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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혼글>5.18광주폭동이 폭동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5.18광주폭동이 폭동이라는 증거는 1980년 대법원 판결이 있으며
1997년 대법원판결의 논리속에 담겨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건국부터 자유민주주의 국가였습니다.
모든 주권이 국민들에 있는 나라며 법치주의 국가죠
5.18광주폭동을 옹호하는 측에서
심심하면 예를들어 주장하는것중에 하나
프랑스 혁명 3.1운동을 듭니다.
프랑스 혁명이나 3.1운동은
왕권 그러니까 모든 주권이 왕에있는 나라였고
이에 주권을 국민으로 이동한 사건이죠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것이 또하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그리고 3.1운동은
그 시대적 배경과 원인 목적이 뚜렸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그리고 3.1운동 시점에서의
범죄행위들 그러니까 강도 강간 살인 폭행 폭동 등이
왕권 혹은 일제시대에 독재정권하에서 일어났다고 하여
혁명이나 항일운동이라 하지 않습니다.
일제시대건 독재시대건 강도 강간 살인 폭행 폭동은 강도 강간 살인 폭행 폭동이죠
5.18폭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던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민주화라는 이상한 운동은 필요없는 운동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5.18광주폭동이 일어나게된 이유가
전두환의 쿠데타 신군부가 내린 불법적인 5.17비상계엄때문이라 하는데
1980년 부터 1997년 까지 대한민국 국민들 전체가 알지 못했습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는지
신군부가 불법적인 5.17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1980년 전두환 최규하 그리고 대법원은
12.12는 박대통령 시해사건 조사를 위해 정승화를 체포하던중 일어난 사건이었고
정승화는 범죄자라 판결하였으며
5.18광주폭동은 폭동이라 판결하였습니다.
전두환이 12.12쿠데타를 일으키고
실권을 잡아 불법적인 5.17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대법원이 판결한건
김영삼 정권하에서의 5.18특별법에의해 서며
1997년입니다.
그러니까 1997년도에 그 사실을 알게된겁니다.
그럼
5.18광주폭도들은 1980년 5.18일 전국민들이 알지 못하던
전두환 쿠데타설 신군부의 5.17비상계엄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누가 그런 사실을 알려줬을까요? 어떤 증거를 가지고 알았을까요?
그리고 어떤 경로를 통해 그것이 사실이라고 확인했을까요?
또 한가지 대한민국 전국민이 모르던 지역무기고를
5.18광주폭도들은 어떻게 알아 전남지역 44개 무기고를
단 4시간 만에 탈취하였을까요?
100퍼센트 확실한 사실은 1980년 5월 18일 광주폭도들은
전두환이 12.12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증거
신군부가 불법적인 5.17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증거
를 확보한적이 없으며 최규하가 허수아비라는 과학적 확인을 한적이 없고
사실관계를 확인한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전두환은 12.12쿠데타를 일으켰다 신군부는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리고 우연히 5.18광주폭동이 일어났다. 따라서 5.18광주폭동은 민주화운동이다
이를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경찰이 살인범을 잡았습니다.
20년후에 그 경찰은 살인범을 검거하기 직전
뇌물을 주고 진급한 불법을 저질렀다는게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 살인범은 검거될당시 경찰에 저항하며
그 경찰에 정부의 따까리 독재경찰이라 욕을 퍼부었다 합니다.
따라서 그 살인범은 민주화운동가라라는 논리입니다.
이는 1997년 대법원이 판결한 논리 5.18광주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논리
교과서,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등의 내용 과 논리입니다.
<<요약>>
5.18광주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학자,정치인,법관.....들의 논리는
"전두환의 다단계쿠데타가 일어난 시점에서 우연히 일어난 5.18광주폭동범죄이므로
민주화운동이다." 로 요약됩니다.
정승화의 위법행위(쿠데타)
육군본부 B-2벙커는 국방부 청사 지하에 구축돼 있다.
8시 05분, B-2벙커 상황실에 도착한 정승화는 당직사령에게
김재규와 김정섭을 총장실로 안내하고, 스스로는 쏜살같이 상황실로 들어갔다.
그는 상황장교를 부릴 틈도 없이 그 스스로가 전화기를 들고 전광석화의
속도로 계엄선포를 위한 예비조치들을 취했다.
국방장관, 합참의장, 연합사부사령관, 각군총장, 참모차장, 정보참모,
작전참모, 본부사령, 헌병감, 그리고 수경사령관을 호출했다.
이들을 비상 호출하려면 먼저 노재현 국방장관으로부터 허락을 득해야 했다.
그러나 정승화는 계통을 무시했고, 국방장관을 무시했다.
8시 10분경, 정승화는 수도권의 주요 부대들(4개)의 동정을 체크하는 일이었다.
체크하는 부대마다 다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핵심을 체크하기 전에 외곽부터 조심스럽게 체크한 것이다.
