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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중의 으뜸이 용꿈이라는 건 상식이다. 재물이 펑펑 쏟아져 들어온다는 돼지꿈도 용꿈 앞에서는 상대가 안 된다. 옛 사람들은 돼지꿈은 그저 '재물 복'을 줄뿐이지만 용꿈은 천상천하 으뜸이요, 입신출세해 권력과 부귀, 건강을 모두 준다고 보았다. 용은 또한 절대 권력의 상징이며 불의를 싫어하며 무궁무진한 조화(造化)능력을 가진 것으로 믿어졌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웅비와 희망, 용기와 오묘의 상징으로 인식돼왔다는 것이다.
쥐(子) 소(丑) 범(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 원숭이(申) 닭(酉) 개(戌) 돼지(亥) 등 12지 가운데 유일하게 실재하지 않는 동물이 용이다. 다만 용은 12지 모두에다 낙타 사슴 사자 등의 모습까지 갖춰 그 어떤 동물보다 파워가 세다. 눈은 토끼, 귀는 소에다 뱀의 몸통을 지녔고 주먹은 백수의 왕 호랑이 형상이다. 앞서 꿈 이야기를 했지만 '돼지꿈 위에 용꿈'을 증명하는 건 용의 코가 바로 돼지를 닮아서다. 게다가 용은 봉황 기린 거북과 함께 4가지 영물의 하나다. 으뜸 중 으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
용의 기운으로 큰 소원을 이루려던 사람들
이런 용이니 12년마다 그 해가 돌아오면 사람들은 갖가지 꿈과 희망을 담아 행복, 행운을 빌었다. 꼭 60년 전, 올해와 같은 임진년 흑룡의 해였던 1952년에는 바로 그 용처럼 용맹무쌍하게 싸워 한국전쟁에서의 승리를 쟁취하자는 기원을 담았다. 특히 그보다 360년 전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의 용맹정진으로 왜군을 물리쳤듯, 그로부터 6번째 임진년을 맞아 이번엔 중공군을 무찔러 '임진호란'을 승리로 장식하자고 다짐했다. 한국전쟁에서의 중국개입을 '임진호란'으로 명명했던 것이다.
그 해 벽두 경향신문은 "북호(北胡)를 격퇴, 용같이 용감하게 통일로"란 제목으로 진군가를 실었다. "금년은 기어이 임진왜란 때의 거국적 정신을 살려 북쪽 오랑캐를 무찌르자. 그 당시에는 왜적이 남으로부터 우리의 국토를 침범하였다가 물러갔거니와 이번에는 호적이 북새질(야단스럽게 법석이는 일)을 하니 놈들을 시베리아 벌판으로 몰아 쫓자.… 용이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승리의 서운(瑞雲)이 무지개처럼 뻗는 것이다. 현 전선을 끊어 북으로, 북으로 돌진하여 민족숙원인 국토통일을 이룩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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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꿈을 꾸면 존귀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예부터의 강한 암시였다. 태몽으로서의 용꿈은 큰 인물을 낳는다는 징조였고 보통사람이 용꿈을 꾸면 발복하고 승진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래 왕후의 침실 천정엔 용 그림, 용무늬를 그려놓고 눈에 익혀 용꿈을 꾸게 했다. 왜란에 대비, '10만 양병 설'을 주창했던 이율곡 선생이 태어난 강릉 오죽헌에는 '몽룡실'(夢龍室)이 있다. 어머니 신사임당이 꿈에 용을 보고 율곡을 낳았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꿈을 사고 파는 경우도 허다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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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귀한 꿈이니 그 꿈을 사고파는 경우도 많았다. 까치설날인 섣달 그믐날에는 조리장수들이 시내를 돌며 복조리에 가득 걸릴 행운의 꿈까지 함께 판다고 외치곤 했다. "복조리 사려~ 희망조리, 꿈 조리 사려~!" 리드미컬하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집집마다 1년 동안 쓸 만큼 복조리를 사 부엌이나 문설주에 걸어놓았다. 조리로 쌀을 이어 뉘를 골라내듯 불운 불행을 솎아내고 꿈꾸던 행운 행복을 기원하는 세시풍속이었다.
