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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같은 초겨울이다.
화창한 휴일, 충남 예산 예당호 출렁다리와 '느린호수길'을 찾았다.
대설(大雪)을 하루 앞둔 날이지만 두터운 패딩점퍼와 넥워머가 부담스러울 만큼 포근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인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날을 잘 골랐다.
예당호는 출렁다리가 생기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어수룩한 시골형사(김윤석)가 자신을 골탕먹이던 전과자(정경호)를 추격하던 2009년 개봉영화 '거북이 달린다'의 배경이었던 예당호는 그때만 해도 소박하고 한적한 시골이었다.
예산의 명소인 수덕사와 덕산온천, 추사 김정희 고택을 가기위해 잠시 들렀다가던 호젓하고 여유로운 드라이브 코스였다.
하지만 지금의 예당호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지난해 4월 출렁다리가 개통한 이후 호수 주변엔 야외공연장, 조각공원, 세련된 팬션과 카페촌이 생기고 관광객이 두배 이상 늘어나는등 전국구관광지로 떠올랐다. 지금 예당호는 거쳐가는 곳이 아니라 목적지가 됐다.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예당호 조각공원을 먼저 둘러보았다. 조각공원 언덕에서 내려다 본 출렁다리는 길이도, 풍광도 호쾌한 눈 맛을 선사했다. 현수교 공법의 출렁다리는 호수를 보유한 지방자치단체의 관광트렌드다. 길어야 주목을 끌고 관광객들을 끌어 모은다.
예당호는 총 402m 길이로 국내 최장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 최장 파주 마장 호수 출렁다리(220m)보다 두 배 가까이 긴 출렁다리 때문에 호수의 표정이 놀라울만큼 변했다.
'출렁다리'는 보통 다리 양쪽에 연결된 강선에서 줄을 내려 상판에 연결하는 현수교 방식이다.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출렁거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예당호 출렁다리는 멀리서 보기엔 흔들릴 것 같지 않았지만 실제로 걸어보니 마치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위의 유람선을 탄 것처럼 흔들림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폭 5m 상판 위로 성인 3150여명이 동시에 걸을 수 있도록 설계돼 안전하다. 엄마 손을 잡고 걷던 아이는 아빠가 출렁다리를 흔들자 넘어질듯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계절이 무색하게 반바지를 입고 온 청춘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출렁다리 중간에 예당호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3층 높이의 전망대가 설치됐다. 교각과 상판을 연결하는 현수교 특유의 철선이 마치 거대한 하프줄 처럼 이어진 모습이 호수풍광과 겹쳐 아름다운 조형미를 드러냈다.
밤이면 형형색색 화려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이 호수 주변을 화려하게 수놓는다고 하는데 날이 저물 때 까지 기다리기엔 일정이 맞지 않았다.
대신 출렁다리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와 '느린호수길(5.4㎞)'을 걸었다. 다리 주변에 숨어있는 스피커에선 애니메이션영화 겨울왕국의 테마곡 '렛잇고'가 흘러나와 산책길이 경쾌해졌다. 코스는 호수에 접하거나 물위를 걷는 것 처럼 데크길로 이어졌다. 턱이나 계단이 없고 오르막도 완만한 무장애코스다.
호숫가에는 김기덕 감독의 낚시터를 소재로 한 에로틱 스릴러 영화 '섬'을 연상시키는 수십채의 좌대가 물에 잠긴 나무와 조화롭게 떠있었다. 상류의 집수면적이 넓어 담수어 먹이가 풍부해 물고기가 잘 잡히는 호수다. 강태공들은 데크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않고 오로지 낚시에 집중했다.
서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해를 바라보며 걷다보면 풍광이 수려한 곳에 드믄 드믄 쉼터가 나온다. 잠시 쉬면서 배낭을 열고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흑삼차를 마시며 호수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붉은빛 석양이 서치라이트처럼 길게 뻗은 수면위로 물오리 떼들이 종종 걸음을 치고 물위에서 자라는 나무 가지가 찬바람에 흔들렸다. 마음이 평온해 지는 매혹적인 풍경이었다.
느린호수길은 출렁다리 주차장까지 왕복 10.8km로 결코 짧지 않은 길이지만 산책하는 기분으로 느긋하게 호수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저녁 노을과 출렁다리의 야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오후 2시 이후에 걷기를 권한다. 이야기에 맞춰 순식간에 얼굴이 변하는 중국 사천(四川)의 무대극 변검(變瞼)처럼 밤이 되면 예당호는 또 한번 화려하게 변신한다.
첫댓글 참. 멋지게 변했네요
아주 예전에~~~갔을땐 그저 순수했던 자연의 모습에 반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멋진예당호로 변신해 버렸네요
느린 걸음의 미학 출렁다리에 다시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들게 하는군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쇼
시간되면 친구분들과 함께 걸어보세요.
출렁다리에서 시작해 왕복 11km 정도 됩니다.
예당호 주변엔 왕년의 배우 '신일룡'씨가 직접 손님에게 서빙하는 빵집도 있으니 찾아가 보시고요.
행복한 송년 보내세요.
@올리버 감사합니다
친구들과 상의할게요
코로나가 좀 줄어들면~~지금은 어디를 가기가 좀 그래요
요즘은 대청호 오백리길 조금씩 나누어 걷고 있어요
오늘 1구간 끝냈어요~ ^^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