외곽부대들에 이상 징후가 없자 그는 드디어
차지철만이 지휘할 수 있는 핵심부대인 수경사의 사령관 전성각에 전화를 걸어
“부대 이상 없느냐, 병력은 장악하고 있느냐”하고 물었고,
이상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정승화는 곧바로 3가지 지시를 내렸다.
1)앞으로 총장의 명령만 받을 것, 2)지금 즉시 출동준비를 할 것,
3)사령관은 즉시 B-2벙커로 올 것 들이었다. 치지철이 지휘하는 수경사를 장악했던 것이다.
이는 차지철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월권적 행위였다.
부대에 ‘이상이 없다’는 것은 차지철이 쿠데타를 위해
대통령을 살해한 범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일 차지철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맨 먼저 수경사 병력이 쿠데타 주도세력이
되어 비상목표들에 출동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승화가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진술한 부분
즉 “12월 26일 밤 11시 40분경, 김계원이 노재현과 정승화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순간까지 차지철이 범인이라고 의심했다”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거짓말인 것이고,
이 말이 옳다고 판시한 판사들은 이상한 오판을 한 것이 된다.
정승화는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차 안에서 간지러운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알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8시 20분‘차지철만이 지휘할 수 있는 근위대 수경사’를 장악하기
직전에는 100% 알았을 것이다.
8시 30분, 노재현 국방장관이 벙커로 달려왔다.
그런데도 정승화는 노재현을 무시하고 오직 김재규가 요청한
계엄선포 준비 작업에만 몰두했다.
1980년 3월 7일 정승화내란방조사건 제2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노재현은 그 순간을 이렇게 진술했다.
변호인: 전화로 비상소집 연락을 받을 때 무슨 이유인지 들었습니까?
노재현: 못 들었습니다. 총장의 음성이 보통 때와는 달리 상당히 당황한 음성이었습니다. “장관님 빨리 나오십시오”해서 “어디요”했더니 “육본 벙커로 나오셔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변호인: 총장실로는 정총장이 안내했습니까?
노재현: 정총장이 안내해서 바로 옆방으로 갔는데 총장실이 아니어서 다시 나와 총장실로 갔습니다.(주: 총장실이 아닌 옆방으로 안내한 것은 정승화가 노재현과 김재규를 한방에 넣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마도 김재규의 말실수가 염려됐을 것이다.)
변호인: 총장실에 김정섭이 있었습니까?
노재현: 김정섭과 김재규가 앉아 있었습니다.
변호인: 그때 각하가 청와대 만찬석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은 없었습니까?
노재현: 그냥 “돌아가셨다”고만 했습니다.
변호인: “어떻게 돌아가셨나”고 자세히 물은 적은 있습니까?
노재현: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어떻게 된거요?” 물었더니 정승화 총장은
아무 말이 없었고, 옆에 있던 김재규가 나서서 “차차 알게 된다, 우선
보안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위성 측면에서 보면 정승화는 바로 이때 국방장관에게,
김재규로부터 전화를 받고 궁정동에 가서 식사를 했던 사실,
김재규와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있었던 행동들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승화는 그런 사실을 숨겼다.
위 사실을 상급자인 국방장관에게 보고하는 것은, 군에서 일생을 보낸
육군총장으로서는 생리와 같은 의무였다.
생리를 자제하면서까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으로 속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위직에 있을수록 그래서 행동은 투명해야 하며,
투명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억울하더라도 의심과 의혹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8시 40분, 합참의장, 연합사 부사령관, 공군총장, 해군총장 등이 도착하자
김재규가 나섰다. “대통령이 유고이니 이 사실을 3일간 비밀에 부치고 즉각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정승화는 이들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상황처리에만 몰두했다.
군 수뇌들을 호출한 것은 육군총장이고, 수뇌들에게 “비밀을 지키고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는 지시를 한 사람은 김재규인 것이다.
이때의 정승화의 얼굴 표정은 어떠했을까? 어둡고 무거워 보였을 것이다.
정승화와 김재규의 모습들을 지켜본 군 수뇌들은 무엇을 직감했을까?
“아니, 웬 중앙정보부장이?” 이런 의문과 함께 아마도 정승화와 김재규가
콤비가 되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9시경, 김재규는 박흥주를 시켜 김계원에게 전화를 대라고 하였다.
박흥주가 여러 가지 통로로 전화연결을 시도하여 김계원과 통화를 했다.
김계원: 큰 영애가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고 묻기에 다른데 계신다고
얼버무렸는데 또 물으면 뭐라고 하지?
김재규: 잘했오
평소와는 다른 고압적인 말투였다.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하는 이 반말은 청와대에서 전화를 받는 김계원에게나
총장실에 있는 군수뇌들에게나 다 같이 강한 메시지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얼마 후에 김재규는 정승화를 시켜 김계원과 다시 통화를 했다.
김재규: 여기 국방장관과 각군 총장이 다 모여 있으니 이리로 오시오.
