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전면에서 학구마을까지 10.7km 구간
백야교 다리 아래 풍광 제법 운치 있어
"바랑산 등산로는 봄·가을철에 멋 자랑"
‘옛길은 시간의 흐름과 같고, 옛길에 있는 마을들은 시간속의 공간과 같다. 길이 시간의 흔적이라면 길이 잇는 마을은 삶의 공간이다. 우리는 옛길을 잃어버렸다. 다시 그 옛길을 더듬는다. 그때마다 잃어버린 삶의 공간을 보게 된다. 그것은 그때 내가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길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우리의 산하를 찾아 헤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길과 닮아가고 싶다.’ -이지누 작, 길과 집과 사람사이에서-
우리는 언제 부터가 옛길에 대한 작은 열망으로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듯이, 전라도 땅 이곳저곳에 순신의 발길이 서려 있다. 구례의 석주관, 손인필의 비각과 이순신 바위, 구례현청, 압록의 점심터, 곡성, 옥과, 석곡 등에 흔적이 남아 있으며, 순천의 부유창, 남문터의 팔마비, 낙안읍성, 조양창, 열선루, 백사정, 구미군영, 회령진, 이진성, 어란진, 벽파, 우수영, 고금도, 고하도 이 모두가 순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이다. 아니 구례와 순천부의 수군 재건 길의 남해안 등이 모두가 불멸(不滅)의 이순신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얼마 있으면 겨울방학이다. 긴 겨울방학에 자녀들과 이순신길의 어는 한곳이라도 여행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백의종군 명을 받고 정유년 4월(1597년) 초1일(양력 5월 16일) '신유' 맑음
옥문을 나왔다. 남문(숭례문) 밖 윤간의 종의 집에 이르니, 조카 봉·분(芬)과 아들 울(蔚)이 윤사행(尹士行)·원경(遠卿)과 더불어 한 대청에 같이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이하 생략-
백의종군 신분으로 아산에서 어머니 별세 소식을 접하고, 상을 치르고 남원까지 오는데 그래도 백성과 의식 있는 선비들은 조문을 하고 그에게 예(禮) 받들어 융숭히 대접하는 것을 곳곳에 기록하고 있다.
그는 난중일기에서 구례현에 들어오는 대목으로 손현필의 집은 남원에서 내려오면 구례현에 가기 전으로 아마도 손현필 비각 근처쯤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일기를 살펴보면,
4월 26일 (양력 6월 10일) '병술' 흐리고 개지 않았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길을 떠나 구례현 금부도사가 먼저 와있었다. (손인필의 집)으로 내려가니 손인필(孫仁弼)의 집에 이르니, 구례현감(이원춘)이 급히 나와 보고는 대접하는 것이 매우 은근하다. 금부도사(이사빈)도 와서 봤다. 나는 금부도사에게 술을 권하라고 원에게 청했더니 원이 아주 대접을 잘했다고 한다. 밤에 앉았으니 비통함을 어찌 다 말하랴!
4월 27일 (양력 6월 11일) '정해' 맑다.
| 구례읍에 있는 손현필의 비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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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떠나, 송치(松峙; 순천시 서면 학구리 바랑산 해발 619m)밑에 이르니 구례현감이 사람을 보내어 점심을 지어 보냈다. 순천 송원(松院:순천시 서면 학구리 신촌)에 이르니, 이득종(李得宗)· 정선(鄭瑄)이 와서 기다렸다. 저녁에 정원명(鄭元溟)의 집에 이르니, 원수(권율)는 내가 온 것을 알고, 군관 권승경(權承慶)을 보내어 조문하고, 또 안부도 묻는데, 그 위로하는 말이 못내 간곡하다.
저녁에 순천부사가 와서 봤다. 정사준(鄭思竣)도 와서 원균 (元均)의 망녕되고 전도된 상황을 많이 말했다.
이런 과정을 보면 그는 비로소 남도에서 이 곳 사람들 많은 관료와 선비들이 장군에게 예(禮)를 갖추면서 인간적인 관계가 유지 된 것으로 보인다.
