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마르 베리만 타계, 3일부터 회고전
2007.07.31 / 한선희 기자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30일 발틱해 연안 파로 섬의 자택에서 향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1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태어난 그는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시작해 <위기 Crisis>(1945)로 영화계에 데뷔한 뒤 <사라방드 Saraband>(2003)에 이르기까지 60여 편이 넘는 극장용 영화와 TV 영화를 연출했다.
베리만은 신과 죽음 등 형이상학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카메라를 든 시인'이라 불렸다. <제7의 봉인>(1957)은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한 철학적 이야기로 영화를 사유의 매체로 격상시켰으며, <산딸기>(1957)로 과거와 현재, 환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이야기로 유럽 영화계의 모더니즘을 이끌어냈다. 이후 베리만은 신의 침묵 3부작(<어두운 유리를 통해>(1961) <겨울빛>(1963) <침묵>(1963))'을 통해 신앙의 붕괴와 인간 존재의 불안을 성찰했으며, '악마의 삼부작(<늑대의 시간>(1968) <수치>(1968) <정열>(1969))에서는 68혁명과 베트남전 이후 격렬하게 변화하고 있던 세계에 대한 근심을 담아냈다. 또한 베리만은 <페르소나>(1966) <외침과 속삭임>(1972) <가을 소나타>(1978) 등을 모성과 어머니, 여성의 자기 정체성 문제를 집요하게 탐색한 작품들을 연출한 바 있다.
1983년작인 <화니와 알렉산더>는 베리만의 후기작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20세기 초반 스웨덴의 한 극장을 운영하는 대가족의 희로애락과 소년의 통과의례를 그린 이 작품은 198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촬영상(스벤 닉비스트)과 최우수외국어영화상, 그리고 의상상과 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화니와 알렉산더> 이후 베리만은 영화계 공식 은퇴를 선언했으며, 이후 10여 편의 TV용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유작인 <사라방드 Saraband>(2003)는 이혼한 지 30년 만에 외롭게 살고 있는 전 남편을 찾아가는 한 여성을 통해 가족관계를 다룬 작품이다.
오는 8월 3일부터 13일까지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는 '시네 바캉스'의 일환으로 잉마르 베리만 회고전이 열린다. 지난 2001년 베리만 회고전 상영 프로그램이었던 <한여름 밤의 미소> <제7의 봉인> <산딸기> <처녀의 샘> <어두운 유리를 통해> <외침과 속삭임> <가을 소나타> 등 7편의 영화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이번 회고전에 상영되는 영화는 다음과 같다.
*잉마르 베리만 회고전 소개*
1. 한 여름밤의 미소 Smile of Summer Night 1955년 / 108분 / 흑백 변호사 프레데릭은 어린 아내 앤에 대한 욕구 불만으로 옛 애인이자 배우인 데지레를 다시 만난다. 그러나 프레데릭은 데지레의 집에서 마주친 그녀의 현재 애인들과 시비 끝에 쫓겨난다. 며칠 뒤 데지레는 친구들을 주말 별장에 초대하고, 어린 아내와 전 부인의 아들을 동반해 간 프레데릭은 말콤 백작과 러시안 룰렛 게임을 벌인다. 한때 광고 영화를 만들어 재정난을 해결했던 베리만이 역시 상업적인 목적에서 만든 코미디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각색했다. 칸영화제 시적유머상 수상작이다.
2. 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1957년 / 105분 / 흑백 14세기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 10년 만에 고향 스웨덴에 돌아온 기사 안토니우스는 해변에서 죽음의 사자와 마주친다. 그는 죽음의 사자와 체스 게임을 벌이는 동안 신으로부터 구원에의 확신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흑사병이 드리운 스웨덴에는 여기저기 죽음의 흔적만이 가득할 뿐. 광대 가족들을 보며 위안을 얻은 안토니우스는 그들을 보호하기로 하고 시종 옌스, 대장장이 등과 함께 길을 떠나지만 어디에도 출구는 없다. 신의 존재와 인간의 죽음이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처음으로 영화 속에 녹여낸 기념비적인 작품. 종교적 믿음을 혼란스러워 했던 베리만은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를 듣던 도중 이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진정으로 애착을 느끼는 몇 안 되는 영화들 가운데 하나”라고 고백한 영화다.