김계원: 총리께서도 여기 계시니 이리로 오시오.
김재규: 안됩니다. 국무총리를 모시고 실장께서 이리로 오시오.
김계원이 잠깐 멈칫하는 것 같더니 “알겠오 내가 그곳으로 가겠오” 하고 결심을 했다.
김재규의 승리였다. 김계원이 “김재규가 국방부로 오라 합니다” 하고 말하자
최규하 총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말 없는 총리에게 김계원이 또 이렇게 말했다.
“김재규가 청와대 경호실이 무서워 못 오는 것 같습니다.
빨리 계엄부터 선포하여 치안을 유지해야 하니 그리로 가시지요”
이 말에 총리와 장관들이 따라 나섰다.
“김재규가 청와대 경호실이 무서워 못 오는 것 같습니다.”
이 말 속에는 무슨 의미가 들어 있는가?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 범인’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살해했기에 청와대 경호실이 무섭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점에서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김재규가 대통령과 차지철을 모두 살해했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을 것이다.
이때 정승화는 1군 및 3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진돗개2를 발령했다.
20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육사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9공수여단장에게는 육군본부로 출동하라 명령했다.
이렇게 해놓고 그는 상황실을 나와 김재규가 있는 총장실로 가서 그가
취한 조치들을 설명해주고 계엄군이 점령해야 할 특별한 목표라도 따로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계엄군이 점령해야 할 목표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정섭이 방송국, 변전소, 상수도, 은행 등이라고 불러주자
이를 메모했다.
김재규는 군통수권 선상에 있는 사람이 아니며 따라서
정승화의 직속상관이 아니다. 정승화의 직속상관은 노재현 장관이며
노재현은 그때 정승화 옆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국방장관은 무시한 채
김재규의 지시에 따라 병력을 동원해 놓고, 다른 방으로 건너가
그가 취한 조치내용을 보고하면서 계엄군 배치에 대한 지시를 내려달라 했다.
이는 정승화가 이미 국방장관을 돌려놓고 김재규를
군통수권자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9시 10분, 정승화의 호출을 받은 수경사 사령관 전성각 소장이 벙커로 들어왔다.
정승화가 호출한지 한 시간이 경과한 시각이었다. 정승화는 전성각 사령관에게
청와대 외곽을 포위하라고 지시했다. 이어서 청와대 경호실차장 이재전 중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경사 병력이 청와대 외곽을 포위할 것이니, 일체의
경호실 병력을 동결하라, 앞으로는 내 지시만 따르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으로 청와대 밖인 궁정동 안가의 총성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출동했던
경호실 요원들이 철수하고 말았다.
궁정동 안가는 청와대 울타리 밖에 있었다.
이 포위명령은 청와대 내의 경호실 병력이 청와대 외부에 위치한 궁정동 안가
현장으로 접근하는 것을 2중으로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재전 경호실차장에게‘경호병력 동결’을 지시할 때의 정승화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혹시나 이재전이 ‘경호병력 동결’ 지시에 불복할 수도 있겠다 하는 의심을 했을 것이다.
이런 그에게 ‘수경사 병력이 청와대 외곽을 포위할 것’이라고 알려준 것은
‘경호병력이 이미 포위되어 있으니 다른 마음을 먹지 말라’는 묵시적 압력이었을 것이다.
안전조치를 2중으로 취한 것이다. 이에 이재전은 총장이 이미 수경사 병력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정승화가 실세라는 뜻이다.
정승화는 청와대에 있는 김계원과 아주 똑같은 조치를 취했다.
첫째는 경호실 병력이 범죄 현장으로 가는 것을 막아 진실규명의 길을 차단한 것이고,
둘째는 범인 김재규를 은닉시킨 것이다.
만일 정승화가 청와대 경호병력을 동결시키지 않았다면?
시해현장을 향해 출동했던 경호실 병력이 현장으로 갔을 것이고,
거기에 남아 있던 중정(중앙정보부) 총잡이들과 한판 전투를 벌였을 것이다.
중정 총잡이들이 사살됐거나 또는 체포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김재규와 정승화의 행적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김재규-김계원-정승화가 번개 같은 속도로 체포됐을 것이다.
수경사는 총장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차지철만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경호실 병력 역시 차지철만이 지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정승화는 수경사령관과 경호실 차장 모두에게 총장의 지시 이외에는
그 어떤 지시도 받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서슬 퍼런 차지철이 살아있다면 언감 생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월권행위였던 것이다.
이때의 정승화 마음속엔 차지철이 이미 죽고 없었던 것이다.
차지철과 대통령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대통령이 살해됐다면
차지철도 살해됐을 것이라고 믿는 게 상식이다. 그렇다면 맨 먼저 의심이 가는 대상이
대통령과 함께 식사를 했던 김재규일 것이다.
이런 의심이 수경사령관과 경호실차장으로부터‘부대 이상 없음’이라는 말로 확인됐고,
이를 확인한 정승화는 차지철이 지휘하는 두 사람,
즉 경호실차장과 수경사령관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은 김재규를 보호하는 명령이었다.
