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사’로 불리는 제산 박재현의 정신적 자양분은 두 갈래로 분석된다. 그 하나는 개운조사파다. 박도사는 일찍이 계곡 물소리가 일품인 함양의 백운산 밑에 있는 백운암에서 개운조사파와의 합동수련을 통해 신통력을 깨칠 수 있었다. 또 한 갈래는 윤청허 선사로부터 받은 깨우침이다. 현재도 神仙이 되어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 살아 있다는 청허선사는 박도사가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을 만큼 그의 일생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박도사가 20세기를 사는 한국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가공할 신통력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가면 주문(呪文)이 나온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을해명당’(乙亥明堂)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고, 학교 다닐 때도 머리가 비상했으며, 지리산 일대를 방랑하면서 많은 도사들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역시 신통력의 핵심에는 주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 주문은 ‘구령삼정주’(九靈三鼎呪)였다. 주문이란 무엇인가. 주문의 본질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한 결과 주문이란 결국 ‘신들을 설득하는 소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소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sound is power). 그래서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다. 누구를 저주(詛呪)한다고 할 때 주문의 주(呪)자가 들어가는 것도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특정한 소리를 계속 반복하면 그 소리와 감응하는 신들의 세계가 있고, 이 신들의 세계에서 그 사람에게 힘을 준다. 마치 인터넷에서 클릭을 반복해 들어가다 보면 특정 사이트와 접속되는 이치와 같다. 접속이 제대로 되면 그 사이트에 저장된 정보를 무한정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접속의 방법인데 고금을 막론하고 정신세계와 접속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소리였고, 그 소리는 주문이라는 형태로 패턴화되었다. 따라서 주문은 가장 강력한 영적 파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구령삼정주(이하 구령주)는 도교에서 신들을 설득하는 주문이었다. 주문마다 그 주문이 지향하는 특정한 정신세계가 있다. 이 우주에는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처럼 무수한 하늘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예를 들어 불교의 ‘준제주’(准提呪)는 관세음보살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주문이고, 구한말 김제 모악산(母岳山)에서 수행하였던 강증산의 주문은 ‘흠치 흠치 태을천상원군…’으로 시작되는 ‘태을주’(太乙呪)였다. 태을주는 거기에 상응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신격(神格)이 존재한다. 기독교인들이 예배할 때 외우는 ‘주기도문’도 필자가 보기에는 주문의 일종이다.
신비주의를 거부하는 유교에서도 ‘서경’(書經) 서문(序文)이 주문의 대용품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옴-마-니-반-메-훔’의 여섯글자가 전부인 육자대명진언(六字大明眞言)은 가장 유명한 주문으로, 산동네인 티베트에서 발효된 특유의 영성이 물씬 풍기는 주문이다. 10년 전인 1992년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 종교지도자 칭하이(靑海)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필자는 부산 KBS 홀에서 처음 그를 상면했는데, 그가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던 수행 방법도 역시 인도·히말라야의 신들을 부르는 5단계 주문이었다. 주문의 장점은 신속하고 강력한 파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주문의 부작용은 심리적으로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는 정신이상이 오거나 심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문이란 결국 ‘신들을 설득하는 소리’
밀교의 주문 가운데 하나로 조선 후기 재야의 도사들이 많이 사용했던 주문은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이라는 주문인데, 천지팔양경을 외우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쳐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주문 수행자가 한밤중에 팔양경을 외우다 갑자기 천장이 열리면서 머리에는 뿔이 나고 키가 10m는 될 법한, 왕방울만한 눈을 가진 괴물같은 신장들이 눈을 부라리며 나타나 “왜 불렀느냐”고 묻자 주문 수행자가 그만 기절했다는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일종의 정신 착란 현상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실제로 다가온 현실이었다.
현실은 현실인데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다. 주문을 소화해 내려면 무서운 형상을 한 신장들이 나타났을 때 태연하게 “내가 너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배짱과 담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정신적 쇼크를 받아 미쳐 버린다.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성인용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지금 주문을 외워보라. 주문을 통해 기록으로 전하는 무수한 신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한국에 느닷없이 ‘그리스 로마 신화’ 읽기 붐을 일으킨 작가 이윤기씨에게도 주문 수행을 권하고 싶다.
제대로 신화를 알기 위해서는 그 세계에 발을 직접 담가 보아야 한다. 수박 겉만 핥아서 무엇하겠는가. 식칼로 수박을 쪼개서 빨간 과육을 먹어 보아야 할 것 아닌가. 그것이 ‘신켄쇼부’(眞劍勝負) 아니던가. 그러나 책임은 못진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무서워 중도에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윤기씨 관상을 보건대 무인의 투지가 엿보이는 얼굴이라서 한번 시도해 보면 소기의 성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이야기다.예부터 ‘비기자(非器者)는 부전(不傳)이라!’고 했다.‘감당할 만한 그릇이 아니면 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남 함양에 있는 제산에 자택 손님 접대용 방.이 방에서 그는 죽을 때까지 찾아오는 손님을 맞았다.
