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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미국 최대의 자동차도시인 디트로이트시가 엄청난 규모의 부채와 세금 수입 감소 등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공식적으로 파산을 신청했다는 뉴스가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지방자치단체가 파산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몇년전엔 오렌지카운티가 파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시는 미국에서도 대도시다. 자동차산업이 쇠락하면서 한때 170만명에 달했던 인구가 80만명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지역경제에 활력을 잃은 것이다.
지방자치제도가 확립된 미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은 지자체가 벌인 무리한 사업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자체에 지원되는 국고보조금과 지방교부세의 비중이 평균 40% 이상이 되다보니 자치단체장이 전시성 사업을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 공약을 이행하겠다며 타당성없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뒤책임을 중앙정부에 떠넘기는 것이다.
인천시의 아시아게임 경기장 공사, 전남 F1사업, 강원도 알펜시아리조트 등 일부 광역자치단체가 천문학적인 부채를 안을 수 밖에 없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충청권 지자체도 예외는 아니다. 감사원은 지난 2월과 3월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북도를 대상으로 도로와 하천 등 주요 건설사업을 점검한 결과 예산낭비 실태가 드러났다. 실례로 청주시는 남상우 전시장의 공약사업으로 교통난 해소를 위해 2008년부터 총 사업비 4천795억원을 들여 12.6㎞의 도로 개선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감사원이 청주시의 장래 인구 추정치와 국가교통DB 등을 토대로 계산한 이 사업의 '편익-비용 비율(B/C)'은 0.5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보통 B/C가 1이 넘어야 경제성 있는 사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감사원의 지적대로라면 이 사업은 비경제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도로는 827억원으로 일부 구간만 확장·신설하면 미래의 교통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데 전 구간에 걸쳐 개선공사를 추진하는 바람에 3천968억원의 혈세가 낭비될 것으로 예상된다. 혈세낭비에는 당연히 비리가 개입된다. 청주시도 도로 확장공사 과정에서 부당한 설계 변경으로 시공업체에 특혜를 준 사실이 드러났다.
또 충남 당진시도 시장의 공약사업이라는 이유로 시립박물관 건립사업을 타당성 분석도 거치지 않고 추진해 148억원의 예산을 낭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기준 재정자립도에 따르면 청주시는 36.4%, 당진시는 30.6%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 지자체는 비경제적인 사업에 수백억원,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이처럼 자치단체장의 치적을 위해 혈세를 펑펑 써대니 정작 필요한 사업은 예산난 때문에 손을 못대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부채가 늘어나고 세수가 줄어도 지자체가 파산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니 지자체는 타당성 조사도 면밀히 하지 않은채 혈세를 펑펑 쏟아붓는 무리한 전시성 사업을 강행하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누가 지는가. 결국 경기침체에 힘들게 장사하는 자영업자나, 박봉에 시달리는 봉급생활자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