정승화는 아마도 김재규와 “한 배”를 탔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의리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김재규를 살려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면 정승화가 감히 그렇게
빨리 경호실 병력을 동결하는 조치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1979년 12월 22일자 전성각의 진술조서에는
정승화 총장의 월권행위가 잘 드러나 있다.
정승화의 명령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수경사 상황실에 알아보니 안가 쪽에서
총성이 났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상하다 직감하면서 벙커로 갔다. 정총장의 모습이 초조하고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수경사의 지휘는 경호실장이 한다. 갑자기 총장이 지휘하는 것이 이상했다.
병력출동에 대한 상황처리에서 정승화는 최초에 20사단과 9공수여단에게는 출동명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하기를 그렇게 하면 사회가 소란스러워지게 되고 사회가
소란스러우면 김재규에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출동 명령을 취소시켰다.
이 역시 정승화가 김재규 편에 서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승화가 김재규와 한 편이 될 마음이 없었다면 그는 가장 먼저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보고를 했어야 했다.
“장관님, 금방 각하께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만나 뵙고 보고 올리겠습니다.
우선 제 생각으로는 1.3군에 진돗개2를 발령하고 군 핵심 수뇌들을 소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어려운 일, 복잡한 일, 민감한 일을 할 때에는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여 공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고위직들의 생리다. 그런데 정승화는 모두를 따돌리고 혼자서
비밀스럽게 상황을 처리했다.
국방장관이 도착했을 때 그동안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소상히 이야기 하고
처분을 기다렸어야 했다. 만일 이렇게 했다면 국방장관은 즉시 보안사령관을 불러
김재규-김계원-정승화를 모두 데려다 조사하라고 지시했을지 모른다.
아마도 정승화는 ‘비상국무회의’가 끝날 때까지만 잘 넘기면
막강한 계엄사령관이 될 텐데 여기에서 체포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계엄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맞이하여
군 병력의 동원이 없으면 공공의 질서가 유지될 수 없을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이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선포하는 것이다.
정승화는 육해공군 3개 군 총장들 중에서 육군참모총장일 뿐이었다.
대통령 유고에 대한 상황처리의 주체는 국방장관과 최규하 총리였다.
국방장관이 핵심수뇌들 및 참모들과 함께 의논하고 의논한 결과를
비상국무회의에 반영시킨 후에 처리했어야 할 그런 중대한 사안을
정승화는 비상국무회의도 열리기 전에 그리고 국방장관과 총리를
배제한 채 불법적인 월권을 했던 것이다.
5.18은 폭동입니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란것은 명백한 사기입니다.
계엄군이 자위권으로 총을쏜 상황을 폭도들이 만들었죠.
계엄군에 차량을 돌진시키고 경찰에 차량을 돌진시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지요.
또 5.17 비상계엄은 정당한 헌법명령이었습니다.
최규하와 이희성계엄사령관이 당시의 폭력난동을 진압하기위해
비상계엄을 발동한것입니다.
수십만 데모 군중이 연일 최규하정부 물러나라고 난동을 부리고
경찰을 깔아 죽이고 파출소를 불태우고....
이런 상황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대통령이 어디 있겠습니까?
해서 5.17비상계엄을 선포한거에요.
이 비상계엄을 불러오게한 원흉이 바로 김대중 입니다.
김대중은 박정희가 서거하자 이때다 하고서는
폭력시위를 주도하면서 최규하정부에 엄포를 놓고
정권을 내어놓으라 협박한것입니다.
이런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용납될수 없는 반란행위지요.
이런 관계로 5.18폭동 진압이후 김대중은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겁니다.
5.18폭동이 일어나고 공수부대원은 헌법이 명한데로 시위진압에 나선것이고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대중의 하수인들은 폭력시위를 벌였고
수많은 유언비어를 퍼트리면서 일반시민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합니다.
그 유언비어가 모두 지역감정유발시키는 거짓말들입니다.
요즘 말로 보이스 피싱이라고 봐야겠죠.
이렇게 폭력시위가 극에 달하면서 부상자 사상자가 속출하게 됩니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폭력시위현장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는건
불가능한 주문입니다.
그리고 비상계엄하에서 시위는 어떤 이유든 불법이고 진압당해야 하는겁니다.
사실이 이런데 어떻게 5.18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됩니까?
현재 교과서나 방송등에서 나불거리는 대국민사기 민주화운동 픽션은
89년 황석영 윤이상이 월북하여 김일성 지령받아 만든 픽션입니다.
해서 이 내용은 엄청 허술합니다.
요약하자면 전두환이 쿠데타를 했다. 이를 막기위해 광주시민들이 시위를 했다.
전두환은 광주시민을 학살하라 지시했다. 입니다.
