사를 보고 좀 서운했어요. 저희도 처음에 대우 다 받으면서 왔거든요. 물론 제가 아직 결혼도 안했고 집안이 어려운 게 아니라서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죠. 나이 먹은 형들은 결혼도 해서 아이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신문에 버려진 선수들 운운하는 내용이 실렸을 때는 기분이 안 좋았던 게 사실이에요. 저희 다들 인정받고 열심히 뛰는 선수들이거든요. 신문 통해 그런 소리를 들으면 화나고, 기운 빠지고, 심지어 자존심마저 상해요. 앞으로 기자님들이 그렇게 안 쓰셨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에는 회식이 있었는데 안종복 단장님이 “너 다른 팀 가려고 그래?” 라고 물으셨어요. 제가 웃으면서 말했죠. “다른 팀 안 갈 테니 보너스 주세요.” 저희 단장님은 진짜 축구를 사랑하세요. 저희가 연승 행진할 때 수당을 받아야했는데, 선수 11명 모두에게 돌아가야 하잖아요. 결코 작은 돈이 아니거든요. 그때 단장님이 저희 돈 준다고 사채를 빌렸다는 소문까지 돌았어요. 그만큼 저희를 신경 쓰신다는 것이겠죠. 전지훈련 뿐 아니라 아주 짧은 훈련일 때도 꼭 오세요. 단장님 모습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 참 많아요.
-그래도 부산전 때 방승환 선수 덕분에 인천이 챔피언결정전에 오를 수 있었잖아요. 그날 골도 넣고 어시스트도 기록하고 운이 많이 좋았죠.
-평소 노력한 만큼 운도 따른 것이 아닌가요? 음… 전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주위사람들은 저보고 노력 안한대요. (웃음)
-농담도 잘하고 장난도 잘 치는 모습 때문에 그런 건가요? 프로 1년차 땐 집이 인천이라 집에서 다니면서 운동했어요. 그런데 늦잠 자느라 운동 시간도 자주 늦고, 밤 샌 얼굴로 운동 나갈 때도 많았어요. 2년차 때부터는 숙소에 들어가 나름대로 똑바로 생활한 것 같은데, 글쎄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오늘도 감독님이 “넌 언제 정신 차리냐” 그러셨는데,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감독님, 저 정신 차렸어요!”
-프로 1년차와 2년차 때 특별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요즘은 게임 때마다 죽기 살기로 뛰어요. 원래 제 스타일이 그게 아니었는데 프로 와서 많이 바꿨어요. 사실 프로 1년차 때까지 공격만 하고 수비는 안했어요. 대학교 때까지 전 제가 최고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프로에서도 ‘다 제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뛰었죠. 아! 그런데 웬걸! 1명 제치면 또 1명이 바로 바로 오는 거예요. 뒤에서 2명이 쫓아와서 또 붙고.
그때 처음으로 ‘공격수이지만 수비수처럼 뛰어야 한다’ 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래서 요즘은 몸 사리지 않고 제가 먼저 부딪히고 적극적으로 상대 선수들을 마크합니다. 게임도 못하고 열심히도 안하면 그게 뭐에요. 게임은 좀 못하더라도 열심히는 뛰어야죠. 덕분에 단장님도 경기 전에 그래요. “승환아, 다부지게 해.” 사실 1년 차 때는 “골 넣어야지.” 라고 말씀하셨는데. (웃음)
-수비가담률가 늘어나면서 체력적인 부담은 없나요? 처음에 몇 경기 할 때는 못 느꼈는데, 리그가 진행되면서 힘든 걸 느꼈어요. 어떨 때는 경기 중에 호흡이 잘 이뤄지지 않았구요. 경기 끝나고 숙소에서 아침까지 잠 못 이룬 적이 많아요. 너무 힘들어서요. (임)중용이 형이랑 방에서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다 아침을 맞곤 했어요. 경기 있는 날은 항상 새벽 늦게 자거나 거의 못 자죠.
-그래도 데뷔 첫해, 주간 MVP도 2번이나 타는 등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신 차리고 몸 관리 열심히 할걸’ 하는 후회가 많거든요. 1년 차 때는 제가 봐도 많이 놀고 운동도 많이 안했어요. 운동을 안 하는데 어떻게 날아다녀요? 그래도 감독님이 진짜 잘해주셨어요. 동계훈련 때도 꾸준히 게임 뛸 기회를 주셨거든요. 그런데 정규리그 3번 째 경기 이후에 몸 관리를 잘못해서 심하게 감기에 걸렸어요.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회복 후에 2군 경기를 뛰게 됐는데 진이 다 빠진 상태였는지 몸이 안 움직이더군요. 덕분에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면서 8~9경기를 뛰지 못했어요. 그때 정신 차리고 ‘이제 제대로 해야겠다’ 고 결심했고, 컵 대회 때 나가서 결국 제대로 했죠.
-데뷔골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군요. 컵 대회 때 2골이나 넣으면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죠. 아, 그때 언론에서 아주 잠깐 저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웃음) 당시에는 그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 한 경기를 뛰려고 2달 동안 운동했어요. 정말 한 경기만 바라보고 뛴 거예요. 그러니까 몸도 좋고, 컨디션도 좋고, 다 좋았어요. 그런데 2005년 후기 때도 나름대로 잘했는데 아무도 주간 MVP를 안 주시던데요. (웃음)
첫 골을 넣는 순간요? 그냥 멍했어요. 아, 드디어 넣었구나. 골 넣고 더 신나서 잘 뛰어다녔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나중에 지쳐버려 잘 못 뛰었어요. (웃음) 이제는 빨리 안 뛰어가고 천천히 가요. 그래도 프로선수라고 노련미가 생긴 거죠.
-신인왕을 타지 못해서 아쉽지 않나요? 못 탄 걸 어떡하겠어요, 그렇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진짜 열심히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형들이 그러더라구요. 신인왕 안 탄게 낫다고. 신인왕 탔으면 건방 떨었을 거라나요? (웃음)
-2005년을 아쉬운 한해라고 표현했는데, 그래도 2년차 징크스 없이 잘 넘어가셨네요. 많은 사람들이 2년차 징크스 없이 잘 넘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1년차 때랑 스타일이 바꿔서 그런 것 같네요. 고등학교 때는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당시 득점왕도 타는 등 물 올랐죠. 당시에 운동을 진짜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매일 3~4번 정도 운동을 했는데, 그때는 몸이 정말 좋았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운동을 많이 해야 하죠. 고등학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고등학교 1학년 1년 동안 무려 10번도 넘게 팀을 무단이탈했어요. 3학년 형들에게 맞는 게 정말 싫었거든요.
K-리그 명예기자 권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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