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 정수진(김희애), 박동호(설경구)
청와대. 식당. 만찬이 차려져 있고 동호는 먼저 앉아 있다. 수진은 동호의 앞에 선다
동호: 10년전 보궐선거, 덕분에 이겼지. 그날 밤 회식 때 멸치회를 맛나게 먹었던 생각이 나서.. 들지.
수진:들어요. 청와대에서 마지막 식사가 될테니까. (녹음기 펜을 꺼내며) ytv에 보이스펜을 전달할 생각이에요. 오늘 안에 국회에서 탄핵 논의가 시작될거예요. 오래 안 걸리겠죠. 감옥 가는 길. 배웅은 해 드리죠. (나가려뒤돌다)
동호:(녹음기를 켠다. 수진의 목소리가 나온다. ((내가 장익준을 떠나보냈어.)) 수진은 놀라 뒤를 돌아본다. ((그 분이 준 손수건으로 배웅했어. 그 분의 마지막 호흡.. 내 손으로..)) 수진 놀란다. ((멈추게 했다. 그래서 만길아, 그 분이 남긴 일.. 나의 몫이야)) 동호 녹음기를 끈다) 최후의 만찬에서 왜 가룟 유다와 함께 했을까 궁금했는데 이제 알겠어. 무너지는 유다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겠지. 내 생각이 옳았다고. 들어.
수진:(수진, 동호의 앞에 자리한다)
동호:(멸치회를 집어 먹으며) 어릴 때 소설을 써 본적이 있어. 습작의 기본은 필사라고 하지. 이기고 싶은 자를 모방하는 것. 어땠습니까? 숨이 멎어가던 순간 장일준 대통령의 모습 기억하고 있을텐데.. 귀를 막아도 들릭겠지. 장일준의 비명이. 눈을 감아도 보이겠지. 장일준이 고통이. 그 때마다 생각하겠지. 내가 한 일 되돌릴 수 없다면 가치 있는 일로 만들겠다고. 그게 나의 몫이라고.. 서기태가 사건을 추적할 때 썩은 자들을 도려냈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수진:정권은 붕괴됐겠죠. 대통령 아들이 연루됐으니. 썩은 열매 한 두개 있다고 나무를 베어 버릴 수는 없어요.
동호:거대한 나무를 썩게 만드는 것도 벌레 한 마리로 시작하지.
수진:아무리 잘된 밥에도 탄 부분이 있어요.
동호:고름을 둔다고 살이 되진 않아. 조상천을 향하던 잣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수진:서운했겠죠. 당신 모르게 대통령이 강상운과 접촉했으니.. 화가 났나요? 10년 모신 분께서 당신을 감옥에 보내려해서? 가끔 생각해요. 대통령 아들의 문제, 장일준이 당신과 먼저 상의했다면 어땠을까? 장일준의 당선을 위해 흑색선전을 주도했었죠? 장일준의 선거자금 문제를 덮기 위해 조작까기 한 분이니까, 어쩌면! 이 자리에 당신이 앉았을 수도.. 궁굼하네. 당신을 화나게 만든 건 뭘까? 정의감일까, 아님 당신을 버린 동료들을 심판하고 싶은 욕망일까.
동호:둘 다 내 모습이면 안될까. 하나의 얼굴만 가진 인간은 없으니까.
수진:(보이스펜을 들며) 난 당신의 고삐를 당신은 나의 채찍을 가지고 있어요.
동호:나는 대통령을 쓰러뜨린 상처를 당신은 장일준을 시해한 흉터를 가지고 있지. 내가 어떻게 청와대까지 왔는지 그 상처를 지워준다면 당신이 어떻게 장일준을 배웅했는지 그 흉터도 사라질거야.
수진:자신을 내던지고 함께 벼랑에서 떨어질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모두를 내던지고 벼랑 위에 홀로 설 생각이군요..
동호:(손을 내민다. 수진 한참을 생각하다 펜을 건내준다. 펜을 받아 탁자로 걸어간다) 비 내리던 그 밤 장일준을 찾아간 건 세상을 청소하기 위해서였어. 여기서 내가 떠나면 내가 사라진 뒤에도 조상천은 남겠지. 내가 사라진 세상, 강 회장도 있을거야. (믹서기에 두 녹음기를 넣는다. 그 때 비서실장 들어온다. 믹서기를 갈아버린다)
쓰레기가 남았는데 청소부가 떠날 수 있나! 세상의 먼지가 모두 사라질때까지 난! 청와대에 남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