자 여기서 이 엉터리 픽션의 핵심이 있습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여 정권을 찬탈하려 한다는 정보를
광주시민이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겁니다. 전두환이 쿠데타 한다고 자랑하고 다녔습니까?
전두환이 쿠데타를 할려고 하였다면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만약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려한다는 정보를 전두환 측근이 광주시민에 주었다면
그 측근이 누구인지 밝혀야겠지만 그런 인물은 전혀 없습니다.
또 광주시민들이 만약 그 쿠데타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면 그것이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했는가 입니다.
한나라의 정권을 무력으로 찬탈하려 한다는 정보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고
그에대한 정확한 정보 확인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자 어떻게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려 한다는 정보를 확인했을까요?
89년 황석영이 월북하여 김일성 지령받아 만든 5.18 항쟁 픽션에는 이런 사항이 없습니다.
사실관계에서도 이런 사항은 전혀 없습니다.
5.18폭동 사기꾼들이 폭동을 무리하게 사기치려다 보니 이런 사항이 쏙~ 빠진거죠.
또한가지
전남 무기고 38개가 단 4시간만에 털렸습니다.
극비사항인 무기고위치를 광주시민은 어떻게 알고있었는가 하는 겁니다.
2개연대분의 무기가 단 4시간만에 털렸는데 이 사항을 점검해 봅시다.
먼곳은 100키로 인접한 반경 40키로 내의 극비사항인 무기고 38곳이 털렸습니다.
단4시간 만입니다.
목적지로 가는데 1시간. (버스내에는 무기를 탈취할 조직이 미리 탑승하고 있었고
이는 대략 16명 의 인원일겁니다.
무기고 위치 정보보유자 1명, 운전자 1명, 무기적재자 10명, 내부 감시자 2명
외부 감시자 2명 이들은
이들만 무기고를털러가면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위장 그리고 들러리로 시민들을 탑승시킵니다.
그리고 무기를 적재할 군용 트럭도 몰고 갑니다.
군용 트럭에는 대략 2.5톤의 무기가 적재 됩니다.
이이상 적재 되면 트럭이 낙오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군용트럭에는 적량의 무기를 적재해야 하는것이고
이 무기들의 쓰임새와 적재시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노하우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준비를 하여 목적한 무기고 까지 가는데 1시간 걸릴겁니다)
무기를 적재하는데는 빠른 속도가 필요했을겁니다.
정부에서 급파된 정부요원들이 이들의 사진을 찍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내용을 보면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북특전사 출신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해서 10여명이 대략 2.5톤의 무기를 빠른 속도로 적재했을겁니다.
다시 시위장소로 복귀하는데 대략 30~40분 정도 소요 되었을 겁니다.
먼곳은 더 많은 시간을
그리고 예비군대대나 지서에는 더 많은 차량과 인원이 갔을 겁니다.
즉 전남지역에 널려있는 38개 무기고 ....직경 100키로 미터 내의...
무기고를 단 4시간만에 이런식으로 다 털었다는 것은
사전 준비가 매우 치밀한 군사 작전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현역 군인들로 6개월이상 훈련을 시켜도 불가능한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이런 사항을 어찌 광주시민들이 할수있었겠는가
그런데 2006년 북특전사 출신 탈북자들이 5.18폭동당시
북특전사가 남파되어 폭동을 유발 확대시키기 위해 무기고를 털었다 진술하였으며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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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이 진압되고나서 전라도에서는 지역감정이 극에 달합니다.
경상도 차량에는 기름을 주유해주지않고 경상도 사람에는 밥도 팔지않고
경상도 사람에는 여관방도 내어주지 않고
경상도 사람에 김대중 만세 삼창을 부르게 시켰습니다.
민주화 운동 했다면서왜 지역감정이 극에달하여 경상도 사람에 저런 행동을 했을까요?
이는 지역감정 유발시키는 유언비어에 일어난 폭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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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옹호론자들의 주장
수사기록은 신군부가 작성한것이므로 믿을수없다.
교도소 습격사건은 조작이다.
탈북자들의 주장은 증거가 없다.
5.18측 자료는 유네스코가 인정했으므로 믿을수있다.
전두환은 하극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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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측은 5.18측 주장만 옳다하고
5.18이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5.18측 주장이 틀렸다고 하는겁니다.
그러니 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신다면
5.18측이 제시하는 자료들중 의문나는 점을 해결해줘야 하는겁니다.
그런데 그 의문나는점이 5.18의 핵심 내용입니다.
5.18이 일어나게한 원동력이고
확장되어 대규모 무장시위를 하게된 두뇌라고 할수있죠
다이너 마이트가 광주 시민이라면
이 다이너 마이트가 터질수 있도록 불을 당긴 사람말입니다.
누군가 전두환이국권 찬탈하려한다고했다 ,
누군가 경상도군인이 전라도 씨말리러 왔다고 했다,
누군가 무기고를 털자고해서 몰려갔다,
누군가 무기고 위치를 알아서 따라갔다,
누군가 교도서를 습격하자고해서 따라갔다...
