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도보여행을 시작하며
진도를 마지막으로 남해안 도보여행은 끝난 셈이다. 이제부터 해남의 우수영으로부터 서해안을 따라 북상한다. 서해안도 남해안처럼 해안선이 복잡하다. 어떻게 루트를 잡느냐에 따라 일정이 크게 달라진다. 목포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쎈트럴 시티에 나왔다. 출발시간 7시끼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느닷없이 '우리 아그 중신 쪼까 스시오.'하고 말을 건넨다. 나주시 문평면 옥당리에 사는 이장댁 부인이란다. 서울에 있는 35살 먹은 아들이 아직 장가를 못 가서 걱정이 많단다. 여식애들은 많은데 영 속 마음을 몰라서 불안하단다. 38살이나 먹은 제 아들도 장가를 못 보내는 마당에 남의 아들 중신 설 여유가 어디 있나? 55상의 목사 사위가 당뇨로 입원을 해서 문병차 서울에 왔다 돌아가는 길이란다. 다행히 손자의 신장을 이식하기로 해서 1억원이나 들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단다. 속 없이 8남매를 낳아서 기르느라 고생이 많았단다. 8남매가 모두 서울에 살고 있는데 매월 꼬박꼬박 용돈을 보내주어서 근심걱정 없이 산단다. 시골에 집도 좋게 지었고 영감이 동네 이장이라서 아쉬운 게 없다고 은근히 자랑이다. 영감도 나이가 72살인데 아주 건강하단다. 어제 내린 비로 영산강 물이 불어 모내기 걱정은 덜었다며 심심찮게 말도 아주 잘한다.
서해안 도보여행 시작부터 유쾌한 아주머니를 만나서 기분이 좋다. 여행하는 동안 즐거운 일이 계속될 것 같은 조짐이 보인다.
누가 가라고 떠미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서둘러 길을 나서다니 나도 별난 사람인가보다.
지금 목포에 도착해서 우수영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터미널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천 원만 내면 이렇게 인터넷을 마음껏 쓸 수 있다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11구간(해남 우수영-목포-무안-함평-영광)-첫째날 (5월 22일 금요일) 맑음
일반버스 표를 샀는데 타고보니 우등버스다. 내가 버스를 잘못 탄 것이 아니라 아마도 일반 버스가 없어서 일반요금을 받으면서도 우등버스를 배치한 모양이다. 우등버스가 27.000원이고 일반버스가 18.800원이니 8,200원은 앉아서 번 셈이다. 아무튼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조짐이 좋다. 목포에 도착해서 한 시간이나 기다려 우수영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의 말투가 어딘지 일본인 냄새가 나서 물어보았더니 과연 짐작대로다. 다나까라는 이 친구는 전기기술자로 일하다 60세에 정년토직하고 3년 동안 줄곧 여행을 다니고 있단다. 그러니까 금년 64세다. 처음에 서툰 일본어로 대화를 하다보니 여간 답답하지 않더니 다행히 다나까의 영어가 수준급이어서 영어로 대화를 하고부터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지난 3년 사이에 무려 세 번이나 한국에 왔다니까 어지간히 한국이 편한가보다. 한 번 오면 한 달 정도 있으면서 여기저기를 돌아본단다.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에서의 경험이 무척 재미있는지 신이 나서 연상 지껄인다. 다나까는 이번에 자전거로 40일 정도 한국을 돌아볼 예정이란다. 우선 진도로 가서 신기한 바닷길이 열리는 광경을 구경할 참이란다. 다나까는 비용을 줄이려고 가급적이면 찜질방을 이용하고 김밥을 사서 들고 다닌단다. 참 대단한 영감이다. 나도 찜질방에 들어볼까? 내가 걸어서 여행한다고 했더니 건강때문이냐고 묻는다. 아니, 나도 내 조국의 모습을 더 잘 알기위해서라고 했더니 무슨 의미로 알아들었는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1:00, 우수영에 도착해서 점심으로 암뽕 순대국을 먹었다. 암뽕이 무슨 의미냐고 했더니 돼지 막창으로 만든 순대란다. 어쩐지 쾌쾌한 냄새가 아주 심하다. 온 길을 거꾸로 되돌아서 걷는다. 오늘은 최대한 목포에 가까이 가서 목포로 버스를 타고 갈 참이다. 버스에서 다나까를 만나 말을 많이 한 탓인지 걷는 동안에는 아무도 만나지를 못했다. 어제 늦게까지 인천대 신 교수와 술을 마셔서 피로가 풀리지 않은데다 따가운 햇살아래 걸어가자니 힘이 든다. 목포에서 진도로 가는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지나간다. 벌써 네대가 지나갔다. 대강 4시간쯤 걸었을 즈음 영산강 금호방조제에 도착했다. 아직도 행정구역은 해남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해남에서 6일이나 헤맨 꼴이다. 다행히 교통량이 그리 많지않아 걷기에 편하다.
다리도 아프고 지루하기도 해서 방조제 위에 앉아서 갯벌을 바라보며 쉰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건다. 전화가 있어서 한결 외로움이 덜하다. 아무도 만나서 얘기할 상대가 없으니 전화가 유일한 친구인 셈이다. 금호방조제를 지나는 동안 재미난 음식점 간판이 눈에 띈다. 분명히 기와집인데 상호는 초가집이다. 초가집이던 것을 최근에 기와를 올리고 상호를 미처 바꾸지 못했을까? 아무튼 지루하던 참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촌닭요리를 판단다. 토종닭 갖고는 성이 차지않아서 촌닭으로 했나? 7:00, 현대 삼호중공업의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의 모습이 보인다. 5시간 반이나 걸어서 간신히 금호방조제를 벗어난다. 아직 해는 지지 않았지만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서 덧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이제 해남을 벗어나 영암으로 들어섰다. 삼호중고업 정문 앞에 이르러 어디에서 목포로 가는 버스가 있느냐고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가게 주인도 저는 버스를 타고다니질 않아서 잘 모르겠단다. 이거야 원. 인심이 사나운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헷갈린다. 걷기 운동을 하는 두 젊은 부인에게 물어서 간신히 시내버스를 탔다.
사람이 너무 친절해도 탈이다. 버스를 타면서 운전수에게 찜질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버스 터미널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단다. 찜질방을 여럿 지나치면서도 한사코 제가 아는 찜질방으로 가라며 그냥 앉아 있으란다. 애고. 애고. 참 별난 놈도 다 있다. 아무튼 그래서 버스터미널 근처의 찜질방에 들었다. 그런데 들고보니 여간 편리하지 않다. 저녁도 먹을 수 있고 맥주도 한 캔 마실 수 있고 인터넷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서 아주 좋다. 지난 여름에 찜질방에 들었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앞으로 비용을 줄이려면 찜질방을 이용하면 되겠구나.
※대송한방 찜질방 /061-285-3101/목포시 석현동 741-14
오늘 걸은 길 : 우수영- 문내면-금호 방조제-현대 삼호중공업. 22.6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