순천 황전면에서 백야교, 용암매실마을, 상동마을, 송치재, 학구마을 까지 10.7km 구간이다.
걸을 만하다.
황전면에서부터 시골의 풍요마을 구경하면서 걸어보자.
이곳에서 도심에서 보지못할 까치나, 새들이 감나무에 앉아 말랑말랑한 홍시 감을 찍어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에서도 감이 생산되기 때문에 감나무가 곳곳에 있는데,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감을 모두 따지 않고 조류들의 먹이로 몇 개씩 놔두는 풍습이 지금도 전래 되고 있다.
백야교 다리 아래의 풍광은 제법 운치가 있어 여름철이면 천렵을 즐기기 좋은 장소이다.
상동마을에서 굴다리를 지나면 옛 국도이다,
이 길도 좋지만 바로 직진하면 바랑산으로 가는 등산로 이다. 그리 험하지 않아 걸을 만하나 봄, 가을철에는 멋을 자랑하는 길목이다.
이 길목은 순천사람들이 괴목장을 보러 다닐 때 다니는 길목이였으며, 황전사람들은 순천으로 생선을 사러 다닐 때도 이 길목을 다녔을 것이다.
국도 17호는 총 연장 416.7㎞로 여수시 돌산읍에서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이르는 일반국도로, 1976~78년 곡성군~남원시 구간을 시작으로 여수~용인 까지 연결된 도로이다,
지금의 호남고속도로 광주~순천이 개통되기 전에는 광주에서 비포장도로를 이용해 석곡에서 돼지불고기 먹고 넘어 다녔던 옛 생각이 나는 길이다.
그때는 국도가 아니고 지방도로 비포장도로였는데 지금은 4차선 도로에 넘겨주고 한가한 도로로 퇴락한 채, 겨우 순례 꾼에게 길을 내주면서 옛 화려 했던 추억을 머금고 있다.
길을 중간쯤 올라가면 예쁜 아기염소도 만날 수 있다. 이 곳에 염소를 방목하는 목장이 있어 늘 아기 염소들이 도로까지 원정 나와 도로에서 놀고 있어 한적한 모습에 마음을 힐링 할 수 있는 곳이다.
송치에 오르면 어느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다 지금은 잠시 폐쇄된 청소년 수련관이 나온다.
| 순천부의 유일한 흔적으로 팔마비만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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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이 바랑산으로 가는 삼거리 길이다. 그리고 등산로 따라 올라오면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언덕의 둔치에서 어느 곳으로 봐도 풍광이 일품이다. 남쪽으로 순천시내의 아파트 꼭지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으로는 17번 도로 구례방면 도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순천방향으로 100m 내려오면 순천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가 있다.
이 곳은 잠시 차라도 한잔하며 쉬어가는 길목이다.
5월 14일 ([양력 6월 28일) '갑진' 맑다.
아침에 순천부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부찰사는 부유(순천시 주암면 창촌리)로 향했다. 정사준(鄭思竣)·정사립(鄭思立)·양정언 (梁廷彦)이 와서 모시고 가겠다고 한다. 아침밥을 일찍 먹고 길을 떠나 송치(솔티:순천시 서면 학구리 바랑산) 밑에 이르러 말을 쉬게 했다.
혼자 바위 위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곤하게 잤다. 운봉의 박롱이 왔다. 저물 무렵 찬수강(순천시 황전면과 구례사이의 강)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걸어서 건넜다. 구례현의 손인필(孫仁弼)의 집에 이르니 현감(이원춘)이 와서 봤다.
이 근처에서 이 장군이 오수를 취했다는데 도로가 생기고, 개발로 인하여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이곳에서 곧장 내려가면 학구 마을이다. 학구 마을에 순천부로 가는 길이다. 그는 순천에서 17일간을 체류한다.
| 이순신 장군이 사용 했던 여수의 지휘소 진남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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