이런 5.18을 민주화운동이라 주장하는측의 자료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누군지는 몰라도 누군가가 그렇다 하기에 확인도 하지 않고
쫒아가서 얼떨결에 민주화운동했다....입니다.
그럼 왜 누군가가준 정보
그리고 누군가가준 정보의 진위확인이 중요한지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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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차가 도로가에 한대 서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 앞에는 한 여인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 옆에는 운전자가 그 여인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10여명의 남자들에게
누가 차로 저 여인을 치어 살해했다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 10명의 남자들이 화가 단단히 나서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려 합니다.
헌데 누군가 이들에게 몽둥이를 줍니다.
그 몽둥이를 들고 사건현장으로 달려가
그 운전자를 두들겨 패 줍니다.
그리고 운전자가 사망했습니다.
자 이 10명의 남자들은 의인일까요?
폭력배 일까요?
나중에 안 사실은
도로가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 여인을
운전자가 발견하고 앞에 차를 세웁니다.
그 여인의 상태를 확인하려 앞에 서있었던 겁니다.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누가 10명의 남자들에게 그 정보를 줬는지
누가 몽둥이를 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들은 의인일까요?
폭력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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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런질문을 할수있을겁니다.
만약 실제 그 운전자가 그 여인을 차로 치었다면
그들은 의인인가? 폭력배인가?
이에 대한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렇다면 민주화운동이란것이
모 아니면 도로
정확한 사실확인 없이 누군가의 말에 의존하여
일단 저지르고 본다음 운좋게 맞아떨어지면 민주화운동이되고
아니면 폭력배가 된단 말인가?
++++++++++
이렇기 때문에
최초정보제공자
최초정보전달자
정보의 진위확인자가 중요한겁니다.
+++++++++
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1).
전두환이 정권을 찬탈하려 한다는 정보말이죠
이는 엄청난 중대 사건입니다.
한나라의 정권을 무력으로 잡겠다는거죠
그럼 이 정보를 누군가 알아내서 대학생이나 광주시민에게 전달했을거 아닙니까?
그사람이 누구입니까?
설마 누구인지도 모르는 어떤이가 그런 중요한 정보를 광주시민에게
전달하여 무장투쟁을 하자 했는데
아무런 확인도 없이 네~그렇군요 하고서는
무기고 탈취하여 계엄군에 총을 쏜게 아니것죠
그리고 그 누군가 즉 정보를 전달한 이의 정보가
정확하다는걸 광주시민들은 어떻게 확인하였는가?
(전두환이 국권을 찬탈하려한다.
최규하는 허수아비다. 이에대한 정보 진위를 어떻게 확인했나요?)
사실확인을 했으니
"맞다! 전두환이 정권을 찬탈하려한다 는 정보와 사실이 딱~ 맞다"
인정하고 무장투쟁을 했겠지요.
이런 사실확인도 없이 무작정 무기고 털어서 무장항쟁을 하진 않앗겠지요
자! 누가 어떤경로로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내서
광주시민 누구에게 전달하였고 그 광주시민은 어떻게 그 사실이 맞다는걸
확인 하였는지 설명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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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2).
38개 무기고 위치를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왜 나타나질 않는가?
국가 유공자가 뭔지 몰라서? 죄의식때문에?
아니면 38개 무기고 위치를 안사람은 현재 대한민국에 살지 않아서?
설마 귀신이 38개 무기고 위치를 알려줬다고 말하고 싶은건 아니겟죠.
누군가는 알고있었것지?
무기고 탈취는 매우 중요한 대목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위치를 누가 알려줬는지 아무도 모른다?
즉 5.18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사람이 있기는 한데
누구인지는 모른다?
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사람 광주5.18의 핵심 역할을 한사람
이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보 유출자, 정보 전달자, 정보 확인자, 정보 확산자
무기고 위치를 알고있었던자 최소38명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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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보제공자와 38개무기고위치정보제공자가 누구인의 중요성이 또하나 있습니다.
만일 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위 정보제공자들을 알지못한다면
5.18의 주인이 바뀔수 있다는 겁니다. 5.18의 주연급들이 누군인지 모르기때문에
막말로 개나 소나 돼지가 와서 그 정보는 내가 알려줬다 라고 한다면
5.18의주인이 정신병자 혹은 개나 소나 돼지가 될수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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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정보제공자 무기고 위치 정보제공자 이들이 사망했다 가정한다면
만약 이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하더라도 또다른 의문이 여기 가세하는 겁니다.
이 중요 정보제공자의 정보를 확인한 절차가 없다는것이 이상한겁니다.
누군가 최초 정보를 줬는데 100퍼센트 믿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위를 했다?
극비사항인 무기고 위치를 누군가 알고있어 안내하는데 이에 아무도 의심을 갖지 않았다.?
38개 무기고를 털러간 38개 조직이 있습니다.