꿈을 판 얘기는 64년, 용의 해 직전인 63년 10월25일 옛날신문에서 찾을 수 있다. 그해 제5대 대통령선거가 한창일 때 "경남 사천군 서포면 구평리에 사는 정 모양(20)은 용꿈을 꾸고 그 꿈을 공화당 지부에 팔았다"는 것. 그 덕인지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공화당이 그에 합당한 꿈 값을 지불하지 않자 그녀는 선거(10월15일)직후인 24일 상경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장충동의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5대 대통령취임일은 12월17일)공관 앞에서 "꿈 값을 내놓아라!"며 항의농성을 벌였다는 것. |
구경꾼이 몰려들고 급기야 경찰까지 동원됐다. 그러나 아무도 돈을 주지 않자 그녀는 "자신의 손등을 돌로 찍어 피를 내는 소동을 벌여" 끝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그 처녀의 머리가 약간 돌았음이 판명돼"놓아주었다는 것인데 그녀는 풀려나자마자 "공화당 본부로 간다."며 쏜살같이 내달렸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녀가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나 공화당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는지 여부는 전해지지 않았다. 대신 이전부터 나돌던 "좋은 꿈은 사고팔기도 한다."는 속설이 정설로 굳어졌다. 부부자식이나 친구 간에도 용꿈이나 돼지꿈을 사서 횡재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용꿈 꾸고 복권당첨도 되고 월척 낚기도
사실 좀 더 근사한 얘기도 있다. 1982년 12월, 제559회 주택복권 추첨에서 강 씨(28)는 연식복권 10장 가운데 1장이 1등에, 나머지 9장이 모두 행운 상에 당첨되는 행운을 잡았다. 타게 된 복금이 모두 3540만 4백 원. 200만 원짜리 단칸 전세방에 산다는 강 씨는 약혼녀 집에 들렀다 가는 길에 복권을 샀다는데 세금을 공제하고 정확히 2860만3074원을 받았다. 그는 "한 달 전에 용꿈을 꾼 것이 이번에 적중한 모양"이라고 싱글벙글하면서 "집을 마련한 뒤 내년 초엔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어느 낚시꾼은 용꿈을 꾼 얘기는 벙긋도 안한 채 낚시대회에 나갔다 월척을 올린 사실을 칼럼으로 써 공감을 얻었다. 한 스포츠 스타는 용꿈을 꾼 뒤 숙원이던 우승의 꿈을 이루었고 특히 용띠 선수들은 "용의 해인 올해는 기필코 승천하는 용이 되겠다."고 다짐해 박수를 받았다. 어느 정치지망생은 선거유세장에서 "내가 이번에 용꿈을 꾸었으니 당선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뽑아주면 나라의 운도 활짝 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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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전국민이 꾸었던 '헛된 용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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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나중에 흐지부지된, 용의 해 전 국민의 헛된 용꿈도 있었다. 1976년 병진(丙辰)년 1월15일. 박정희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영일만 부근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이 발표 한마디로 온 나라는 벅찬 감격과 환희에 휩싸였다. 신문들은 '연초를 흥분시킨 용꿈 낭보' ''용의 해, 우리도 잘 살게 됐다'며 환호작약했다. 그럴 것이 석유가 나온다면 나라가 바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국민은 세금도, 학비도 안내고 오히려 나라에서 돈을 받을 것이란 전망까지 그럴듯하게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꿈에도 갈구하던 석유, 가히 단군 이래 염원이라고 할 민족의 바람이 현실로 등장했다"거나 "대통령의 '석유'발표를 듣는 순간 국민들은 와-하는 함성과 함께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등의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흥분과 환호는 한때의 쇼로 판명되었다. 시추공을 따라 흘러들어간 기름을 '원유발견'으로 착각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둔갑시킨 거였다. 그 전해 12월3일, 중앙정보부는 박대통령에게 "영일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는 첫 보고를 하고 사흘 후인 12월 6일 '현물 석유 1드럼'을 청와대로 보냈다. |
박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중동지역수출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냄새를 맡게 하고 테이블 위 접시에 따러 불을 붙이게도 했다. 불이 붙자 참석자들은 환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대통령은 "아직 경제성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소문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소문이 어디 발이 있어 퍼지던가.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게 됐다. 사실 대통령부터 각계인사를 만나 "여기서만 얘기하지만…" 식으로 정보를 흘렸다. 당시 영부인 역을 하던 대통령의 딸 박근혜 씨도 TV회견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석유가 펑펑 쏟아져 아버님 얼굴에 웃음이 돌면 좋겠다."고 힌트를 주기도 했다.
그해 초에는 또 "금 석유에 이은 제3의 노다지 우라늄광이 발견됐다"는 기사까지 터져 국민 모두가 행복에 겨운 용꿈을 꾸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만에 석유탐사는 시들해졌고 우라늄 얘기도 슬금슬금 꺼져 들었다. 아마 진짜 용꿈을 꾸지도 않은 관료들, 특히 정보기구와 경제부처 장들이 충성경쟁에 나서 대통령에게 환심 거리 보고를 일삼은 것이었다. '석유원년'이란 조어까지 유행시켰던 그해의 해프닝은 결국 포항일원의 땅 투기에 주식열풍 악영향만 끼친 채 '용꿈이 개꿈으로' 변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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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용의 해, 큰 뜻 이루길..
76년에 이어 88년이 용의 해였다. 그 전 해의 민주화열기를 고스란히 계승한 무진(戊辰)년의 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2, 은메달 10, 동메달 11개로 종합 4위를 차지했다. 특히 24살 용띠인 김재엽(유도), 김광선(복싱), 양영자(탁구) 등이 메달 획득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특히 이 해 올림픽은 16년 만에 동서양 진영 160개국 10334명이 참가해 이념과 인종의 벽을 넘어 화합을 이룬 세계사, 한국사의 쾌거로 기록됐다. 한국은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의 잠룡 역할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2000년 경진(庚辰)년은 새천년의 문을 연 해다. 남북분단 후 처음으로 정상회담이 열려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왔다. 남북 이산가족 200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반세기만의 상봉도 이루었다. 그리고 이제 12년 만에 다시 용의 해, 임진년을 맞았다. 선거라는 물을 통해 용으로 승천하려는 이들이 지금 전국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 잊지 말아야할 것은 아무리 용꿈을 꾸어도 그것이 거짓, 술수와 관련됐다면 개꿈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용은 무엇보다 불의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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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용꿈꾸고 대박날께 기다려봐. 좋은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