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哲人 민병산閔丙山
가난했지만 욕심이 없었고 자기의 소유를 고집하지도 않았다. 항상 후줄근한 점퍼에 괴나리봇짐을 메고 다녔다.
평론가이며 전기傳記 연구가인 청구자靑丘子 민병산閔丙山은 철인哲人이며 사색가이고 서예가이기도 했다. 그는 평생 매사에 공평했으며 높은 정신과 큰 덕으로 하여 일반 독자들보다는 문인文人 . 지식인知識人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다.
민병산의 본명은 병익丙翊이었다. 그는 충북의 가멸찬(재산이 매우 많고 살림이 풍족하다)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은 전세방 한 칸 마련할 길이 없어 늘 변두리 단칸 월세방을 전전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가난한 마을의 어린이들을 사랑했다. 그가 늘 메고 다니는 괴나리봇짐 속에는 마을로 돌아가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줄 장난감과 과자부스러기가 꼭 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가난한 마을에서 자라야 한다. 가난 속에 진정한 인생의 모습이 있다. 어렸을 적부터 참된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이해하며 자라야 해."
그는 4.19이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 온 그는 청계천의 고서점을 쏘다니며 위인들의 전기를 사 모았다. 평생 동안 모은 전기傳記를 번역, 출판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타계할 때까지 뜻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한 번은 웬 낮선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서류를 내밀며 도장을 눌러 달라고 했다. 그러면 당장 막대한 자금을 내 놓겠다는 것이었다. 사정인즉 그의 조상들이 엄청나게 많은 재산 중에 자기들의 것인 줄 몰라 처분하지 못한 땅이 있는데 토지 브로커들이 그것을 용케 찾아내어 상속자인 민병산을 찾아 온 것이다.
그는 곰곰이 생각 한 후에 도장 한 번 눌러 주면 필생의 사업인 전기를 출판할 자금이 생기는 그런 호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내가 잘 살아 보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수야 없지." 그것이 민병산의 인간본심人間本心이었다. 그의 땅 위에는 30여 가구가 집을 짓고 살고 있는데, 그가 도장을 누르는 순간 그들이 모두 집을 잃고 쫓겨나야 하니 그런 짓을 차마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민병산은 평생 에머슨의 '심플 라이프'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심플 라이프 하이킹(simple life high thinking), 즉 '생활은 소박하게 생각은 고상하게'를 조용히 주변에 권하는 심플 라이프 운동가였다.
그는 60년대 이후 등장한 서양의 '히피'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히피를 물질문명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저항 운동으로 파악한 그 자신이 어쩌면 일종의 히피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늘 가난했지만 욕심이 없었고 자기의 소유를 고집하지 않았다. 항상 후줄근한 점퍼 위에 괴나리봇짐을 메고 다녔는데 그 속에 들어 있는 싸구려 물건들마저 남과 나누어 가지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았다.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실 때도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결코 상대를 하품 나게 하는 일은 없었다. 눈 한 번 깜박이거나 다리를 바꿔 포개는 일로도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묘한 화술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60평생 수건과 빗을 만들어 줄 여성을 곁에 두지 않았다. 그가 아직 40대인 시절 한번은 한 여성잡지가 '독신주의 특집' 인가를 한다면서 독신인 그에게 독신주의를 찬양하는 글을 억지로 청탁했다. 그 원고료를 받아 친구들에게 소주를 사면서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 "민병산이가 이젠 꼼짝없이 노총각으로 늙어 죽게 됐구나.
남에게 혼자 사는 것이 그럴 듯하다고 떠벌려 놓은 자가 무슨 염치로 장가를 들 수 있겠나. 눈앞의 원고료 몇 푼이 탐이 나서 마음에도 없는 독신주의자가 되고 말았어."
민병산은 위대한 골계가滑稽家(익살스러운 사람)였다. 그의 장례식에는 평소 그와 애틋한 사랑을 주고받았던 각계 인사들이 구름같이 모였다. 특히 인사동의 많은 처녀들이 자진해서 밤을 새워가며 장례 일을 거드는 광경이 이채로웠다.
한 번은 그의 고향 친구가 인사동에 찾아 왔다. "자네가 관철동에서 인사동으로 출입처를 옮겼다던데 오늘 와서 보니 그 까닭을 알 것 같구먼.
관철동에 없던 처녀들이 여기 인사동엔 투성이로구나!" 그러자 그는 눈 한 번 껌뻑이고 나서 대뜸 골계滑稽(익살)로 응수하였다. "이 사람아, 늑대도 이빨이 빠져 버리면 애완동물이 될 수 있는 거여."
민병산이 타계한 것은 그의 회갑 바로 전날이었다. 주변의 젊은 친구들이 그를 위해 간소한 회갑연을 준비했는데, 천성이 떠들썩 한 것을 싫어했던 그는 그것조차도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결국 민병산은 아무도 찾아 볼 수 없는 저승으로 몸을 숨김으로써 회갑연으로부터 완전히 달아날 수 있었던 셈이다.
민병산閔丙山 1928-1990 충북 청주 출생. 문필가. 저서로 『철학의 즐거움』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