이 조직들중 극비사항인 무기고위치정보제공자에 대하여
신분이나 그 정보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물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의혹을 해소시켜 주지 않는다면 결국 5.18주인공은 북 특전사 출신들이 되는겁니다.
누군가 전두환이국권 찬탈하려한다고했다, 누군가 경상도군인이 전라도 씨말리러 왔다고 했다,
누군가 무기고를 털자고해서 몰려갔다, 누군가 무기고 위치를 알아서 따라갔다,
누군가 교도소를 습격하자고해서 따라갔다,
그런데 북특전사 출신들이 그 누군가가 우리요 하고 5.18의 주인임을 천명했고
이에대한 구체적 진술을 했습니다.
자 이 사건 즉 북특전사들의 증언
이들이 증언한 5.18관련 내용의 의미가 바로 5.18주인이 없다는 것이고,
5.18측에서 그 누군가를 제시하지 못하면 5.18주인은 북특전사가 될수있는겁니다.
특히 유언비어 그리고 38개 무기고 위치를 어떻게 파악하여
38개 분팀을 만들어 무기고까지 갔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5.18이 순수 광주시민들에 의해 일어났다면
빨리 정보제공자 ,38개 무기고위치 정보제공자를 찾아내야 하는겁니다
누군가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쳤다.
운전자는 도망쳐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동차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럼 자동차가 범죄자인가? 운전자가 범죄자죠?
그 운전자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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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5.18유네스코등재 설명은 매우 간단합니다.
히로시마 원폭돔도 평화의 상징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특별한 사건이면 무엇이든 등재시킬수 있는곳입니다.
따라서 5.18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고 민주화운동이라 고무도장을 찍어준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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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3).
전두환은 하극상을 일으켰다?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이고 전두환보다 계급이 높아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체포하면 하극상이 된다?
그렇다면 상급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하극상이 되고
대통령이 범죄를 저지르면 아무도 체포할수 없는것인가?
대한민국의 법은 만인에 전국민에 공평하기때문에
대통령이든 계엄사령관이든
범죄를 저지르면 집행자에 의해 언제든지 체포될수있다.
정승화는 범죄자 김재규의 뜻에 동조하여 직속상관인
국방장관의 명령없이 불법적인 계엄선포를 진행했고
이과정은 5.18민주화운동이라 주장하는 측에서도 알고있는 내용이다.
(제 블로그 12.12의 진실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즉 정승화는 운좋게 계엄사령관이 되기 이전에
범죄를 저질렀고 범죄자가 계엄사령관이 된것에 불과하다.
정승화와 최규하는 전두환에 조사를 받고있다는 사실도 알고있었다.
만약 정승화를 체포한것이 하극상이나 쿠데타가 된다면
정승화와 최규하를 수사한것도 하극상이고 쿠데타가 되는것이다.
그런데 정승화와 최규하는 전두환의 수사에 적극협조를 하였다.
특히 정승화는 전두환의 수사과정에 수차례 번복까지 하였다.
수사를 받는다는것은 용의선상에 있는 사람들이고
이는 곳 혐의가 있으면 언제든지 체포된다는 말이다.
즉 수사를 받고있던 정승화 최규하는 언제든지 체포될수있다는것에 동조한것이나 다름없다.
또 전두환의 수사내용이 부당하다 여겨지면 법정공방을 통해 밝히면 되는 일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하극상이요 쿠데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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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4).
최규하는 전두환의 허수아비다?
전두환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길래 그리고 최규하가 얼마나 나약했길래
허수아비가 된단말이죠 최규하가 허수아비라는 과학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만약 최규하가 허수아비였다면 왜 지금은 대통령이 누군가의 허수아비가 되었는지
조사하지 않습니까?
전두환보다 더 무서운 김일성 김정일의 허수아비도 될수있을것이고
함마 전기톱 최류탄이 날아다니는 공포의 국회를보고 허수아비가 될수있을것이고
보다더 효과적인 최면이나 약물 아니면 가족을 인질로 잡아 협박하여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 가능성도 있는거 아닙니까.
이렇게 비추어볼때 만약 최규하가 전두환의 허수아비였다면
김영삼은 박계동의 허수아비고 노무현은 김대중의 허수아비고
김대중은 김정일의 허수아비고 이명박은 촛불좀비의 허수아비가 맞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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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5.18폭도들과 다른것은
전두환은 정승화의 범죄사실을 면밀히 조사하여 증거를 확보하고 법에따라 체포한것이고
5.18폭도들은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 의하여 들은 정보를
확인도 하지 않고 누군가가 털어준 무기로 무장하여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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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옹호론자들의 5.18기록을보면 누군가 전두환이국권 찬탈하려한다고했다 ,
누군가 경상도군인이 전라도 씨말리러 왔다고 했다,
누군가 무기고를 털자고해서 몰려갔다,
누군가 무기고 위치를 알아서 따라갔다,
누군가 교도소를 습격하자고해서 따라갔다.
