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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릉선수촌 생활만 8년차다. '우생순 세대'의 막내였던 김온아는 어느덧 후배들을 다독이는 언니가 됐다. |
김온아가 모처럼 정규리그 풀타임을 소화한 인천시청은 정규리그 14경기에서 13승 1패, 챔피언결정전에서 2전 전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최우수선수(MVP)는 당연히 정규리그 득점과 어시스트 1위, 전 선수 중 유일하게 공격포인트 200개를 넘긴 그의 몫이었다.
시즌 종료와 동시에 7월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차출됐다. 결승에서 러시아에 패해 분루를 삼켰지만 아쉬워할 틈도 잠시,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을 위해 태릉선수촌에 소집됐다. 지난 15,17일 서울컵에서는 프랑스 클럽 이시 파리를 상대로 2경기를 치렀다.
사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김온아다. 연이은 강행군에 피로감을 느끼는 터라 느슨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김온아는 “소속팀과 대표팀은 또 다르다. 정신 무장부터 달라진다”며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뛴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일축했다.
◆ 우생순 막내, 싫은 소리 하는 언니가 됐다
“예전에는 언니들하고 워낙 나이차가 많이 나서 긴장 많이 했어요. 지금 어린 친구들은 동기랑 또래가 많으니까 편안한 분위기에서 운동하는 것 같아요. 주장인 (유)현지 언니 혼자서는 벅차니까 제가 많이 도와야죠. 팀 분위기가 흐트러진다 싶으면 싫은 소리도 종종 하게 되네요.”
▲ 3월 아시아선수권, 4월 핸드볼코리아리그, 7월 하계유니버시아드, 8월 서울컵에 이어 9월 리우 올림픽 아시아예선까지. 김온아의 스케줄에는 쉼표가 없다. |
김온아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마지막 세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막내로 엔트리에 합류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핸드볼을 잘 모르는 국민들은 앳된 외모로 유럽의 장대숲을 요리조리 피해 강슛을 날리는, 당찬 김온아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
당시 김온아는 16세 많은 오성옥과 방을 썼다. 이젠 “그땐 임영철 감독님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왔는데”라고 웃을 만큼 이젠 여유가 생겼다. 어느덧 김온아가 후배들을 다독이는 위치에 올랐다. 그는 “전에는 내 플레이에만 신경썼다면 이제는 경기 전체를 보고 조율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수많은 핸드볼 선수들의 선망의 대상이지만 김온아는 “내가 다 잘 하는 게 아니다. 후배들 중에도 잘 하는 선수들이 많다”며 “내가 안 되는 것을 물어보는 걸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포지션별로 함께 방을 쓰고 밥을 먹으며 소통하도록 신경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 리우 올림픽은 무릎 수술만 네 번을 받은 김온아에게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온아는 더욱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
◆ 성치 않은 무릎으로, 약속의 땅 리우를 위해
“그만두고 싶을 때 많았죠. 지금도 아파요. 복귀해서도 통증을 안고 가니 힘들죠. ‘이렇게까지 참으면서 핸드볼을 계속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더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선수 인생은 앞으로 2,3년이지 않을까 싶어요. 임영철 감독님이 들으시면 혼내실텐데... (웃음)”
무릎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김온아는 왼쪽 무릎, 오른쪽 무릎 수술을 각각 두 차례씩 받았다. 왼쪽 무릎 연골 측면의 얇은 막인 추벽이 부었고 오른쪽 안쪽 무릎의 대퇴 인대는 파열됐다. 박아둔 나사가 튀어나와 염증을 일으킨 적도 있다. 그의 무릎엔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올림픽은 무릎에 발목잡힌 김온아가 못내 이룬 꿈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뛰기만 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노르웨이전서 통한의 오심으로 동메달에 만족해야만 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던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조별리그 첫 경기 스페인전서 오른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부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그래서 김온아는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도 모를 리우 올림픽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새벽 1시간 체력 훈련, 오전 2시간 30분의 웨이트트레이닝, 오후 3시간 30분의 전술 훈련으로 짜여진 빡빡한 스케줄은 ‘우생순’을 넘어시기 위한 과정이라 여긴다.
▲ 핸드볼대표팀의 오전 일과는 웨이트트레이닝 2시간 30분이다. 하루 7시간에 걸친 강행군이 힘들지만 김온아는 올림픽의 영광을 꿈꾸며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
김온아는 “리우 올림픽은 나뿐만 아니라 핸드볼인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대회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기세를 이어야한다는 것을 선수들 모두가 잘 알고 있다”며 “한국 여자 핸드볼의 미래가 달렸다. 더 집중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 김온아가 생각하는 임영철, 김선화, 류은희, 권한나
김온아의 핸드볼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 임영철(55), 김선화(24), 류은희(25), 권한나(26)다.