“大借 얻으면 큰 황소 들어올릴 힘 얻는다”
구령주는 장기적으로 볼 때 신선이 되기 위한 도교의 수행 과정의 하나이지만, 부수적으로는 사주팔자를 보는 능력을 증강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신선의 궁극적 목표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이지만 부수적으로는 축지법, 차력, 둔갑술, 예언능력과 같은 신통력도 있어야 한다.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신통력이 있어야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고, 본인도 자유롭게 천하의 명산대천을 유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역대 유명한 장군들도 주문수행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진다.
을지문덕·강감찬·임경업 장군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한다. 장군은 전쟁터에서 무력을 사용해야 하므로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경우에 대비해 무력을 얻는 주문을 외우면 정말로 엄청난 힘이 들어온다. 예를 들면 차력(借力)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借’의 이름이 붙은 주문이 그것이다.
차력 주문에도 3가지 단계가 있다. 소차(小借), 중차(中借), 대차(大借)다. 소차를 얻으면 송아지 한마리 정도를 들어올릴 만한 힘이 생긴다. 중차는 1년 된 중간 크기의 소를 들어올릴 힘, 그리고 대차를 얻으면 커다란 황소 한마리를 들어올릴 만큼의 파워가 붙는다.
장군을 하려면 대차 정도의 힘은 얻어야 한다는 것이 도사들의 중론이다. 그래야 순식간에 상대를 압도해 버린다. 소설 ‘단’(丹)에도 차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필자는 몇년전 충청도 속리산과 상주 일대에서 활동했던 속리산파(俗離山派)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속리산파 인물들의 면면을 알고 있던 어느 스님으로부터 흥미있는 이야기를 얻어들었다. 그 스님 이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는 의승군(義僧軍) 활동으로 유명했던 사명대사도 주문을 통해 차력을 얻었다고 한다.
사명대사가 외웠던 주문의 이름은 ‘섭화차’(攝化借)였다. 인간과 사물이 서로 하나가 되게 하는 주문으로, 이를 외우면 1t 정도의 바위를 번쩍 번쩍 들 만한 힘이 생긴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현대인은 지나치게 물질적 도구에 의존하는 ‘도구적 인간’으로 전락함으로써 과거의 인간들이 지녔던 이러한 정신적인 힘을 알지도 못하고 개발하려 하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미래의 운명을 예언하는 박도사의 신통력이 구령주를 외우는 주문수행에서 나왔다면 그 구령주는 구체적으로 어떤 주문인가. 구령주는 도교의 ‘옥추경’(玉樞經)이라는 경전에 포함된 하나의 주문이다. 조선 후기 민간도교에서 옥추경은 ‘칠성경’(七星經)과 함께 재야의 방술에 관심이 있는 지식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경전이었다. 인기 있었던 이유는 효험이 즉발하였기 때문이다. 칠성경이 북두칠성을 받드는 신앙을 담고 있다면, 옥추경은 우뢰의 신을 받드는 경전이다.
전자가 주로 단명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용도로 숭배되었다면, 후자는 우뢰의 신을 이용하여 잡귀를 쫓고 복을 비는 양재초복(禳災招福)의 용도였다. 도교 내단학(內丹學) 전문가인 원광대 김낙필 교수의 연구(‘조선후기 민간도교의 윤리사상’)에 의하면 옥추경은 불교의 아미타불 신앙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한다. 즉, 인심이 타락한 말세에 이 경을 외우기만 하여도 구원받는다는 타력구원의 신앙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도교 전문 수행자들에게는 도의 본질과 수도의 요체를 제시하는 경전이라는 것이다. 옥추경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추사 김정희도 이 경을 중시하였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고천문학(古天文學)을 사사받는 삼정(三正) 권녕원(權寧遠) 선생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추사가 옥추경의 서문을 써 놓은 것이 있다고 한다. 재야의 도사들뿐만 아니라 추사 같은 당대의 일급 식자층도 이 경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추사가 옥추경을 좋아한 이유는 종교적 효험도 작용하였지만, 이 경에 나오는 문장이 좋아서 그랬으리라는 것이 삼정 선생의 분석이다. 즉 옥추경 운율(韻律)은 아주 기막히게 맞다는 것이다. 운율은 리듬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운율이 맞아야 읽는 재미가 있고, 운율이 맞다 보면 노래처럼 암송할 수 있다. 지금이야 운율이 퇴색해 버렸지만 조선 후기의 한문 식자층들은 한문 고유의 운율을 아주 중시했던 것 같다. 그 영향이 김일부(金一夫)의 ‘정역’(正易)에도 나온다는 사실을 지적한 분이 삼정 선생이다. 정역이 주장하는 핵심 메시지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패러다임 시프트)는 내용이다.