즉 5.18민주화운동설을 보면 머리는 없고 몸통만 있습니다.
더욱 웃긴건 민주화운동이라고 대대적으로
매년 5월 18일 마다 기념하면서 5.18의 주역 핵심인물이 누구인지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광주시민들,5.18을 연구하는 단체들 조차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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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태에서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려한다는 정보를 정신병자가 줬다며
이런 주장을 할수도 있을겁니다.
5.18이 일어나게된 최초 정보제공자는...
어떤 정신병자때문 이었습니다.
이 정신병자는 누가 한말을 1년동안 반복하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좋게 정신병원을 탈출합니다.
정처없이 돌아다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궁금이왈 쿠데타가 뭐야 하고 물엇습니다.
아직 코흘리게인 친구 띨띨이가 그걸 알리 없엇습니다.
헌데 TV에 전두환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냅다.
전두환에게 물어봐 하고 답해줬드랍니다.
그걸본 정신병자는 전두환이 쿠데타를 안다? 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안다?
그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서는 전두환이 구데타를 안다?를 반복햇습니다.
그 정신병자는 정처없이 걷다 전라도 광주까지 갔더랍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안다?를 중얼거리면서.
전라도광주에 도착한 정신병자는 기진 맥진 힘이 다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중얼거렷습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아~안~다?
전남대 앞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햇습니다.
그를본 광주시민이 놀라 그를 부축해 줍니다.
그는 그 광주시민을 보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전~두~환이 쿠~쿠~데타~를 하~아~안~다?
이말에 놀란 광주시민들이
전두환이 쿠데타를 한다 라고 오해하여 일어난 폭동이엇습니다.
이런 주장을 누가 한다면
5.18이 민주화운동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대응을 하겠습니까?
"정신병자설은 허위다 " 이렇게 대응한다면
당연히 반문할것입니다.
그럼 전두환이 쿠데타를 할것이라 정보를 알려준 사람이 누구냐?
자~어떤 답변을 주시겠습니까?
결론적으로 광주5.18은 정확한 정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일어난 폭동입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탈북을해 서울에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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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5).
상식적으로 봐도 5.18은 폭동. 백번 천번 양보해도 5.18은 폭동입니다.
5.18이 그들 주장처럼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이었다면
독재에 항거했거나, 탄압에 항거했거나
부정부패에 분노했거나, 이런 류의 명분으로
진압이 되고나서, 그 폭동에 가담했거나 동조 동의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지역은
그에 준하는 분위기와 문화를 가지게 될겁니다.
그런데 80년이후 대한민국에선
이런 말들이 기정 사실로 인식화 되어있었습니다.
전라도에 경상도 차량이 가면 기름을 주유해 주지 않는다
전라도에 경상도 사람이 가면 밥도 팔지 않고 여관방도 주지않는다
전라도에 경상도 말투를 쓰면 구타를 당하거나 김대중 만세 삼창을 불러야 한다
전라도에서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는데
진압이후 이들은 왜 경상도에 분노하고 원한을 가졌겠습니까?
이는 지역감정 유발시키는 유언비어에 일어난 폭동이기 때문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북의 공작이 없었다 해주어도
5.18은 결코 민주화 운동이 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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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6).
5.18측 사진자료엔 시작과함께 결론만 있다.
과정이 없다. 계엄군이 대검을 차고 달리는 장면 , 그리고 무참히 죽은 시신
------과정이 없다.
계엄군이 대검으로 폭력시위대를 찌르는 장면이 전혀 없다.
계엄군이 화염방사기를 매고 달리는 장면, 그리고 무참히 그을린 시신
------과정이 없다.
계엄군이 화염방사기로 폭력시위대를 불태우는 장면이 전혀 없다.
모든 5.18측 사진 자료에는
계엄군이 총 대검 화염방사기를 소지하고 있는장면만 있다.
그리고 시신이 무참하게 훼손된 사진만 있다.
왜그럴까?
1980~1990년도 사이에 광주비디오를 가지고 다니면서
선동하던 일이있었다. 물론 사진도 확대하여 같이 가지고 다녔다.
그 광주비디오에는 누군가가 폭력시위대를 무참히 찌르고 가르는 장면이 있다한다.
그런데 왜 공개를 하지 않을까?
너무 잔인해서? 그럼 왜 그렇게 잔인한 사진은 공개하는건가?
답은 간단하다
계엄군은 폭력시위대를 찌르지도 가르지도 불태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7).
-시체장사-
폭도들은 당시 심하게 훼손된 시체를 끌고 다니면서 시민들을 동요케하며 선전선동을 했다.
그 시체를 끌고다니면서 시민들을 동요케 했을때 광주시민들은 내용의 진위여부를 어떻게 확인했을까?
공수부대원들이 죽였다는 시체에 대하여 어떤 확인작업을 했는가.
어떤 확인작업을 했기에 우리 대한의아들 공수부대원들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고 시신을 무참히 훼손했다
단정지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