임영철 감독. 우생순을 진두지휘한 주인공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3,4위전 종료 1분을 남기고 오성옥, 홍정호, 오영란의 이름을 부르며 ‘언니들의 졸업식’을 마련해준 훈훈한 면모를 발휘하는 명장이지만 훈련에서만큼은 타협을 모르는 호랑이 선생님이다.
“감독님은 특별하신 분이죠. 고교 졸업 후 실업팀(벽산건설)으로 저를 스카우트하셨고 스무살 때 대표팀에도 불러주셨어요. 근데 소속팀, 국가대표에서 칭찬 한번을 받은 기억이 없네요. 혼나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직도 조금은 어려워요. (웃음)”
김선화. 라이트윙. 김온아의 친동생으로 인천시청 동료이기도 하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어 부모님께 최고의 선물을 드렸다. 현재는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돼 상태. 김온아는 “선화는 동생 이상이다. 서로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친구같은 사이”라고 했다.
▲ 김온아가 임영철 감독, 김선화, 류은희, 권한나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임영철 감독으로부터는 아직까지 칭찬을 받은 적이 없단다. [사진=스포츠Q DB] |
류은희. 라이트백. 역시 팀 동료이자 김온아와 함께 대표팀 공격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정규리그 MVP는 김온아였지만 챔피언결정전 MVP는 류은희가 가져갔다. 김온아는 “은희는 어릴 때부터 호흡을 맞춰 손짓, 이야기만으로도 호흡이 맞는 각별한 선수”라고 설명했다.
권한나. 서울시청 센터백, 김온아를 매섭게 쫓는 후배다. 김온아는 “언론에서 한나와 라이벌 구도를 만드시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렇지만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내가 갖지 못한 점들을 많이 가진 좋은 선수”라고 후배를 치켜세웠다.
◆ 여자 김온아, 꾸미지 않은 꿈은?
핸드볼 골수팬을 자처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김온아를 격하게 아낀다. 운동선수뿐이 아닌 여자로도, 사람으로도 충분히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온아는 “베이징, 런던 올림픽 직후에는 알아보는 분들이 제법 있었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낮췄다.
간혹 가슴을 울리는 팬들이 있단다. 김온아는 “누군가로부터 내 플레이로 인해 힘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개인 시간도 턱없이 적고 아픈 기억들도 너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핸드볼을 해서 얻은 것들이 많은 것 같다”고 종목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 김온아에게 리우는 어쩌면 마지막 올림픽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태릉선수촌에서의 시간이 더욱 간절하다. |
여자 김온아는 어떨까. 그는 “꾸미는 것을 안 좋아한다. 시상식에 나가려 화장을 하면 어찌나 부끄러운지 모른다”며 “유니폼 입었을 때가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남자친구는 없지만 결혼은 너무 늦진 않아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수현, 조정석에 반했다니 눈은 높은 편.
김온아는 자투리 시간 대부분을 자는데 사용한다. “늘 피곤해 쉬고 싶다”며 웃는다. 야구, 축구, 농구 등 구기 종목들을 챙겨보고 최근에는 커피와 인테리어에도 부쩍 관심이 생겼지만 “몰두해봤자 오래 가진 않는다. 관심이 곧 식을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3년 전 배구여제 김연경은 인터뷰를 통해 손연재, 기보배, 황연주와 함께 2012 런던 올림픽 4대 얼짱 리스트에 포함된 김온아 대신 본인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온아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웃었다. 절친한 여제간의 은근한 디스전이다.
김온아의 궁극적인 꿈은 무엇일까. 핸드볼 여제의 꿈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올림픽 메달은 재미없고 진부하죠? 큰 것 없어요.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겁니다.”
▲ 네 차례나 수술대에 올랐던 김온아의 무릎은 테이핑으로 도배돼 있다. 김온아는 수비의 거친 견제와 숱한 부상을 매번 딛고 일어섰다. [사진=스포츠Q DB] |
■ 김온아 프로필 △ 생년월일 = 1988년 9월 6일 |
[취재 후기]
김온아의 운동능력이라면 프로 종목인 농구나 배구를 했어도 분명히 잘했을 것이다. 다음 생애도 핸드볼이냐고 물었다. 그의 답변은 “돈은 열심히 하면 따라오는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안될 것 같다”며 “대신 올림픽, 아시안게임 메달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한다. 핸드볼이 좋아서 시작했다”고 답했다. "핸드볼은 정말 잘하고 싶은데 유명해지는 건 싫다"란다. 박지성이 오버랩됐다.
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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