우주의 시계바늘이 정오를 지나 오후 3시쯤을 가리키고 있다는 주장으로, 낮 12시가 지났으므로 선천에서 후천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제 여성적 에너지가 세상을 주도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선천이 양적 에너지가 주도하는 세상이었다면 후천은 감성적인 성격을 지닌 음적 에너지가 주목받는다고 본다. 선후천이 교체되는 변화의 과정을 ‘금화송’(金火頌)이라는 노래로 표현하였다. 김일부가 남긴 5개의 금화송 가운데 첫 번째인 ‘금화일송’(金火一頌)의 내용이 바로 옥추경의 운율을 따 지은 내용이다. 금화송을 운에 맞춘 이유는 운이 맞아야 거기에서 영적인 힘이 나온다고 본 까닭이다. 이러한 맥락을 감안하면 구령주 역시 운율에 맞추어 암송하는 주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四柱의 정확도는 복채에 비례한다?
구령주를 암송할 때 운뿐만 아니라 어느 시간대에 해야 하는가, 그 암송하는 템포와 반복횟수는 어떠해야 하는가 등은 비밀에 부쳐져 있다. 서양의 클래식에만 콩나물 대가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주문 암송도 고저장단의 악보에 따라야 한다. 주문은 자기 마음대로 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세밀한 지도를 받아 이루어져야 한다. 즉, 스승으로부터 미묘한 부분에 대한 은밀한 지도가 있어야 효과가 발생한다. 사주명리학에서 구령주를 수련해 효과를 보았다는 사실 자체도 그동안 비밀에 부쳐져 있다 박도사가 죽기 직전에야 제자에게 이를 공개해 필자도 알게 되었다.
박도사의 말년 제자인 청담(淸潭)이 병원에서 그의 똥오줌을 받아내는 병수발을 감당한 공로로 비전(秘傳)을 얻어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구령주의 존재를 모르는 사주쟁이들은 박도사의 초능력이 오직 책만 보고 얻은 능력인 줄로 착각한다. 필자도 청담으로부터 구령주라는 이야기만 들었지 구령주를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에 의해 암송해야 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철저히 함구했다. 수업료를 내지 않아서 알려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청담이 병들어 병원에 입원해야만 필자에게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신앙심의 단계가 헌금 액수에 비례하듯 사주의 정확도는 복채에 비례한다는 것이 이 바닥의 법칙이다. 무노동이면 무임금이라고 하듯 무복채(無卜債)는 무적중(無的中)이다. 무림의 비급을 입수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정성이 필요한 법. 돈이 없으면 몸공이라도 드려야 한다. 화장실 청소 10년이라는 몸공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필자는 화장실 청소 1년만에 구령주의 구체적 수행법은 듣지 못했지만, 그 진원지에 관한 정보는 입수할 수 있었다.
박도사의 정신적 자양분은 두 갈래다. 하나는 개운조사파다. 지난호에 설명한 바와 같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개운조사를 추종하는 개운조사파는 ‘능엄경’의 수행법인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 노선을 가지고 있다. 박도사는 일찍이 계곡 물소리가 일품인 함양의 백운산 밑에 있는 백운암(白雲庵, 舊 靈岩寺)에서 개운조사파와 함께 수련한 적이 있다. 또 하나의 갈래는 윤청허(尹靑虛) 선사(仙師)다. 박도사의 일생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 바로 윤청허 선사이다. 박도사가 20대에 지리산을 방랑하던 시절에 만나 죽을 때까지 그리워한 스승이기도 하다.
청허선사는 충남 아산이 고향이다. 6·25때 피난해 지리산 근처 함양에 살게 되었다. 그는 함양읍 교산리 행교마을에 살면서 한약방을 차려 생계를 이어갔다. 요즘도 한의사들이 선도 수련에 특히 관심이 많지만, 과거에도 도인들이 수도를 하면서 호구지책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원만한 방법이 한약방이었다. 당시에는 입산하기 전이어서 속칭 ‘윤약국’으로 불렸다고 한다. 20대에 운명적으로 윤약국을 만난 박도사는 친구인 남원 운봉의 노개식씨에게도 진짜 도인을 만나 보아야 한다면서 친구를 데리고 갔던 적도 있었다.