3. 산딸기 Wild Strawberries 1957년 / 90분 / 흑백 <산딸기>의 제작 진행중 베리만은 개인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세 번째 아내와 별거중이었으며, 여배우 비비 안데르손, 부모님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던 것. 베리만은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러 길을 떠나는 한 늙은 의사를 등장시켜 생의 활력과 죽음의 공포를 풍부하게 고찰한다. 베리만 영화의 주요 모티브인 꿈이 처음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영화다. 고집불통에 심술맞은 주인공 이삭 보리는 며느리, 세 명의 젊은이와 함께 여행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베리만은 이 영화가 “나에게서 등을 돌려버린 부모님께 내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결사적인 시도”라고 회상했다. <제7의 봉인>에서 신의 존재를 회의했다면, <산딸기>에서는 아버지의 존재에 물음을 던지는 셈. 주인공 이삭 보리 역의 빅토르 시외스트룀은 베리만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준 <유령마차>(25)의 감독이다. 베리만은 <유령 마차>의 이미지를 영화 초반부 이삭 보리의 꿈 장면에 인용했다.
4. 처녀의 샘 The Virgin Spring 1960년 / 89분 / 흑백 신앙심이 두터운 어느 부부의 딸 카린이 교회로 물건을 가져다주러 가는 길에 도둑에게 강간을 당하고 옷을 빼앗긴다. 현장에 있었던 카린의 하녀는 질투와 어린 시절에 대한 복수심에 이를 방관한다. 도둑들은 카린의 집인 줄 모른 채 농장으로 찾아들어 부부에게 그녀의 옷을 팔려 한다. 베리만이 신학적 회의론에서 한 발 나아가 교회의 존재를 부정한 영화. 일상에 침투한 폭력에 신은 침묵할 뿐이며, 이에 대한 절망은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칸영화제 특별상 수상작.
5. 어두운 유리를 통해 Through a Glass Darkly 1961년 / 91분 / 흑백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는 고립된 공간.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카린과 남편인 의사 마르틴, 남동생 미누스, 소설가인 아버지 데이비드가 머물고 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무심하며, 카린과 미누스는 근친상간에 빠진다. 베리만이 처음으로 만든 소규모 앙상블 드라마로, 신을 인간 세계로 끌어내린 작품이기도 하다. 베리만은 “종교적 히스테리 상태에 빠진 한 인간, 또는 심각한 종교적 성향을 지닌 한 정신분열증 환자를 묘사”하려 했다고. 그러나 정신병을 앓으며 믿음을 정당화하려는 카린에게 신은 거미의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6. 외침과 속삭임 Cries and Whispers 1972년 / 91년 / 컬러 베리만이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미지, “완전히 붉게 뒤덮인 방과 흰색 옷을 입은 여인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이 작품에서 붉은 색은 영혼의 내면을 뜻한다. 처음 구상할 때는 <접촉>이라는 시나리오였지만, 모차르트 사중주에 관한 어느 평론가의 글에서 <외침과 속삭임>이라는 제목을 얻었다고. 죽어가는 아그네스를 중심으로 자매인 카린과 마리아, 그리고 하녀 안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카린은 종교적 규율에 순응하면서도 내면은 번민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마리아는 난잡하고 제멋대로다. 반면 이 세 자매의 하녀인 안나는 아그네스를 진심으로 섬기며 복종한다. 실내극 양식을 실험하려 한 베리만은 카메라를 거의 고정시킨 채 인물들이 렌즈를 상대로 움직이도록 했다. “사건이 격렬하면 할수록 카메라는 더욱 더 개입을 말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고.
7. 가을 소나타 Autumn Sonata 1978년 / 97분 / 컬러 피아니스트 어머니와 목사 부인인 딸이 7년 만에 다시 만난다. 딸은 기쁨에 들떠 어머니를 맞이하지만,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들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어머니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모녀는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과정에서 증오하고 절망한다. 베리만은 이 피아니스트의 모습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우울한 예술가의 초상을 그려냈다. 그러나 그는 “이 이야기는 충분히 파고들지 않은 것”이라고 후회했다.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왜 이 영화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피아니스트 어머니를 연기한 잉그리드 버그먼은 당시 암투병중이었고, 몇 년 뒤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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