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교류 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과제
이상준(국토연구원 부원장)
2018년 남북은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2019년 한반도는 새로운 도전의 기로에 서 있다. 하노이 북미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긴장 조성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7·7 선언)’ 이후 지난 30여 년간 이어진 남북교류의 역사와 최근의 한반도내외의 정세를 종합해 볼 때,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는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어려운 지점에 와 있다. 다함께 절벽으로 후퇴할 수는 없기에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에 자리잡아왔던 남북협력의 기본적인 인식은 남북격차의 축소 또는 해소였다. 즉, 낙후된 북한의 경제수준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밑바탕에 깔린 인식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여건이 크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남북협력에 있어서도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무엇보다도 저성장과 고령화 그리고 기후변화라는 심각한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남북교류가 이러한 과제와 무관하게 진행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남북협력은 저성장, 고령화, 기후변화 등의 도전에 남북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는 남북협력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이 우리를 도와서 함께 저성장, 고령화, 기후변화 등의 도전에 대응할 부분도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북한의 저임금이나 지하광물자원 활용에 그치는 협력이 아니라 남북이 갖고 있는 강점을 기반으로 새로운 공동의 경쟁력을 창출하는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세계 경제 속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분야를 한반도에서 공동으로 개척해 가는 남북협력이 필요하다. 세계 경제의 변화와 동북아시아의 미래 산업구도를 고려해 볼 때, 우리 한반도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육성해야 할 분야 가운데 우선 고려할 수 있는 것은 건강산업과 한류기반의 문화관광산업 그리고 ICT산업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령화의 심화와 삶의 질을 중시하는 생활패턴의 변화는 건강산업과 문화관광산업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등의 기술변화를 선도하는 측면에서 ICT산업은 남북이 함께 육성할 가치가 있는 핵심 산업이다. 따라서 이들 산업과 관련한 남북협력을 구체화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남북협력의 거점이 된 개성과 금강산지역은 건강산업과 한류기반의 관광산업 그리고 ICT산업의 발전을 위한 실험무대(test bed)로서의 역할을 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험무대에서의 성과를 기반으로 서해안권에서는 우리 수도권과 해주, 남포/평양을 연결하는 신산업협력지대 형성을, 동해안권에서는 우리의 속초, 강릉지역과 원산, 함흥지역을 연결하는 신산업협력지대를 발전시켜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의 실현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2008년 관광객 피격사건 이후 중단된 금강산관광사업과 2016년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중단된 개성공단사업은 새로운 협 력의 틀과 내용을 담아내어 재개할 필요가 있다. 저성장과 고령화 그리고 기후변화의 도전을 극복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신산업을 육성하는 방향 하에서 새로운 ‘남북협력 시즌 2’를 추진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북한의 도시와 지역개발도 확대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남북은 2018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큰 틀의 남북협력방향을 설정한 바 있다. 이러한 협력방향 하에서 앞에서 언급한 새로운 틀과 내용을 담아낼 실천 로드맵을 함께 만드는 일이 남아 있다.
(사) 한국지역개발학회 웹진 18호에 게재된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