청허선사는 50대 초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처자식의 생계를 해결해 놓고 정식으로 지리산에 입산하였다. 그 전까지는 한약방을 하면서 처자식을 책임지는 한편 도교 수련의 모든 이론과 방법론을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최치원이 사바세계에 시달린 나머지 가야산으로 들어갈 때 읊었다는 시의 한 구절이 바로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이다. ‘내 한번 청산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라!’ 청허선사는 모든 준비를 치밀하게 마친 다음 산에 들어가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는 처음 10명의 제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가운데 주문수행 과정에서 3명이 죽고 4명은 정신이상이 되었으며 나머지 3명이 살아남았는데, 그 살아남은 3명의 제자 중 최연소자가 박도사다. 2명의 나이 많은 제자들은 지리산에 머무르면서 정통 선도 수련에 들어갔고, 박도사는 중간에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게 됨으로써 호구지책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호구지책으로 인하여 사주명리학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박도사는 목돈을 만지게 되면 그때마다 “선생님이 계신 산으로 돌아가야 할텐데”를 반복하였다고 한다. 비록 시장바닥에서 사주를 보는 천업(賤業)에 종사하였지만, 그가 그리워한 곳은 청허선사가 계시는 지리산이었다.
1970년대 후반 부산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 목돈이 들어오자 계룡산에 재입산한 계기도 그러한 연장선상이었다. 계룡산에 들어갈 때 당시로는 거액에 해당하는 1,000만원의 돈이 수중에 들어왔었다. 김복동씨와 농수산부 장관을 하던 장덕진씨가 함께 보내준 돈이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김복동씨는 군 시절부터 박도사와 교류가 있었으며, 매제인 노태우 장군이 장차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대통령 되기 7년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긴밀한 관계였던 만큼 박도사가 산으로 들어간다고 하자 목돈을 주어 도와준 것이다. 박도사는 1,000만원 가운데 700만원은 가족의 생활비로 남겨놓고, 나머지 300만원을 가지고 계룡산으로 들어갔다.
박도사가 그 300만원의 일부를 사용하여 발행한 책이 지난호에서 언급한 ‘선불가진수어록’(仙佛家眞修語錄)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 보면 저자가 백운산인(白雲山人) 윤일봉(尹一峯)이고, 발행인은 계룡산인(鷄龍山人) 박제산(朴霽山)으로 되어 있다. 백운산인 윤일봉은 누구인가. 박도사의 스승인 윤청허 선사를 지칭한다. 청허선사는 ‘선불가진수어록’의 내용이 선도 수련의 알파와 오메가를 모두 담고 있으므로, 이 책을 펴내야 한다고 제자인 박도사에게 당부하였으며, 박도사는 스승의 명을 받아 계룡산 시절 이 책을 세간에 공개했던 것이다.
청허선사는 100세가 넘는 110세 가까운 나이로 현재까지 지리산에 생존하고 있다고 들었다. 도교의 신선은 100세의 수명은 넘게 살아야 진짜 신선이라고 본다. 신선은 몸으로 직접 입증할 필요가 있다.
100세의 나이는 불로장생한다는 선도 수련의 이론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기준점이기도 하다. 일찍 죽었다는 사실을 따지고 들어가면 인생살이에서 무리수를 두었다는 말이고,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 자체가 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렇게 말 하면 너무 가혹한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조심하라!”
다시 주제로 돌아가면, 구령주의 발원지는 청허선사다. 구령주는 3단계의 과정이 있는데, 이 중 처음 단계만 통과해도 막강한 예언력이 나오고, 그 예언력에 바탕해서 박도사가 장덕진 장관에게 “언제쯤 비가 올 예정이니 양수기를 사지 말고 기다리라”는 예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미래의 천기까지 꿰뚫어 보는 능력은 계룡산 시절의 구령주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박도사 전체의 인생을 두고 볼 때 그 예언은 입밖에 내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 적중력이 세간에 노출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계룡산에서 수도하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뽑혀 올라온 것이 된다.
알고도 모른 체하는 내숭이 도사의 필수적 자질인데, 박도사는 그것을 알고도 입을 다무는 함구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 천추의 한이다. 겪어본 사람들의 체험담에 의하면 박도사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도저히 말을 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했다고 한다. 거기서 함구하고 멈추는 자제력을 갖추기는 웬만한 인내심 갖고는 어림없다고 한다. 십중팔구는 나가서 떠들게 마련이다. ‘고스톱’의 요체도 ‘고’와 ‘스톱’을 시중(時中)에 맞게 판단하는 것이지만, 인생사 전체도 따지고 보면 고와 스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길흉이 결판난다. 조용헌이만 보아도 조금 아는 것 가지고 이렇게 떠들고 있지 않은가! 특히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그만 감동하여 천기를 누설하는 경향이 많다.
박도사도 어려운 상황일 때 자기에게 도움을 준 장덕진 장관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삼국지’의 제갈공명도 천하대사 운운하는 유비의 꾐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재야에서 조용히 수도하여 틀림없이 신선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 중기의 토정 선생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잠언을 남긴 것 아닌가 싶다.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말도 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잠언도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염두에 두기 바란다. 명철보신(明哲保身)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